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보수의 새 얼굴'로…이재명과 맞짱 / 정중규

by 정중규

차기 대선 주자 처음 1위 오른 한동훈, '보수의 새 얼굴'로 자리매김…이재명과 ‘양강 구도’ 형성

"◯◯ 님께서는 앞으로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정치 지도자, 즉 장래 대통령감으로 누가 좋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이 새해를 준비하며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왔다. 응답자 가운데 24%가 정치권에 막 입성한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을 선택한 것이다(그래프 참조·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3.1%p. 이하 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맞붙었던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이재명 대표(22%)는 오차범위에서 한 비대위원장에게 뒤졌다.

총선을 앞두고 '한동훈-이재명 양강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한국갤럽이 중앙일보 의뢰로 지난해 12월 28~29일 전국 성인 남녀 101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두 사람에 대한 쏠림 현상이 나타났다.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3%)와 홍준표 대구시장(2%), 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2%) 등 여야 경쟁 주자들은 한 자릿수 초반대 지지를 받았을 뿐이다.


한 비대위원장이 보수 정당 지지자들로부터 높은 지지를 받은 점도 특징이다(표 참조). 총선을 앞두고 한 비대위원장이 '보수의 새 얼굴'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당내 중진인 국민의힘 정진석 의원 역시 최근 주간동아와 인터뷰에서 "한 비대위원장이 차기 정치 지도자 1위 자리를 굳힐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실제로 한 비대위원장과 민주당 이 대표의 양자 대결을 묻는 설문조사도 늘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메트릭스가 연합뉴스와 연합뉴스TV 의뢰로 1월 6~7일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차기 대선 주자로 한 비대위원장과 이 대표가 맞붙을 경우 지지율이 36%로 동일하게 나왔다. 대선을 3년 이상 남긴 상황에서 벌써부터 두 인물이 팽팽하게 맞붙는 구도가 형성된 것이다.


그간 보수 정당은 확장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준석 전 대표가 '이준석 신드롬'을 일으킬 수 있었던 배경에도 2030 남성들의 지지를 끌어오는 데 성공한 점이 적잖게 작용했다. 60대 이상 지지층에 2030세대의 지지를 더한다는 이른바 '세대포위론'이 적중하면서 국민의힘은 2021년 재보궐선거를 시작으로 연거푸 선거에서 승리했고, 이 전 대표 역시 이를 자산으로 헌정 사상 초유의 30대 당대표가 될 수 있었다. '성별 갈라치기'라는 비판이 있었지만, 전통적 진보 정당 지지층인 2030세대의 일부 표심을 가져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후 이 전 대표의 이탈로 보수 정당 확장성에 제동이 걸렸고,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대안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한 비대위원장이 국민의힘 새얼굴로 부상한 배경이다.

한 비대위원장이 중도층을 겨냥해 꺼낸 카드는 '동료 시민(fellow citizens)'이다. 그는 이 표현을 빈번히 사용하며 지지층 확장에 나서고 있다. 비대위원장직 수락 연설 당시 이 표현을 10번 사용했고,

1월 1일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하며 방명록에 "동료 시민들과 함께 대한민국 미래를 만들어 가겠습니다"라고 적기도 했다. 동료 시민은 영미권 국가 정치인이 자주 사용하는 표현으로 존 F. 케네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연설에 자주 등장했다.


