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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중규 Jul 05. 2023

경향포럼: 성장을 넘어 모두의 번영을 위한 새로운 모색

Beyond Growth - New Paradigms for Common


[2023 경향포럼]

성장을 넘어 모두의 번영을 위한 새로운 모색

Beyond Growth - New Paradigms for Common Prosperity

2023.6.28. 오전10시30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크리스탈볼룸


좌담 - 누리엘 루비니·반다나 시바·사이토 고헤이

‘성장 패러다임’ 문제엔 공감, 방향성·속도엔 입장 갈려

기후위기에 생태적 유기농법, 선진국 소비 감축 필요 제시..‘넷제로’ 국제 협력 주장도  


루비니 “자본주의가 해법”
시바 “좋은 삶, 재정립 필요”
사이토 “코뮤니즘이 대안”


28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성장을 넘어-모두의 번영을 위한 새로운 모색’을 주제로 열린 <2023 경향포럼> 기조연설자로 나선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명예교수, 반다나 시바 환경·사회운동가, 사이토 고헤이 도쿄대 종합문화연구과 교수는 “경제성장의 결과물을 상위 1%가 독점하는 구 패러다임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문제의식에 공감했다. 다만 변화의 방향성이나 속도에 대해서는 의견 차이를 보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측하며 ‘닥터 둠’이라는 별명을 얻은 루비니 교수는 “민주정부가 공공서비스 제공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자본주의가 현시점에서 가장 현실적인 해법이라 본다”며 점진적 개선에 무게를 뒀다.

반면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의 저자인 사이토 교수는 “기후위기와 탈성장이라는 만성화된 비상상황에서는 기존에 상상하지 못했던 급진적 대안이 필요하다”며 ‘생산’ 대신 ‘공유’를 기반으로 한 코뮤니즘(communism)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핵물리학자 출신으로 40년간 토종종자 씨앗운동을 해온 시바 박사는 “국내총생산(GDP)을 비롯한 기존의 경제성장 지표에 생산으로 연결되지 않는 행위는 소외돼 있다”며 ‘좋은 삶’에 대한 기준 재정립과 공동체의 자급자족 역량 복원을 강조했다. 


다음은 이우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가 진행한 세 연사와의 대담 전문.

이우진 = 성장과 탐욕의 구 패러다임이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문제의식에 동의하나. 동의한다면 ‘급진적인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와 ‘완만한 변경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의견 중 어디에 가깝나.

루비니 = 성공적인 경제란 민간 부문이 많은 경제활동을 주도하는 경제라는 데는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의 남북한이 그 극적인 예다. 그러나 정부도 교육, 의료제도, 실업급여, 복지, 부의 재분배, 사회보장제도 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나라마다 정부 역할을 두고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수 있지만, 어느 쪽이든 실용주의적 해결책을 찾을 필요가 있다. 개인적 견해로는 민주적이고 시장주의적인 자본주의가 더 효과가 있다고 본다. 특히 자본주의는 정부가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할 때 가장 잘 작동하는 경향이 있다.

시바 = 지금의 성장 패러다임은 자연이나 사회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매우 비과학적이다. 여성과 자연의 경제가 없었다면 우리는 숨을 쉬고 먹을 수 없었다. 그러나 유엔에서 집계하는 GDP는 이를 포함하지 않는다. 무언가를 생산하고 만들어내야만 경제의 일부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나라마다 ‘좋은 삶이 무엇인가’에 대한 기준을 고민해야 한다고 본다. 환경 영향에 대한 과학 연구를 하면서 느끼는 점은, 탄광이나 철광 프로젝트 같은 사업을 벌일 때 지역 공동체가 얼마나 파괴되는지는 누구도 측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게 나의 상처이고 고통”이라는 목소리까지 반영한 지표를 만들어낼 수 없다면, 결국 성장은 한 방향으로만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사이토 = 탈성장과 코뮤니즘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탈성장은 우리가 점점 더 많은 생산과 소비를 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러니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더 많이 공유하자’는 아이디어가 기본적인 코뮤니즘의 정의다. 코뮤니즘은 스탈린주의가 아니다. 지금은 상위 1%, 혹은 상위 0.1%가 모든 걸 장악하는 독점사회인데, 공공재를 모두가 다 같이 공유함으로써 이를 막자는 제안이다. 코뮤니즘이 이데올로기적이라는 비판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데올로기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프레임워크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측정 가능한 경제성장에 필요하지 않다는 이유로 소외된 모든 것들을 포함시키고 포용하는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필요하다.

