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 국회 초청 강연 "국민총행복의 길" / 정중규

by 정중규

법륜스님 국회 초청 강연

국민총행복의 길

2025.12.3. 오후3시. 국회 사랑재

주최 : 국회국민총행복정책포럼, 국민행복전환포럼, 행복실현지방정부협의회

법륜스님 강의 전문


“오늘 무슨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문득 제가 살아온 길을 되짚어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1960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자료를 살펴보면 그 무렵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대략 100달러였습니다. 현재 1인당 GDP가 3만 6천 달러가 되었으니, 물질적 기준으로만 본다면 65년 동안 약 360배 성장한 셈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행복은 과연 그만큼 늘어났을까요? 제가 어린 시절 함께 지내던 친구들, 동네 사람들, 어르신들의 삶을 떠올려 지금 주변 사람들의 삶을 비교해 보면, 360배는커녕 36배, 심지어 3.6배 늘었다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분명 예전보다 좋아지긴 했지만 ‘서너 배는 행복해졌다.’고 하기도 힘들지요.

성장의 그늘, 행복을 다시 묻다

앞으로 1인당 GDP가 열 배 올라 36만 달러가 된다면 그때는 행복도가 오를까요? 이미 360배 성장한 지금도 이 정도라면, 10배 더 성장한다고 해서 행복이 갑자기 늘어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성장과 소득을 좇으며, 돈이 많으면 행복할 것이라 믿습니다. 이제는 이런 조건들이 더 이상 큰 효용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물론 물질이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지만, 행복에는 물질뿐만 아니라 다른 요소가 함께해야 합니다. 그 다른 요소를 찾아내는 일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전문가들의 평가를 보면, 우리나라는 세계 각국 가운데 탄소 배출량이 10위라고 합니다. 그만큼 경제 활동이 활발하다는 증거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행복 지수는 57위로 거의 최하위권입니다. 물질적 풍요에 비해 행복도가 현저히 낮다는 의미입니다. 다른 자료를 보면 수출입을 합한 무역 규모는 세계 6위, 국방력은 세계 5위 수준입니다. 총 GDP는 14위인데 1인당 GDP는 34위 정도라고 합니다. 우리가 흔히 행복 지수라고 부르는 지표는 사실상 복지 지수에 가깝습니다. 사회 안전망, 교육 기회, 의료 접근성 등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인데, 이 복지 지수가 57위입니다. 물질적 지수가 34위인데 복지 지수가 57위라는 것은 우리 사회의 제도적 기반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의미입니다. 교육, 의료, 실업, 재난 등 여러 분야에서 개선해야 할 점이 많다는 뜻이죠.

또 하나, ‘심리적 행복 지수’라는 것도 있습니다. ‘당신은 행복합니까?’라고 물어 개인이 주관적으로 느끼는 행복을 조사한 것인데, 우리나라는 이 지표에서 무려 117위라고 합니다. 경제적으로 우리보다 어려운 동남아 국가들보다도 낮은 수준입니다. 이처럼 개인이 주관적으로 느끼는 행복 지수를 높이려면 정부 정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10여 년 전부터 ‘국민 행복 운동’을 해오고 있고, 그 과정에서 만든 것이 ‘행복학교’입니다. 종교적 색채를 배제하고,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심리적으로 행복감을 높일 수 있는지 교육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여기에 우리 국민 특유의 성격도 한몫합니다. 첫째, 한국 사람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성질이 급하다는 점입니다. 이른바 ‘빨리빨리’ 문화죠. 성질이 급하면 화와 짜증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한국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자기주장이 강합니다. 자신이 옳다는 고집이 세니 갈등이 많고 스트레스도 커집니다. 셋째, 욕심도 많습니다. 물질만이 아니라 사람, 명예, 지식까지 욕심내다 보니 불만족이 많고, 역시 스트레스로 이어집니다. 이런 기질이 경제성장을 빠르게 이루는 데에는 도움이 되기도 했습니다. 뭐든 빨리 해치우고, 주장도 강하고, 욕심도 많은 것이 발전의 원동력이 된 측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못살 때는 그런 성질이 장점이었지만, 이제 선진국 반열에 오른 지금은 재해, 갈등, 빈부 격차 등 여러 사회문제의 원인이 되고, 결국 개인의 행복도를 떨어뜨립니다.


