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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하 Jun 30. 2024

제법 작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기

책을 좋아한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누가 강요한 적은 없다. 어머니께서는 내가 초등학교 1학년부터 렌즈가 두꺼운 안경을 끼게 된 것이 어두운 곳에서 책을 봐서라고 하셨다. 어렴풋 빨래가 빼곡하게 널린 건조대가 만든 그림자 아래 들어가 책을 본 기억이 있다. 섬유유연제 향기를 킁킁대며 동굴 입구를 비추는 빛에 의존해 책을 보던 아이는 방의 불은 끄고 책만 비추는 스탠드를 켠 채로 독서를 하거나 글을 쓰는 어른이 되었다. 라섹을 했고 의자에 앉아 있다는 점은 다르지만.


교복을 입던 시절에는 일주일에 한 번 서점에 방문해 각 분야 베스트셀러가 무엇인지 요즘 새로 나온 책은 어떤 책인지를 직접 구경했다. 그리고 몇 권을 골라 앉아서 읽다가 문제지만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지금은 출판사, 작은 서점, 작가의 SNS가 소개하는 신간, 좋은 책에 대한 이야기를 작은 화면에서 간접 구경하고, 구독하는 유튜브 채널이나 팟캐스트에서 추천하는 책을 사거나 빌려 읽는다. 완독 하지 못하고 소장만 한 책들을 알라딘에 팔거나 국립중앙도서관에 몇 상자씩 기부하면서도, 책 사는 일을 멈추지 못한다. 그러니 애독가라기에는 양심에 걸리고, 애서가라는 소개가 적절하다.


책을 좋아하는 마음은 작가에 대한 흠모가 되었다. 일본드라마 ‘중쇄를 찍자’, 민음사 유튜브 채널 등을 보면서 저자명과 활자 뒤에 감춰진 존재를 알게 되었다. 자연스레 편집자나 마케터를 포함 한 권의 책이 세상에 나오게 하는 데 역할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동경이 들었다. 이들이 저자가 되기도 했다. 어떤 직업을 갖더라도 책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은 ‘나도 언젠가 내 책을 써야지.’라는 꿈을 품은 채 살게 했다. 작가는 내 생애주기 중 언젠가 도달할 직업이었다.


2022년, 브런치에 작가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다시 이어진 대학 동기와의 해방촌 탐방 이후 감상을 일기처럼 썼다. 누군가 찾아 읽지 않더라도 모두에 공개된다는 사실에 단어를 고르고 여러 번 읽으며 수정하는 일이 필요했는데, 그게 즐거웠다. ‘작가’라 불러주는 것도 좋았다.

2023년, 상반기에 책을 쓰고자 하는 교사 연구회에 가입했다. 교직 에세이 쓰기 소모임이 꾸려져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쓰기 시작했다. 하반기에 에세이툰 그리기 수업과 소설 쓰기 수업에 참여했다. 에세이툰을 꾸준히 그리는 데는 실패했지만 소설 쓰기라는 새로운 취미는 2024년이 되어서도 이어졌다.

2024년, 꾸준히 소설 쓰기 수업에 참여하며 문우들이 생겼다. 선생님 지도 아래 매주 한 편의 짧은 소설을 쓰고, 문우가 쓴 소설을 읽으며 합평하는 과정은 서로를 성장시켰다.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는 에세이 쓰기가 전보다 어렵게 느껴졌지만 그만큼 조금은 더 진중한 마음으로 쓰게 된 것 같다.


책을 구매하고 소비만 하던 수요의 영역에서, 나의 글을 쓰는 생산의 영역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동굴 밖으로의 첫발을 내딛는 일에 특별한 근력이 필요하지 않았다. 해보지 않은 일을 일단 해보는 약간의 용기만 필요했다. 지금도 동굴은 아늑하고 포근하다. 하지만 동굴 밖 세상에서도 살 수 있고, 동굴에 들어갔다 밖으로 나오는 것은 내 자유라는 사실이 삶의 희망이자 활력이다.


일요일 아침, 글친구들을 만나러 가기 전 브런치를 쓰는 고요한 이 시간도 제법 작가 같아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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