이우진 = 성장 위주 정책과 과다한 탐욕이 문제가 될 수는 있지만 경제성장이 부족해 기아가 발생하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나.

시바 = 성장은 상위 1%의 부만 증가시키는 경향이 있다. 글로벌화로 인해 농민들은 위기에 처하고 좌절감을 느끼며, 농업 분야의 성장은 오히려 기아를 야기한다. 또한 농지가 농업 외 용도로 이용되는 일이 늘어나면서 농민들은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게 됐다. 글로벌화의 실질적인 혜택은 농민들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생태적인 유기농법을 도입해 탄소배출을 줄이고 땅을 보존해야 한다. 우리의 사고방식을 생태적으로 바꾸고, 지역 차원에서 자급자족의 역량을 회복한다면, 화학 비료·연료를 사용하지 않고도 경제와 지역을 살릴 수 있다.

루비니 = 기후변화를 멈추지 않으면 파멸적인 생태학적 피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글로벌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다만 탈성장 코뮤니즘에는 동의하지 않고, 녹색성장을 지지한다. 성장이 끝난 일부 선진국 바깥에는 여전히 극빈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신재생에너지와 같은 기술이 발전하면 탄소배출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 친환경적인 성장이 가능해질 것이며, 선진국들이 이를 선도해야 한다. 경제성장은 인공지능과 기계학습의 혁명으로 인해 크게 개선될 것이며 급진적인 변화와 생산성 향상으로 인한 혜택이 발생할 것이다. 다만 기술혁신은 불평등을 악화시킬 수 있으므로 승자에 대한 과세 및 교육 등 정책을 통해 디지털 시대의 혜택이 모두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이토 = 탈성장은 성장을 멈추라는 것이 아니라 빈곤을 없애기 위해 제3세계에 투자하고 자원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공유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동시에 선진국의 사치품 등 불필요한 소비를 줄여야 한다. 전기차나 인공지능과 같은 기술은 필요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지구를 구할 수 없다. 생산량을 줄이고, 자동차 중심의 도시에서 자전거 전용도로와 대중교통에 투자해야 한다.

이우진 = 루비니 교수는 민간과 정부의 부채가 높은 상황에서, 인플레이션을 해결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계속 높이면 이자 부담이 더 커지는 ‘부채 함정’을 지적했다.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세계 경제가 경착륙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루비니 = 민간과 공공부채의 GDP 대비 비율은 1990년대 100%에서 작년에 350%까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선진국과 중국의 경우 이 비율이 더 높다. 신흥시장이나 빈곤 국가들은 부채 수준이 지나치게 높아 대외부채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파산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하지만 중앙은행은 물가안정과 경제성장, 금융과 재정의 안정성을 모두 달성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금융 붕괴를 막기 위해 금리를 인상하지 않는다면 인플레이션은 고착화되고, 실질소득이 줄어들어 빈곤계층에게 심각한 영향을 줄 것이다. 현 상태가 지속되면 세계 경제가 경착륙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우진 = 사이토 교수가 대안으로 제시한 ‘탈성장 코뮤니즘’을 어떻게 시작할 수 있을까.

사이토 = 자본주의를 완전히 없애버리고 하룻밤 사이에 탈성장 코뮤니즘을 도입할 수는 없다. 다만 사회를 급진적으로 바꾸는 상상을 해보고, 체험적으로 실험해볼 수는 있다. 이와 관련해 일본에서 두 가지 제안을 했는데, 첫 번째는 근무시간을 줄이는 것이다. 더 많은 근무시간은 더 많은 자원 소비를 동반한다. 타인에게 존중받기 위해 좋은 직장에서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한국·일본과 같은 나라에서 근무시간 감소는 근본적으로 기존 가치관을 뒤흔든다. 다른 하나는 최대소득 상한제 도입이다. 즉 무한대로 돈을 벌 수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벌 수 있는 돈의 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가령 100만달러를 상한선으로 하고 그 이상 벌 경우 정부가 가져간다는 식으로 한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열심히 일하면 무한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편견이 없어질 것이다.

이우진 = 모든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겠지만, 과연 작은 대안이나 변화들이 패러다임을 전환할 만큼 충분할까.

