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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중규 Jan 31. 2021

생텍쥐페리의 '야간비행'으로 로마 국제공항에

별을 보기 위해 내 생애 가장 높게 날아올랐던 하룻밤


6년 전 오늘..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만나려고 바티칸 교황청으로 가기 위해 머나먼 야간비행 끝에 이탈리아 로마 레오나르도 다 빈치 국제공항에 내리고 있었다. 그날, 밤을 지새며 창 밖으로 수천 미터 아래 세계를 내려다 보며 당연히 생텍쥐페리의 '야간비행'의 아래 인용 구절이 떠올랐다.



"이윽고 밤은 검은 연기처럼 피어 올라 어느덧 골짜기들을 껌껌하게 만들었다. 이제는 골짜기와 평야를 구별할 수 없게 되었다. 동네에는 불이 켜지고, 그들의 성좌들이 서로 응답하고 있었다. 마치 바다에 등대를 밝혀 놓듯이, 모든 집들이 각각 자신의 별에 불을 켜서 이 거대한 밤을 향해 올려 보냈다. 파비앙은 조용하고 아름답게 행해지는 이 의식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나름 십대 문학소년 시절 생텍쥐페리의 '야간비행'을 밤 새워 읽던 그 애틋한 심정으로 야간여행을 음미하고 있었다. 사실 여행을 할 때면 교통수단에 동승한 승객들이 방주적 운명공동체라는 독특한 느낌의 상상에 빠져들곤 하는데, 항공기야말로 지상을 달리는 그 어떤 것보다 그러하지 않는가! 어쨌든 참으로 오랜만에 야간비행을 했다.


그 시대 어느 누군들 그러했겠지만 내 청소년기는 생텍쥐페리에 흠뻑 젖어있었다. 그의 감성,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눈길, 그가 세상 모든 것에 지닌 애틋한 사랑이 너무 좋아 그가 남긴 작품들을 섭렵했다. '어린왕자' 보다 '인간의 대지'를 더 좋아했고, '야간비행', '남방우편기', 특히 '성채'에 깊이 매료되었었다.



그러면서 위로는 뭇별들이 깜빡이고 구름 아래 세상은 창세의 첫날처럼 카오스의 기운이 휘감사며 캄캄한 창 밖을 내려다본다.


내려다본다는 것...거기서 문득 드는 생각이...신은 왜 자비로운가. 멀리서 세상을 내려다보기 때문이 아닌가. 관조한다는 것은 슬픈 것이다. 그리고 자비는 큰 슬픔이다. 어릴 때부터 장애로 인해 활동이 제한 받아 세상을 관조할 수밖에 없었던 내게 삶이 슬펐던 것도 그러했다. 나는 정말 눈물의 왕이었었다. 불경에 보면 어린 태자 싯달타는 궁중 밖 길 가에 앉아 생로병사를 거듭하는 민중들의 삶을 보고 출가를 결심한다. 신이 세상을 내려다 보는 것과 동일한 관조의 자세다. 그래서 생텍쥐페리는 어린왕자처럼 하늘로 올라갔고 싯달타는 깨달음의 지경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큰 슬픔인 자비의 화신이 되었다.



로마로 가는 밤하늘, 별빛과 불빛이 점멸하는 그 밤하늘은 그래서 슬펐다. 어쩌면 깨우침은 한 걸음 물러설 때만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현실에 너무 함몰되면 깨우침의 전두엽은 활성화할 수 없는 것..성인이 되려면 삶의 바다에 풍덩 뛰어들어 젖어야 할지 모르지만, 깨달은 자가 되려면 한걸음 물러서라.


별을 보기 위해 내 생애 가장 높게 날아올랐던 하룻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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