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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률사무소 무진 Dec 28. 2021

내용증명의 핵심은 전략! : 변호사는 이렇게 보냅니다.


* 본문 하단에 유튜브 영상의 링크가 있습니다. 본문과 유사한 내용이니 편하신 쪽으로 보시면 됩니다.


1. 내용증명, 제대로 알고 보내십니까?     


우선, 내용증명에 대한 환상을 깨야 합니다. 내용증명을 소장이나 답변서처럼 그 자체로 대단한 의미를 가진 법적 서류라고 오해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용증명이란 발송인이 수취인에게 어떤 내용의 문서를 언제 발송하였다는 사실을 우체국이 증명하는 제도입니다. 기본적으로 편지에 불과하지요. 그래서 근거도 우편법에 있습니다(우편법 시행규칙 제25조 제1항 제4호).


다만 그 내용과 발·수신 여부가 명확히 증명되니 법적으로 중요한 여러 의사표시 전달을 위한 도구로 쓰는 것입니다. 대개 특정 내용의 통지를 "언제"하였으니 내가 선순위권 자다!라고 주장하는 용도로 잘 활용합니다.  


내용증명 발송 방법 자체는 쉽습니다. 인터넷으로 할 수도 있고, 3부 작성하여 가면 우체국에서 알아서 보관하고 보내줍니다. 문제는 내용이고 타이밍이고 전락적 판단을 어떻게 할 것이냐에 관한 것 입니다.



2. 기본적인 취지     


왜 편지 중에 ‘내용증명’이라는 제도를 만들었는지 이해하기 위해, 일단 교과서적인 예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 이런 조항이 있습니다.          

제6조(계약의 갱신) ① 임대인이 임대차기간이 끝나기 6개월 전부터 2개월 전까지의 기간에 임차인에게 갱신거절(更新拒絶)의 통지를 하지 아니하거나 계약조건을 변경하지 아니하면 갱신하지 아니한다는 뜻의 통지를 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그 기간이 끝난 때에 전 임대차와 동일한 조건으로 다시 임대차한 것으로 본다. 임차인이 임대차기간이 끝나기 2개월 전까지 통지하지 아니한 경우에도 또한 같다.  <개정 2020. 6. 9.>


임대차 기간 종료를 앞두고 법정 기간 내에 갱신 거절의 통지를 하지 않으면 갱신된 것으로 본다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우리 법에는 어떤 통지를 하지 않으면 특정한 법적 효과를 의제하는 조항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임대인이 전세계약 종료 3개월 전에 임차인에게 전화해서 재계약 의사가 없음을 통지하였습니다. 그런데 3개월 뒤에 임대인이 이사준비 다 하고 임차인에게 전화하니 묵시적 갱신을 주장하는 겁니다. 아무 말도 못 들었다면서 말이지요. 증거가 없으면 낭패보기 쉽지요.


그래서 위와 같은 경우에 대비해서 내용증명으로 보내라는 겁니다. 우체국에 증거가 다 남아 있으니까요.



3. 현실의 내용증명     


이상은 교과서적인 설명이고, 현실의 내용증명은 그리 만만하지 않습니다.


우선, 본격적인 싸움(민사 본안소송 등)을 준비하기 위한 내용증명이 있습니다. 소송을 앞두고 오간 내용증명 자체를 본안에서 유리한 증거로 활용하기도 하고, 상대방으로 하여금 본안 소송 계속 중 유불리에 따라 갑자기 기존 진술이나 입장을 뒤집지 못하도록 하는 효과를 노리기도 합니다.


실제 저희 사무실에서 진행했던 사안을 조금 변형하여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연인에게 큰 돈을 빌려주고 받지 못해 민사소송을 하려고 찾아온 의뢰인이 있습니다. 오랜 교제 기간 동안 수 회에 걸쳐 빌려주다 보니 사실관계도 깔끔하게 정리가 안 되고, 연인관계라는 특성상 차용증이나 담보도 없습니다.    


히 이런 사안에서 법률적으로 가장 골치 아픈 건 상대방이 민사 본안에서 증여 주장(애인 사이에 '용돈'으로 혹은 '사랑의 정표로 준 돈'이라는...)을 한다는 점인데, 실제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의뢰인의 전 남자친구에게 다음과 같은 취지의 정중한(?) 내용증명을 보냈습니다.     