루비니 =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가축을 기르는 데서 발생하는 온실가스가 지구온난화의 주범이라면 모두가 비건이 된다고 하면 해결될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는가 하면 국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도 있다. 이산화탄소 포집이나 청정수소를 활용하게 되면 청정에너지 단가도 더 싸지고 온실가스 배출이 거의 없는 에너지도 발명할 수 있을 것이다. 넷제로(net-zero)로 전환하기 위한 국제 협력도 필요하다. 기후변화, 팬데믹, 경제, 금융안정, 자유무역 등은 모두 글로벌한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개인, 국가, 국제적인 해법이 모두 필요하다.

“자본주의는 제대로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

라즈 파텔 미국 텍사스대 오스틴 캠퍼스 정책대학원 교수(51)는 28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성장을 넘어 - 모두의 번영을 위한 새로운 모색’을 주제로 열린 <2023 경향포럼>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기후위기, 식량물가 상승 등 오늘날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위기는 자본주의가 감춰온 비용 때문”이라면서 “자본주의는 세계를 싸구려로 만듦으로써 작동해왔다”고 주장했다. 자본주의의 유지를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간접비용이 들어가는데, 이를 숨기기 위해 자연·돈·노동·돌봄·식량·에너지·생명 등 7가지 요소의 가치를 저렴하게 후려쳐왔다는 것이다.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 저자이기도 한 파텔 교수는 세계무역기구(WTO), 세계은행, 유엔 등 다양한 국제기구에서 일하며 경력을 쌓아왔지만, 결국 제도권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신념에 따라 모든 일을 그만두고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에 앞장서고 있다.

파텔 교수는 ‘치킨’을 예로 들어 자본주의가 제대로 지불하지 않는 비용에 대해 설명했다. 치킨을 만들기 위해서는 공장식 사육으로 닭을 키우고 죽이면서 ‘자연’을 손상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아주 저렴한 ‘노동력’이 필요한데, 노동자들이 이 과정에서 신체적, 정신적 손상을 당하게 되면 ‘돌봄’이 필요하다.

또 저렴한 치킨을 만들기 위해선 저렴한 ‘돈’이 필요하다. 자본가나 엘리트계층은 은행에서 거의 무한대의 신용한도를 인정 받아 저금리 대출을 받을 수 있다. 닭을 키우기 위해 가스와 같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저렴한 ‘생명’도 필요하다. 미국의 치킨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대부분 아프리카계, 라틴계, 아시아계로 백인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파텔 교수에 따르면 이처럼 자본주의는 자연과 노동력을 저렴하게 착취하면서 성장해왔다. 노동력을 더 저렴화하기 위해 저렴한 돌봄과 저렴한 식량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생명이 저렴해져야 한다.

파텔 교수는 이 같은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서로가 서로를 케어하는 돌봄”이 필요하다면서 “서로와의 관계, 지구와의 관계, 나아가 우리 주변 세상과의 관계를 복원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영국의 국립보건서비스(NHS)를 모범적인 사례로 들었다. 파텔 교수는 “NHS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노동자들에게 내가 아플 때 국가가 나를 도와줄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보여준 곳”이라고 말했다. 복지 지출을 큰 폭으로 삭감한 마거릿 대처 정부 이후 잇단 재정 감축의 시기를 겪었음에도 NHS라는 현대 의료 시스템 실험은 여전히 ‘가능성의 신호’로 남아 있다.

파텔 교수는 특히 급속한 고령화를 겪고 있는 한국에서 앞으로 “누가 돌봄을 담당하게 될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로 대두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2018년 국제노동기구(ILO)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무급 돌봄 노동을 하는 시간은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4배 이상 많았다. 돌봄의 문제가 사회적 약자들에게 쉽게 떠넘겨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앞서 그가 모범 사례로 든 NHS에서 조차 전체 직원들의 20%는 흑인이나 아시아, 소수 민족이었다. 그는 “아시아에는 불평등이 너무 만연하다”며 “가부장적 구조가 계속 유지된다면 (돌봄이) 결국 여성의 몫으로만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파텔 교수가 해결책으로 제시한 것은 ‘상호 돌봄’이다. 협동조합과 같은 형태로 상호 돌봄을 실현할 수 있을 거라고 봤다. 그는 자신의 남아프리카공화국 친구들 사례를 소개하며 협동조합을 통해 공동으로 일하고, 공동으로 케어하고, 공동으로 육아 시설을 이용하는 등의 예를 들었다. 파텔 교수는 “자본주의에는 대안이 없다고 여겨지지만, 협동조합 등을 통한 상호 돌봄이 바로 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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