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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률사무소 무진 Nov 25. 2021

이혼할 때 재산분할에 관하여 흔히 하는 오해들


이혼, 재산분할에 관하여는 법률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도 주위에서 각자 알고 있는 '상식'이란 것으로 포장하여 한 마디씩 거들곤 합니다. 그리나 틀린 것들이 많습니다. 자칫 오해하면 이상한 결론에 이르게 되지요. 예를 들면 '가출한 지 10년이 넘으면 자동으로 이혼된다.'는 식입니다.


그리고 간혹 아는 척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잘 몰라서, 혹은 일부러 나쁜 마음을 먹고 이혼을 고려 중인 사람에게 잘못된 정보를 흘리기도 합니다. 스스로 진위를 확인하는 노력을 거쳐야 합니다.


* 본문 하단에 유튜브 영상의 링크가 있습니다. 본문과 유사한 내용이니 편하신 쪽으로 보시면 됩니다. 



1. 결혼 10년이면 재산분할 5:5다?


혼인기간이 10년, 20년처럼 길면 누가 돈을 어떻게 벌어왔는지 상관없이 전 재산을 반반씩 나눠가진다는 오해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오해는, 스스로 부부 공동의 재산 형성에 기여한 바가 적다고 불안해하는 당사자에게 '걱정 마세요. 돈 안 보탰어도 오래 살았으니까 많이 받을 수 있습니다'고 격려하여 사건을 수임하는 일부 변호사나 사무장들에게서 기인하기도 합니다.


매번 노력하지만 의뢰인에게 법리와 판례를 정확히 이해시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지나치게 단순화하여 오해의 소지를 남겨놓지 않도록 설명드립니다.


우선 돈을 안 보탰어도 가져갈 수 있다는 논리는 전업주부의 가사노동 가치를 잘 인정해주지 않았던 수십 년 전의 판례들이 바뀌면서 발전된 것입니다. 부부재산의 최초 '형성'뿐만 아니라 그 가치의 현상 '유지'에 기여한 바도 고려한다는 것이지요.


이는 지극히 타당한 논리입니다. 한 가정이 재정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온전히 성장하고 유지되기 위해서는 돈 버는 남편뿐 아니라 살림하는 아내의 기여도 필수적이지요. 4시간에 5만원 하는 가사도우미 비용을 생각하면, 당장 가사노동을 남에게 맡겼을 때 비용을 환산하는 것도 어렵지 않은 세상입니다.


다만 알아 두어야 할 것은 위와 같은 점은 재산분할비율을 정하는 데 고려하는 여러 요소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수십 년 전 아내를 빈털털이로 내쫓던 축출이혼이 가능하던 시기에 비해 가사노동·내조의 가치가 높이 인정된다는 뜻일 뿐이지, 혼인기간이 길기만 하면 무조건 50%를 가져갈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두 가지 예를 들어 봅니다.


<사례A>

부부는 20년 전 혼인했고, 집은 남자가, 혼수는 여자가 하는 관행대로 남편 부모는 전세금 1억 원을 보탰고, 아내의 부모는 혼수로 3,000만원 상당을 지원했습니다. 이후 남편은 회사를 다니며 꾸준히 월급을 벌어 아내에게 건넸고, 아내는 그 돈으로 알뜰살뜰 살림했습니다. 부부는 매월 꾸준히 저축해 모은 돈으로 3년 전 대출(3억)을 끼고 아파트를 6억에 분양받았고, 이제는 시세가 올라 10억짜리 아파트가 되었습니다.


<사례B>

마찬가지로 20년 전 혼인했고 아내는 가사를 전담했습니다. 남편 부모는 전세금 1억 원을, 아내 부모는 혼수 3,000만원을 부담했습니다. 남편은 공무원이라 안정된 직장이지만 아이들을 키우면서 저축할 정도로 여유는 없습니다. 결혼 초 1억(시부모 지원)으로 시작한 전세금이 계속 오르자 시부모는 그때마다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3억까지 오른 전세에 살다가 3년 전엔 기존 전세금에 대출 3억을 끼고 6억에 집을 샀는데 현재는 시세가 10억이 되었습니다. 또한 2년 전 남편이 형과 부모에게 돈을 빌려 상가를 하나 사 놓았는데, 시세가 두 배가 되어 최근에 팔아 원금을 갚고 차익으로 분양권을 하나 사 놓았습니다.


