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위원회는 이란 여성 억압에 맞서고, 모든 이들의 인권과 자유를 위해 싸운 나르게스 모하마디에게 2023년 노벨평화상을 수여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승리가 가까이 있다"… 이란 여성 인권운동가 노벨 평화상 수상
지난 10월 6일 베릿 라이스 안데르센 노벨위원회 위원장은 2022년 9월 이후 세상을 뜨겁게 달구었던 이란 시민혁명의 대표적인 구호인 ‘여성, 생명, 자유’를 페르시아어로 말하며 이란의 여성 인권운동가인 나르게스 모하마디의 노벨 평화상 수상 소식을 발표했다. 페르시아어 세 마디를 앞세운 라이스 위원장의 발표 내용은 이번 노벨 평화상이 나르게스 모하마디 개인에 대한 수상이라는 점을 넘어, 이란 정부의 차별과 억압에 반대하고 저항해온 이란 국민 전체에게 보내는 격려와 희망의 메시지로 해석된다. 모하마디와 마찬가지로 평화와 자유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고, 지금까지도 용기 있게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이란인들에게 주어진 상이라는 점에서 이번 노벨 평화상은 더 뜻깊은 수상이라 할 만하다.
아쉽게도 나르게스 모하마디는 이 영광스러운 수상 소식을 테헤란의 악명 높은 정치범 수용소인 에빈 감옥에서 들어야만 했다. 모하마디는 〈뉴욕타임스〉에 보낸 성명에서 “이란의 용감한 어머니들과 함께 여성 해방이 이루어질 때까지 강압적이고 종교적인 정권의 끊임없는 차별과 폭정 그리고 젠더 기반의 억압에 대항해 싸울 것이다. 나는 이번 인정으로 변화를 위한 이란인들의 투쟁이 더 강해지고 조직화되길 바란다. 승리가 가까이 있다.”라고 밝혔다.
나르게스 모하마디는 1972년생으로 이란 북서부 잔전주의 주도인 잔전(زنجان)의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다. 카즈빈에서 핵물리학을 공부했고, 그곳에서 남편 타기 라흐마니를 만났다. 남편 역시 오랫동안 이란 개혁주의 운동에 투신해 17년 넘는 옥살이를 한 바 있다. 모하마디는 신문사에서 언론인으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개혁적인 언론인에서 운동가로 거듭났다.
옥중 기록 《백색 고문》, 감옥에서도 목소리 내
나르게스 모하마디는 2003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시린 에바디와 오랜 동지였다. 모하마디는 에바디와 함께 인권수호센터에서 부소장으로 일하면서 이란 시민들의 인권 문제를 위해 싸웠다. 하지만 그와 같은 결정은 큰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국가 안보에 반하는 행위, 집회 및 사형 폐지 운동을 벌인 혐의 등으로 모하마디는 구속과 석방을 되풀이했다. 모하마디는 13번 체포되었으며 이 중 5번 유죄 판결을 받고 총 31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2009년 여권 압수를 시작으로 구속과 석방이 반복적으로 이루어졌는데 그 과정에서 모하마디의 건강은 계속 나빠졌다. 현재도 발작, 일시적인 부분 마비, 폐색전증(폐에 혈전이 생기는 현상)을 초래할 수 있는 신경 장애를 앓고 있다.
옥중 기록 《백색 고문》, 감옥에서도 목소리 내1111
나르게스 모하마디는 2003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시린 에바디와 오랜 동지였다. 모하마디는 에바디와 함께 인권수호센터에서 부소장으로 일하면서 이란 시민들의 인권 문제를 위해 싸웠다. 하지만 그와 같은 결정은 큰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국가 안보에 반하는 행위, 집회 및 사형 폐지 운동을 벌인 혐의 등으로 모하마디는 구속과 석방을 되풀이했다. 모하마디는 13번 체포되었으며 이 중 5번 유죄 판결을 받고 총 31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2009년 여권 압수를 시작으로 구속과 석방이 반복적으로 이루어졌는데 그 과정에서 모하마디의 건강은 계속 나빠졌다. 현재도 발작, 일시적인 부분 마비, 폐색전증(폐에 혈전이 생기는 현상)을 초래할 수 있는 신경 장애를 앓고 있다.
하지만 모하마디는 무너지지 않고, 감옥 안에서 단 한 번도 침묵하지 않았다. 일생을 이란인들의 인권과 자유를 위해 연구하고 활동했던 모하마디는 이제 교도소에 구금된 이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인권 상황에 대해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기록과 진술을 2022년 《백색 고문》이라는 책을 통해 발표했다. 이 책은 주로 동료 정치범들과의 인터뷰로 구성되었으며, 네 개의 벽과 작은 철문이 모두 흰색으로 칠해진 독방에서의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담아냈다. 그는 《백색 고문》에서 감옥에서 감금된 채로 지내는 생활의 두려움과 불안 그리고 간수에 대한 스톡홀롬 증후군을 기록하면서, 때로는 이와 같은 불안과 두려움이 상상 속에서 자신을 지배한다고 고백한다. 그는 “투쟁의 대가는 고문과 투옥일 뿐만 아니라, 모든 후회로 부서지는 마음과 뼛속까지 파고드는 고통입니다.”라고 힘든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마흐사 아미니 사망… 연대의 힘 보여주는 이란
2022년 9월, 22세의 마흐사 아미니가 히잡 단속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후 이란 사회는 들불처럼 일어났다. 이것은 단순히 여성의 문제가 아니었다. 오랜 시간 동안 이란 사회를 억눌러온 기본적인 인권과 자유의 문제에 대한 저항이었다. 몇 개월간 지속된 이란 전역의 시위에서 미성년자 71명을 포함해 500명 이상이 사망하였고, 2만 명 이상이 체포되었다. 히잡 시위가 벌어진 이후, 주로 정치범들이 투옥 중인 에빈 교도소에서도 시위가 벌어졌다. 비록 몸은 감옥 안에 묶여 있지만, 그들의 목소리까지 가두지는 못했다. 감옥 안에서 수감자들은 대규모 시위와 그에 대한 공권력의 강력한 탄압, 그리고 처형 소식을 듣고는 성명을 발표하고 연대와 지지 의사를 밝혔다. 이란 전역을 뒤흔든 ‘여성, 생명, 자유’의 구호가 에빈 교도소의 갇힌 공간에서도 울려 퍼졌다.
