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0년 12월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에 의해 ‘장애인 탈시설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되고, 2021년 8월 보건복지부에서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이하 로드맵)이 발표되자, 장애인 탈시설 문제로 관련 당사자들 사이의 갈등이 최고조로 달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가슴 아픈 일이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찬반으로 나눠져 대립하는 것이었습니다. 발달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자립해 생활할 수 있도록 국가책임제 하에 발달장애인 24시간 돌봄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동시에 대규모 거주시설들은 단계적으로 축소해 10년 이내에 폐쇄하자며 탈시설 권리 보장을 요구하는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소속 부모님들이 있는 반면, ‘지금 현실에서 시설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선택’이라며 정부의 ‘로드맵’은 시설에서라도 보호받아야할 중증발달장애인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이니, 장애인과 그 가족들이 장애인 당사자에게 적합한 생활 형태를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게 해달라는 ‘전국장애인거주시설 이용자 부모회’ 소속 부모님들도 계십니다.
장애인단체들 사이에서도 의견 충돌이 일어 한동안 여의도 이룸센터 앞마당에는 찬반 플랜카드를 각기 내건 컨테이너 박스가 대치하는 안타까운 장면도 연출되었습니다. 정치권도 ‘전국장애인거주시설 이용자 부모회’를 도우는 국민의힘 이종성 의원과 ‘전국장애인부모연대’를 도우는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으로 양분되어 있는 실정입니다.
자이나교 수행자들은 불상생(不殺生)과 비폭력의 아힘사(Ahimsa) 정신으로 길을 걸을 때 벌레들이 발에 밟히지 않도록 지팡이를 두드려 피하게 한다고 합니다. 제도와 법을 만드는 사람들 역시 제도와 법의 칼 아래 억울하게 희생당하는 이들이 없도록 주변을 섬세하게 살피는 배려 정신이 필요합니다.
제가 장애인계의 핫이슈로 등장한 탈시설 문제를 관련 당사자 모두가 참여하는 공론의 장, 더 나아가 끝장토론 방식으로 해결책을 모색하는 대토론회를 제안하는 이유입니다.
이제껏 다른 장애인 관련 문제들과는 달리 장애인 탈시설 문제는 특이하게 사회적 이슈가 되기 전에 장애계 안에서부터 찬성 진영과 반대 진영으로 나눠 마치 제로섬 게임하듯 팽팽히 맞서고 있는데, 그 갈등 현장을 바라보면서 ‘탈시설이 먼저냐, 지원체계 마련이 먼저냐’ 곧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은 흑백논리 이분법적 접근보다는 문제해결중심의 해결책을 모색하는 공론화 과정과 진솔한 대화의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함을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그와 함께 저는 보다 근본적인 메시지를 교회를 향해 드리고 싶습니다. 곧 가톨릭교회의 특성이자 장점이 행정구역에 맞게 거의 동마다 본당이 있는 것인데, 각 본당마다 발달장애인들이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준다면 발달장애인 사회통합에 큰 도움이 되리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처럼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발달장애인을 위한 공간이 교회 안에 마련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더 나아가 그들이 사회에 함께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 단기보호센터, 주간보호센터, 평생교육센터 등 다양한 이용시설에도 교회가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특히 발달장애인의 경우 아무래도 조기노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면, 그에 걸맞는 요양센터에 대한 필요성도 대두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교회가 발달장애인들을 장애인복지 대상자로만 여기지 말고 신자공동체 일원으로 받아들인다면, 그 자체로 발달장애인 사회통합에 촉진제가 될 것입니다.
그런 움직임은 교회가 이제껏 투신해왔던 시설 중심 장애인복지에서 사회통합 지향 장애인운동에 교회의 복지자원을 투신하도록 하는데 긍정적으로 이바지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로드맵 사태와 관련해서 가톨릭교회를 비롯한 종교단체들이 탈시설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으로만 알려진 것은 장애인복지 전문가이자 가톨릭 신자인 제게는 뼈아프게 다가옵니다.
장애인 탈시설 문제에서도 교회는 인간발전을 추구하는 이러한 복지 마인드 그 복음적 원칙을 고수하고 수호해야할 것이라고 봅니다. 그것은 가톨릭 사회교리의 원리인 공동선 연대성 보충성을 실현하는 길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