두 사례 모두에서 아내가 20년간 성실하게 전업주부로서 가족을 챙기며 살아온 것은 똑같습니다. 그리고 3년 전 구입한 아파트가 10억이 된 것도 같지요. 그 아파트를 발품 팔아 고른 것도 아내입니다.


하지만 제가 예상하는 재산분할비율은 두 사례에서 전혀 다릅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결혼때 돈 적게 보태고, 밖에서 돈 안 벌어와도, 세상이 달라져서 전업주부도 50%를 가져갈 수 있다'는 경우는 사례 A의 경우입니다.


사례 A에서 7억의 부부재산이 형성된 경위를 보면, 초기 남편쪽이 부담한 1억 원의 가치보다 두 부부가 공동으로 노력한 바가 훨씬 큽니다. 그렇다면 현재 10억의 아파트는 비록 3년 전에 구입한 것이라 할지라도 오로지 두 부부의 노력으로 저축하여 마련한 종잣돈이 불어난 것에 불과합니다.


사례 B는 다릅니다. 집 매매대금의 종잣돈이 된 전세금은 최초 1억은 물론, 최근까지 꾸준히 지속된 시부모의 증여로 전세금은 3억까지 형성된 것이지요.


물론 20년 동안 전세금을 낭비하지 않고 유지한 것도 고려할 요소이긴 합니다, 그러나 부부가 위험을 부담한 적은 한 번도 없지요. 분양권도 최근에 남편의 가족으로부터 빌린 돈으로 사서 차익을 남긴 것입니다. 따라서 아내가 전업주부로서 재산의 유지에 기여한 바가 사례 A처럼 크지 않습니다. 이런 사례는 50%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또 다른 변수들도 있습니다. 위 사례들에서 만약 아내가 친구에게 사기를 당해 남편 몰래 3천만원을 빌려줬다가 돈을 떼였다면 어떨까요? 남편에게 받은 생활비 중 매월 50만원을 자기 통장으로 옮겼는데 그 지출내역이 명확하지 않다면 어떨까요? 2명의 자녀에 대한 양육권을 부부 일방이 가져온 경우에는 과연 재산분할비율을 정함에 있어 고려되지는 않을까요? 한국의 현실에 비추어, 양육권자는 자녀가 성인이 되고 난 후에도 '결혼하기 전'까지는 물심 양면의 지원을 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과연 재판부는 고려할까요?


이처럼 재산분할비율을 예측하는 데는 여러 가지 변수를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개개의 사안마다 다르고, 또 실제 재판에서 어떤 재판장을 만나느냐에 따라 의외의 쟁점이 부각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제 이혼하겠다고 달려온 '예비고객' 앞에 '구구절절' 저런 설명을 해봤자 잘 이해를 못합니다. 그리고 대개 배우자와의 갈등때문에 이성보다 감정이 앞선 상태입니다. 마치 눈으로 '저에게 이혼할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주세요!'라고 호소하는 것 같습니다. 그럼 변호사는 유혹에 빠집니다. '아, 조금만 맞장구 쳐 주면 수임계약서에 도장찍겠구나!' 의뢰인도 저도 쉽게 유혹에 빠져선 안됩니다.


변호사의 말이 진짜인지 영업용 멘트인지 분간하는 것은 비전문가인 의뢰인으로서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의뢰인으로서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렇다해도 저에게 다른 불리한 점은 없나요?", "예상가능한 분할비율의 폭을 알려주실 수는 없나요?"라고 끈질기게 물어봐야 합니다.



2. 아파트를 공동명의로 해놓았으니 다른 재산은 몰라도 그 아파트 절반은 이미 확보한 셈이다?


'아파트가 남편명의로 되어 있어도 전업주부도 분할해달라고 할 수 있다'는 점은 이제 일반인들도 대부분 알고 있습니다. 부부간 재산분할에서는 명의가 아닌 실질에 따라 재산분할대상인지 여부를 판단한다는 법리에 따른 것이지요.


