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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률사무소 무진 Oct 26. 2021

대여금이냐, 투자금이냐 : 일단 사기죄 고소부터?


1. 돈을 받겠다는 자와 못 주겠다는 자


돈을 받아야겠다고 찾아오는 의뢰인이 있는가 하면, 돈을 빌린 적이 없으니 주지 않겠다고 찾아오는 의뢰인도 있습니다. 왠지 전자가 더 많을 것 같지만, 후자의 경우도 똑같이 많습니다. 생각해보면 당연하지만요. 


하지만 빌린 돈이 없다는 사람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사업 잘 될 때는 투자자로서 이익만 쏙 빼먹다가, 어려워지면 갑자기 돌변하여 차용증을 써달라, 공증을 해달라고 강요해서 나중에 소송의 방식을 쓰는 한이 있더라도 무작정 원금을 달라고 떼쓰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입니다.


남의 주머니에서 돈 나오도록 하는 일이 쉽지는 않지요. 돈을 주고받은 경위를 들어보면 구구절절 사연이 많습니다. 수십년 지기 친구나 친인척 관계인 경우도 있지만, 의외로 만난지 얼마 안 된 사람에게 혹해서 수천만원을 건네는 경우도 자주 봅니다. 


이 또한 생각해보면 이유를 곧 알 수 있습니다. 사귐이 길면 사기꾼임이 들통나니, 걸려들었다 싶으면 얼른 털고 다른 피해자를 찾아다니는 것이 사기꾼들의 수법이지요.


사업과 관련하여 돈 갚으라는 소송을 보면, 큰 틀은 대개 이렇습니다. 우선 민사에서는 대여금이냐 투자금이냐를 다툽니다. 돈 준 사람은 빌려준 돈이니 갚으라고 하고, 받은 사람은 투자금인데 사업이 망했으니 수익이고 뭐고 없어 못 준다고 합니다. 


그리고 돈 받으려는 사람은 상대방을 압박하기 위해 사기죄로 일단 형사고소를 합니다. 물론 경찰은 고소장 수리조차 하지 않으려는 경우가 많지요. 이하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2. 민사 소송 : 대여금이냐 투자금이냐


우선 단순하게 출발해봅시다. 차용증을 썼으면 대여(소비대차계약)이고, 투자약정서를 썼으면 투자일까요? 


위와 같은 처분문서가 중요한 입증자료가 됨은 부인할 수 없지만, 실무상 절대적이지는 않습니다. 즉, 위 처분문서 기재에도 불구하고 다른 판단이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계약 당시에 애초부터 그 성격이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돈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마음이 다른데, 동상이몽이 마음속에서만 그치지 않고 서류에 정황에 그대로 섞여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김사장이 "4천만 땡겨 줘, 좋은 데 투자해서 두 배로 불려서 원금에 이자까지 갚을게"라고 해서 황여사가 대출받아 건넸습니다. 대여금일까요, 투자금일까요? 


돈 빌려간 김사장은 "투자라고 분명히 밝혔다, 좋은 투자 기회였으나 안타깝게 실패했다. 투자는 Risk-taking아닌가? 미안하지만 돌려줄 돈은 없다"고 할 것이고, 황여사는 "무슨 소리냐? 원금에 이자까지 갚는다고 하지 않았느냐? 명백한 소비대차계약이니 돈 갚아라"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 사안을 보면, 두 사람 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 김사장은 투자라고 생각해 받았고, 황여사는 대여라고 생각해서 빌려줬거든요.


저 두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실제 사건들을 보면, "투자", "수익", "원금", "이자", "대여", "동업" 등 개념상 양립할 수 없는 단어들이 계약서에 잔뜩 써 있고, 심지어 투자약정서랑 차용증을 같은날 모두 쓴 경우도 봤습니다(보다 일반적으로는, 처음에 투자약정을 체결했다가도 나중에 사업이 어려워지면 돈 돌려달라는 성화에 원금에 이자까지 합한 차용증을 다시 써 주는 경우가 많지요). 


