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침대와 맞바꾼 것들
친구 만조가 다음 달이면 결혼을 한다. 서른을 앞둔 친구들 중 만조는 가장 먼저 청첩장을 내밀었다. 사실 그녀는 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한 사람과 연애했기 때문에 놀랍지 않았다. 오히려 암묵적으로 '슬슬 둘이 결혼할 때가 된 것 같은데'라는 분위기에 가까웠다. 가끔씩 다른 동창들을 만나다 보면 이야깃거리가 다 떨어진 나머지 잘 알지도 못하는 건너 건너 주변인들의 안부까지 이르곤 하는데 그럴 때면 동창들은 "만조는 결혼한대?"라고 물었다. 그만큼 만조의 결혼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때문에 당황스럽거나 슬프거나 하는 감정을 일렁이지 않았고 다만 듬뿍 축하하고 싶었다. 다음 달 결혼식에서 나는 그녀의 축사를 맡기로 했다.
그리하여 주말에 공식 청청장을 받고 왔다.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들이 한자리에 모인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얼마 전 퇴사를 해서 한가로운 백수가 됐지만 그 사실을 굳이 먼저 발설하지는 않았다. 다행히 독일로 유학을 준비하는 친구가 있어, 그녀의 유학 계획에 자연스럽게 포커스가 맞춰졌다. 삼각지역의 멕시코 음식을 파는 식당에서 식사를 한 뒤 일어났다. 다음 일정은 하룻밤을 새기로 한 숙소에 가는 것이었다. 파노라마처럼 남산 경치를 볼 수 있는 루프탑이었다. 그런데 정확히 말하면 '숙소'라는 표현은 적합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침구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 침대는 없대. 어차피 밤샐 거니까 괜찮지?
하고 예약을 진행한 친구는 실행력이 빠른 녀석이라, 서둘러 침대와 소파가 있는 숙소를 보내는 건 소용없는 일이었다. 솔직히 나는 침구가 없다는 말에 잔뜩 겁을 먹었다. 아직 열렬히 청춘을 외치긴 하지만 최근 들어 허리가 자주 몹시 아팠다. 콕콕 찌르는 통증이 심할 때면 이젠 진짜 병원을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결심과 달리 발걸음은 침대가 없는 루프탑 숙소로 향하고 있었지만.
옥상까지 올라가는 계단이 가팔랐다. 나와 친구는 만조(외 3명)보다 먼저 숙소에 도착해서 케이크를 준비할 작전이었다. 다른 친구에게 최대한 천천히 오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옥상 문을 열었을 때 두 가지 감정이 들었다. 첫 번째는 한눈에 펼쳐지는 남산 전경에 대한 감탄이었고, 두 번째는 전경을 빼면 다소 성의 없는 숙소가 아닌가 하는 냉소였다. 실제로 루프탑 한쪽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매트리스가 하나 있었는데 저길 누가 앉나 싶도록 해져 있었다. 우리가 오늘 밤새 있을 방은 원룸보다 작았고 소파조차 없었다. 그러니까 이곳은 오로지... 루프탑, 야경, 남산뷰로 이루어진 <분위기> 하나에 몰빵한 곳이었다. 우리도 그걸 충분히 숙지하고 예약한 사람들이었고.
이윽고 만조와 아이들이 도착했다. 생화가 꽂혀 있는 케이크와 풍선을 든 만조는 금세 우리의 웨딩 모델이 됐다. 어차피 사진 찍기 좋아서 온 공간이니만큼 쉴 새 없이 카메라 버튼을 눌렀다. 어두워진 남산 야경을 배경으로 질릴 때까지 사진을 찍었다. 모든 스팟에서 촬영을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나는 만조를 찍는 아이들을 캠코더에 담았다.
밤이 되자 슬슬 추워졌다. 우리는 좁은 방 안으로 들어갔다. 다른 친구가 가져온 보드게임을 하며 치킨과 떡볶이를 시켰다. 옥탑 문틈 사이로 모기가 계속 들어왔다. 친구들과 떠들다가 모기를 잡다가 맥주를 마시다가 모기를 잡았다. 나중에는 감성적인 우드 테이블도 치운 다음에 본격적으로 보드게임을 했다. 워낙 다들 목소리가 큰 탓에 방 안은 높은 데시벨로 진동했다. 그 모습을 보니까, 여기 혹시 대학교 엠티? 싶었다.
친구가 가져온 빔 프로젝트를 꺼냈다. 당연히 휴대용일 줄 알았는데 딱 봐도 묵직한 무게에 모두 웃었다. 이걸 들고 왔다고? 야, 들고 오느라 힘들었어. 우리는 신중하게 영화를 골랐다. 취향이 모두 달라서 꽤 시간이 오래 걸렸다. 결과적으로는 내가 주변에서 많이 추천받았다고 강력히 주장하여 <레이디스 나잇>을 틀었다. 여자 친구들과 보기에 탁월한 작품이었다. 모두 깔깔거리며 영화에 몰입했다. 다행히 누구도 잠들지 않았다.
어느새 루프탑 조명도 꺼졌다. 영화가 끝나니까 졸음이 밀려왔다.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애매한 새벽 두 시였다. 누군가 아무 영화나 이어서 재생했다. 딱딱한 바닥에 하나둘 몸을 눕혔다. 이불 하나 없는 좁은 방안에 우리는 등을 구부리고 웅크렸다. 이제는 일교차가 큰 가을이라 밤이 되자 한기가 느껴졌다. 나름 웨딩 파티인데 이렇게 불쌍해 보일 수 있나. 담요와 방석에 기대어 눈을 붙이기로 했다. 서울에 자취하는 나는 이른 시각 운행하는 지하철 첫차를 타면 됐지만 다른 친구들은 여섯 시 출발인 좌석 버스를 타야 했다. 다음 달 새 신부가 되는 만조는 후드 모자를 뒤집어쓰고 테이블 밑에서 잠들었다. 다음 달 부케를 받는 친구는 모기에 두 방 물린 채 천장을 바라보며 잤다. 다음 달 축사를 하는 나는 담요를 칭칭 감고 잤다.
몇 시간 뒤 여섯 시 정각이 되자마자 알람이 울렸다. 집에 가자. 누군가 말했고 우리는 벌떡 일어났다. 발 빠르게 정리를 하고 나갈 준비를 했다. 어스름한 새벽 공기를 마시며 걸었다. 유난히 안개가 잔뜩 낀 하늘이었다. 죽을 듯이 피곤했다. 전날 과하게 소리치고 떠든 탓에 목도 아팠다. 감기에 걸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가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싶었다. 포근한 침대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그런데도 웃음이 실실 나왔다. 너무 오랜만이었다. 이렇게 죽을 것처럼 피곤한 새벽은. 이렇게 찌든 상태로 들이마시는 새벽 공기는. 대학생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나는 지하철을 타러 개찰구로 들어갔고 친구들은 버스를 타러 떠났다.
비록 온몸이 아파서 다음날 통째로 휴식을 취해야 했지만, 주말 하루를 내내 잠만 자야 했지만, 우리가 침대와 맞바꾼 건 분명 기억에 남을 어떤 것이었다. 우리가 우리 방식대로 보낸 브라이덜 샤워. 전혀 예상하지 못한 하루를 보낸 뒤 함께 마신 공기는 분명 향수를 일으켰으며 앞으로 또다시 회자되겠지. 이제는 좀처럼 만나고 싶어도 만나기 힘든 어떤 장면의 일부를, 그날 우연히 만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