그런데 위 법리를 알고 있는 듯한 의뢰인이, "아파트는 제가 몇 년 전에 강하게 요구해서 공동명의로 해 놓았거든요. 요즘 시세가 매일 뛰고 있어요. 그러니 반은 이미 확보되었고, 그거 말고 골프회원권이랑 고향에 있는 땅이 문젠데요, 남편 명의로 사 놓았어도 결혼한지 오래 되었으니 제가 분할받을 수 있는 거 맞죠?"라는 질문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위 의뢰인은 크게 두 가지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내 명의로 해 놓았으니 내꺼라는 겁니다. 사람이란 원래 자기중심적이라, 상대방 명의 재산에 대해서는 '내 몫'을 가져오려 하면서도, 내 명의로 된 재산은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므로 안전하다고 착각하는 것이지요.


부동산을 공동명의로 해 놓았다고 현재와 미래의 가치 중 50%를 미리 확보한 것이 아닙니다. 누구 명의이든 상관없이, 재판에서는 재산이 형성되는 과정과 실질을 봅니다.


겉보기에는 똑같은 공동명의라도, 부부가 오래 함께 살며 기초 재산을 모아 산 아파트를 공동명의로 한 것과, 결혼하며 아내 부모가 사 준 아파트를 남편과 같이 공동명의로 해 준 경우는 재산분할을 할 때 완전히 다르게 취급됩니다. 누구 명의로 남겨두고 누구에게는 그 지분을 돈으로 계산하여 줄지도 재판부의 고민사항 중 하나입니다.


두 번째 착각은, 재산분할을 '재산 별로'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파트 따로, 예금 따로, 회원권 따로 가른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대개 가장 값이 많이 나가는 재산(부동산)을 누구 명의로 하느냐에 몰두합니다.


재산분할은 분할대상이 되는 부부공동재산의 총합을 순자산으로 평가한 뒤 몇 대 몇으로 나누는 것입니다(소극재산 또한 상황에 맞게 배분하며, 적극재산과는 다소 법리가 다릅니다).


다만 그 결과로 각자 몫이 나누어지면, 그 집행을 위해 전재산을 매각하여 현금화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므로, 부동산은 누가 갖고 고향땅은 누가 갖고, 차액은 현금으로 정산하는 식으로 재산분할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위와 같은 오해가 생깁니다.


물론 공동명의의 의미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소송에서 명의자만의 특유재산임을 다투는 경우가 많은데, 공동명의로 되어 있으면 애초에 명의자가 그런 주장 자체를 하기 어렵겠지요. 공동명의인 경우에는 애당초 일방이 대출을 받아 부동산의 실제 가치를 은닉할 수 없으므로 소극적 방어에는 유리합니다.


결국 공동명의로 되어 있는 재산이 구체적으로 재산분할심판에서 어떻게 고려될지는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핵심은 재산이 "형성"되고 "유지"된 과정입니다. 



3. 내가 조금씩 모아둔 돈은 내 꺼다?


위 2.번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요즘 젊은 부부들은 시작부터 별산제를 하는 경우도 많지만, 예전에는 흔하지 않았지요. 하지만 사람이란 나만의 영역을 갖고 싶어 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남편이 벌어오고 아내는 가사를 전담하는 경우에도, 각자 '비자금'을 챙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편은 용돈이나 회사에서 비정기적으로 나오는 보너스, 상여를 아내 모르는 통장에 모아놓습니다. 아내 또한 생활비 자투리를 남편 몰래 모읍니다. 그렇게 들키지 않고 오래 모으다 보면 금액이 꽤 커지고, 각자 주식에 투자하거나 재건축 딱지를 사거나 연금보험에 장기간 가입하면서 어느새 이혼 당시에는 꽤 큰 재산이 되어 있기도 합니다.