이제는 조금 느긋하고 안전하게, 내 주장만 내세우기보다 타인의 말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나와 다른 상대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국회 의원들이 많이 오셨는데, 국회 의원들이 먼저 귀담아들어야 할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웃음)


어쨌든 이런 변화가 심리적 행복도를 높이는 데 꼭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 사회의 분위기를 바꾸어 보고자 행복학교를 만들어 확산시키고 있습니다. 제가 하는 즉문즉설 강연도 대부분 그 역할을 하고 있죠. 제 강연을 듣고 이혼을 하려다 멈추거나, 회사를 그만두려다 다시 다닌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만큼 개인의 고뇌와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는 뜻이겠지요.

그렇다고 이런 일을 민간의 노력만으로 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개인의 심리만을 강조하다 보면 자칫 사회·문화적, 제도적 개선을 간과하게 되고, 결국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는 오류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국회에서 국민 총 행복 증진을 위한 정책 포럼이 만들어지고, 지방 자치 단체에서는 행복 실현 지방 정부 협의회가 열리며, 민간에서도 국민 총 행복 전환 포럼이 설립되는 등 다양한 활동이 펼쳐지는 모습을 보며 저 역시 매우 기쁘고 반가웠습니다. 복지 지수 57위와 심리적 행복 지수 117위의 간극을 좁히는 일은 민간의 영역이고, 복지 지수 57위와 물질적 지수 34위의 차이를 줄이는 일은 제도 개선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그래야 세계 어디를 가도 ‘대한민국 참 살 만하다.’, ‘한국 사람들 표정이 밝다.’는 말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동남아시아의 한 스님이 저에게 한국에 꼭 가보고 싶다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유를 여쭈어보니, 자기 절의 청년이 무더운 날씨에도 코트를 입고 다닌다는 겁니다. 왜 그렇게 입느냐고 물었더니, 한국 드라마를 보고 멋있어 보여서 그렇다고 하더랍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도대체 한국이 어떤 나라이길래?’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분을 한국에 초대했습니다. 공항에 도착하니 시설은 호텔처럼 훌륭했지만, 사람들 얼굴에는 웃음기가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사는데 왜 그렇게 인상을 쓰고 사느냐고 묻더군요. 이것이 외국인의 눈에 비친 대한민국의 모습입니다.


아시아의 많은 청년들은 한국에 가보는 것을 꿈으로 여기고, 한국에서 사는 것을 소원처럼 말합니다. 그런데 정작 한국 청년들은 대한민국을 지옥이라고 부릅니다. 그 표현이 과장이 아님을 보여주는 통계도 있습니다. 현재의 어려움은 자살률 1위로, 미래에 대한 절망은 최저 출산율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제는 국민 총 행복을 국가의 기준으로 삼아야 할 때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은 외형적으로는 꽤 잘 갖춰진 편입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절대 빈곤을 벗어나기 위해 모두가 힘을 모아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세!’라고 외치며 달려왔습니다. 지금 들으면 다소 유치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당시 가난한 우리 국민은 잘살아 보는 것이 간절하고 소박한 꿈이었습니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 우리는 실제로 더 잘살게 되었고, ‘이제는 자유롭게 살아 보자!’며 반독재 투쟁을 이어온 끝에 오늘의 민주 사회도 이루어냈습니다. 돌이켜보면 우리가 품었던 큰 꿈들은 상당 부분 실현된 셈입니다.


그런데 성장만을 향해 달려오다 보니 예상치 못한 부작용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환경 파괴와 기후 위기라는 거대한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고, 민주화 과정에서 필요했던 ‘투쟁의 문화’는 이제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키는 유산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렇다고 과거의 노력이 잘못됐다는 뜻은 아닙니다. 성과가 있었던 만큼, 이제는 그 성과가 남긴 부작용을 치유하며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죠.

이제는 성장과 투쟁 중심의 사회에서 벗어나, 환경을 지키고 빈부격차를 줄이며 서로 다른 존재를 인정하고 포용하는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변화 속에서 종합적인 상태를 보여주는 지표는 무엇일까요? 저는 그 기준이 ‘국민 총 행복 지수(Gross National Happiness)’라고 생각합니다. 이 개념은 약 20여 년 전 부탄의 4대 왕이 처음 제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질적 지표인 GNP(국민 총생산)만으로는 삶의 질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으니, 행복이라는 기준을 삶의 중심에 두자는 제안이었죠. 실제 조사에서도 당시 부탄은 세계에서 행복 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로 평가받았습니다.

