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절히 고독하고 추워서 생기는 쾌감
장대비가 내리는 풍경. 우산 없이 확 들어가 버리고 싶다. 까짓 맞으면 어때? 들어가 비 맞고 싶다. 정수리에 빗물이 꽂히는 느낌. 눈도 못 뜰 정도로 얼굴에 퍼붓는 비. 옷이 젖어 온몸에 찰싹 달라붙어버리고. 비는 세차게 내리고. 우산 없이 걷는 사람은 나뿐인가? 둘러보니 나뿐이구나. 나만 이렇게 비를 맞고 있구나. 다들 차 타고 편안하게 가는데 나만 이렇게 빗속에서 터벅터벅 걷는 신세구나. 왜 이렇게 되었을까? 애당초 빗속에 들어갈 자신이 없었는데 의지와 관계없이 비 맞는 남자가 되었구나. 한없이 처량하다. 눈빛마저 처량해진다. 걷는 품새 또한 처량해진다. 어깨가 처지고 고개를 들지 못한다. 가만히 비 맞고 서 있으면 안 되니까 그냥 걸음을 옮기는 거다. 가고 싶어서 가는 게 아니라 가만히 서있을 수가 없어서 가는 거다. 덜덜 떨린다. 왜 이렇게 춥지? 이에서 딱딱 소리 날 정도로 턱이 떨린다. 으스스 추워서 걸어가는 거다. 언제까지 이렇게 떨어야 하지? 언제까지 비를 맞아야 하지?
한동안 그렇게 비를 맞다 보니 상쾌해지는 부분도 있다. 끝없이 추락하다가 추락하는 쾌감을 맛본다. 될 대로 되라지? 최소한 지금보다는 나을 거 아닌가? 이제 젖을 대로 젖었고 떨 대로 떨었으니 반대로 까슬까슬하고 따뜻한 보금자리가 나타날 차례. 근사한 내 집에 가서 옷을 활딱 벗고 욕조로 들어갈 테다. 따뜻한 물속에 차가운 몸을 천천히 넣을 테다. 그러면 서서히 온기가 느껴질 테지? 몸이 따뜻해지면 나와서 수건으로 닦아낼 거다. 드라이기로 머리를 완전히 말릴 거야. 부드러운 속옷을 입고 반팔티를 걸칠 거야. 소파에 앉아 따뜻한 커피를 마실 거야. 한 모금 스읍~마시고 티브이를 볼 거야. 편안히 휴식하는 순간을 그려본다. 나만의 퇴폐로운 한때를 떠올려본다.
비는 그치지 않았다.
아직 빗속을 걷는 시간.
그치기 전에 집에 들어갈 테다.
점차 걸음이 빨라진다.
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