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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률사무소 무진 Dec 21. 2021

재판 준비 : 형사재판에서 하면 안 되는 말


사선변호인이 있는 경우 피고인이 미리 변호인과 재판에 대비해 준비하고 자신이 무슨 말을 할 지도 연습합니다. 하지만 국선변호사건이나 변호인이 없이 진행되는 형사사건은 현실적으로 위와 같은 대비를 하기 어려워서인지, 피고인들이 부적절한 말을 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형사재판에서 재판부가 통상적으로 묻는 질문에 대해 보겠습니다.



1. "왜 그런 행동을 했는가"


변명하면 안 되고, 반성해야 합니다. 억울한 점이 있으면 호소해야 하지 않겠냐구요? 서면으로 자세히 하세요. 재판에서 구두로 억울함을 길게 호소하는 것은 별로 도움이 안 됩니다. 재판부가 정말 호기심에 위와 같은 질문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보다는 피고인이 반성하는지 알아보려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입니다.


길을 가다가 어떤 놈이 내 아내에게 시비를 걸어 화를 못 참고 한 대 때렸다고 칩시다. "아내를 공격하는데 남편으로서 가만 있을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 사람도 원인을 제공한 바가 있으니, 제가 잘못은 했지만 억울한 점도 있습니다. 선처부탁드립니다."라고 말하면 변명이고, "그 사람이 그런 말을 할 수도 있는데, 제가 욱해서 그만 사람을 때리고 말았습니다. 전적으로 다 제 잘못이고 피해자에게 정말 미안하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하면 반성입니다. 내용은 비슷한데 어감은 상당히 다르지요.


때린 사실 자체가 없다고 무죄를 다투는 경우가 아니라면, 결국 양형의 문제입니다. 양형의 고려 요소에 많은 것들이 나열되지만, 실무상 느끼는 가장 중요한 것은 딱 두 가지입니다. '합의(피해회복)'와 '반성'. 


합의야 어차피 문서로 제출되면 길게 말할 것 없는 부분이니, 재판에서 피고인이 재판부에 보여줘야 할 것은 얼마나 반성하는지 여부입니다. 



2. "피해 회복은 되었나? 아니라면 왜 못했는가?"


피해자와 합의하려면 대개 피해회복이 필요합니다. 피해회복이 상당 부분 이루어지면 피해자가 합의서(처벌불원서)를 써 줄 것이고, 아니면 일부라도 공탁하거나 피해회복 없이 재판을 받겠지요. 


사실 이는 문서로 제출되면 명백하기 때문에 재판부가 굳이 물어볼 필요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부가 물어보는 이유는, 역시나 피고인의 진지한 반성 태도를 보기 위함입니다.


"돈을 주려고 했는데 피해자가 거절해서 못줬습니다"는 대답은, 사실 그대로이긴 하지만 좋은 대답은 아닙니다. 한두 번 물어보고 끝이 아니라 최선의 노력을 했음을 보여주어야 합니다(찾아가되 괴롭히면 안 됩니다. 안 만나주면 그냥 옵니다. 특히 성범죄나 폭력범죄 등 민감한 사안은 절대 피의자나 피고인이 직접 찾아가면 안 되며, 변호인이나 피해자 국선변호인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연락해야 합니다). 그리고 연락처를 안다면 문자메시지로 진정한 사과 및 분명한 합의금을 제시하여 증거를 남깁니다. 


[다만2022. 12. 9.부터 피해자의 동의가 없어도 형사공탁을 할 수 있도록 공탁법 제5조의 2(형사공탁의 특례)가 시행되어,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알지 못하는 경우에도 형사재판이 계속 중인 법원과 사건번호, 사건명, 조서, 진술서, 공소장 등에 기재된 피해자를 특정할 수 있는 명칭을 기재하고, 공탁 원인 사실을 피해 발생 시점과 채무의 성질을 특정하는 방식으로 기재할 수 있습니다. 다만, 법관의 양형에 어떻게 고려될지에 관하여는 아직 세부적인 가이드 라인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2022. 10. 21. 수정함] 


그런 다음에 재판부에 모든 자료를 내고, "제가 다섯 번 찾아가고 문자로 500만 원을 드린다고 했는데, 피해자가 아직도 상처가 커서 그런지 거절하였습니다. 지금이라도 피해자가 받아주신다면 언제든 변제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라는 정도가 되어야, 재판부에서 진정성을 인정해 줄 겁니다. 


저희는 의뢰인들께 가능하다면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부모나 배우자)도 함께 손편지를 보내 피해자에게 사과하도록 권장합니다. 화난 피해자가 그 정도로 마음을 바꾸겠냐 싶겠지만 의외로 작은 부분에서 사람의 마음이 녹기도 합니다(물론 피해자의 분노가 클 경우 '재판부에 보여주려고 거짓 쇼를 한다'며 강하게 반발할 가능성도 분명 존재합니다. 사안에 따라 잘 판단해야 할 문제고 위험은 상존합니다). 


"형편이 어려워 못했다"는 대답 역시 좋지 않습니다. 특히 제대로 된 직장을 갖고 있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하면 합의금 지급 의사가 없어 보입니다. 여기서 '제대로 된 직장'이란, 대기업 등 신문에 나오는 좋은 직장이 아니라, 일정하게 월급 나오는 평범한 직장을 말합니다. 