대개 소송까지 올 정도면 이미 몇 번의 다툼과 빚독촉이 오간 상태이기 때문에, 원피고 모두 계약서, 차용증, 확약서, 각서 기타 등등 서류들을 몇개씩 재판부에 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법원이 서류 한두 개에만 의지해 실체를 판단할 수가 없게 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실질입니다. 우선 대여금 입증에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계약시 원금 상환일과 이자율을 구체적으로 합의하였고, 이에 따라 이자가 정기적으로 지급되었다는 금융거래내역입니다. 여기에 만기 이후 원금상환을 독촉한 정황 + 이에 "날짜를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는 등의 답신이 있었다는 입증이 추가되면 더욱 좋습니다. 


다만 친한 사이에서는 돈 빌려줄 때 차용증을 쓰지도 않고, 이자나 만기 약정도 없이 "알아서 갚으라"고 하는 경우도 많아 위와 같은 입증이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경우는 관점을 바꾸어, 투자나 증여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반대증거를 풍부하게 제시하는 방법을 씁니다. 예를 들어 십수년간 한 직장에서 성실하게 모은 돈으로 저축만 해 온 사람이 고향 동창에게 몇천만원을 건넸다고 합시다. 그동안 월급통장에서 저축만 해오고 투자나 주식 등 위험이 따르는 곳에는 돈을 쓰지 않았던 사실, 빌려간 돈을 무슨 사업에 어떻게 썼는지 전혀 공유받지 못했던 사실, 다른 고향 동창들에게도 어려울 때 돈을 빌려줬던 사실 등등 소소한 것들을 모두 모아서, "나는 투자금계약 같은 거 체결할 사람이 아닙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쉽지는 않은 작업입니다. 2% 부족한 증거들을 모아 쓸만한 한방을 만들어보려는 것이니까요.


투자약정임을 주장하는 경우, 투자금의 사용처 및 사업의 진행상황이 투자자에게 공유되었다는 자료가 필요합니다. 달리 말하면 "좋은 데 투자해줄게"라는 정도로는 투자금으로 인정받기 어렵다는 말입니다. 사업수익에 따른 배당 등이 있었다는 자료가 있으면 금상첨화이지만, 실제 사례에서는 많지 않습니다. 기업간 대규모 투자가 아닌 한 투자금 받으면 사업에 그냥 쏟아붓기 바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실제 사건들을 보면 투자금이므로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사례가 많지는 않습니다. 개인간 거래에서 투자약정임을 명시하는 경우가 많지 않을 뿐더러, 일단 돈이 건너간 이상 이유가 뭐든 돈이 있다면 갚아야 한다는 것이 일반인의 법감정으로 보이는데, 판사들 역시 크게 다르지는 않아 보입니다. 


결국 대여금이라 주장하는 이보다 투자금이라고 주장하는 이가 더 열심히 치열하게 다투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즉 투자금이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증거(투자약정서 초안, 이메일, 카톡, 문자, 정보공유상황 등)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3. 형사고소 : 양날의 검


형사고소의 최대 장점은 집행재산이 없는 상대방으로부터 돈을 받아낼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점입니다. 


있으면서 안 주는 경우이건(재산을 가족 명의로 해 놓은 경우), 혹은 없어서 못 주는 경우건 간에, 일단 기소만 되면 피고인이 된 채무자는 형량을 줄이기 위해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 오려고 합니다. 


또 다른 장점은, 민사소송과 달리 법리상으로는 복잡할 것이 없다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사기죄는 대여냐 투자냐, 혹은 증여냐 따질 것 없이 "기망"이 있으면 됩니다(기망, 착오 및 처분 사이에 각 인과관계가 필요하지만 일반적인 경우 기망이 주요 쟁점이 되므로 인과관계는 있다고 전제하겠습니다). 남의 주머니에서 돈 꺼내오는 과정을 보면 대개 크고 작은 거짓말들이 있기 마련이지요.


그리고 빠릅니다. 무죄판결 비율이 매우 낮은 우리 사법시스템에서, 명운을 가르는 것은 공판이 아니라 기소 여부인 경우가 많습니다. 형사고소에서 기소까지 걸리는 시간이 민사소송보다는 적고, 그 결과가 민사소송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므로 잘 되면 형사와 민사 합작으로 좋은 결과를 얻어낼 수 있습니다.


이런 장점들 때문에 민사소송 제기 단계에서 형사고소를 병행하거나, 형사고소를 먼저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법률상담 하러 가면 형사고소를 강추하곤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과연 형사고소가 쉽고 빠른 만병통치약일까요?


