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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발이 Jun 19. 2020

꽃게 된장지짐

엄마의 레시피

백반을 먹으러 전국을 다니다 보면 “어라! 이렇게도 먹네!”라며 허를 찔리는 맛을 만날 때가 있다. 국물 자작한 돼지갈비에 양념 콩나물을 함께 구워 먹는 수원의 명성갈비가 그렇고, 합정 퓨전술집의 된장숙성 병어구이가 그렇다. 60일 숙성 돼지불고기의 정릉 달 밝은 집의 맛도 허를 찌르고, 양념국물로 수육을 내는 함양 대성집도 기가 막힌다. 간단한 한 수를 더해 맛있는 반전을 요리해 낸 전국의 허를 찔리는 맛. 그 가운데에 엄마의 메뉴도 있다. 물론 나만의 메뉴지만.

바로 꽃게 된장지짐이다.

다름이 특별함으로 이어진 엄마의 맛. 아버지와 엄마가 느껴져 더 진한 맛을 내는, 달달 구수 짭쪼름한 꽃게 된장지짐.




아버지와 엄마의 만남은 참 다른 문화의 만남이었을 거다. 같은 영등포라도 여의도와 영등포 로터리가 다르고, 같은 성남이라도 분당과 모란시장이 다르듯이 충주에서 같은 학교(충주고-충주여고)를 다녔어도 아버지와 엄마는 서로 다른 세상의 선남선녀였고, 서로 다른 영역의 만남이었다.
아버지는 가난했다. 만주에서 맨발로 내달리시던 유년시절을 거쳐 음성 생골 고향 땅에 돌아온 이후 내내 가난했다. 한국전쟁 발발 후 할아버지가 북으로 가버리신 후에는 더욱 가난했다. 어머니는 부유했다. 평양 모란봉에서 걸음마를 익힌 후 충주에 양조장을 차린 외할아버지를 따라 내려온 이후, 방직공장 하다 망할 때까지 엄마는 잘살았다. 가난한 아버지와 부유했던 엄마의 결혼 스토리를 나는 잘 모른다. 맞선으로 결혼하셨다니 감동 뭉클한 러브 스토리는 없었을 거다. 사범대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국어 교사가 된 아버지의 안정성이 망한 부잣집 맏딸의 마음을 끌었으리라 짐작하지만, 깊은 속내는 두 분만이 아실뿐 나는 모른다. 어쨌든 두 분은 잘 사셨다. 내가 목격했다.



그래도 가난했던 남자와 부유했던 여자가 처음부터 찰떡궁합일 수는 없다. 의식주가 절박했던 아버지의 생활 문화가 여유로웠던 엄마에겐 힘들었을 거다.

내가 초등학교 여름방학 때면 생골과 충주 순례를 한다. 양쪽 집안 장손으로써 일종의 고향문화 탐방이랄까. 마장동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생극으로 가는 완행버스를 타고 3시간 정도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 생리(마을 지명이다)에 도착한다. 풍양 조 씨가 다수를 이루는 집성촌이다. 초가만 걷어내고 기와를 얻은 방 2칸짜리 작은할아버지 집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생리의 꼬마 스타가 된다. 운동화 신고 왔기 때문에. 동네 검정 고무신 꼬마들은 죄다 모여 서울에서 온 얼뜨기 운동화 소년을 둘러싸고 부러워하고, 동네 어르신들은 ‘저것이 값에 비해 실질은 떨어진다’며 한 마디씩 내친다. 실제로 ‘실질’은 떨어진다. 돼지 똥 밟은 검정 고무신은 논물에 발 담그고 나고 쓰윽 땅에 문대면 문제가 ‘실질’적으로 해결되지만 운동화는 그 순간 절망이다.
밥 때는 생골 아주머니들 차례다. 모처럼 온 장손 서울 반찬 해준다며 준비하는 건 늘 분홍 소시지 설탕 볶음이다. 오로지 아버지 고향에서만 먹을 수 있던 맛. 분홍 소시지 설탕 볶음이 상 위에 올라오면 동네 아줌마들이 서울 손자 본다며 구경 와 한 마디씩 보탠다.

“서울 아들은 저런 것을 먹는 겨? 저것이 맛난가?”
“그려, 기름 두르고 설탕도 쪼깨 더 두르고 볶으면 맛이 괜찮여. 비싸 그루지”

분홍 소시지 설탕 볶음 먹고, 운동화 신고 검정 고무신 아이들과 논으로 천으로 3일 정도 내달리다 보면 엄마가 온다. 충주로 이동할 때다.  
충주 외갓집은 일본식 다다미가 깔려 있는 적산가옥이었다. 수세식 부엌과 화장실을 갖춘 외갓집을 가면 장손 온 기념으로 시내 중국집으로 외식을 간다. 외할아버지 단골 중국집. 회전 원탁이 있는 중국집에 요리 두어 개 시키고 마무리는 늘 삼선짬뽕이다. 해산물이 푸짐하고 칼칼하게 얹힌 맛은 서울에서도 못 먹어본 맛이었다. 풍류와 미식을 즐겼던, 그래서 망함을 면치 못하셨던 외할아버지 덕에 먹을 수 있었던 멋진 맛이었다. 그리고 그만큼의 차이였다. 아버지와 엄마의 차이는, 분홍 소시지 설탕 볶음과 최고급 삼선짬뽕만큼의 차이.