‘동료 시민' 표현으로 차별화 전략


한 비대위원장이 동료 시민을 강조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그간 정치권에서 주로 사용하던 표현인 '국민'은 물론, 민주당 계열에서 흔히 말하는 '깨어 있는 시민'과도 차별화하려는 의도일 것이라는 시각이 있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동료 시민이라는 표현은 공화주의의 중요 가치 중 하나"라며 "수평적 관계에 있는 시민들과 함께 의사결정을 하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채 교수는 "그간 야권에서는 이른바 '깨어 있는 시민'이라는 프레임을 사용해왔는데, 이와 차별화하면서도 중도층을 공략할 화두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보수 가치를 견지하면서도 기존 정치권의 문법과 차별화하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비대위 인선에서도 유사한 의지가 읽힌다. 시각장애를 가진 김예지 의원과 보육원 출신인 윤도현 자립준비청년 지원(SOL) 대표를 비대위원으로 영입한 것이 대표적 예다.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을 적극 공론장으로 끌어오겠다는 것이다. 한 비대위원장은 법무부 장관 시절 "여의도 사투리가 아닌 5000만 명의 문법을 쓰겠다"며 정치권의 문법과 거리를 두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기존 정치권과 대비되는 집단으로 일반 시민을 설정한 것인데, 비정치인 인물들을 중심으로 비대위를 꾸린 것 역시 이 흐름의 연장선으로 보인다.

변수는 윤석열 대통령과 차별화다. 대통령 및 여당의 '구원투수'로 정치권에 등판했지만, 정작 윤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로 확장성 면에서 발목이 잡힌 듯한 모양새가 나타나고 있다. 윤석열 정권의 황태자 이미지가 지지층 결집을 도왔지만 윤 대통령 비토층의 지지가 유보되고 있는 것이다. 여러 여론조사에서 한 비대위원장에 대한 긍정 응답이 40%를 넘지 못하는 상황도 윤 대통령 지지율이 40% 아래에 머무르는 상황과 맞닿아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여론조사 세부 내용을 들여다봐도 이런 경향이 관측된다. 중앙일보 의뢰로 한국갤럽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윤 대통령에 대한 부정 평가자 가운데 한 비대위원장을 차기 대통령감이라고 평가한 사람은 3%에 불과했다. 같은 조사에서 윤 대통령에 대한 부정 평가자 중 14%가 국민의힘을 지지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여권에서는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끊임없이 두 사람을 구별 지으려 노력하고 있다. '1973년생' 'X세대' '패셔니스타' 같은 키워드로 한 비대위원장을 정의하는 것도 유사한 맥락이다. 윤 대통령과 각을 세우지 않으면서도 문화적 소양, 취향 등으로 두 사람을 구별하는 것이다.


"확장성 비교우위 있어"

한 비대위원장이 가진 확장성 자체는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한 비대위원장이 중도층에서 소구력이 낮다는 지적이 있는데, 여권 내 경쟁 후보들과 견줘볼 때 확장성 면에서 비교우위가 있는 것은 맞다"고 말했다. 한 비대위원장이 당내 경쟁 주자들에 비해 중도 성향 지지층의 비율은 낮지만 지지자의 절대 숫자는 오히려 많다는 것이 그 이유다. 한 비대위원장이 1월 10일 "특별감찰관 추천에 대해 민주당과 협의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히며 이른바 '김건희 리스크'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만큼 향후 용산과 거리두기가 본격화할 경우 중도층 표심을 더 끌어올 가능성도 있다.

한 비대위원장은 전국을 순회하며 '맞춤형 전략'으로 지지자들을 결집하고 있다. 1월 10일 부산 방문 당시 '1992'라고 쓰인 티셔츠를 입은 것이 대표적 예다. 1992년은 부산 연고 프로야구팀 롯데 자이언츠의 마지막 우승 연도다. 야구에 '진심'인 부산 민심을 겨냥한 행보로 풀이된다. 실제로 1박 2일간 부산 일정은 부산 지역 지지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기도 했다.

대선이 3년 이상 남은 만큼 현 시점에 차기 대권을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시각도 있다. 윤태곤 실장의 이어지는 분석이다,


"2020년 총선을 앞둔 시기에는 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와 미래통합당 황교안 전 대표가 서로 각 당을 대표하는 대권 주자로 맞붙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결과가 어땠나. 마찬가지로 대선까지 오랜 기간이 남아 있는 만큼 현 시점에서 '한동훈 대세론'에 큰 의미를 부여해서는 안 된다."


주간동아 최진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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