위와 같은 형사고소의 장점들은, 모두 기소가 된다는 것을 전제로 할 때만 의미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돈 가져가서 갚지 않는 유형의 사기 고소(흔히 차용금 사기라고 하는)는 아마 단일 유형으로는 가장 사건수가 많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넘쳐납니다. 그래서 기소 여부를 예측하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심지어 피해자 편인 수사기관도 차용금사기, 강제집행면탈 등의 혐의에 관한 수사에는 비협조적이지요.


예측이 어렵다니? 그렇게 흔한 유형이라면 선례도 판례도 많을테니 '이 정도이면 기소된다'는 감을 잡아야 하는 것 아닌가?


글쎄요. 경험상으로는 오히려 그 반대였습니다. 판례상 기소가 어렵다고 본 사건이 의외로 쉽게 기소되는가 하면, 반대로 교과서적인 모든 요건을 갖추었다고 생각한 사건에서 불기소되는 경우도 봅니다. 사기 고소대리 사건 경험이 쌓일 수록, 예측에 더욱 신중하게 됩니다. 


곰곰히 이유를 생각해보고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민사소송에 활용하기 위한 목적의 형사고소가 난무하다보니, 검사는 넘쳐나는 차용금(내지 투자금)사기 고소를 적정선에서 떨궈냅니다. 이 작업은 전국의 거의 모든 수사검사가 한달에도 수십 건씩, 십수년동안 매일같이 합니다. 


그래서인지 이런 유형의 사건은 검사들이 자신감 있게 쓱쓱 처리한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딱 보면 안다'라고나 할까요? 검사가 기록 보고 피의자랑 피해자 불러 몇마디 해 보면 바로 답 내립니다. 대리인이 아무리 이런저런 판례 들이밀고 깊이 고민해달라고 읍소해도 잘 안 바뀝니다. 판결로 치면 원님재판같은 기분입니다. 


자, 민사소장 잘 만들어 내고 재판부도 호의적인데 불기소처분되면 어떻게 될까요? 


법리상 검사의 불기소처분에 판사가 구애받을 사항은 전혀 없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민사소송의 주장 입증에 많은 영향을 미치며, 무엇보다도 돈 가져간 사람(대개 피고)의 태도가 무척 당당해집니다. "이제 감옥갈 일도 없고 내 명의로 된 재산도 어차피 없으니 민사소송 하나 마나 니가 뭘 할 수 있겠냐?" 하지요. 조정에 응할 이유도 없으니 원고는 민형사 합작으로 압박하던 주도적 지위를 하루 아침에 잃고 약자가 됩니다. 민사소송에 이겨도 책임재산이 없으면 당장 집행할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형사고소에 눈 하나 깜짝 안하는 사기꾼들이 많습니다. 큰 사기꾼일수록 그렇습니다. 대부분 애초부터 사기 고소를 대비하여 빠져나갈 대비를 미리 해 놓았을 뿐더러, 다른 피해자들에게 발목잡히지 않기 위해 사기 고소한 사람에게 본때를 보여주려는 경우도 있습니다(예를 들어 여러 피해자들 중 사기 고소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만 변제해주고 자신에 유리한 참고인으로 만드는 등). 


이런 이들에게는 무턱대고 고소장 내밀어 전쟁 선포하기 전에 가능한 밀당을 하면서 조금이라도 돈을 더 받아내는 노력을 해봐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합니다. 지극히 현실적인 고민이나 변호사 입장에서는 좋을 것이 없는 방향이므로 상담 사무장들이 이러한 권유를 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결국 형사고소는 강력한 패이지만, 양날의 검입니다. 잘못 휘두르면 내 양팔을 자르게 되는 것이지요. 개개의 사안에 따라, 특히 돈 가져간 상대방이 어떤 분 어떤 놈인지에 따라 전략을 잘 짜야 하는 것입니다. 


항간에 '무조건' 형사가 먼저다, 혹은 민사가 먼저다는 식으로 공식이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건마다 당사자와 사실관계를 꼼꼼히 파악하고 고민해야 합니다. 똑같은 돈, 똑같은 사기꾼처럼 보이지만, 돈마다 다르고 사기꾼도 소위 '레벨'이 다 다릅니다. 매번 사건을 할 때마다 민사소송과 형사고소의 조합과 순서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합니다. 


다른 일들도 그렇지만, 소송에서 중요한 것은 무공비급같은 비책이 아니라 매 순간 한 단계마다 깊이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변호사와 의뢰인 모두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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