수신인이 우리 의뢰인에게 돈을 빌려가면서 그 사용처나 변제시기에 대해 계속 거짓말을 하였고 사업내용도 의심스럽다. 차용금의 명목이나 변제의사를 기망하였다면 형사상 사기죄가 성립한다. 곧 형사고소 예정이나 기회를 주겠으니 2주 내에 변제하라.     


자, 답장이 왔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변호사를 통하지 않고 본인이 직접 작성하여 보냈습니다. 큰 일 아니라는 듯이 말입니다.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나는 사기꾼이 절대 아니다. 사업상 급해서 빌린 것이며, 실제로 사업상 사용한 증빙도 있다. 늦게 갚는다고 형사고소 운운하지 말라.      


어떻습니까? 차용 사실을 인정하게 하려는 우리의 목적이 손쉽게 달성되었습니다. 상대방은 우리가 보낸 내용증명의 쟁점이 '사기죄 성립 여부'라고 생각하여, 사기가 아니라고 방어하는데만 신경 쓴 나머지 차용사실을 그대로 시인해 버린 것이지요.

      

실제 사안에서 위 내용증명 답신(블로그 내용은 각색된 것임을 주의)은 원고 소장에 첨부되었고, 이로써 피고의 증여 주장을 원천적으로 봉쇄하여 의뢰인인 원고에게 유리한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었습니다.


또 다른 사례를 보겠습니다.     


두 사람의 친구가 합심하여 식당을 창업했습니다. 한 사람은 실력있는 요리사라 주방을 맡았고, 다른 친구는 자본을 투자하고 식당 경영을 맡았지요.      


그런데 식당이 처음에는 잘 되다가, 경쟁업체가 생겨서 어려워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요리사에게 내용증명이 날아왔습니다. 식당 같이 차린 친구가 돈을 갚으라는 겁니다. 갑자기 자기는 동업자가 아니라 그냥 돈 빌려준 제3자, 즉 채권자에 불과하니 처음 준 돈을 이자는 둘째 치고라도 원금 그대로 돌려달라는 것이지요.      


이는 동업이 깨질 때 흔히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사업 초기에 돈을 댄 사람은 원금 손실이 없는 대여금이라고 주장하고, 상대방은 원금 손실 가능성을 인식한 투자금이라고 반론하지요. 대여금이면 최소한 원금은 다 돌려받을 수 있지만, 투자금이면 남은 동업재산에서 비율대로 정산만 해 갈 수 있습니다. 즉, 투자금이라면, 동업이 폭망하면다면 이자는 커녕 원금도 다 날릴 수 있다는 이야기인 것이지요.     


그런데 이 부분도 막상 소송을 진행 중인 상태에서는 원피고 모두 자신의 주장에 대한 입증이 쉽지 않습니다. 동업계약서를 미리 쓰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친구가 돈 갚으라고 보낸 내용증명에 이런 내용도 있었음을 발견하였습니다.     

개업할 때 월매출이 1억이었는데 지금은 반도 안 된다. 식당이 망한 것은 다 너 때문이다. 내가 힘들게 스카우트해 온 지배인도 네가 맘대로 해고했고, 신메뉴도 내가 반대했는데 네가 고집 피우다가 단골 다 끊겼다. 월급 밀렸다고 직원이 나를 찾아왔던데, 내 돈도 못 받은 처치에 직원 월급을 어떻게 내가 주겠냐?     


찬찬히 살펴봅시다. 돈을 빌려준 채권자라더니, 사업 내용 뿐만 아니라 월매출도 파악하고 있군요? 지배인도 고용하고, 신메뉴에도 관여하고, 직원이 월급 달라고 그 사람을 찾아가디도 했다니, 아마 그 직원은 면전에서 그 친구를 사장님이라고 불르지 않았을까요? 사실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합리적인 의심이 들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경영에 직접 관여했다는 사실들은 편지에 불과한(?) 1통의 내용증명만으로 본안 소송에서, 일반 채권자가 아니라 투자자 내지 동업자라는 강력한 반대 주장의 근거가 됩니다.      


