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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영 감독의 <건국전쟁> 시사회 기자회견 / 정중규

by 정중규

'김일성의 아이들' 만든 김덕영 감독이 이승만과 대한민국 건국사 다룬 영화 '건국전쟁(The Birth of Korea)’' 시사회 및 기자회견

2024.1.12. 오후2시30분. CGV용산아이파크몰

바야흐로 차기 권력을 결정 지을 총선을 앞두고 좌파진영의 <서울의 봄> <길 위에 김대중> 등의 영화를 앞세운 대국민 문화전쟁이 거세기만 하다.

<건국전쟁>은 거기에 대한 우파진영의 맞대응 영화라 할 수 있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를 벗겨내는데 충분한 내용을 충실히 담고 있는 논픽션 다큐다큐멘터리 영화였다.

그런 까닭에 아쉬운 점도 거기에 있었다. <서울의 봄> 감독의 자백처럼 영화에 조미료 같은 재미를 담기 위한 허구적 픽션이 없는 까닭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수백억대의 제작비를 비롯해 정우성 같은 톱 배우들을 출연시켜아 하는 등 정파성만이 아니라 상업성도 지녀야할 것이다.

그러기에는 우선 문화전쟁에 임하는 우파진영의 자세가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목숨 걸고 덤비는 좌파진영에 비해 아직은 너무 오소독스하고 점잖기만 하다.

그럴지라도 어려운 환경과 여건 속에서도 우량아를 탄생시킨 김덕영 감독의 노고에 감사의 마음을 담아 박수를 보낸다. 어쩌면 좌우진영간 문화전쟁은 이 영화 <건국전쟁>으로 비로소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뜨거운 격려를 보낸다.

한편, 지난 해 3월 26일 이승만 대통령 탄생일을 맞아 大韓民國 初代 大統領 雩南 李承晩 博士 내외분의 묘소 참배하고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페북에 남긴 글을 다시 가져와 본다.


시대와 역사가 한 인물을 걸출하게 탄생시키기도 하지만, 한 걸출한 인물이 시대와 역사를 만들기도 한다.

대한민국 70년사에 이승만이라는 인물만큼 큰 획을 그은 지도자가 또 있을 것인가. 그는 오늘날의 대한민국 그 틀을 만드는데 어느 누구보다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그가 미국 유학을 가고 거기서 자유민주주의가 꽃피는 미국사회의 긍정적인 측면을 유심히 관찰하고 통찰한 것은 그대로 대한민국이라는 신생 국가의 틀이 되었으니, 그것은 "모든 국민은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고 했던 토크빌이 미국의 민주주의를 관찰한 것에 비견될 수 있다.

그 바탕에서 그는 대한민국을(비록 분단국으로 출발하게 되었지만) 미국 중심의 자유진영에 속하도록 이끌었고, 거기에 미국 민주주의를 옮겨 심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동서 냉전의 최전방이 되어버린 한반도에서 전쟁마저 터지자 아예 미국과 군사동맹까지 맺어버렸다.

올해로 체결 70주년이 되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그가 성사시킨 것은 '신의 한 수'였다.

그로인해 한국전쟁으로 증명되듯이 지정학적으로 '동서냉전의 화약고'로 여겨졌었던 한반도에선 그 이후 더 이상 전쟁이 발발하지 않았고, 그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은 경제발전과 번영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오늘날 경제대국으로 대한민국이 나아갈 수 있도록 하게만든 그 문을 연 '마법의 열쇠'였다.

오늘 김문수 위원장으로부터 알게 된 것이 그가 지금으로부터 딱 100년 전인 1923년 3월 하와이에서 발간하던 '태평양잡지'에 공산당의 부당함을 밝히는 논문을 아래와 같이 발표했다는 사실이다.

“공산주의 중 부당한 것을 말한 진대,

(1) 재산을 나누어 가지자 함이라.

가난한 사람은 환영하겠지마는, 게으른 사람들이 일을 아니하면 어찌하겠느뇨. 가난뱅이는 차차 수효가 늘어서 장차 일 아니하고 얻어먹으려는 자가 가득할 것이오.

​(2) 자본가(資本家)를 없이하자 함이라.

부자의 돈을 나누어 가지고 살게 하면, 자본가들의 경쟁이 없어져서 상업과 공업이 발달되기 어려우니, 사람의 지혜가 막히고 모든 기기미묘한 기계와 연장이 다 스스로 폐기되어, 지금 이용하는 모든 물건이 진보되지 못하며, 물질적 개명이 중지될지라.