물론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부탄은 이후 전면적인 교육 개혁을 추진해 산골마다 학교를 세우고, 읍내에는 기숙 학교를 마련해 모든 아이가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했습니다. 수업은 영어로 진행했고, 유네스코의 지원을 받아 인터넷 교육도 우리보다 일찍 도입했습니다. 교육 수준이 높아지자,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새로운 문제가 나타났습니다. 젊은이들이 세계를 바라보는 눈을 갖게 되면서 호주 워크 퍼밋(취업 허가 비자)을 취득해 떠나기 시작한 겁니다. 호주의 임금이 부탄의 10배에서 20배에 이르니 너도나도 해외로 나갔고, 공무원들도 줄줄이 사직했습니다. 몇 년 사이 80만 인구 중 약 10만 명이 해외로 빠져나갔어요. 공무원만 놓고 보면 세 명 중 한 명이 떠난 셈이에요. 해외에서 번 돈으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대부분 고향에 집을 짓는 일이어서 건축 붐이 일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빈부 격차가 벌어지자, 행복 지수도 예전만큼 높게 유지되기 어려워졌습니다.

그럼에도 ‘국민 총 행복 지수’라는 개념이 갖는 의미는 여전히 큽니다. 실제로 뉴질랜드나 핀란드 같은 나라는 이 지표를 국가 정책 평가 기준으로 활용하고 있어요. 우리는 국제 행사를 유치하거나 투자를 결정할 때 주로 ‘1천억을 투자하면 경제 유발 효과가 3천억이다.’, ‘월드컵을 유치하면 경제 효과가 얼마다.’ 같은 평가에 집중하잖아요. 그러나 이 나라들은 경제 유발 효과보다 ‘국민의 행복이 얼마나 증진되는가?’를 정책 판단의 핵심 기준으로 삼기 시작한 겁니다. 참 괜찮은 방향 아닙니까?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관점이에요. 이번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 회의도 단순히 국위 선양이나 경제적 효과만 따질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국민이 어떤 자부심을 느꼈는지, 행복도가 얼마나 상승했는지도 함께 평가해야 합니다. 자부심도 결국 행복의 일부니까요.

이런 변화는 의회가 법으로 제도화하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도 성평등 지수를 근거로 화장실 수를 조정하듯, 제도화되면 빠르게 정착될 수 있습니다. 쓰레기 처리도 종량제 봉투를 도입하면서 억지로라도 배출량을 줄이게 되었잖아요. 저는 법을 어떻게 만드는지는 잘 모르지만, 민간 차원에서 할 수 있는 노력은 계속하고 있습니다. 다만 지방자치단체나 특히 국회에서 국민 총 행복 지수를 높일 수 있는 법적 장치를 마련해준다면 훨씬 힘 있게 추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바람을 담아 저도 오늘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잘사는 나라에서 행복한 나라로

이제 한국이 더 이상 서구적 이상을 좇아 따라가야 하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우리는 이미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고, 예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성취를 이루어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정말 행복해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삶에 문제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은 오히려 더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를 내다보면,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기후 위기 속에서 경제 발전을 지속하기가 어렵습니다. 농업과 수산업은 이미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고, 인공지능은 곧 많은 전문직을 대체할 것입니다. 새로운 직업으로의 전환 역시 만만치 않겠죠. 자영업이 무너지고 전문직까지 흔들릴 가능성도 큽니다. 빈부 격차는 더욱# 벌어져, 몇십 년 전만 해도 ‘20 대 80’이라고 했던 것이 ‘10 대 90’이 되었고, 월가(Wall Street) 시위에서는 ‘1 대 99’라는 말까지 나왔잖아요. 하위 50%가 전 세계 부의 1%만을 소유한다고 합니다. 이런 현실에서 과연 우리가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제가 코로나 팬데믹 때 고향에 내려가 농사를 지으며 지낸 적이 있습니다. 인구가 눈에 띄게 줄어 있었어요. 한 해에 11명의 아이가 태어나던 동네였는데 제가 갔을 때는 노인 17명만 남아 있었습니다. 며칠 전 내려가 음식을 대접했는데, 그사이 몇 분이 돌아가셔서 이제는 12명뿐입니다. 두 리(里)를 합쳐도 100명 남짓인데, 그곳에 소가 4천 마리나 됩니다. 우사(牛舍)만 가득하고 소를 돌보는 이는 대부분 외국인 노동자입니다. 그 수가 주민보다 많아요. 겉으로 보기에는 주민 소득도 높고, 경제도 돌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사라지고 축사만 늘어나는 현상이 지역 개발로 볼 수 있을지는 다시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사람이 살지 않는데 누구를 위한 개발이겠습니까? 사람이 살지 않는다면 그 어떤 개발도 결국은 지역을 지탱해 주지 못할 것이니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앞으로 인공지능이 더 발전하면 1인당 GDP가 아무리 높아도 그 안에서 사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성과만 놓고 보면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훨씬 효율적이지만, 인간은 일하는 과정에서 성취감과 행복을 느끼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기계는 과정의 보람을 느끼지 못하잖아요. 이러한 사회 변화를 고려하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행복한 대한민국, 자유로운 대한민국’을 지속 가능한 나라로 만들기 위해 이제는 생각의 틀을 바꿔야 합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대부분 경제 성장과 투쟁 중심의 사고에 익숙하실 겁니다.

