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들의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다

회사라는 밀실에서 살아남는 가장 고급스러운 마인드 컨트롤

by 무히바




밀실의 관객: 소음의 궤도를 이탈하여 나만의 중력을 만드는 법


어느 조직에나 공기처럼 떠도는 질문이 있다. "어디 줄이야?", "그 소식 들었어?", "누가 실세래?"


사람들은 이것을 '사내 정치'라고 부르며 생존을 위한 필수 덕목이라 여긴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게임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이것은 회피나 고립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영리하고 우아한 방식의 '위치 선정'에 가깝다.

Gemini_Generated_Image_z3l0vzz3l0vzz3l0-Photoroom.png




1. 2차원의 평면에서 벌어지는 사다리 게임


조직 내 정치에 몰두하는 이들은 늘 같은 평면 위에서 움직인다. 그들의 시선은 오직 사다리의 다음 칸, 혹은 옆 칸에 서 있는 경쟁자에게만 고정되어 있다.


"누가 더 높은 곳에 있는가?" "누가 더 많은 정보를 쥐고 있는가?"


그들은 사다리가 어디에 기대어 있는지, 그 사다리 아래의 지반이 얼마나 흔들리고 있는지는 보지 못한다. 평면적인 경쟁에 매몰되는 순간, 인간의 시야는 좁아지고 사고는 단조로워진다. 나는 그 계산표에서 스스로 이름을 지웠다.



2. 결핍이 만든 소음, 구조가 만든 정적


정치는 대개 '생계의 불안'이라는 비옥한 토양에서 자라난다. 월급이라는 단일한 수입원, 그 생명줄을 쥐고 있는 타인의 평가. 이 결핍과 공포가 사람들을 과잉 반응하게 만든다.


하지만 내 좌표계는 이미 다른 차원에 설정되어 있다. 자산의 구조화, 즉 인간의 의지가 아닌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흐름(Flow)을 구축한 이에게 회사의 소음은 '배경음'일 뿐이다.


현금흐름이라는 단단한 지반 위에 서면, 타인의 감정이나 단기적인 풍문에 휘둘릴 이유가 사라진다. 내 삶의 중심은 사무실 책상이 아니라, 내가 구축한 시스템의 궤도 위에 있기 때문이다.

Whisk_391464c7d74fd66b9d34834addb66076dr.jpeg 월급 하나뿐이면 어쩔 수 없다. 정치질이라도 해야 밥이 나온다. 자유는 늘, 현금흐름에서 시작된다.




3. 무대 위의 배우, 극장 안의 관객


오컬트적 관점에서 세계는 실재가 아니라 '현상(Phenomenon)'의 투사다. 각자의 욕망과 결핍이 빚어낸 거대한 연극이다.


회사는 인간의 욕망이 가장 노골적으로 응축된 무대다. 사람들은 저마다 '페르소나(가면)'를 쓰고 무대 위로 올라간다.


의미 없는 표정 관리로 장면을 장악하려 하고,

정보라는 소품으로 권력을 연기하며,

겉과 속이 다른 대사로 관객의 박수를 갈구한다.


나는 그 연극을 본다. 그러나 무대에 오르지는 않는다.


giphy (1).gif


관객이 된다는 것은 냉소가 아니라 '분리 능력'이다. 감정과 사건을 분리하고, 사람과 구조를 분리하는 힘. 무대 위의 배우는 장면이 바뀌면 배역과 함께 소멸하지만, 관객은 남는다. 관객은 전체 패턴을 읽고, 다음 막이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한다. 현실은 언제나 연기에 취한 배우가 아니라, 냉정한 관객의 편을 들어왔다.




4. 수비학으로 본 의식의 위치: 6, 7 그리고 9


숫자는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의식의 상태를 상징한다.


숫자 6의 늪 (배우의 자리): 관계, 소속, 인정에 집착하는 상태다. "누구와 한 편인가"를 고민하며 타인의 온도에 내 기분을 맡긴다. 헌신이라는 미명 아래 의존을 선택한 자들의 숫자다.


숫자 7의 고립 (관객의 자리): 거리두기와 분석의 숫자다. 사건 한가운데로 뛰어드는 대신, 한 발 물러나 판의 에너지가 어디로 흐르는지 관찰한다. 이들은 싸움에 참여하지 않고, 싸움이 끝난 뒤 남겨진 전리품을 취한다.


숫자 9의 초월 (완성의 자리): 게임판 자체에서 내려오는 단계다. 회사가 내 인생의 중심이 아님을 완전히 체득한 상태. 출근하지만 삶을 걸지 않고, 일을 하지만 정체성을 저당 잡히지 않는다.


나는 7의 자리에 서서 9의 상태를 지향한다. 플레이하지 않음으로써 얻는 완벽한 자유다.

Gemini_Generated_Image_o2haf8o2haf8o2ha-Photoroom.png



5. 말은 에너지다: 정신적 위생 관리


뒷말과 소문에는 발신자의 에너지가 실린다. 누군가를 헐뜯는 에너지는 반드시 그 자신을 먼저 부식시킨다. 나는 누군가의 이름이 험하게 오르내리는 순간, 조용히 그 공간의 공기에서 나를 분리한다.

이것은 도덕적인 결벽증이 아니라, 철저한 '에너지 관리'다. 내 에너지는 타인을 깎아내리는 소모전이 아니라, 내 궤도를 더 견고히 만드는 축적의 시간에 쓰여야 한다.



6. 결국 남는 것은 '궤도'다


진정한 강자는 싸우지 않는다. 싸움의 규칙 자체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 구차하게 변명하지 않으며, 감정의 낚싯바늘에 반응하지 않는다. 오직 결과로 증명하고 기록으로 남긴 뒤, 제시간에 집으로 향한다.


회사 생활이 길어질수록 사람들의 차이는 능력이 아니라 '궤도'에서 갈린다. 누군가는 옆 사람을 밀치며 수평 이동을 반복할 때, 누군가는 조용히 자기 중력을 쌓아 수직으로 솟구친다.


나는 오늘도 출근한다. 성실히 내 몫의 일을 수행한다. 하지만 그들의 정치가 만드는 소음 속으로는 단 한 발자국도 들이지 않는다.


나는 내 궤도 위에서 산다. 관객은 오래 남고, 세상은 결국 오래 남는 자의 것이다.

ChatGPT Image 2026년 1월 8일 오후 05_14_41.png






회사의 소음에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관심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이미 그들과는 다른 궤도, 더 높은 차원의 중력권에 진입했다는 가장 우아한 증거입니다.
- 무스타파


다운로드.png 오 무스타파여! 그분에게 평화가 깃들기를


작가의 이전글멈추지 않았던 시간들이 기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