(3) 지식계급을 없이하자 함이니,

모든 인민의 지식을 높이자 하는 것은 가하거니와, 지식계급을 없이하자 함은 불가능하며,

(4) 종교단체를 혁파하자 함이라.

교회 조직을 없이하는 날은 인류 도덕상 손해가 클 것이다.”

그 당시 세계지성인계에선 새로운 사조로 받아들여졌던 공산주의에 대해 그 맹점을 정확하게 파악하면서 철저한 반공주의자가 된 그의 신념이 신생국 대한민국 내부에 이념전쟁을 격화시키고 남북대결을 심화시킨 측면도 없지는 않지만, 동시에 체제경쟁을 불러 대한민국을 발전시킨 동력원이 되기도 했다.

물론 그가 장기집권을 하면서 독재정치로 흐르다 기어이 4.19혁명을 초래해 불명예 퇴진한 것은 흠결이지만, 오늘 마침 4.19세대 어르신들이 모여 '4.19정신과 이승만의 건국정신은 하나다'라고 밝혔듯이, 그의 과오는 과오대로 평가하면서 그가 오늘날 자유민주주의라는 기치 아래 대한민국이 우뚝 서게 된 것에 끼친 공로에 대해선 합당한 평가를 내려야 할 것이다.

오늘 그의 묘소 앞에서 오랜 시간 머물면서 '국가란 무엇인가' '정치란, 정치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리더십은 어떻게 발현 되고 진정한 리더십은 어떠한 것인가' '경세제민(經世濟民)의 길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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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업적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The Birth of Korea)’의 시사회가 1월 12일 오후 2시 30분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렸다. 영화는 2월1일 개봉할 예정이다.


‘건국전쟁’은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 30년 경력의 김덕영 감독이 만들었다.김 감독은 리버티국제영화제(LIMF‧Liberty International Movie Festival) 집행위원장이다. 그는 지난 2020년 다큐멘터리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이라는 작품을 내고 6‧25전쟁 이후 북한 고아들의 동유럽 이주 역사를 다뤘다.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은 이 작품은 대한민국 국가기록원 영구보존 작품에 선정돼 현재 국가기록원 수장고에서 보관하고 있다. 이밖에도 이 작품은 전 세계 17개국 주요 영화제에 출품해 이탈리아 로마국제무비어워즈 다큐멘터리 부문 최우수상, 동유럽국제무비어워즈 은상 등을 수상했다.


북한은 지난 70년 동안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을 훼손하기 위해 ‘이승만 지우기'에 열을 올렸다. 그 결과 ‘런(run)승만’이라는 멸칭부터 4‧19 이후 하와이로 막대한 비자금을 갖고 망명을 했다는 가짜 뉴스가 아직도 나돌고 있다. 영화 ‘건국전쟁’은 이를 바로잡고 이승만이라는 인물에 관한 자료들을 모아 객관적 사실을 알리기 위해 만들었다.


2011년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과 민주화를 다룬 저서 《대한민국 만들기 1945-1987(Nation Building in South Korea)》를 낸 미국 조지워싱턴 대학의 그렉 브라진스키(Gregg Brazinsky)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이 자신의 역사를 정직하게 점검하고 자신의 지도자를 정확하게 평가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게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작업은 문서와 기록 자료에 기초한 평가입니다. 한국은 1950년대 자료에 대한 연구가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저서 《슬픈 중국》을 내고 《조선일보》에 칼럼을 연재하는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학 교수는 “수천년 동안 함께 살아왔던 한 나라가 분단된 지 70여년 만에 어떻게 이렇게 극단적인 두 나라로 나아갈 수가 있었는지를 놓고 전 세계 학자들이 큰 논쟁을 벌이고 있다”고 했다.


마이클 브린(Michael Breen) 전 주한외신기자클럽 회장은 “한반도의 분단은 역설적이게도 대한민국이 오늘날처럼 발전하는 중요한 요인이 됐다”며 “만약 한반도가 분단이 되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은 아마 미얀마 같은 나라, 혹은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갈림길의 시작은 남북의 각자 다른 ‘토지개혁’이었다. 전 세계 경제학자들은 오늘날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토대로 ‘이승만의 토지개혁’을 강조하고 있다. 지주들의 반대를 극복하고 이뤄낸 1949년 토지개혁은 오늘날 대기업 성장의 초석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은 “대한민국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1949년 이승만의 토지개혁이었다”고 말했다.


