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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얀갓 Oct 10. 2022

연극을 준비하며 남겨보는 기록

취미연극 액팅미 6기, <올모스트 메인> 12월 17일 18일 공연예정.


가자마자 대본리딩을 했다.

곧 배역을 정해야 했기에 연출 선생님은 우리에게 희망하는 역할이 있는지를 먼저 물으셨다.


에피소드 3과 4라고 말씀드렸다.

몇몇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아무 배역이나 맡아도 괜찮다는 분위기였다.


"아무 배역이나 괜찮아요."


이렇게 답한 사람에게 왜 그렇게 답했는지 나중에 이유를 물었을 때는, 극중 인물이 다 괜찮고 어떤 역할이든 상관없이 해보고 싶어서라고 했다.


이미 공연을 경험한 선배들이 대부분 역할 희망을 따로 하지 않길래 나는 조금 오해했다. 혹시 희망하는 역할과 상관없이 배역을 맡게 되려나 싶었던 것이다. 다행히 그건 또 아닌가보다. 지난 공연 때에도 최대한 원하는 역할에 배정해 주셨단다.


지난 주와는 다르게 이번 대본리딩 시간에는 선생님이 각 인물이 처한 상황을 중간중간에 해설해주셨다.


프롤로그에 등장하는 남자는 연애에 서툰 것인지 성격이 특이한 것인지 서로 사랑을 확인한 연인에게 이상한 말을 한다. 되도않은 과학 이론을 들먹이면서 여자의 들뜬 마음에 찬물을 끼얹는다. 자신을 밀어내는 듯한 느낌을 받은 여자는, 물리적으로 남자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것으로 마음을 표현한다.


재우님은 여기서 남자 배역을 맡아 읽고서 선생님께 배역에 어울린다는 코멘트를 얻었다. 이제막 시작하는 연인의 고백, 그 풋풋한 느낌이 어울리는듯했다. 프롤로그에 나온 남자, 피트는 저런 이미지의 인물일까? 하고 상상해보았다.


천진난만하게 관심사에 대해 떠들지만 여자의 마음은 잘 몰라주는 너드남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피트에 대해 상상해봤다.




피트는 공대생일 것이다. 굳이 mbti를 고르라면 intp혹은 entp의 남성. 주변 사람에는 관심이 없으며 오로지 자신이 관심있는 지적 탐구에만 열을 올리고, 자주 공상에 빠진다.


잘한다는 칭찬을 들으면 금세 우쭐해진다. 그리고 가진 지식을 더 말하고 싶어 안달이 난다. 공감할 수 없는 화제로 신나서 떠드는 피트의 모습에 질려버리는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특히 상대방이 감정적으로 공감을 원하는 이야기를 해도 잘 알아듣지 못한다. 그간의 연애도 늘 이 지점에서 파토나곤 했다.




피트의 상대역인 지넷의 대사를 읽어보기도 했는데, 어떻게 커플이 된 것인지 의심이 갈만큼 내 입장에선 정말 김빠지는 대화였다. 피트는 내가 생각하는 로맨스와는 거리가 먼 남자였다.


지넷이 피트와 비슷한 성격이거나 혹은 이런 피트의 성격까지도 감내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피트의 이번 연애는 다를지도 모른다. 이번엔 지넷에 대해 상상해볼 차례다.




지넷은 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다. 피트와는 교양수업 조별과제를 하며 만났고, 과제를 멋지게 해내는 모습에 반해 피트에게 먼저 다가갔다.


사귄지는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하지만 이 말은 너무 이른게 아닌가 고민한다. 사랑한다고 말하면 피트가 받아줄까? 아직 그 정도는 아니라는 말로 날 상처주는 건 아닐까? 걱정이 앞선다.


아니, 이게 사귀는 건 맞나? 당연하다는 듯이 수업 시간을 제외하면 둘이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까 맞는 거겠지. 그렇다, 서로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확신은 있지만 입밖으로 사랑이라는 단어를 꺼내는 건 또 다른 문제다.


같이 밤하늘을 보며 로맨틱한 데이트를 하고있는 지금! 지금이 바로 그 말을 할 타이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쓰다보니 길어진다. 다른 에피소드 속 인물들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더 이야기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절대 쓰는게 귀찮아서라거나 상상력이 고갈되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렇게 차례로 에피소드를 읽다보니 내가 읽어볼 수 있는 역할은 다 읽어본 후였다. 세 시간을 내리 대본만 읽었는데도 딱 두 번 정도 읽을 수 있었다. 대본이 길어서인것도 있고 선생님의 해설이 곁들여져서인 것도 있다.




