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보건학 석사일기 2: 런던 적응

나를, 세상을 보는 시각을 바꾸기

by 무하

3. 전환점


그 힘들었던 시기에서 그 순간들도 어찌어찌 조금씩 풀려갔다. 가장 큰 변곡점은 대학원 생활에 대한 나의 시각 변화이다.


어느 저녁, 짝꿍이랑 현재 공부 문제에 대해 얘기했다. 짝꿍은 이렇게 말했다.

“대학원 과정은 처음으로 연구를 하고 학문의 길을 열어나가는 과정이야. 대학처럼 수업을 다 소화하는 것만이 목표가 아니야. 어쩌면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게 더 중요할 수도 있어.”

그리고 챗 지피티에 “석사란 무엇일까?”를 쳐보라고 했다.

챗지피티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석사(Master’s degree)”는 단순히 “학위 하나 더 따는 것”이 아니라, 어떤 분야를 깊이 탐구하고 ‘전문가로서의 사고방식’을 배우는 과정이야.

조금 나눠보면:


1. 학문적 의미:

학사 때는 넓게 배우고, 석사는 “깊이”를 배워.

“지식을 소비하는 사람”에서 “지식을 생산하거나 응용하는 사람”으로 넘어가는 단계야.

그래서 논문이나 프로젝트를 통해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는 힘을 기르는 게 핵심이지.

2. 직업적 의미:

어떤 분야에 “전문가로 인정받는 최소 단위”로 여겨지기도 해.

연구, 정책, 디자인, 상담, 엔지니어링 등등 — 실무에서 더 높은 수준의 판단이나 분석을 기대할 수 있다는 신호야.

3. 개인적 의미

단순히 공부를 더 한다는 것 이상으로, “내가 이 분야에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를 탐색하는 시기이기도 해.

어떤 사람에게는 인생 방향을 다듬는 전환점이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한 분야에 몰입해 자신을 성장시키는 실험실이 되기도 하지.



지금까지 대학 공부에만 익숙했던 나에게 석사는 또 다른 전환점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습 내용에만 너무 집중하지 말고 비판적 시각을 길러야겠다는, 시야 확장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크게 깨달은 점이 하나 있었다. 이전까지는 내가 들인 비용과 시간을 만회해야 하니 무조건, 무엇이든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는데, 지금의 이 시간이 과거의 내가 준 선물이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 이 시간들은 이전의 내가 열심히 일하며 돈을 모았고, 이곳에 오기로 하고, 포기하지 않고 영어공부를 한 내가 현재의 나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무엇이든 뛰어나야 한다는 압박감 대신 선물 받은 이 시간을 즐기기로 했다. 지금을 있는 그대로, 재밌게 지내고, 더불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겠다. 그 후 오히려 학교생활이 편해졌다. 물론 시간이 지나며 학교에 적응하고, 공부 방법을 터득하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좀 더 두터워진 것도 있지만, 마음이 편하니 이것들이 더 잘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친구관계는, 그냥 친구들 어울려 다니는 모임에 열심히 껴서 다녔다. 타코를 같이 먹은 것을 계기로 나에게도 그룹이 생기고, 자연스럽게 같이 어울릴 친구들이 많이 생겼다. 또한 학생임원을 도전하면서 여러 학생들에게 나를 알리고 캠페인을 했는데, 이것도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다. 연인관계의 경우, 같이 브라이튼으로 1일 투어를 신청해 갔던 게 도움이 되었다. 넓은 자연을 바라보며 서로 힘들었던 점을 얘기했고, 그렇게 쌓여있던 불만과 오해를 털어냈다.


4. 학생임원 도전, 그리고 성공


개강 전부터 꼭 하고 싶었던 게 있다. 바로 학생임원 도전이다. LSHTM의 학생회는 회장과 여러 분야 (Finance & Operation 재정 및 운영, Welfare & EDI 복지 및 평등/다양성/포용, 다양성, 포용성, Activities & Communication 행사 및 소통, Taught Degree 대학원 대면 교육 과정, Doctoral Degree 박사 과정, Distance Learning 원격 교육)의 부회장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늘 관심사였고 비슷한 활동을 해온 Welfare & EDI 부회장을 하고 싶어 출마선언문을 작성해 신청서를 넣었다.

