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등록 이주배경아동의 권리 향상을 위한 국회 포럼
2025.11.7. 오전9시.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
주최 : 국회부의장 이학영·주호영, 국회의원 박홍근·김남희·백선희·이강일·임미애, 미등록 희망포럼(기독교대한감리회 선교국, 미등록아동지원센터, 세이브더칠드런,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유엔난민기구)
외국인 ‘그림자 아이’ 없게… 국회서 미등록 아동 권리 보장 논의
출생도 기록되지 못한 ‘유령 아이’…“미등록 이주아동 위한 실질적 보호장치 시급”
미등록 이주배경아동 권리 위해
미등록 희망포럼과 여·야 의원 모여
“이주배경 출생은 최소한의 장치”
미혼모에게서 태어난 A양(16)은 첫 돌을 지나기도 전에 입양과 파양을 겪었다. 부산의 한 보육원에 맡겨져 10년 넘게 무국적 아동으로 살았다. 초등학교 2학년이던 해 얼굴도 모르는 생모가 출입국 심사에서 적발되면서 자신의 국적이 베트남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생모를 따라 베트남으로 가야 한다는 통보를 받은 A양은 끝내 한국에 남는 길을 택했다. 출생등록을 마치고 비자를 받아 체류 자격을 얻었지만 2년마다 비자를 갱신해야 하는 불안정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에는 A양처럼 출생부터 법적 기록 없이 살아가는 ‘미등록 이주배경아동’이 적지 않다. 미등록 이주배경아동은 한국에서 태어났거나 자랐지만 출생신고나 외국인 등록을 하지 않아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0~18세 아동을 가리킨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7일 미등록희망포럼(대표 은희곤 목사)과 여·야 의원들은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미등록 이주 배경아동의 권리향상을 위한 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미등록희망포럼 5개 단체(기독교대한감리회, 미등록아동지원센터, 세이브더칠드런, 유니세프, 유엔난민기구)와 이학영 국회부의장,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공동주최로 진행했다. 사회는 정무성 현대차 정몽구재단 이사장이 맡았다.
5년 전 대법원과 2023년 헌법재판소는 “출생등록권은 모든 아동의 기본권이며 다른 모든 권리 보장의 전제”라고 판단했다. 지난해 의료기관이 아동의 출생을 공식적으로 통보하는 ‘출생통보제도’가 실시됐지만 적용 대상은 우리나라 국민에게만 해당한다. 외국인 아동의 출생 사실을 등록할 법적 근거는 부재한 상태다. 현행 가족관계등록제도가 우리나라 국민으로 그 대상을 한정하기 때문이다.
이날 포럼은 저출산·인구감소 시대 속에서 ‘그림자 아이’라 불리는 미등록 이주배경아동이 온전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입법과 제도 개선 방향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미등록 아동’은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출생신고를 하지 못해 국적이 없는 외국인 아동을 뜻한다. 현행법상 외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아동은 한국에서 태어났더라도 출생신고를 할 수 없다. 가족관계등록부는 대한민국 국민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주민등록번호가 없어 교육·보육·의료 등 기본 공공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렵고, 불법 입양이나 인신매매 같은 범죄 위험에도 노출된다.
정부는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해 지난해 7월부터 병원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지자체에 자동으로 알리는 ‘출생통보제’를 시행 중이다. 그러나 외국인 아동은 통보 대상에서 제외돼 사각지대가 남아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2015~2022년 출생신고가 이뤄지지 않은 미등록 외국인 아동은 4025명으로 추산된다.
주호영 국회부의장은 “출생조차 기록되지 못한 채 의료·교육·복지의 기회에서 배제되는 아이들이 있다”며 “국적이나 부모의 신분과 상관없이 모든 아동이 존재를 확인받을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국회가 제도 개선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박홍근 의원도 “출생등록이 되지 않아 의료·교육 기회를 보장받지 못하는 아이들은 성인이 된 뒤에도 체류 자격이 불안정하다”며 “출생등록 제도 보편화와 의료·교육 접근성 강화, 체류권 보장을 위한 법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은희곤 미등록희망포럼 대표는 “미등록 아동은 ‘있지만 없는 아이들’로, 사회의 절대적인 도움이 필요하다”며 “법적 사각지대를 메우고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 당당히 살아갈 수 있도록 체계적인 제도 설계가 시급하다”고 했다.
앞서 지난 7월 기독교대한감리회 선교국, 미등록아동지원센터, 세이브더칠드런,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유엔난민기구 5개 기관은 ‘이주배경아동 지원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미등록희망포럼’을 출범했다. 이들은 부모의 국적이나 체류 자격과 무관하게 한국에서 태어난 모든 아동이 출생등록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출생등록제’ 도입을 주요 과제로 추진 중이다.
한편 법무부는 이번 정기국회에서 ‘민생·안전을 위한 10대 법안’ 중 하나로 외국인 출생등록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지난 6일 국회를 찾아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추미애 법제사법위원장에게 법안의 조속한 통과를 요청했다. 법안이 통과되면 외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도 출생 단계부터 등록 절차를 밟을 수 있게 된다.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제도적 사각지대를 없애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민지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은 이주배경아동의 출생을 신고하는 제도 마련을 통해 이들을 국가 행정 체계 안에 포함해야 한다고 했다. 김 연구원은 “출생등록을 하면 국적을 취득하는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으로 불필요한 논쟁과 혐오가 생기고 있다”며 “최소한의 정보만으로도 출생이 누락되지 않도록 행정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내성장 기반을 가진 미등록 외국인은 사회구성원으로 고려해야 하는 의견도 제기됐다. 공진성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내에서 성장한 미등록 외국인은 상당 기간 한국에서 성장하며 교육의 혜택을 받았고 한국인과 같은 사회문화적 경험을 공유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내 출생이든 타국에서 중도 입국하든 아동의 미등록 상태는 그들의 선택의 결과가 아니다”라며 “이들을 강제퇴거 할 경우 언어 장벽, 사회적 기반 단절, 정체성 혼란 등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김사강 이주와인권연구소 연구위원은 건강과 교육 보육 등의 복지적 측면에서 차별받고 있는 이주배경 아동의 사례를 소개했다. 김 연구위원은 “이주배경 아동들이 대한민국 사회의 일원으로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제도적 차별을 해소할 법적·행정적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은희곤 대표는 ”미등록 이주 아동이 안정적으로 체류할 수 있도록 돕는 법안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며 “외국인 아동들의 인권을 지키고 이들을 사회구성원 안에서 관리하고 보호하기 위한 안전장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등록 이주배경 아동들이 우리와 같은 꿈을 꿀 수 있도록 상시적인 법적 보호와 조치가 필요하다”며 “이주배경아동을 보호하는 일은 인권의 문제이자 대한민국 사회의 미래를 위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조선일보 최하연 기자 / 국민일보 박윤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