요즘 한국 대중문화가 세계로 뻗어나가 자랑스러우실지 모르지만, 제가 동남아에 가보면 한국 문화에 물든 아이들 때문에 부모들이 골치 아프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소비문화만 따라가고 실제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저는 한국 문화가 퍼져나가는 만큼 그들의 빈곤을 줄이고 발전을 돕는 역할도 함께 해야 한국의 영향력이 지속될 수 있다고 봅니다. 지금 방식대로라면 한류도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한때 서양의 소비 시장으로 전락하는 것에 저항하지 않았습니까?


K-방산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자랑할 만한 일인지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과거 사회 운동을 하셨던 분들은 기억하시겠지만, 미국과 러시아가 대량 살상 무기를 만들어 세계를 전쟁터로 만들 때 우리가 얼마나 강하게 반대했습니까? 그런데 한국 무기가 성능이 좋다는 말은 결국 ‘얼마나 효과적으로 잘 죽이느냐?’와 연결됩니다. 무기 수출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일은 조용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공개적으로 홍보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에요.


이런 흐름을 상쇄하려면 사람들에게 이로운 것들도 함께 전해야 합니다. 한국에 와서 배워 가는 것이 무기 생산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기후 위기에 대응할 농업 기술, 인공지능 시대에 실업 인구의 최저 생계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 이런 안전망 구축을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저는 기본 소득이 유력한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미국 같은 나라에 가서 배울 것이 많지 않습니다. 우리가 새로운 문화와 문명을 창조하고, 더 나아가 대안을 제시해야 할 때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국민 행복 지수를 높이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제는 아시아의 대한민국을 향하여

국회 의원 여러분, 이제는 성장에만 힘을 쏟던 관성을 조금 내려놓고 그 에너지의 일부라도 미래 세대를 위해, 그리고 대한민국만이 아니라 아시아의 이웃들을 돕는 방향으로 써야 합니다. 1950년대와 60년대의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이 나라의 지성과 양심은 시대를 견인해 왔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경제 성장만을 강조하는 데서 머물지 말고, 다가올 문명의 방향을 제시하며 관심의 범위를 한국에서 아시아로 넓혀 주변 나라들의 고뇌를 함께 해결하는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다른 나라에 손을 벌릴 위치가 아닙니다. 오히려 도움이 필요한 나라들을 향해 손을 내밀어야 할 때입니다. 인권이나 빈곤 문제처럼 국제사회가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에 대해서도 우리나라가 기여할 몫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 내부 문제에만 몰두하며 아우성치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는 시야를 넓혀, 최소한 ‘아시아의 대한민국’이라는 책임 있는 역할은 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넓은 관점에서 일본과의 관계도 새롭게 설정할 필요가 있으며, 북한과의 관계 역시 재정립이 요구됩니다. 이번 새 정부가 북한을 대하는 태도에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북한의 일거수일투족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기보다는, 더 이상 단순한 경쟁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않으려는 접근이 그것입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포용할 수도 있고, 경쟁하더라도 더 넓은 시야로 주변을 아우르는 시각이 필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국민 행복 지수’라는 가치와 관점은 앞으로 우리가 어떤 문명을 지향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기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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