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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재주 Aug 16. 2024

사랑이 준 변화

행복한 직업 가지기

나는 자존감이 무척 낮은 사람이었다. 언제나 타인을 우선으로 배려하고 착한 아이가 되려고 노력했다. 한 번은 이런 내가 답답해 전문가에게 심리상담을 받은 적이 있었다. 상담자는 나에게 착한 아이 증후군을 가진 어른아이라고 표현했다. 처음에는 충격이었다. 상담자를 더 이상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날 이후로 상담을 받지 않았다. 상담자는 나에게 주기적으로 연락을 했다. 그러나 모든 문구가 형식적으로 느껴졌다. 누군가에게는 정말 좋은 상담자일 수 있겠지만 나와는 맞지 않았다. 나는 꽤 오래 심리적 방황을 겪었다. 물론 지금도 부단히 노력하며 정신 건강을 지키려고 하지만 과거에는 더더욱 깨끗하고 맑은 정신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퇴사 후 그림쟁이가 되기로 결심하고 10개월이 흘렀다. 그럴싸한 성과는 없지만 나름의 그림쟁이로서의 인생을 만들어가고 있다. 나는 이전과 다르게 무척 행복하다. 돈 있는 사람이 하는 게 예술이라는데 나는 돈 대신 빚이 있다. 빚쟁이 인생이지만 나는 꿈을 그리고 싶다. 그림을 그릴 때는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 요소를 선택하고 여러 색 조합을 해보면서 흰 도화지를 천천히 채워나가는 그 과정이 재미있다. 물론 누군가는 이런 내 모습을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이상 속에서 살아가는 철없는 인간으로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나로서는 삶을 지키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다.


회사를 다니고 어른으로서의 책임과 일이 늘어나면서 나는 내 삶 속에 숨겨져 있었던 많은 진실과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마주했던 그 진실과 사실은 내 맘 속에 거대한 못처럼 박혀있다. 물론 겉으로 티를 내지는 않는다. 슬픈 마음이 들 때는 혼자 치유할 때 가장 나답게 극복해 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슬픔, 분노, 미움, 좌절, 질투 등 여러 부정적인 감정은 매 순간 나타나 나를 괴롭힐 때가 많다. 그래서 나는 나를 부정적이고 괴팍하고 예민한 인간으로 분류했고, 이런 내 모습을 타인에게 들키기 싫어서 매번 꾸며진 모습으로 생활했다. 그러다 우연히 다니던 회사에서 이혈테라피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귀지압패치를 귀에 붙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해주시던 선생님께서 어깨가 많이 경직되어 있다고 하면서 어깨를 나른히 눌러 주셨다. 그리고 조금 긴장을 풀고 사셔도 된다고, 어려워마시라고 하셨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저릿하다. 금방 눈 주변은 뜨거워졌고, 참고 참았던 눈물샘이 터졌다. 아니 폭발이 맞는 것 같다. 당시 회사 체육관에서 진행해서 오픈되어 있는 장소이기도 했고, 뒤로 몇 발자국만 걸어가면 회사 사람들이 테라피를 받기 위해 의자에 앉아 대기 중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다행히 당시 상황이 소란스러웠고, 대기 중인 회사 사람들은 본인들끼리의 담소를 나누느라 정신없는 상황이라서 내 눈물은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았다. 지압해 주시던 선생님도 비밀로 해드릴 테니 흘린 눈물 차분히 다 닦고 가시라고 다른 분들보다 시간 더 드리겠다고 따뜻하게 배려해 주셨다.


유리멘탈, 유리심장 나에게 어울리는 단어였다. 나는 얇은 유리막으로 감싸진 심장을 지니고 살았다. 그렇게 어렵사리 버텨나가던 중 지금의 연인을 만났다. 그이는 나와는 다른 사람이었다. 그이는 항상 밝고 당당했다.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중심으로 삶을 꾸려나가는 사람이었다. 처음 그와 함께했을 때는 본능적인 이끌림으로 만나게 되었다. 나로서는 자존감이 바닥이었던 상황이라서 연애를 꺼려하는 때였고 이미 몇 차례 소개팅을 실패하고 나니 자신감이 없기도 했다. 신기하게 만날 사람은 만나는 게 맞는지 연애를 두려워하던 내가 그에게만큼은 항상 오픈마인드였다. 퇴근 후 심신이 모두 지쳤을 때도 그이와 만나서 나누는 이야기가 즐거웠고, 헤어지기 싫었다. 그 또한 나와 헤어지기 싫은지 본인 집에서 왕복 2시간이 걸리는 나의 집까지 바래다주는 일을 반복했다. 이렇게 바라는 거 없이 다정한 행동을 건네는 이는 처음이었다. 다정한 그의 행동은 부정적이었던 나도 다정하게 변화시켰고 나는 그를 따라서 긍정적인 사고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와 3년째 사랑하고 있다. 3년 동안 보통의 연인들처럼 싸우고, 울고, 웃었다. 별거 아닌 일에도 티격태격하면서 서로를 탐색해 나갔고, 오랜 기간을 만난 연인들이 그러하듯이 우리도 서로가 서로에게 꼭 맞는 한벌의 정장 같은 존재가 되었다.


아직도 여전히 아이같은 면, 유리멘탈, 유리심장을 가지고 있지만 전보다 안정적이게 변한 나는 결혼을 그리고 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그와 함께하는 삶을 그리고 있다. 매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태산 같아서 우리는 매일밤 서로에게 사랑을 적극 표현한다. 유난히 고된 하루일 때는 맘 속에서 복잡하게 엉켜버린 검은 감정을 그에게 표출했다. 짜증나, 싫어, 미워 등 얄미운 단어만 골라서 생트집을 잡았다. 그렇게 못난 행동을 할 때면 그는 '어어~ 그랬어~ 아이구 이렇게 짜증이 났어~' 라며 마치 성난 강아지를 달래주듯이 나의 검은 감정을 차분히 받아줬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혼자 있는 시간은 자연스럽게 나를 돌아보고 반성하고 나의 성나고 낮은 자존감을 달래고 어루만지게 된다. 더 이상 혼자 일어나기 힘들 때쯤에 그를 만나서 나는 그와의 사랑으로 건강을 챙겼다. 그리고 지금은 그가 없이 일어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한다. 하나의 프로젝트처럼 말이다. 그래서 시작한 '행복한 직업 가지기'. 개인의 역사를 돌아봤을 때 나의 우울감 수치는 첫 직장을 가진 후 정점을 찍었다. 직업이 삶의 전부는 당연히 아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 직업은 행복을 재단할 수 있는 큰 수단이다. 그렇기에 나는 다니던 회사를 나와 새로운 직업에 도전하는 것이다. 원대한 꿈은 없다. 그저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 나는 그림을 그린다. 지금의 이 선택이 앞으로 어떤 미래를 가져다줄지 모르겠지만 나의 목표는 소박하다. 사랑, 건강, 가족, 그리고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나는 계속 그려나갈 것이다. 여기서 하나 바라는 것이 있다면 계속해서 꿈을 이어나갈 용기를 잃지 않기를 매 순간 열렬하게 소망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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