의식주에서 옷과 집은 바위에 새겨진 각인과 같아서 함께하는 노력에 세월이 더해지면 서서히 흐려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피부에 새겨진 낙인은 노력으로도, 세월로도 흐려지지 않듯이 의식주에서 식, 음식이 그렇다. 누군가는 가난했고 누군가는 부유했던 어린 시절의 음식이 입맛이라는 이름으로 낙인찍히면 지워지지도 흐려지지도 않는다. 그게 미각이다. 결혼을 해서 식구가 되어도 요지부동이다. 아버지와 엄마가 그랬다. 할머니, 엄마에겐 시어머니까지도.  
가난이라는 밥상에 생존을 위해 차려진 짠지 반찬으로 새겨진 아버지의 미각과 부유한 식탁에서 편견 없는 반찬을 즐겼던 엄마의 미각은 좁혀질 수 없는 간격이었다. 특히 바다와 멀어도 너무 먼 충청북도에서도 산골 중의 산골인 생골에서 자라난 아버지에게 해산물은 먹어본 적도, 먹어볼 일도, 먹어보기도 힘든 맛없는 식재료였다. 어릴 적 먹어본 해산물이라야 소금에 쩔은 고등어와 꽁치가 전부였던 아버지에게 해산물은 비릿하고 가시 많은 성가신 먹거리였다. 반면 삼선짬뽕을 사주시던 외할아버지의 딸답게 엄마는 해산물을 좋아했다. 바다 재료 먹기 힘든 충청북도에서 해산물 입맛은 일종의 부유함의 상징이기도 했다.
김치 속에 생굴을 무쳐내면 아버지는 걷어내고, 엄마는 굴만 드셨다. 멸치만 넣고 슴슴하게 끓인 된장찌개는 허전하다며 아버지는 버터를 한 숟갈 담뿍 넣으셔서 기름 동동 된장찌개를 만들었다. 어릴 적 낙인찍힌 어쩔 수 없는 부부의 입맛 차이는 해산물에서 극명한 대비를 보였고 그래서 탄생한 음식이 꽃게 된장지짐이다.   
           
꽃게 된장지짐 레시피

신선한 꽃게 5마리 깨끗이 씻어서 뚜껑을 떼고 4등분
바닥 두툼한 냄비에 꽃게를 올린다
중간 무 1/2를 납작하게 썰어 꽃게와 같이 넣는다
된장 큰 수저 5개, 고추장 큰 수저 1개,
다진 마늘 티스푼 3개, 대파 2 뿌리, 깨소금 약간, 참기름 약간
(기호에 따라 청양고추 약간)
계량컵 3컵 반을 냄비에 넣는다
중불에 꽃게가 빨간색이 나오도록 자작하게 끓인다

짭조름한 구수함으로만 치자면 내가 경험한 음식 중 엄마의 꽃게 된장지짐이 최고다. 꽃게의 감칠맛 듬뿍 머금은 자작한 된장 육수에 밥을 비비면 밥 한 그릇은 순식간이다. 된장에 조려진 꽃게 내장을 밥에 얹어 한 술 뜨면 된장의 구수한 짭짤함과 꽃게 내장의 고소함이 입 속에 어우러져 또 밥 한 그릇이 순식간이다. 꽃게살이야 단맛이 좋기로 유명하지만, 된장 양념과 어우러지면 게살의 하얀 단맛이 훨씬 좋아진다. 된장 양념이 배어있는 꽃게를 한 입 베어 물면 하얀 살의 단맛이 부드럽게 입안에 들어오며 육즙이 흥건히 배어 나온다. 게살의 단맛과 된장 양념 배인 육즙의 구수함이 입에서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어디에서도 먹어보지 못한, 우리 집에서만 먹을 수 있는 환상의 맛이다. 게를 다 해치운 후 육지의 정령 된장 양념과 바다의 영혼 꽃게 육즙 머금은 무를 자작한 국물과 함께 밥에 얹어 한 술 더 뜬다. 완벽하다.
꽃게 된장지짐 레시피의 핵심은 ‘자작하게’다. 꽃게 된장찌개처럼 꽃게가 국물 맛을 더하는 정도가 아니라, 된장과 꽃게가 적극적으로, 자작하게 융합을 해서 새로운 맛을 표현한다. 꽃게 된장지짐은 깊고 짙은 농후한 맛이다. 은은한 단맛을 가득 품은.




