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르게 달리기를 시작했다.

달리기는 뽀꼬 아 뽀꼬 (Poco a poco)

by 먹셀로나

나에게 달리기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스포츠 같았다. 나는 학창시절 100m 달리기에서는 늘 꼴찌였고, 오래달리기를 하면 세바퀴쯤 지나 우웩하고 쓰러져 버렸다. 덕분에 나는 인생 내내 달리기와 친해져 볼 생각도 해 본 적이 없었다. 힙한 친구들이 민소매를 입고 한강을 달리며 나이키 런데이로 인증샷을 찍어 올리는 모습을 보면서 멋지고 부럽다는 생각을 했지만, 저렇게 달리면 내 무릎이 와장창 아작이 나겠지, 저렇게 달리면 편두통 도진다 핑계를 대면서 관심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남편과 달리기를 시작했다. 둘 다 재택근무로 집에서만 콕 박혀 지내던 탓에 둘의 체력이 점점 약해졌고 이 젊고 창창한 나이에 이렇게 체력이 없으면 이러다 금새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돈이 많이 들지 않으면서 둘이 함께할 수 있는, 바깥 공기를 좀 마시면서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은 달리기라는 결론에 이르러 런닝을 시작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끊어만 놓고 가지 않았던 헬스장을 취소하고 집 근처에 강변에 나가 달리기를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첫 날의 달리기. 나는 그 날의 달리기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9월의 스페인은 여전히 무척 더웠고, 강변에서는 모기들이 다리에 달라 붙었다. 준비 운동도 어떻게 하는지 잘 몰랐지만 일단 시작은 했고, 200m를 채 못가서 숨이 너무 차서 멈출수 밖에 없었다. 1km를 뛰는 것도 버거워서 가는 동안 몇 번을 쉬었는지 모른다. 1km가 조금 지나면 강변에 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그 곳 벤치에 앉아서 10분은 족히 쉬어야 했다. 쉬고 난 후에는 왔던 길을 돌아서 뛰어왔지만 그 마저도 잘 뛸 수가 없었다. 뛰는 동안 대화는 커녕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그렇게 첫 날은 돌아오자마자 씻고 기절을 했다.


달리기가 내 운동이라는 생각은 여전히 안들었지만 그래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일단 나갔다. 달라붙는 모기들 때문에 모기 퇴치 스프레이를 사고, 선글라스를 장착하고, 준비운동을 철저히 하기 시작했다. 어제 달린 곳보다는 오늘 조금 더 달려본다는 마음으로 나갔지만, 컨디션이 안좋은 날은 많이 달리기 어려울 때도 있었다. 그래도 일단 나갔다.


그렇게 3개월하고 두 주가 흘렀다. 남편이랑 주 3회는 꼭 달렸고, 많게는 4번까지도 달렸다. 첫 날 그렇게 달릴 수 없던 1km는 중간에 딱 한 번정도 쉬면 도달할 수 있게 되었고, 이제는 중간에 앉아서 쉬는 시간 없이 40분정도 달려서 4km까지 뛸 수 있게 되었다. 나에게는 기적같은 일이다.


달리는 동안 그동안 나를 괴롭히던 편두통이 말끔하게 사라졌다. 더 많은 일을 하지만 덜 피곤하다. 잠을 푹 자게 되었고 스트레스를 덜 받게 되었다. 살이 빠졌고 사람들이 알아보기 시작했다. 인내심이 조금 더 늘었다. 사람들을 만나면 늘 너무 피곤해 금방 돌아와야했던 남편은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도 덜 피곤하다고 말하게 되었다. 자꾸 깜빡깜빡하던 남편은 기억력이 좋아졌다. 그렇게 우리 둘은 달리기 맹신론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앞으로 1년을 이렇게 꾸준히 달려보자는 목표를 세웠다.


런닝을 마치고 돌아오던 첫 날, 나는 내 저질체력에 무한 감탄하며 탄식을 내뱉었다. 그래도 그 다음날 달리러 나왔다. 그리고 진짜 조금 더 나아졌다. 그리고 그 다음 날도 달리러 나왔다. 그리고 진짜 조금 조금 더 나아졌다. 빨리 런닝 속도가 늘지 않는 것을 보면서 속상해하던 나를 보면서 남편은 "옷입고 나오는 것"으로 우리의 목표는 달성한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Better than nothing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지)" 라고 습관처럼 말했다. 그 때마다 남편은 "뭐라고? nothing이라고? 너는 지금 엄청난 일을 하고 있는거야!" 하며 격려해주었다. 솔직히 남편의 격려가 없었다면 벌써 그만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고마워 싼서방.


달리기는 정직한 스포츠라는데, 참 그 말마따나 하는만큼 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 3회, 3개월이 쌓이니 이제 2km를 뛰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속도는 느리지만 그래도 꾸준히 하다보면 또 나아지겠지. 아직 너무 하찮은 실력이라 인스타그램이나 소셜에는 인증하기도 너무 부끄러워 남편과 나만의 기록으로 열심히 남기고 있지만 그래도 소중한 나의 노력이 담긴 일이니까 브런치에는 이렇게 살짜쿵 남겨본다.


스페인어로 "Poco a poco (뽀꼬 아 뽀꼬)"라는 말이 있다. 조금씩 천천히, 서두르지 말고 한 발씩 나아가라는 뜻이다. 내 달리기가 참 "뽀꼬 아 뽀꼬"라는 말이랑 딱 들어맞는다. 옷을 입고 나가는 것만으로 오늘의 성공이고, 당장 결과를 볼 수 없어도 꾸준히 쌓아가야 하는 일. 남들의 속도에 비교하지 않고 조금씩, 어제의 나보다 진짜 조금이나마 나아지는 일. 이렇게 뛰다보면 1년 후의 나는 10km도 뛸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