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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률사무소 무진 Nov 02. 2021

연인 사이 금전거래 소송: 빌려 준 돈? 그냥 준 돈?


연인 간의 금전거래로 소송까지 가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그까짓 일로 소송을 할까 싶지만, 금액의 다과에 상관없이 지급명령, 소장부터 날리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예상외로 심심찮게, 꾸준히 하게 되는 법률상담 유형입니다.


생각해보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돈 돌려달라는 말이 나올 지경이면 이미 연인 사이는 파탄났을 터라, 만나서 얘기하는 것조차 싫겠지요. 


또는 헤어진 지 몇 년이 지난 후에 갑자기 소장이 날아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배우자에게 과거의 불륜을 들켜 빌려준(?) 돈을 받아와야만 이혼을 면할 상황이 되거나, 혹은 과거의 콩깍지를 비로소 벗겨낸 후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매듭을 짓자는 의미로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들이지요.


금액도 몇 십만 원 같은 소액부터 억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소소한 생활비나 급전을 빌려주는 것이 쌓이는 경우도 있지만, 전세금이나 가게 보증금처럼 거액을 지원해주는 경우도 많고, 수입차 리스 할부금도 쌓이면 큰 금액이 됩니다.



1. 연인 사이라고 해서 특별한 공식은 없다.


대체로 평범한 질문은 "연인 사이에 빌려준 돈도 받을 수 있나요?"라는 식입니다. 이런 질문에는 "연인 사이"라는 것이 어떤 특별한 법리가 적용될 수도 있는 사안이지 않을까란 생각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그 답은 물론, 연인 사이라고 해서 특별한 법리가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법에도 교과서에도 없습니다. '연인'이란 개념 자체가 불확실할 뿐만 아니라, 상대적이기 때문입니다.


갚아야 하느냐(반환의무가 존재하느냐)를 판단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을 주고 받을 당시 당사자들의 진심(의사)이 무엇이었는지'를 해석하는 것입니다. 


쉬운 표현 같지만 엄연히 "의사표시 해석"이라는 법률용어로 논의되는 영역이며, 어떠한 소송에서든 결론도출을 위한 전제작업으로써 이루어지는 중요한 해석영역입니다. 대여냐 증여냐의 싸움도 결국 (어느 한쪽이 명백한 거짓말을 하지 않는 한), 이 의사표시 해석을 다투는 경우가 많습니다.


"연인 사이"라는 것은 그 의사표시 해석을 위해 참고하는 간접정황입니다. 예를 들어, A가 B의 오피스텔 월세를 두 번 정도 대신 내줬다고 칩시다. 만약 A와 B가 회사 동료 간이라면, A가 B에게 돈을 빌려줬다고 추측하는 사람이 많겠지요. 


반면 두 사람이 연인 사이였다면, 앞의 사례보다는 증여라고 볼 가능성이 더 커집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증여인지 대여인지 결론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연인이란 이유로 돈을 막 퍼주는 경우도 있지만, 반면에 부부 사이임에도 금전 거래는 이자까지 쳐서 엄격히 계산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연인 사이"라는 것은 증여로 볼 가능성을 높이는 것, 딱 그 정도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연인 사이였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돈거래 과정에 있었던 구체적 정황(의사표시 해석에 도움이 될 자료)을 풍부하게 주장·입증하는 것입니다. 소송의 승패는 바로 여기서 갈립니다.



2. 빌려준 돈인가, 그냥 준 돈인가?


대개 돈을 준 사람은 빌려준 돈(대여)이라고 주장하고, 돈을 받은 사람은 그냥 준 돈(증여)이라고 주장합니다.


우선 차용증이 있으면 확실한 대여의 증거가 되지만, 차용증이 없다고 해서 치명적인 약점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연인 간 돈거래는 차용증이 없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입니다.


대여금으로 인정받기에 도움이 되는 간접정황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이자나 원금 중 일부라도 갚았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조금이라도 얼마든 갚았다는 정황은 처음부터 그 돈을 빌렸다고 인식했다고 볼 근거가 됩니다. 만약 2, 3회에 불과하더라도 매월 동일한 날짜에 특정 비율로 계산한 이자를 이체하였다면, 차용증에 버금가는 좋은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일반론으로는 오간 금액이 크고, 그 명목이 특정(구체화)될수록, 대여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전세금이 모자라다고 해서, 우선 5천만 원을 빌려 주었다.", "옷가게를 하고 싶다 해서, 보증금 1억을 빌려주었다"라고 상당한 금원의 액수와 명목이 명시되고 실제로 그 돈이 집주인이나 임대인에게 직접 입금된 사실이 입증되는 경우이지요.


반대로 금액이 적고 부정기적이며, 해당 금원이 생활비나 물품구입에 곧바로 사용되었다면, 증여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를 들어 "나 신상 노트북 사고 싶은데, 지금 핫딜이 떴어. 언능 입금해줘!"해서 100만 원을 입금했고, 곧바로 구입에 사용되었다면, 아무래도 연인 사이의 선물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상식에 부합하겠지요.


주의하실 것은, 위의 예시 모두 어디까지나 '가능성'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앞서 말한 "의사표시 해석"에 참고될 간접적인 정황증거에 불과할 뿐, 반대증거가 나오면 얼마든지 다른 결론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3. 입증책임? : 실제 소송에서는 이렇습니다.