희망했던 에피소드 3,4를 읽으면서는 상대역을 바꾸어가며 읽어도 보았는데 목소리에도 합이라는게 있는듯했다. 사실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지 않고 대본리딩 중에 녹음을 했다. 다시 돌려 들으며 녹음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들으면서 확인사살한 것은,


와, 나 진짜 못읽네!


라는 것. 이 생각이 먼저 들었고 그 다음부터는 어떻게하면 좀더 자연스러우면서도 무미건조하지 않게 읽을 수 있을까하는 고민이 생겼다.


상대방이 열을 내며 말하면 나도 따라서 화를 내야 할까?

평소처럼 말하듯이 읽으라고 하셨는데 나는 평소에 어떻게 말하지?

너무 무감정한데 좀더 과장된 감정을 연기해야할까?


문득 연극과는 상관없는 다른 의문이 생겼다. 나는 그냥 대화하듯 말했다고 생각한 부분에서조차 너무 감정없이 말하고 있었다는 점이 걸렸다.


평소에 다른 사람을 대할 때도 이렇게 무감정하게 말을 하고 있는건가?


일상 대화를 녹음해서 들어보지는 않았으니 잘 모르겠으나 합리적인 의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화의 내용보다는 느껴지는 비언어적인 부분이 의사소통에 큰 영향을 준다는 점을 감안해볼 때.. 나 스스로 관계를 망치는 대화를 일삼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다행이었다. 연극을 해보기로 선택하고 2회차만에 나름대로 큰 깨달음을 얻었다. 별 생각없이 끌리는대로 시작한 취미활동이었지만 나 자신을 알아보기로 마음먹고 시작한 것도 맞으니. 스스로에 대해 더 알 수 있는 기회가 된 건 정말 행운이다.


어쩌면 평소 말하는 방식도 개선할 여지가 있을테니까.  



이 외에도 연기와 관련해서 이런저런 궁금증이 생겼지만 다음 주에는 배역이 정해진다고 하니 그 이후에 더 고민해보기로 했다.




내가 어떤 역할을 맡게될 지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합을 맞추느냐에 따라 극의 분위기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상대 배역을 누가 맡게 될지도 자연스레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다. 에피소드 1이 아닌 다음에야 상대역은 무조건 남성인데 우리 공연팀엔 지금 진영님, 준기님, 재우님 세 명 뿐이다.


같이 읽어본 바로는 아무래도 준기님이 연기를 실감나게 하셔서 읽는게 제일 편하고 재밌었다. 그건 나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도 같은 생각일거다. 다만 내가 너무 무감정한 편이라 어우러지지 않을수도 있겠다 싶은 걱정은 든다. 한 명은 실감나는데 다른 한 명은 국어책 읽고 있으면 위화감 드니까. 하하.


목소리 톤인지 울림인지가 비슷하게 느껴져서 진영님이랑 읽는 것도 무난한 것 같다. 열내며 읽으실 때는 그 텐션을 따라가기 어렵긴 하다. 좀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해보면. 내가 따라가야 하는데 못 따라오니까 더 목소리 높여가며 이 텐션 좀 따라오라고 날 채찍질하시는 것 같기도 했다. 결국 못 따라갔지만.


재우님은 목소리 합을 떠나서 의외로 나이든 아저씨라든가 구차한(?) 대사는 어울리지 않았다. 목소리가 저음이라 어울릴 줄 알았는데 나이가 어린 것까지 목소리 뒤에 숨겨지지는 않나보다. 아무튼 나랑 읽을 때는 내 목소리가 여자치곤 낮아서인지 둘다 목소리가 낮으니 분위기가 한없이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연출 선생님이 어떤 기준을 가지고 배역을 정하시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마지막엔 배역을 몇 개까지 맡을 의사가 있는지도 물으셨다.


난 한 개만, 단호하게 하나만 맡겠다고 손을 들었다. 하나만 제대로 소화하기도 힘들 것 같아서 그랬다.


배우 말고 조명이나 음향같은 보조역할도 함께 맡으면 열심히 해봐야지!


으, 다음 주가 너무 기다려진다. 한동안은 토요일만 바라보고 살거같다.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은 실명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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