지난 70년 동안 평화를 지탱해 온 ‘한미상호방위조약’도 이승만의 주요 업적으로 꼽힌다. 탈북자 구출에 힘쓰고 있는 시민단체 ‘거룩한 대한민국 네트워크’의 이호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전 한반도는 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화약고였죠. 그런데 한미동맹을 맺고 나서 지난 70년 동안 100명 이상이 죽는 전투 단 한 건도 일어나지 않는 우리 역사상 최초의 장기간의 평화가 가능해졌습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가능케 한 사람이 바로 이승만 대통령입니다.”


미국의 젊은 ‘이승만 연구가’ 데이비드 P. 필즈(David P. Fields) 위스콘신대학교 동아시아센터 부소장은 “이승만은 미국과 대한민국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는 비전을 갖고 있었다”고 평가했다. 필즈 박사는 “아무도 그 당시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던 사람은 없었다”며 “오직 이승만이 그런 생각을 품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한반도에서 여성의 투표권이 부여된 것도 1948년이었다. 서구의 여성들도 투표권을 획득하기 위해 거리로 나가 긴 시간을 투쟁했다. 하지만 한반도에서 여성의 투표권은 마치 선물처럼 부여됐다. 그로부터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함께 독립운동을 하는 양반과 상놈이 겸상을 하지 못하던 시기였다. 게다가 ‘조선에서 가장 불쌍한 것은 계집아이들’이라는 기록이 전해진다. 이러한 시대상을 고려하면, 오늘날의 진보주의자들도 이승만의 이러한 정책을 무시해선 안 될 일이다.


좌파 진영에서 ‘보수는 친일’이라는 프레임을 씌울 때 자주 등장하는 소재가 독도다. 하지만 이들은 이승만이 1952년 선포한 ‘이승만 라인’에 대해선 애써 모른 체한다. 지금까지도 일본이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억지’라고 주장하는 ‘리쇼우반(李承晩의 일본어 발음) 라인’은 우리 해양 주권 선언이었다. 무엇보다 실효적 지배가 이뤄져 우리 영토를 수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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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100년 내다보고 자유민주국가 수립”

‘건국전쟁’ 각본·감독 김덕영

“평생 대한민국 위해 산 인물”


영화 ‘건국전쟁’의 각본·감독과 편집, 촬영 일부를 맡은 김덕영(59·사진) 감독은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 공부를 시작한 뒤 큰 반성을 하게 됐고, 그를 비롯한 건국 세대에 대한 죄송함을 영화에 담았다”고 했다.


―'건국전쟁’을 만들게 된 계기는?


“2020년 다큐 ‘김일성의 아이들’에서 1950년대 북한이 동유럽 국가들로 보낸 전쟁고아들의 삶을 조명했다. 그때 북한에 관심을 가지게 됐는데, 심지어 1990년대까지도 평양에 ‘이승만 괴뢰도당을 타도하자’는 구호가 있었다는 걸 들었다. 왜 그들이 그렇게까지 이승만을 타도하려 했는지 궁금해졌다.”


―이승만이 오랫동안 부당하게 폄훼됐다는 시각을 영화에 담았는데.


“84학번인 나 역시 대학 시절 ‘독재자’라는 부정적인 인식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이승만을 파고들어 보니, 100년 앞을 내다보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립한 한국사의 유일한 인물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대한민국 건국’은 1948년 이승만에 의해 이뤄졌다고 했는데.


“선언에 그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실행에 옮겼다는 것이 중요하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그렉 브레진스키 미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미래의 비전과 안정된 보장 시스템이 존재해야 건국(建國)이라 할 수 있다’고 했는데 바로 이승만이 그걸 해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교육 예산에 전체 예산의 20%를 썼다. 이승만이 깔아 놓은 레일 위에 박정희의 경제 개발이란 기관차가 달린 것이다.”


―관객들에게 바라고 싶은 점이 있다면.


“이승만 전 대통령은 오랜 세월 동안 좌파들의 선동에 의해 부당한 평가를 받아 왔다. 그러나 그 거짓의 선글라스를 벗으면, (울먹이며) 평생을 대한민국만을 위해 살았고 실천했던 한 노인의 모습이 보일 것이다.”


월간조선 김광주 유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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