모하마디는 2023년 1월에는 58명의 여성 수감자 명단과 그들이 겪은 잔혹한 고문의 기록을 담은 보고서를 발표했다. 모하마디는 히잡 시위 이후 지난 1년간 더욱 가혹해진 감옥 내 상황을 목도하였다. 모하마디는 감옥 안에서 구타와 성폭행을 당한 많은 여성 수감자들을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담아 내려 노력했다. 이와 같은 활동이 다시 범죄 혐의로 받아들여지면서, 모하마디는 교도소 안의 활동으로만 2년 3개월의 감옥 생활이 추가되었다.
1979년 당시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린 대규모 시위 이후 43년 만에 가장 큰 시민불복종 시위에 나선 이란 시민들은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이것은 시위가 아니다, 이미 혁명이다.” 더 많은 억압에 시달리는 여성들을 비롯해 지금 이란 민중의 자유와 변화에 대한 열망은 강력하다. 이전까지처럼 은밀하게 자유를 즐기는 데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이란 시민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자아의 모습을 완전히 감추거나, 각자만의 다양한 색을 희석하는 전략을 사용해왔지만, 이제는 더 이상 물러서지 않고 반격에 나서고 있으며 연대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이란 시민들은 지속적으로 일상적인 저항을 벌이고 있다. 해시태그를 통한 온라인 운동은 이란 내 여성 인권과 강제 히잡 문제, 또 미투 운동뿐 아니라 남성들까지를 포함한 국내 인권 문제,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탈레반 정권의 재등장으로 여권과 인권의 극명한 퇴보를 보이는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에 대한 지지와 연대 운동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또한 깨어있는 이란 시민들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스라엘-하마스 분쟁과 관련해서도, 일방적으로 하마스를 지지하는 정권의 목소리와 다르게 평화와 자유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한다. 이란 시민들은 자신들을 향한 종교적, 사회적 규범과 관습에 저항하고 있으며, 위험을 무릅쓰고 혁명을 꿈꾸며 모하마디처럼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내고자 한다.
"가둘수록 강해져"… 투쟁은 꽃으로 핀다
모하마디의 삶을 돌아보면 모하마디 자신을 포함해 남편, 그리고 아들, 딸 쌍둥이 자녀들의 사적인 희생이 너무 컸다. 모하마디의 노벨 평화상 수상이 결정되고, 이제 훌쩍 큰 남매와 남편이 모하마디를 대신해서 수상 소감을 전했다. 올해 16세가 된 두 쌍둥이 남매는 8세 이후 엄마를 보지 못하고, 프랑스에서 정치적 난민으로 살고 있다. 최근 2년 동안은 모하마디와 가족들과의 연락도 금지되었다. 모하마디의 딸인 키아나는 엄마가 직접 이야기하지는 못했지만, 분명히 수상 소식을 듣고 우리처럼 행복할 것이라고 했다. 아들 알리는 “나는 이런 삶을 받아들였다. 내가 받는 고통은 중요하지 않다.”라고 말하며, 엄마를 자랑스러워했다. 조국을 떠나 이국에서 난민 생활을 하며 어머니를, 아내를 그리워하는 이들 가족의 고통 역시 상상 이상일 것이다. 모하마디를 지지하고 버티게 하는 가족들은 지금도 모하마디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그녀를 대신해 그녀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
나르게스 모하마디를 지지하는 이들은 모하마디가 오랜 감옥 생활에서 석방되어 노르웨이에서 직접 노벨평화상을 받기를 염원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와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란 정부는 이번 노벨위원회의 결정을 서구의 내정간섭이라고 여기고 있고, 이에 모하마디의 목소리를 더욱 누르고자 할 것이다.
2023년 9월, 마흐사 아미니 사망 1주기를 맞이해 나르게스 모하마디는 〈뉴욕타임스〉에 보낸 기고문에서 “우리를 가둘수록 우리는 더욱 강해진다. (…) 정부의 폭력적이고 잔혹한 탄압이 때때로 사람들을 거리에서 멀어지게 할 수도 있지만, 우리의 투쟁은 빛이 어둠을 차지하고 자유의 태양이 이란 국민을 품는 그날까지 계속될 것이다.”라며 강한 생존과 투쟁의 의지를 밝혔다.
나르게스의 몸은 비록 감옥에 갇혀 있지만, 그는 결코 저항의 목소리를 낮추지 않을 것이다. ‘나르게스’는 페르시아말로 수선화라는 뜻이다. 혹독한 겨우내 구근 속에 있다가 봄이 되어 화려하게 꽃을 피워내는 수선화라는 자신의 이름처럼 이란의 여성, 생명, 그리고 자유에 대한 모하마디 나르게스와 이란 시민들의 투쟁과 희망은 곧 꽃을 피워낼 것이다.
글쓴이 구기연은
문화인류학자이자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다. 한국외대를 졸업하고, 서울대 인류학과 대학원에서 문화인류학 석사학위,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란 도시 젊은이, 그들만의 세상 만들기』를 썼으며, 경향신문에 국제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서아시아 지역과 한국의 이슬람포비아 현상 그리고 무슬림 이주민에 대해 연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