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8일 용산 청사 접견실에서 천안함 장병·유가족 초청 오찬..국가 영웅 대접 취지
“같은 나라, 다른 현충일”? 남북관계에서도 ‘비정상의 정상화’ 이뤄야
- 천안함 용사들과 그 유족들을 더 이상 슬프게 하지 말라
윤석열 대통령이 오는 8일 용산 청사 대통령 접견실에서 천안함 장병, 희생자 유족들과 오찬 간담회를 가진다. 호국보훈의 달인 6월을 맞아 국가를 위해 헌신한 영웅들을 대접한다는 취지에서다.
또한 윤 대통령은 제67회 현충일 추념식에 최원일 전 천안함장을 초청했다. 최 전 함장은 추념식이 끝난 뒤 자신의 페이스북에 “같은 나라 같은 장소에서 다른 현충일을 맞이하게 됐다”며 윤 대통령의 추념사 중 ‘확고한 보훈 체계는 강한 국방력의 근간’이라는 부분이 “인상깊었다”고 적었다.
최 전 함장의 “같은 나라, 다른 현충일”이란 고백이 가슴 아프다. 천안함 폭침 원인을 두고 그동안 각종 음모론이 난무하면서 얼마나 힘들었을 것인가. 누구나 그러했듯이 나 역시 한 때 그런 ‘신상철류’의 각종 음모론에 솔깃했었다. 하지만 그 후 사건의 전후 사정을 냉철하게 살펴본 후 그 늪에서 빠져나왔는데, 해방 후 김일성 집안의 대남전략 그 실상을 파악하면서 김일성 집안의 소행임을 확신하게 되었던 것이다.
보수정권 시기는 빙하기, 진보정권 시기는 해빙기?
흔히 진보진영에선 남북관계를 ‘보수정권 시기는 빙하기, 진보정권 시기는 해빙기’라고 프레임을 씌우는데, 해방 후 역사를 보면 과연 그러한가. 천만에다. 박정희 집권 18년 시기에도 남북관계는 빙하기와 해빙기를 넘나들고 있었다. 오히려 보수정권 시절 이뤄진 남북대화의 의미 있는 결실들, 곧 박정희 정권 때의 ‘7·4남북공동성명’이나 노태우 정권 때의 ‘남북기본합의서’ 등이 그 후 진보정권 시절 이뤄진 남북정상회담의 단초가 되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 남북정상회담조차 첫 시도는 민자당 시절 김영삼-김일성 간에 성사 직전까지 갔다가 김일성 주석의 급사로 불발되지 않았던가. 따라서 ‘보수정권 시기는 빙하기, 진보정권 시기는 해빙기’라는 프레임은 결코 역사적 사실이 아닌 것이다.
오히려 내가 늘 주장하지만, 김일성 집안의 대남 전략은 결코 이념적이 아니었고 실리 추구의 대단히 실용적이었다는 사실을 냉철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내가 진보진영의 낭만적 민족주의 관점에서의 대북 접근정책의 허구성을 거듭 지적하고 있는 이유다.
분명한 것은 김일성 집안은 남한에 이른바 진보정권이 들어서든 보수정권이 들어서든 가리지 않고 늘 ‘거래’를 시도해왔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바라는 대로 ‘거래’가 이뤼지면 남북관계도 평화로와졌고, 그것이 그들 뜻대로 되지 않으면 남북관계도 뒤틀어졌었다.
예를 들어 박정희 정권 때도 무장공비 침투 등 ‘대결 시기’도 있었지만 동시에 남북이산가족 상봉과 같은 ‘교류 시기’도 있었다. 또한 지난 문재인 정권 때도 3차례에 걸친 남북정상회담 등 평화퍼포먼스가 이뤄진 ‘교류 시기’가 있었지만, 2년이 넘도록 막말 수준의 상호비난만 하다 끝난 ‘대화단절 시기’도 있었다.
남한 정권마다 겪었던 남북관계의 롤러코스터 타는 듯 변화무쌍함 그 근저에 김일성 집안의 남한 정권을 상대로 시도하는 ‘거래’ 성사 여부가 깔려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그 ‘거래’에 만족하면 남북관계도 평화로운 해빙기였고, 그 ‘거래’가 그들 뜻대로 되지 않으면 남북관계는 다시 빙하기로 접어들었다. 거기에다 김일성 집안은 그들의 대남 요구가 뜻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반드시 보복한다.
김일성 집안의 대남 전략 패턴으로 본 천안함 폭침 이유
2010년 3월에 일어난 천안함 폭침이 그러했다. 그 원인을 지난번 ‘PD수첩’은 2009년 11월 대청해전 패배의 보복이라고 분석했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2009년 10월 중순 싱가포르 남북 비밀접촉에서 김일성 집안의 ‘통 큰 대북지원 요구’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이 기대 하의 금액을 제시해 남북대화가 결렬되자 화풀이로 대남도발 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날짜를 보면 대청해전까지도 그러할 것이다. 그것은 북측이 이후에 싱가포르에서의 남북 비밀접촉 내용, 특히 남측이 북측에 제시했던 대북지원 금액까지 폭로한 것 보면 그들이 얼마나 MB의(그들 입장에서 봐) 조막손에 화가 났던가를 알 수 있다.
사실 실용주의를 내세우는 CEO출신 대통령이 탄생되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그 ‘거래’에 있어 큰 기대를 갖고 취임하자마자 속된 말로 ‘옆구리를 찔렀다’. 그래서 그 ‘거래’를 위해 싱가포르 비밀협상이 남북 실무자들 사이에 열렸었다. 하지만 ‘머니해도 머니가 최고라 여겨 돈에는 무서워 손이 작은’ MB가 그들의 기대에 어긋나게 제시하자 협상은 깨어지고, 그 보복으로 터진 사건이 천안함 폭침 도발이었던 것이다. 천안함 사건이 터진 첫날 MB가 즉시 “대북 도발은 아니다”고 한 것은 오히려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고 그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를 그가 직감했다는 것이 된다.
이처럼 남측에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 김일성 집안이 옆구리 쑤시듯 ‘통 큰’ 대북지원을 요구하면서 남북 거래 창구를 개설하려드는 것이 그동안 정형화된 남북관계 패턴이었다. 그것이 흡족한 정도가 되면 남북정상회담을 비롯한 남북대화가 이어졌지만, 그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대남도발에 나섰다. 해방 후 70년간 진보-보수 정권을 막론하고 어느 정권이든 김일성 집안을 자신들의 ‘정권 안보’에 이용하려, ‘거래에 의해 만든 북풍’을 만들어왔던 악습의 폐단이다. 단지 그것이 긴장조성용이냐 평화퍼포먼스용이냐 차이였을 뿐이다.
따라서 나는 탈진영의 통합사회를 추구하고 실사구시적 실용주의를 표방하는 윤석열 정부만큼은 그런 음습한 ‘뒷거래’ 방식에서 탈피해 투명하고도 당당한 대북자세를 견지하도록 해 70년 묵은 남북관계에서의 불건전한 악습을 떨쳐버리라고 주문하고 싶다. 그것은 김일성 집안 곧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도 대남 전략에서의 새로운 접근 방법을 강구하게 만들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남북관계의 ‘비정상의 정상화’ 그 길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