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자랑 날 발표할 건데 어때요?

솔직하게 적었어요 라고 딸아이가 시를 보내오며 묻는다.

by 머피



제목: 5학년 6반 아이의 시낭송




매일 반에 들어가자마자 생각하는 것

(여기가 우리 반이 맞나?)

익숙하지 않다

(낯선 곳 같아)

친근하지 않다

(마음가지 않아)



매일 창체 시간마다 생각하는 것

(집에 가고 싶어)

매일 수학 시간마다 생각하는 것

(이제야 좀 조용 해졌네)

매일 급식 먹을 때마다 생각하는 것

(빨리 집에 가고 싶어)

매일 선생님에게 하고 싶은 말

(제발 떠드는 학생은 바로 혼내 주세요)

우리 반 애들에게 하고 싶은 말

(한 시간이라도 조용히 해줘)



내가 너무 소심하게 보일 테지만

나도 예전에는 발표도 잘하고 말도 잘했어

내가 지금 외톨이로 보일 테지만

나도 예전에는 집중도 잘하고 열심히 했어

반이 달라지면 나도 달라져

너희가 보기에

내가 내 생각만 하는 것 같겠지만

사실 나도 힘들어



배려해 줄 수 없겠니

너희는 착한 아이들이지만

딱하나 시끄러운 게 문제야

선생님, 떠들면 그냥 가볍게 넘기지 마세요

바른 것을 확실히 가르쳐 주세요

너무 힘들어요 힘들어 죽겠어요


나 빼고 모두 시끄럽게 떠든다는 것

모두 떠드는데 나만 조용하다는 것




제목: 산책


랄랄라 신난다

나는 기분 좋게 길 가다가

저기 저 새들은 어딜 저렇게 바삐 가시나요?

총총총 바쁘게 뛰어간다


저기 저 봉지는 어딜 저렇게 건너가나요?

뚜벅뚜벅 혼자서 걸어간다

구름은 나를 따라오고

꽃들도 나를 쫓아오고


새들도 방긋

구름도 활짝

꽃들도 호호

나도 랄랄라

신나는 산책 가는 길

랄랄라 신난다


제목: 여름을 찾으러


가자 가자 가자

여름을 찾으러

올려다보면 하늘이 푸르구나

내려다보면 땅이 희망차구나

하늘엔 바다가 살고

땅엔 풀들이 살고

가자 가자 가자

여름을 찾으러


제목: 어느 여름날에


햇빛이 힘쓰는 어느 여름날에

사람은 아무도 없다

꽃들이 땀 흘리는 어느 여름날에

차가움은 아무도 없다

풀들이 열 내는 어느 여름날에

흐린 하늘은 아무도 없다

하늘이 활짝 웃는 어느 여름날에

사람, 차가움, 흐린 하늘은

아무도 없다


제목: 산속


엄마 아빠 아무도 없을 때

나 혼자 거실에서 내려다보니

초록 초록한 나무들 귀엽게만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 만져보고 싶은 기분


나 혼자 터벅터벅 밖으로 나가

슈웅, 어두운 엘리베이터로 내려가

뚜벅뚜벅, 혼자 걸어가 본다


집 앞의 산

평소 집에서도 보이는 풍성한 나무들

곁에 서서 본다

그런데 너희들 왜 그렇게 외로워 보이니?

잠시 나무를 올려다본다

내가 본 것과 달라

그러고 있자니 갑자기 뛰고 싶어 진다. 왜일까?

뛴다. 나무가 더 많은 쪽으로

헉헉, 왠지 세상의 끝으로 뛰는 것 같다


갈수록 어두운 산속

무서워 힘껏 뛴다

그러다 멈춘다

참 이상한 기분이 든 시간.

나무를 보다 왜 갑자기 뛰고 싶었을까

나무를 내려다보고 올려다보면

어쩐지 만화처럼 신비로운 기분이 든다





며칠 전 오후


문자가 왔다. 아빠 읽어주세요. 딸아이가 시를 지었다고 했다. 솔직하게 적었는데 어떠냐고 물었다. 뭐 이렇게 길지? 나는 언뜻 시를 보고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놀랐다. 우선 너무 솔직해서. 이게 뭐지? 숨이 턱 막혔다. 너무 놀라 간이 철렁한 느낌. 어떻게 이다지도 깊은 생각을. 얘야 너 그렇게까지 아팠구나. 혼자 견디고 견뎠구나. 혼자 계속해서. 부모에게 말해도 그저 투정이려니 흘러 들은 결과. 어떠냐고 재차 묻는 딸에게 퍼뜩 너무 잘 지었다고 정말 훌륭한 시라고 칭찬해 주었다. 그렇지만 가슴이 아팠다. 아픈 마음까지는 말할 수 없었다. 내색할 수 없었다. 딸아이는 평소 불만을 있는 그대로 표현했다. 지금쯤이면 괜찮아졌겠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학기초부터 시작된 불편이 지금까지 그대로다. 나는 마냥 모른 척 기다렸다. 기다리면 나아질 줄 알았다. 그러나 기대는 어긋났다. 기다림 끝에 나온 시. 나는 학교에 전화했다. 모레 금요일 상담 약속을 잡았다.


음메에에~~~삐약 삐약~~~꼬끼오~~~아아아 아아아아(사오정 소리)~~~

진성과 가성을 섞어 줘야 해. 아이 엄마는 거실에서 열심히 춤과 동물 소리 흉내를 낸다. 손수 보여주면서 들려주면서 아이에게 해보라고 한다. 아이가 엄마를 따라 춤 춘다. 동물 소리 흉내를 낸다. 이번 장기자랑에는 이걸 해보는 게 어떻겠니, 하면서 엄마는 부지런히 흉내를 낸다. 나는 아이를 보면서 우와, 너무 잘한다, 우리 딸, 바로 그거야, 다시 해봐, 라며 손뼉 친다. 다행히 아이는 제법 동물소리를 낼 줄 안다. 웃으면서 동물 흉내를 낸다. 나는 동물 흉내 내는 딸아이를 보면서 연신 잘한다고 응원한다. 그렇게 점점 장기 자랑하는 날이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