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일하다 입이 돌아갔던 시절이 나를 버티게 했다
밤새 일하다 입이 돌아간 적이 있다.
과장이 아니다. 피로가 누적돼 얼굴 한쪽이 말을 듣지 않았다.
병원에 가서야 알았다. 과로였다.
그게 내 20대였다.
나는 79년생이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영포티라 불리지만,
내 20대는 지금의 언어로는 설명이 잘 되지 않는다.
회사 안에서 살았고, 회사 안에서 자랐고,
회사 안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소모했다.
못한다고 욕을 먹었다.
정확히 말하면, “못한다”는 말보다
“왜 이것밖에 못 하냐”는 말이 더 많았다.
그래도 다음 날 또 출근했다.
대단한 각오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요즘 젊은 세대를 보면 이해가 간다.
워라벨이 중요하다는 말은 틀리지 않다.
세상은 분명 바뀌었고,
굳이 몸을 갈아 넣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길도 많아졌다.
편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일찍 찾아오는 것도 자연스럽다.
다만 한 가지는 꼭 말하고 싶다.
너무 이른 나이에
‘고생하지 않는 삶’을 목표로 삼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고생은 미화의 대상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권장할 만한 삶의 방식도 아니다.
하지만 고생을 통째로 회피해버리면
배움도, 기준도, 버티는 힘도 함께 사라진다.
그 시절의 피곤함,
그 시절의 욕설,
그 시절의 무시와 구박은
내 자존감을 깎아내리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멘탈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이걸 근성 자랑으로 들을 필요는 없다.
이건 자랑이 아니라 기록이다.
내가 미련했던 시절에 남긴 흔적에 가깝다.
나는 똑똑해서 버틴 사람이 아니다.
효율적으로 움직였던 것도 아니다.
그저 그때의 나는 한 방향으로만 밀어붙였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이상하게도 내가 하고 싶어서 그렇게 살았다.
돌이켜보면 분명 더 나은 선택지도 있었을 것이다.
덜 다치고, 덜 상처받고,
조금 더 요령 있게 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요령보다 집요함을 택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미련함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사람은 머리로만 버티지 않는다.
결국 남는 건 멘탈이고,
멘탈은 책이나 강의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반복되는 실패, 견디기 어려운 시간,
그리고 도망치고 싶었던 순간들이
조금씩 사람을 단단하게 만든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조언을 해야 할 때,
나는 화려한 전략이나 빠른 성공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대신 아주 단순한 말을 한다.
계속 움직여라.
깨지고, 부딪혀라.
아프지 않으면 근육은 붙지 않는다.
일도 그렇고, 인생도 그렇다.
저항이 없는 방향으로만 가면
몸은 편할지 몰라도
생각과 기준은 자라지 않는다.
물론 무작정 버티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부서지면서까지 참으라는 말도 아니다.
다만 멈추는 이유가
오직 ‘힘들다’ 하나뿐이라면,
그 선택은 한 번쯤 다시 생각해봐도 좋다.
멈추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움직일 때만 사람은 자기 자신을 넘어선다.
그리고 그 넘어선 자리에서야
비로소 인생의 선택권이 생긴다.
p.s
이 글은 네 번째 기록이다.
앞선 글들과 마찬가지로
정답을 말하려는 의도는 없다.
다만 반복해서 확인하고 싶은 질문은 있다.
우리는 정말로
자기 삶의 선택권을 가지고 있는가.
앞으로의 글에서도
나는 같은 질문을 다른 각도에서 꺼낼 것이다.
답을 주기보다,
기준을 세우는 쪽에 가까운 글로.
편해지기 전에, 한 번쯤은 끝까지 몰아붙여본 사람이 결국 자기 기준을 갖는다.
- 무스타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