요즘은 의뢰인들 또한 인터넷으로 공부를 많이 하고 와서, 입증책임이 어떻고 하는 말도 하십니다. 하지만 교과서와 실전은 다릅니다(학술적으로도 깊이 들어가면 소송의 승패와 직결되는 것으로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대여사실을 주장하는 쪽에서 먼저 입증해야 함이 원칙이기는 합니다. 원고가 "피고가 내 돈을 빌려갔으니 갚아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① 단순히 돈을 주었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 ② 소비대차계약이 있었다는 사실(변제기, 이자)까지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원칙에 따르면 원고가 5천만원 입금한 금융거래내역을 제출하더라도, 차용증이나 기타 대여사실을 인정할만한 증거를 제출하지 않으면 원고가 패소하게 됩니다. 


그러나 실제 소송에서 저런 식으로 곧바로 결론을 내리는 경우는 흔하지 않습니다. 재판은 결국 당사자의 분쟁을 억울함 없이 정당하게 해결하기 위한 절차입니다. 판사 또한 입증책임을 따지기에 앞서 양 당사자 모두 충분한 주장과 입증을 하도록 한 후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합니다. 그리고 피고의 반박을 들어보니 대여가 아닐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판단이 들면, 비로소 판결문에 원고의 대여금 주장에 대한 입증이 부족하다고 쓰는 것입니다.


결국 실제 소송에서는 입증책임을 떠나 피고가 상당한 노력(반대사실 혹은 채무소멸의 주장입증)을 해야 하는 구도가 됩니다. 한 마디로 이 부분은 내게 입증책임이 없으니, 나는 어떤 주장이나 입증도 하지 않겠다고 판단함은 오판입니다.


증거라고 해서 도장 찍힌 대단한 문서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문자, 카카오톡, 통화내용, 댓글 하나도 상황에 따라 충분한 증거가 됩니다. 꼭 당시의 것이 아니더라도, 나중에 "지금은 형편이 어려우니 한 달 뒤 갚을게"라는 식으로 대여사실을 인정한 내용도 좋은 증거가 됩니다. 



4. 조금 더 복잡해지는 경우


돈이 당사자 사이에만 오가면 몰라도, 제3자가 개입되면 복잡해집니다. 흔한 예로 대출을 받아 연인에게 빌려준 후 사이가 좋을 때에는 연인이 이자를 꼬박꼬박 내주다가, 헤어진 후 나 몰라라 하는 경우가 있지요. 사정이야 어찌 되었든 대출금 상환의무는 고스란히 명의자의 책임입니다.


연인의 전세금을 직접 집주인의 계좌로 입금해 주었다고 해서, 계약기간 종료 후 집주인에게 다시 내 계좌로 반환하라고 요구할 수 있을까요? 


왠지 그래야 정당할 것 같지만, 법적으로는 그렇게 하기로 한 특약 또는 채권양도 등 별도의 법률적 근거가 없는 한 집주인은 계약당사자인 임차인(연인)에게만 반환 의무가 있습니다. 이게 법이 정한 원칙입니다.


연인이 타인에게 진 채무를 대신 갚아주었다면, 이는 대여일까요 아니면 증여일까요? 직접 돈을 건넨 경우와 판단 기준 자체가 다르지는 않습니다. 이처럼 돈이 오간 관계가 복잡하면 내 맘대로 정리하거나 포기할 수도 없어 골치 아파집니다.



5. 형사고소 여부


연인관계를 이용하여 돈을 편취(사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업가인 척 자산가에게 접근하여 연인 사이로 발전시킨 후, '일시적으로 대금이 밀려 부도날 거 같다'라거나, '투자금이 적어 동업자가 나를 무시한다'는 등 이런저런 핑계로 꾸준히 돈을 가져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냥 유흥비로 탕진한 예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렇게 누가 보아도 악질적인 경우는 형사고소를 하는 것이 맞고, 증거가 합리적이라면 설령 사기죄로 기소되지 않더라도 민사소송에 어느 정도 도움을 줍니다(사기취소를 주장하는 경우는 조금 다릅니다. 대여냐 증여냐를 다투는 경우를 전제합니다). 적어도 판사가 '돈 가져간 놈이 나쁜 놈이네'라는 생각은 하게 되니까요.


다만 통상적인 연인관계에서 있을 법한 돈거래의 경우, 다소 거짓말이 섞였다고 해서 무리하게 형사 고소하여 분쟁의 판을 키우는 것은 권하지 않습니다. 


달리 말하면 민사소송에 도리어 나쁜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건이든, 민사와 형사를 병행할 때에는 서로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 신중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6. 조정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지급명령에 대하여 정해진 기간 내에 이의하지 않거나, 전부 변제하고 소를 취하하는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조정으로 종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사실 꼼수를 조금 발휘하여, 소장을 쓰는 변호사는 법리적으로 다소 무리여도 최대한 금액을 크게 잡아 주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정에서 깎일 금액을 감안해서 말이지요.


그러나 결론은 상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용돈 몇십만 원이나 사줬던 핸드백, 옷 등을 돌려달라면 좀 치사해 보이겠지만, 전세금을 보태준 것은 그 사람에게도 큰돈인데 헤어진 차에 돌려주는 게 깔끔하겠다 싶은, 바로 그 정도의 상식말입니다.


결국 돈을 준 사람이든 받은 사람이든 상식 선의 결론이 났다면, 지리하게 소송을 끌지 많고 신속히 합의 하에 종결하는 것이 좋습니다. 끝난 인연 간의 소송이 오래가 봤자 현재의 삶에 도움 될 것이 별로 없겠지요. 


합리적인 대리인들을 선임하여 협상한 후, 주장과 근거를 검토하여 서로 일정 부분 양보하는 것이 실리적인 측면에서 더 경제적이란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성이 하는 말과 가슴이 하는 말이 다르다면, 소송에 있어서 만큼은 이성이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듣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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