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과 구원 일기 (1)

푹 익힌 토마토 스파게티

by 힌무


그리스의 유명 영화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 작품은 기묘한 에너지가 발광한다. <더 랍스터>(2015)로 그를 처음 접했을 때는 피부에 닿는 서늘한 감각이 충격적일 만큼 끝내줬다. 사실 당시 이십 대 초반이었던 나는 영화의 결말을 멋대로 로맨틱하게 해석했던 것 같다. 다시 보니 좀 더 냉소적으로 결말을 생각하게 됐는데, 문득 떠올려 보니 란티모스를 좋아한다고 말하기에는 본 작품이 겨우 두 개뿐이었다. 올리비아 콜맨에게 영예를 안겨준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2019)를 보고 나서 세 번째로 본 작품이 <킬링 디어>(2017)였다. 여전히 그리스에 대해서 궁금증을 유발하는 그가 굉장히 흥미롭지만 잘 안다고 말하기는 곤란하다. 저는 요르고스 란티모스를 좋아하고요, 본 작품은 세 개입니다. 당연히 그가 만든 작품은 3개일 리 없고 상당히 많다.



앞서 언급한 작품 중 전자에 해당하는 두 작품들은 특정 장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떠오른다. 사실 작품을 본 사람들은 너무 잘 알겠지만, 영화 하나를 보더라도 미술 요소나 카메라 구도 등 감독의 개성이 한눈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킬링디어>는 전자에 비해 훨씬 더 심리적인 자극을 많이 받았는데, 그래서인지 가장 먼저 생각나는 단 하나의 장면이 명확하게 있다. 예상했듯이, 극 중 마틴이 스파게티를 먹는 장면이며 작품에서 ‘스파게티'는 중요한 은유로 쓰인다. 그건 나에게도 다른 의미에서 마찬가지다.


아마 정확히 맞물린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이전까지 파스타를 먹는다면 언제나 크림 쪽을 택했다. 꾸덕하고 하얀 크림소스가 입 안에 퍼지는 맛이 즐거웠다. 토마토 스파게티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가족과 돈가스, 피자를 먹으러 가면 종종 곁들여 먹었기 때문인지 특별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오히려 촌스러운 이미지가 은은하게 묻어났다. 크림 파스타는 뷔페나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 방문하면서 먹기 시작했고 같은 요리의 소스만 다를 뿐인데도 어른의 음식이라고 여겨졌다. 그런데 꾸덕 크림 파스타파인 내가 <킬링디어>를 본 다음부터 토마토 파스타가 먹고 싶어진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요리를 해본 경험이 몇 번 없었다. 자취를 하기 전에 아주 이따금씩 시판 소스를 사서 파스타를 만들어본 적은 있다. 번번이 맛이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요리의 문제가 아니라 재료의 문제라고 오만했다. 역시 음식은 사 먹어야 한다는 식으로. 운 좋게도 나는 대학교 때 같이 살던 룸메이트와 또다시 동거를 하게 됐는데, 룸메이트는 파스타를 잘 만들었고 자주 만들어 먹었다. 기어코 그녀에게 파스타 조리법 강습을 받기로 했다. 그 과정은 간단해 보였지만 동시에 체계적이었다. 그녀 나름대로 철학이 있었으므로 나는 맹연습을 통해 완벽한 파스타 요리를 습득했다. 돈 없는 백수에게 파스타는 소스와 면만 있으면 간단히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음식이었다.


다만 뭔가 하나가 아주 희미하게 아쉬웠다. 몇 번 시도 끝에 그것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바로 면을 삶는 시간이었다. 더 오래 면을 끓이기 시작했고 11분 정도 끓였을 때 내가 원하던 그 식감이 구현됐다. 심이 단단한 알덴테와 달리 푹 삶은 면발은 통통하며 포만감이 상당했다. 내가 찾던 그 맛! 파스타보다는 스파게티가 더 어울리는 식감! 어떤 소스보다도 토마토소스와 궁합이 좋은 맛! 이게 이렇게 맛있을 일인가?


집에서 혼자 식사를 할 때면 20분가량 유튜브 콘텐츠를 시청하는 게 습관이다. 몇 시간 전에도 입 안을 가득 채우는 토마토 스파게티를 먹었고 꽤 행복했다. 이왕 아끼는 접시에 담고 파슬리까지 뿌려서 나에게 대접하면 기분이 더 좋다는 것을 룸메이트에게 배웠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 단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혼자 먹는 것이므로 <킬링디어> 속 마틴처럼 우걱우걱 면을 씹고 삼켰다. 며칠 전 룸메이트에게 면 삶기에 대한 깨달음을 말했더니 그녀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냈다. 나는 꿋꿋이 이어갔다.


“흥, 오히려 이렇게 통통한 스파게티는 요즘 식당에서도 먹기 힘들지.”

“아무래도 젊은 사람들이 안 먹으니까 그렇지.”

“뭐라고!”


이러나저러나 나는 조금 촌스러울지언정 푹 삶은 토마토 스파게티를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만들어 먹는 요즘이다. 뭔가에 꽂히면 질릴 때까지 반복하는 식습관이 두 달 넘게 진행 중이다. 푹 익힌 토마토 스파게티는 자본주의에서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살아가는 청년 어쩌구를 은유하는 게 아닐까? 종종 잊고 있지만 내가 정체되어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 나를 즉각적으로 구원해 주는 건 언제나 음식이었다. 아무리 많은 잠을 자도, 아무리 많은 슬픔이 찾아와도, 불안과 고통이 밀려와도 식사는 거르지 않는다. 그렇기에 내가 가라앉거나 잠식되더라도 뭘 먹어야 할지에 대한 질문은 나를 일으켜 세운다. 아무튼 덕분에 요즘 끼니 걱정이 줄었다. 찬장에 ‘구운 마늘과 토마토소스'와 파스타면, 마늘만 있으면 식사를 해결할 수 있고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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