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광역·기초자치단체장들이 진정한 ‘지방시대’를 실현하려면 지방정부 권한을 연방제 수준으로 늘려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대등한 관계에서 국정과 지방자치를 조율·조정할 수 있도록 ‘부총리급 균형발전·지방자치부’를 설립해야 한다고도 입을 모았다.
국회가 주최하고 국회사무처·국회미래연구원이 주관한 국가현안 대토론회가 30일 국회에서 열렸다. 이번이 일곱 번째인 대토론회는 ‘지방의 위기 국회의 역할을 논하다’를 주제로 우동기 지방시대위원장 기조연설, 자치단체장·국회지역균형발전포럼·전문가 토론으로 진행됐다.
이날 토론회는 이른바 ‘2할 자치’를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대한민국 중앙 행정-지방자치체계에 대한 성토장이나 다름없었다.
◇중앙 부처들 지방 숨 못 쉬게 해 = 3선 국회의원을 지낸 이철우 대한민국시도지사협회장(경북도지사)은 규제 일변도인 ‘지방자치법’이 자치단체 자율성을 과도하게 침해하고 있다는 점을 짚었다.
이 회장은 “지방자치법은 행정부지사, 시행령은 기획조정실장을 모두 행정안전부에서 파견받게 해 중앙정부가 지방정부를 감시·통제하는 구조를 만들어 놓으니 자치단체장으로서는 어떤 일을 하고 싶어도 뜻을 제대로 펼칠 수 없다”며 “정부 할 일을 지방자치단체가 대신하게 한 예산 구조 탓에 매년 몇조 국비 예산 확보를 자랑한다지만 실제 시도가 자율적으로 쓸 수 있는 돈은 한 해 채 1000억 원이 될까 말까 하다”고 성토했다.
"가는 길을 정해놓고 새 길을 찾지 못하게 만들어 단체장이 아무리 바뀐다 한들 하는 일은 거기서 거기인 쳇바퀴 구조가 된 게 지금의 지방자치 현실"이라는 지적이다.
이 회장은 특히 자치단체에 ‘자유’가 필요한 점을 언급하면서 “중앙정부가 관료주의를 타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앙부처 공무원들이 제 밥그릇이 달렸으니 ‘권한’을 손에 쥔 채 선거로 뽑힌 자치단체장에게 주지 않는다. 단체장들은 임기 4년 동안 이들과 싸우다가 볼 일 다 본다”며 “당최 시도민을 위해 구상한 여러 정책이 중앙정부 규제만 받다가 되는 게 하나 없는 이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게 나라 발전에 무슨 도움이 되느냐”고 꾸짖었다.
이 회장은 궁극적으로 대도시화 즉, ‘메가시티 연방’으로 가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옛날에는 대구가 경북을 관장하고, 대전이 충청을 관장하고, 광주가 전남을 관장했는데 지금은 이게 다 따로 놀고 있으니 비수도권 자치단체들 세계적인 대도시로의 성장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메가시티에 사법권도 예산편성권도 조례로 정할 수 있도록 해 진정한 지방 ‘자치’를 꾀할 수 있게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부무와 행정자치부 관료 출신으로 재선 국회의원을 지낸 김영록 전남도지사 생각도 이 회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김 지사는 “지방소멸 위기와 지방균형발전 저해요인은 중앙에 권한과 예산이 과도하게 집중된 것”이라며 “자치단체에 모든 것을 넘긴다는 생각으로 예산을 포함한 과감하고 혁신적 권한 이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자치단체도 미국 ‘주 정부’와 같은 권한을 갖출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정부 부처의 규제 칸막이 사례로 경남도를 비롯해 부산·울산·광주·전남 5개 시도가 함께하는 ‘남부권 광역관광개발 사업’을 들었다. 문화체육관광부 협의, 기획재정부 재정 심사 등을 거치는데만 3년이 걸렸는데, 거기에 행정안전부 투융자 심사를 거치면서 기재부 심의를 다시 받아야 하는 등 우여곡절이 지속하고 있다. 내년도 예산안에 겨우 일부 예산이 반영됐으나 중앙부처 통제 속에 사업에 탄력이 붙지 않고 있다.
김 지사는 “자치단체가 아무리 유능하면 뭐하느냐, 중앙 정부 태클에 일을 할 수 없는데”라면서 “저도 중앙부처 공무원 출신이지만 정말 안 변한다. 중앙 정부가 지방이 숨을 못 쉬도록 막는 현실이 너무 갑갑하다”고 토로했다.
문재인 정부 국가균형발전위원회(현 지방시대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송재호(더불어민주당·제주 갑) 국회지역균형발전포럼 상임 공동대표도 “정부 업무가 3만 개가 되는데 이 가운데 국방·외교, 환경 등 국가가 해야 할 사무와, 시도가 잘하는 사무, 시군구가 잘하는 사무 등을 각각 나누고 예산 배분도 조정해 나가는 게 필요하다”며 “시도지사들은 중앙부처 국 단위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는데, 저는 국이 아니라 부처를 줄이고 각각 권한을 자치단체에 주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 이유를 두고 “중앙부처 공무원들이 자기 밥줄을 안 놓기 때문”이라면서 “부처를 없애야 궁극적인 지방분권 약발이 받는다”고 말했다. 다만, 당장 어려운 일인 만큼 중간 단계로 ‘광역청’을 만들자고 했다. 동남청, 대경청, 호남청 등 지방정부 단위를 키우고 거기에 중앙정부 권한을 대폭 이양해 연방처럼 운영하자는 제안이다.
◇지방을 대변하는 정부부처 있어야 = 시도지사들과 학자들은 중앙부처 관료주의와 자치단체를 향한 행정·예산 분야 폐쇄적 의사 결정을 막고, 중앙과 지방이 동등하게 국가 운영을 논하는 일은 대통령 자문기구에 불과한 위원회 수준으로는 어림없다는데 입을 모았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자치분권위원회, 지역발전위원회에 이어 정부는 지방시대위원회 등 대통령 직속 위원회를 둬 지방분권과 균형발전 업무를 담당토록 하고 있다.
김영록 지사는 “지방시대위원회가 그 역할을 한다지만 지방을 대변하는 ‘정부부처’는 없는 게 사실”이라면서 “행정안전부는 지방을 ‘규제’하는데만 치중하고 있어 사실상 ‘반 지방’ 부처와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균형발전과 자치분권의 컨트롤타워인 지방시대위원회를 ‘국가균형지방자치부’ 성격의 부총리급으로 격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이유로 “부총리급 부처라야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간 균형발전 의제와 비전을 서로 조정할 수 있고, 규제 일변도 중앙부처 관료주의 기득권에 맞서 지방이 맞서 싸우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도 “지역균형발전을 위해서는 ‘산업생태계’ 구축이 최우선”이라면서 “이를 위해 (비교우위를 가질 수 있는) 특화산업 선정, 공공기관과 국회 이전, 지역 인프라 구축, 부처별 균형발전 정책 조율 등의 과제가 남는다”고 말했다.
이어 “자문기구에 머무는 지방시대위원회나 개별부처 힘으로는 이러한 정책을 추진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균형발전을 위한 강력한 컨트롤타워로 부총리급 중앙부처 신설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