미식에 관한 한 나의 스승이라 할 수 있는 수요예술무대의 한 선배가 기분 좋으면 잘해주는 평양 음식이 있다. 꽃게 고추장 지짐.
꽃게에 고추장을 듬뿍 넣고 물 넣고 자작하게 끓여 먹는 음식으로 제법 맛이 좋다. 꽃게 대신 바지락을 넣고 요리해도 괜찮다. 한 선배 어머님이 자주 해주셨던 평양음식이라고 소개하면서 워크숍과 집에서 두 번 요리했던 기억이 있다. 한 선배의 말이 맞다면 꽃게 지짐 요리는 평양에 기원을 둔 음식일 것이고 고향이 평양인 엄마도 외할머니를 통해서 유사한 요리를 드셔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근데 꽃게 고추장지짐은 아무래도 갯것 특유의 비릿함을 충분히 가리지 못한다. 고추장과 꽃게의 맛이 어우러 진다기 보다는 칼칼함 속에 적당한 비릿함이 배어 있는 느낌이다. 아마 고추장과 꽃게 조합 레시피로는 아버지를 만족시킬 수 없을 거라는 생각 했으리라. 엄마는. 그래서 된장과 꽃게의 조합을 생각하지 않으셨을까. 엄마는.
상하기 쉬운 꽃게를 충북 오지 생골에서 아버지가 먹었을 가능성은 단언컨대 제로다.
어쩌다가 먹는 해산물도 산 넘고 물 건너온 소금 쩐내와 비린내 가득한 고등어가 전부였을 테니 아버지에게 꽃게는 정말 먼 나라 식재료다. 반면 엄마는 예나 지금이나 꽃게를 참 좋아하신다. 얼마 전 단체 관광 가셔서 멍게를 잘못 드시고 큰 탈이 나신 후로 해산물을 못 먹지만 꽃게만은 예외다. 탈이 난 이듬해에도 간장 게장은 잘 드실 정도니까. 그러니 꽃게를 사이에 두고 아버지와 엄마의 거리감은 서해바다와 충주의 거리만큼 이였을 거다.
요즘에야 시판 고추장이 넘쳐나지만 예전 가난한 생골에서 값비싼 찹쌀가루가 들어가는 고추장은 콩과 소금이면 충분한 된장에 비해 귀한 식재료였다. 음식은 경험이다. 가난했던 아버지의 입에는 고추장보다 자주 만났던 된장이 더 정겹다.

결론은 나왔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된장으로 꽃게의 비린 맛을 잡고 단맛을 높인다. 꽃게 된장지짐이다.
고추장보다 된장이 회의 맛을 더 좋게 만든다는 것이 식객 허영만 선생의 지론이다. 그래서 회에다 늘 식초를 더한 초된장을 곁들인다. 매운 단맛이 회의 맛을 가리기 때문이란다. 꽃게 된장지짐도 유사한 맥락이다. 고추장으로 지져도 좋지만 비릿한 맛을 중화시키기보다는 가리는 것에 가깝고 매운맛이 강해 게살의 은은한 단맛을 덮어 버리는 단점이 있다. 반면 된장의 짠맛은 꽃게살의 은은한 단맛을 한 층 더 높게 끌어올린다. 제주도는 수박을 먹을 때 집된장을 조금 곁들여 먹는다. 외지인이 보기에는 뭔 짓인가 싶지만 한 입 먹어보면 즉각 수긍이 된다. 수박의 단맛이 더 좋아진다. 발효된 짠맛의 위력이다. 꽃게 된장지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엄마의 꽃게 된장지짐의 목적은 꽃게살의 은은한 단맛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건 그저 결과였다. 엄마는 아버지가 무난히 꽃게를 즐기게 하시는 게 첫 번째고, 두 번째는 온 가족이 충분히 먹는 거였다. 맛있게.         
꽃게는 비싸다. 양도 많지 않다. 온 가족이 풍족히 즐기기에는 예나 지금이나 어려운 녀석이다. 된장지짐은 꽃게의 값비싼 단점을 극복하는 멋진 해결 방법이다. 맛이 좋아짐은 당연하고, 자작하게 조려진 된장과 꽃게의 육즙은 가족 모두가 밥을 비벼 먹기에 충분하다. 맛있게. 푹 익은 무는 자신의 단맛을 자작한 국물에 내주고 대신 꽃게의 단맛과 된장의 구수함을 품었다. 요게 진정 밥도둑이다.
엄마의 꽃게 된장지짐 냄비를 수저로 뒤적이는 건 밥상 말미의 필수 의례다. 된장 국물이 자작이 깔린 냄비 바닥을 잘 뒤지다 보면 된장 속에 숨어있는, 게딱지에서 유실된 노란 알과 내장을 발견할 수 있다. 빙고. 요게 진정 맛의 보물 찾기다.

아마 아버지가 해산물을 잘 드셨으면 꽃게 된장지짐처럼 멋진 음식이 우리 집 밥상에 올라왔을까? 엄마가 다양한 음식 경험이 없었으면 이처럼 맛난 레시피를 생각해 내셨을까? 궁합이란 남녀의 합 맞춤이라는 원초적 의미 말고도, 서로 다른 ’거시기한’ 문화가 조화를 이루려는 노력도 있을 것이다. 된장과 꽃게처럼.

다름을 조화롭게 극복한 궁합은 맛있을 것이다. 꽃게 된장지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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