이혼상담을 하다 보면, 저런 '꽁쳐 둔' 재산은 내가 힘들게 모은 것이므로 절대 저 사람과는 나눠가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실제 재판에서는 월급이나 생활비에서 따로 빼 둔 돈으로 만든 재산을 특유재산으로 인정해 분할대상에서 제외시키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간혹 이혼을 앞두고 저런 재산을 몰래 처분하여 숨겨놓겠다는 의뢰인들을 봅니다. 위험한 모험입니다. 뭐, 안 걸리면 좋습니다. 그런데... 만약 걸리면 그것을 나눠받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판사에게 '거짓말쟁이'로 찍혀 다른 재산분할에서도 손해를 볼 수 있습니다. 상대방 변호사를 얕보지 마세요. 일단 숨겨서 재산분할받아도 나중에 발각되면 상대방이 추가로 재산분할 청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득실을 잘 판단해야 합니다.


같은 이유로 이혼을 즈음하여, 부부 중 일방이 특별한 이유 없이, 1) 부동산을 현금화하거나, 2) 통장에서 큰 금액을 인출하고 난 후, 통장 잔고가 비었으니 은닉한 재산은 나만의 것이 되고 재산분할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오해를 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러나 재산은닉행위가 '명백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해서 재판부가 이를 나몰라라 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입니다. 재산분할비율을 정함에 있어 불이익을 받을 수 있고, 결국 득보다 실이 클 수도 있습니다. 6:4 또는 7:3이 적은 것 같지만, "1"이 통상 1억입니다.



4. 결혼 전부터 내 것이면 재산분할대상에 포함 안 된다?


결혼 전부터 각자 갖고 있던 재산은 결혼 후에도 영원히 자신만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아주 단기간에 결혼이 깨지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일정 기간 혼인이 지속된 경우 결혼 전부터 각자 갖고 있는 재산이라는 이유만으로 재산분할의 대상이 되는 부부공유재산에서 제외되는 특유재산으로 인정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법리로만 따지자면 다소 이상한 결론처럼 들리겠지만, 실무에서 저런 재산은 오히려 재산분할대상에 포함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좀 실무적인 이야기인데, 판사들은 어떤 재산을 특유재산으로 보아 아예 재산분할대상에서 제외시키는 것을 부담스러워 합니다. 재산의 유지에 대한 상대방의 기여가 전여 없었다는 점에 대한 반대 증거를 찾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가급적이면 재산분할대상에 포함시키되 그 불균형은 재산분할비율에서 조정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개인적인 견해입니다).


따라서 결혼 전부터 내 것이었고, 결혼 중에 한 번도 상대방이 관여한 적 없는 재산이라 하더라도, 이 재산은 애당초 상대방과 나눠가질 필요가 없다고 섣불리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섣부른 단정은 오히려 재산은닉이라는 형태로 오해되어 의뢰인에게 불이익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매매의 형식으로 일방의 부모로부터 증여받은 재산을 나만의 고유한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 빼앗길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이 또한 오해입니다. 실무는 이와 다릅니다.



5. 상대방을 비난하고 나를 피해자로 만들수록 내 몫이 커진다?


당사자들은 소송에서 그간의 결혼생활에서 상대방의 잘못으로 자신이 얼마나 고통받고 힘들었는지를 판사에게 말하고 인정받고 싶어합니다. 위자료 청구에 관한 것이 아니라 재산분할에 관하여도 말입니다.


우선, 누가 나쁜 사람이냐 여부가 재산분할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는 것은 맞습니다. 부부 일방이 상식적인 수준에 비해 심하게 못된 사람이고 상대방이 이로 인해 고통받고 살았다면, 위자료 인정에 박한 우리 판례상의 한계를 고려해 재판부가 재산분할에서 재량껏 감안해 줍니다(판결문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쁜놈 만들기'는 오로지 상대방을 욕하고 내가 겪은 고통을 호소해서 이룰 수 있는, 쉬운 목표가 아닙니다. '내 말이 사실이니까...' 하는 기대와 단순한 전략으로 통할 일이 아닙니다.


이와 관련하여 저희가 이혼소송(가사사건)을 진행할 때 매우 공들이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의뢰인의 격을 높이는 일입니다. 이는 단순한 체면 차리기가 아니며, 실제 소송의 결과에 대한 유/불리, 실익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 의뢰인의 격을 높이면, 소송의 상대방을 보는 재판부의 시각은 자연스럽게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려 옵니다.


