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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피 Jun 30. 2023

소고기 먹는 가족

난 배불러서 그만 먹을래


소고기 먹는 가족



소고기가 익는다. 


소고기가 익는 와중에 한쪽에서 들리는 말.

"난 배불러서 그만 먹을래."


정말 배가 부를까? 고작 두어 점 집어 먹었을 뿐인데? 고기 두어 점으로 배가 부르다면 그게 정상적인 어른이란 말인가? 


아무도 먹지 않는다.


모처럼 소고기를 굽는 식당에 갔다. 가족 모두 모여서 할머니, 할아버지, 나와 아내, 딸까지 고기판 앞에 앉았다. 옹기종기 모여서 "이게 얼마 만에 먹는 소고기야?" 하면서 즐거워했다. 


소고기가 나왔다. 

내가 한 덩어리씩 놓고 구웠다. 반쯤 익었나? 가위로 먹기 좋게 적당한 크기로 잘랐다. 금방 다 익었다. 내가 말했다. 

"장모님, 고기 좀 드세요."

"아~ 난 소고기를 별로 안 좋아해서."

"장인어른, 고기 드세요."

"어, 그래."


장모님은 소고기를 마다하고 주변에 반찬거리만 주워 드셨다. 장인어른도 대답만 하고는 딴청이시다. 그에 반해 아내, 딸아이는 넙죽넙죽 주는 대로 잘도 받아먹었다. 주저하는 이들과 마다하지 않는 이들. 나는 바라만 보고 있었다. 아내가 내게 말했다.

"당신도 좀 먹지?"

"아~ 난 배가 불러서..."


아내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또또, 저런다, 먹지도 않고 배부르다고 양보부터 하고, 그게 미덕이라고 생각하니? 지금이 70년대니?"


이런 구박을 무던히도 받았다. 글쎄 미덕은 아니지만 가격표를 보자면 정말이지 먹지도 않고 배부를 수밖에 없는 가격이지 않은가. 나더러 어쩌란 말인가. 잘 구운 큼직한 고기 한 점 냉큼 집어다 참기름장에 푹 찍어 먹고 싶지만, 내가 먹어버리면 할아버지, 할머니, 아내, 딸이 먹지 못하게 된다. 고기 한점 자유로이 먹을 수 없는 더러운 세상. 그냥 그들이 먹는 모습만 봐도 배 부르다. 슬프지만 그런 생각이 든다.


하루는 아내가 말했다.

"여보, 나 소고기 구워 먹고 싶어."

"응, 당신 생일날 먹자."

"뭐? 소고기 하나 구워 먹는 것도 생일날씩이나 되어야 먹을 수 있는 거야?"

"소고기가 얼마나 비싼지 알면서 그래. 삼겹살이나 먹어!"

"아놔, 쳇쳇~#$#$#$@@@"

 



"할머니, 고기 좀 드세요."

"아빠, 고기 좀 드세요."

"아~ 난 배불러서 그만 먹을래. 니들이나 많이 먹어라."


아마도 고기 두 점 혹은 석 점 정도를 드셨나? 이 정도 먹고 배부르다면 소고기 파는 식당은 다 문을 닫아야 할 판이다. 소고기 불판 앞에서는 먼저 먹고 뒤에 먹는 순서가 존재한다. 자식 내외와 손녀가 정말로 배부르다며 수저를 놓을 때, 비로소 불판에 남아있는 고기를 보면서 할머니는 말한다. 


"아이고, 얘들아~ 니들 이거 정말 안 먹을 거니? 아~ 참~ 어쩌나? 살찌는데, 배부른데, 나 소고기 싫어하는디 아까워서 어쩔 수 없이 먹는 거다?" 라면서 급히 상추깻잎 두 장에 고기 여러 점 척척 얹어서 우적우적 드신다. 


입안 가득 고기를 넣고 씹는다. 볼이 울룩불룩하다. 소고기 구워 먹는 가족. "장모님! 여기 남은 거 정말 안 드실 거예요?" "응, 그건 정말 자네가 먹게." "아닙니다, 장모님 드셔야죠." 아무도 먹지 않는 마지막 고기 몇 점에 나 역시 작은 행복을 느낀다. "내 그럴 줄 알았지. 먹으랄 땐 안 먹고." 아내가 한마디 한다. 


그제야 웃음꽃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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