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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대회를 다녀와서

25년 6월 22일

by 머피


남해1.jpg 아침 예선 시작 전




남해는 좋은 곳이다.



처음 발령받은 곳. 남해는 좋은 곳이다. 좋은 곳이라 기억하고 추억하는데 남해여~~ 제게 왜 그러시나이까 하고 읍소하고픈 지금, 싫은 기억을 내 손으로 쓰고 다시금 정리해 본다.


예탈.


이제와 다시 예탈이라니. 이게 정녕 사실이옵니까? 현실이옵니까? 어찌하여 제게 이런 가혹한 벌을 내리시나이까? 라고 항변하고 싶다. 예선 상대 두 명 중 한 명이 전대회에서 예탈 했던 기록을 봤다. 그 사람만 잡으면 예탈은 면하리라 여겼다. 가위바위보, 그 사람과 먼저 첫 게임을 했다. 이기다가 졌다. 이기다가 따라 잡히고 멘털이 무너져 바보처럼 허둥대다 졌다. 그나마 다행인 건 5세트까지 끌고 갔다는 거다. 2대 3으로 패했기에 뒤에 사람만 이기면 되는 거였다. 그러나 뒤에 사람을 만나 한 점만 빼앗겨도 무너지고 앞서다가도 한 점을 빼앗기거나 단 하나의 실수에도 나는 무너져 내렸다. 실수하면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하면 되는 건데 다시 하지를 못했다. 그럴 여력이 남아나지 않았다. 어떻게 단 한 점의 허용에도 그리 마음이 요동칠 수 있는지, 내 실력이 이것밖에 안되나? 3대 0으로 무너지기 직전 공 주으러 다녀오는데 입안이 바짝바짝 마름을 느꼈다. 모든 게 끝났구나. 예탈이다. 첫 게임에서는 몸이 덜 풀려 그럴 수 있다고 했는데 지금은 두 번째 게임이다. 아직도 몸이 덜 풀렸는가? 아니다. 몸과 마음이 무너졌다. 예탈이 확정되고 푹 고개 숙인 채 탁구대를 벗어났다. 어서 빨리 도망가고 싶었다. 쉬고 싶었다. 2층 돗자리로 가 멋쩍게 웃고는 벌렁 드러누웠다. 뭐가 문제일까? 탁구공이 마치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져 그저 아기 다루듯 퍼올리기만 했다. 이게 진짜 탁구일까? 그건 탁구가 아니었다. 수비할 때도 상대 드라이브를 빠른 박자에 잡았어야 했는데 저 멀리 뒤에서 받치기만 하니 공은 허공으로 붕 뜨기만 했다. 공격할 때도 과감히 스윙하지 못하고 그저 넘기기 급급하니 그마저도 오버아웃되며 포기에 또 포기, 난 매번 포기하다가 눈앞에 '예탈'이라는 멍울에 무너지고 또 무너지며 스코어를 헌납했다. 이건 탁구가 아니다. 예탈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이른바 바보 탁구. 난 바보가 되기 위해 남해에 왔던가.


단체전.


1번이 지고 2번도 지고 3번도 져 4번인 나는 뛰어보지도 못하고 끝. 이게 뭐지? 이런 대회도 있단 말인가. 난 해보지도 못했는데, 응원도 열심히 했는데 이게 뭐야? 참 허무하고 어이도 없고 힘도 쭉 빠지지만 이것도 대회의 일환. 뭐 어쩌겠는가. 운이 따라주질 않는데. 저 멀리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이 부럽다는 생각. 아까 저 사람 저쪽에서 게임하더니 금세 여기까지 와 또 게임하네? 개인전에 이어 단체전까지 계속 게임이 이어지네? 난 밥 먹고 한 게임도 못했는데 모두가 게임하기 바쁜데 나만 이게 뭐 하는 짓거리란 말인가. 난 구경하기 위해 온 게 아닌데 구경만 하다가 엔딩이 와버렸다. 내게 남해는 이런 곳이 아닌데, 참 아름다운 곳인데 어찌 이런 아픔을 준단 말인지...





좋았던 건 점심으로 나온 설렁탕뿐이다.


식권을 나눠 받아 우리 팀 남자들 7명이 함께 두 테이블에 나눠 앉아 같이 '설렁탕 참 맛있네, 김치맛이 제대로네'라며 맛나게 먹었다. 희멀건한 국에 후추를 뿌려 김치와 깍두기를 잘라 같이 먹었다. 김치가 모자라 더 달라하여 먹었다. 바닥까지 박박 긁어먹는데 이렇게 단 한 게임도 하지 못할걸 알았다면 그리 맛있을 수 있었을까 싶다.


예탈해도 괜찮다 라고 마음을 고쳐 먹어 볼까? 그런데 진짜로 예탈 해보니 예탈 하면 괜찮지가 않다. 괜찮지가 않은데 괜찮다고 긍정적 합리화를 하면 긍정적 마음먹기가 되려나? 예탈 한 주제에 예탈이 괜찮다고, 오늘 컨디션이 좋지 않아 그랬잖아, 운이 따르지 않아 그랬잖아, 결국 변명일 뿐, 모두 노노 거절하고 싶다. 어떻게 해도, 니 실력이 그것밖에 안 되는 거야 라는 문장을 피할 수는 없다. 나는 드러난 바닥 상처로 울긋불긋한 흉터를 드러내 보였다. 그게 부끄러운 거다. 내게 상처가 있었나? 흉터가 있었나? 의문을 품었을 때부터 자만이라는 글자가 거품으로 뒤덮여 있었다.


무너진 멘털. 무너진 감각.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순간. 어찌하면 방지할 수 있으려나 고민 깊은 월요일 오후다.



남해설렁탕.jpg 좋았던 건 설렁탕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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