어느 원고의 소장을 봅시다.


"피고는 신혼부터 매일같이 원고를 무시하고 욕설을 일삼았으며, 돈이 없어 공과금이 밀리는데도 하던 일을 그만두고 게임방에서 친구와 밤을 새우고 들어오곤 했습니다. 생활비가 없어서 원고의 친정부모님이 준 용돈으로 생활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피고는 원고의 친정식구 모임엔 가지도 않고, 원고에게 시댁식구들 경조사에는 꼭 참석하라고 강요했습니다. 나중에 돈을 벌고 나서도 생활비는 월 200만원만 주었는데, 다른 수입은 자기 마음대로 술을 먹거나 탕진했습니다."


여기까지 읽고 감정이입되는 분들 또한 있으실 겁니다. 실제로도 저런 나쁜 남편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소장을 읽는 판사는 저런 문구를 하루에도 수십 개씩 봅니다. 저 문단을 읽는 데 1초도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남편이 답변서에 "원고의 주장은 적반하장입니다. 결혼 초부터 아침도 잘 안 차려주고 낭비벽이 심했으며……· "라고 쓰면 이 역시 판사가 별 신경 안 쓸 겁니다. 음... 또 이런 스토리구나 할테지요.


제가 남편(피고)의 대리인이라면, 이렇게 쓰겠습니다.


"원고와 피고가 어린 나이에 철없이 결혼해 초기엔 경제적으로 힘들고 싸움도 많았습니다. 피고는 새벽에 택배상하차를 하다가 허리를 다쳐 일을 쉬기도 하였고, 오토바이 배달도 했는데 수입이 많지 않았습니다. 이 시기에 아이까지 생겨 원고가 출산과 육아에 힘들어 했던 것을 알고 있고 지금까지도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결혼한 지 3년 후 현재 회사에 입사하여 지금까지 피고는 한 직장에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적은 월급이나마 꾸준히 모두 아내에게 가져다주었고, 가장으로서 아내와 아이를 책임진다는 생각에 뿌듯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아내가 이혼소장을 직장으로 보내 너무나 놀랐습니다. 원고가 이혼까지 생각하다니 무언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제 잘못이 무엇인지, 이 가정을 지킬 남은 방법이 없는지 저는 최대한의 노력을 해 보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쓰다니. 피고가 마치 지는 것처럼 보이는지요? 제 생각은 아닙니다. 자세히 보면 피고는 원고가 주장하는 이혼에 이르게 된 유책사유를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구체적 사실에 대한 불리한 자백은 전혀 없습니다. 


감정에 악이 오를 대로 오른 원고와 차분하고 스스로 자기의 잘못을 돌이켜보는 피고가 있습니다. 과연 재판부는 누구의 말에 더욱더 귀를 기울이게 될까요.


이와 같이 두 사람은 이혼소송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이미 '격'의 차이가 상당합니다. 한 사람은, '상대방은 나쁜놈, 나는 피해자' 프레임에 갇혀 일방적 비방만 합니다. 다른 사람은 일견 자신의 잘못도 인정할 가능성을 열어두며,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상대방을 무작정 비방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가정을 지키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재판부는 과연 피고가 이혼을 원하는지 아닌지 아리송해 하겠지만, 이것만으로도 피고는 얻은 것이 있습니다. 판사가 내 말에 귀를 기울여 듣게 하는 것은 모든 소송의 기본 원칙이자, 가장 중요한 전략입니다.


모든 변호사가 이 부분에 집중하지는 않습니다. 변호사마다 견해가 다를 수 있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저희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실무에서 재판장님의 눈길이 따스하게 바뀌는 것을 체감합니다. 이는 판결문에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반영됩니다. 물론 논문으로 낼 수는 없습니다. 제 개인적인 '체감'이자 노하우에 불과하니까요.


지금까지 유리한 재산분할을 위해 상대방을 맹렬히 비난하는 데만 집중하였다면, 한 번쯤 다른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좋은 전략은 1차원으로 달리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듯 아닌 듯 쓰리쿠션으로 가야 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이혼 소송을 단순한 가사소송이 아니라 민사소송처럼 진행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 관련 유튜브 영상을 링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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