후보 페이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다른 회장/부회장 직책들은 후보가 2~6명이었는데 Welfare & EDI 부회장 후보는 12명이었다.


마음이 급해졌다. 출마선언문부터 전체 공개되지만 짧았기 때문에 내 정보와 공약을 발전시킨 노션 사이트와 이를 QR로 담은 포스터를 만들었다. 수많은 후보들 중 눈에 띄기 위해 주말에 9시간가량 작업을 했고, 영어권 메신저인 왓츠앱 그룹채팅방에 올렸다. 주말이 지난 후 포스터를 출력해 허가된 곳에 붙이고, 점심 저녁시간 모두 학교 식당/카페에서 학생들에게 선거유세를 했다. 다행히 대부분의 학생들이 좋은 반응을 해줬다. 심지어 학교 수업 후 나가서 2분 선거발언도 했다.

엄청나게 떨려 중간에 심호흡도 했지만, 그 발언으로 나를 투표해 줬다고 말한 학생들도 여럿 있었다. 일주일의 선거 유세 기간 동안 정말 열심히 지냈는데, 막바지에는 살짝 번아웃이 오기도 했다. 선거 결과는 당선이었다. 보는 순간 엄청 기뻤고, 책임감도 느꼈다. 많은 친구들이 축하해 줬다.


5. 그리고 지금


나름 재미있게 학교생활을 보내고 있다. 수업 때 모든 것을 다 흡수해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읽고 생각하려 노력하고, 그룹 세미나 때는 어설프더라도 내 생각을 많이 얘기한다. 유독 기억에 남는 것은 국경 없는 의사회 사진전이었다. 아래는 인스타에 남긴 글이다.



어제는 혼자 런던을 돌아다녔다. 학교에서 템즈강을 건너 OXO gallary에 MSF(국경 없는 의사회) 전시를 갔다.

MSF는 세계의 전쟁/내전 지역, 재난 지역 폭넓게 사람들을 구하고 있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사진으로 현장을 보니 뭔가 말할 수 없는 감정, 가슴이 아리면서도 동시에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세계에 많은 아픔이 있고, 동시에 희망이 있음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MSF 활동 사진뿐만 아니라 MSF와 함께한 환자들의 이야기도 볼 수 있었다.

환자 한 명 한 명 사진, 그리고 이들이 그린 그림과 폴라로이드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수단 등에서 화상, 폭발 피해 등 피해를 입었으며, MSF의 환자로,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하게 한 명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았다.

감사했다. 생존자, 살아가는 이들이 자신의 모습을 보여줘서, MSF 가 ‘국경을 넘어서’ 사람들을 치료하는 모습에 감동받았다.

인상 깊었던 점은 전시장에 참여공간이 있었는데, MSF 전시에 대한 소감이 아니라 환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써서 벽에 붙이는 것이었다.

나도 적었다. I see pain, I tear. I see hope, I smile. Rooting for you.

자신의 작품을 그리고, 사진을 꾸민 이들 생존자들에게 덧붙였다.

Believe your power, believe your imagination, believe you.

전시를 보고 다시 템즈강을 건넜다. 내 세계는 조금 더 넓어져 있었다. 수많은 불의와 아픔과 사랑이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게 실감이 났다.

이 거대한 세상에서, 너무 작은 것에 연연하지 말아야겠다. 더 많이 행동하고, 더 많이 사람들을 아끼고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부하고 엽서를 받았다. 펀딩에 후원해 준 사람들에게 보낼 엽서를 계속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게 가장 의미 있을 것 같다. 돌아가면 돈 벌면 기부를 더 많이 할 생각이다.


런던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들을 하며, 남들과 나를 비교할 필요가 없겠다 생각했다. 세상에는 너무나 다양한 사람과 상황들이 있고, 그렇기에 나는 그냥 내 길을 만들어가며 살아가면 되지 않을까 한다. 이 시간이 하나의 큰 여행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여행이 끝나고 나는 또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하나 확실한 것은 이전의 나와는 조금 다른 사람일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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