정말 돈이 없었다면, 그 이유를 상세하게 대야 합니다. 기초생활수급자라거나, 가족 중 중환자가 있어서 병원비가 든다는 등 특별한 사정없이 단순히 가난하고 어렵다는 말은 변명으로 들리기 쉽습니다.



3. "재판부에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세요"


재판 막바지에 재판부가 이렇게 피고인에게 따로 시간을 줍니다. 해서는 안 되는 것 세 가지가 있습니다. 1) 변명, 2) 피해자 탓, 3) 자신의 고통을 호소하는 것.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이, 재판부가 "하고 싶은 말" 해보라고 했으니 그동안 속상한 거 판사님께 다 말하자 싶어 내 마음속 고통을 줄줄 꺼내놓고는 합니다. 재판부는 심리상담사가 아닙니다. 감옥에 보낼지 말지 결정하기 전에 피고인에게 기회를 주겠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 업계에서 삼십 년 일하면서 저 나쁘다는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죽어라고 뛰어다니며 회사 성공시켰더니 횡령이라니요. 제가 실수를 했을 수도 있겠지만 남의 돈 빼먹는 그런 인간은 아니에요." → 변명. 
"그 사람이 깜빡이만 켰어도 제가 그렇게 화는 안 났을 겁니다. 그리고 제가 먼저 맞아서 방어한 건데 그 사람이 별로 다치지도 않았으면서 병원가서 진단서 떼고 고소했다고 저만 상해로 재판받는 게 정말 억울합니다." → 피해자 탓
"제가 이 재판이 2년이나 가면서 어디 취직도 제대로 못하고 밤에 잠도 못 자고 고통이 말할 수가 없습니다. 빨리 재판이 끝나고 훌훌 털어버리고 싶습니다." → 자신의 고통만 호소(반성의 여지 안 보임)


아니, 무조건 반성만 하라면 내 변명과 억울함은 어떻게 말하라는 것인가요? 


서면으로, 점잖게 하세요. 업계에서 평판이 좋다면 표창장과 동료들의 탄원서를 내세요. 피해자가 동기를 유발했다면 목격자를 증인으로 신청하거나 당시 상황을 아주 상세하게 서면으로 적으세요. 재판이 오래가서 고통받았더라도 재판부에 감정 호소하지 마세요. 재판부가 '당신의 얼굴을 바라볼 때' 궁금한 것은 오직 한 가지. 당신이 반성하고 있느냐입니다.



4. 무죄를 주장하는 경우도 반성의 태도를 보여야 하는가?


어려운 문제입니다. 변호사들도 고민합니다만,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보면 됩니다. 우선 전혀 엉뚱한 사건에 휘말린 경우, 예를 들어 드라마에 나오듯이 CCTV에 나온 범인과 비슷한 옷을 입어서 억울하게 잡혀온 극단적인 경우라면 사실관계를 다투는 것에만 집중하면 됩니다.


다만, 실제로 저런 경우는 많지 않고, 어느 정도 문제의 소지가 있는 상태에서 법리를 다투는 경우가 많습니다. 경찰관을 때린 것은 맞지만 불법체포에 대응한 것이므로 위법성이 조각되어 무죄라거나, 회사 돈을 내 계좌로 옮긴 것은 맞지만 이익을 취한 것이 아니라 회사 대표가 시켜서 잠시 갖고 있다가 회사에 돌려주었으므로 횡령이 아니라는 식입니다.


이런 경우, 변호사들은 대개 무죄를 주장하되, 예비적으로 유죄일 경우를 대비하여 양형에 참작할 사유를 덧붙입니다. 서면에 "설령 재판부께서 판단을 달리 하시어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시더라도, 다음과 같은 양정사유가 있습니다…"라는 식으로 쓰는 것입니다. 


이런 방식에 대해 의뢰인들은 그렇게 하면 내 무죄주장이 자신없어 보이는 것 아니냐고 반감을 갖는 분들도 있습니다. 물론 최종 판단은 의뢰인의 몫이겠지만, 이런 예비적 주장은 형사사건에서 매우 흔하게 쓰이는 방법이고, 재판부도 그러한 방식을 취했다는 이유만으로 피고인에게 어떤 편견을 갖지는 않습니다(물론 앞서 든 예처럼 사실관계를 완전히 다투는 무죄주장의 경우는 예외입니다).


따라서 사실관계의 일부만을 다투거나 법리를 이유로 무죄를 주장하는 경우, 무죄를 다툰다고 하여 마냥 당당한 태도로 일관할 것은 아니며, 사안별로 득실을 따져 봐야 합니다. 


"제가 법리적으로 무죄를 주장하기는 하나, 되짚어 생각해보니 고소인에게 한 번만 성의있게 확인해봤어도 일을 이렇게 처리하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반성과 후회가 듭니다. 고소인과 회사에 물의를 일으켜 정말 죄송한 마음입니다. 형사적 유무죄와는 별도로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노력하여 피해자인 고소인을 돕겠습니다."라고 하면 어떨까요. 


설령 유죄로 인정되더라도 양형에 있어 불리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 실제로 이렇게 말하는 피고인들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달리 말하면, 그렇게 말하는 순간 재판부가 "어라? 이 피고인은 다른데?"라는 눈길로 바라볼 것이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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