아마도 내용증명을 보낼 때 친구 마음은, 식당이 이렇게 망한 건 내가 아니라 저 요리사 잘못이고 자신은 억울하니까 돈을 돌려 받아야겠다는 취지였을 겁니다. 하지만 변호사의 눈으로 보면 그 내용증명에는 본인의 주장인 대여금과 정반대되는 불리한 사실들만 줄줄이 인정해 놓은 유력한 서증일 뿐이지요.      


이 두 사례를 통해서 변호사로서 말씀드리고 싶은 점은, 내용증명은 함부로 쓰면 안 된다는 겁니다.


내용증명에 대한 환상을 깨야 하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내용증명이라는 형식과 틀에만 신경을 쓰고, 정작 그 내용과 실질과 같은 전략전술에는 큰 신경을 쓰지 않는 점 때문입니다. 그래서 뒤늦게 이렇게 큰 실수를 하고 말았다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내용증명으로 자기 발등 찍는 경우가 정말 많이 보았습니다.      

     


4. 싸움을 막는 내용증명          


"송사(訟事) 3년이면 집안이 망한다."     


변호사가 이런 말을 인용하는 것이 좀 이상해 보이겠지만, 송사로 먹고사는 변호사들이 가장 잘 알지요. 그 송사가 집안을 망하게 할지 흥하게 할지 말입니다.     


싸움을 키워 봤자 당사자 모두 상처만 입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럼 싸우면 안 됩니다. 하지만 막상 다툼이 발생하면 당사자들은 눈앞의 작은 손익계산에 민감한 데다가, 감정적인 부분까지 결부되어 있다면 이미 합리적이고 냉정한 판단을 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저희 사무실에서 진행했던 사례를 조금 바꾸어 소개하겠습니다. 형님 부부와 동생 부부가 부모님 대(代)부터 해 오던 음식점을 오랫동안 같이 경영했습니다.     


그러다가 동생 부부가 사정이 생겨서 더 이상 사업을 같이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동생이 형님한테 독립하려고 하니 재산 중 일부를 정산하여 달라고 청했지요. 하지만 형님은 나가는 것은 네 마음대로지만 정산은 못 해준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동생 부부가 저희 의뢰인이셨는데, 형제끼리 법정에서 싸우고 싶지 않다는 의지가 강했습니다. 음식점 규모가 상당히 컸음에도 불구하고, 동생은 큰 욕심 안 부리고 독립해서 가족들 먹고 살 정도만 되면 그것만 받겠다고 하셨지요.       


그래서 저희가 형님 측에 내용증명을 보냈습니다. ‘동업재산 규모가 상당히 크고 상속재산분할까지 고려하면 판례상 동생도 많이 가져갈 수 있다. 하지만 동생은 형님하고 싸우고 싶지 않다. 어떤 방식이라도 좋으니까, 형님이 안(案)만 제시를 해 달라. 그러면 최대한 따르겠다.’는 취지였지요.     


위 내용증명을 받은 형님이 저희 사무실로 전화를 하셨습니다. ‘형제간에 소송하면 평생 남 되는 건데, 어차피 소송도 나눌 거, 이왕이면 형님이 먼저 나서서 도와주시는 형태로 동업관계를 정리하면 좋겠습니다’는 취지로 설명드렸고, 긴 통화 끝에 얘기가 잘 됐습니다. 형제간에 의 상하지 않고 재산문제가 잘 정리되었지요. 형님 또한 중간에서 힘들었던 부모로부터 다시 한 번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두 분 모두 이득을 본 셈이지요.


그 외에도 내용증명으로 꽤 해결되는 유형 중 하나가 가계약금 분쟁입니다. 사실 가계약금만 주고받은 단계에서 계약이 깨지면, 양쪽 다 큰 손해는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각자 조금씩 양보하고 적당한 선에서 돌려준 후, 다른 계약상대방을 찾으면 됩니다.     


그래서 변호사 이름 들어간 내용증명을 보내서, ‘법리와 판례가 이러이러하니, 소송해봤자 둘 다 고생만 하고 큰 이득 볼 게 없습니다. 그러니 이 정도 선에서 해결합시다.’라고 제안하면, 합리적인 사람들과는 대화가 잘 됩니다. 실제로 저희 사무실에서 여러 건 이런 사례가 여러 건 있습니다.     


그런데 운이 나쁘면, 가계약금으로 한몫 챙기려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럼 1년 2년 소송할 수밖에 없지요. 글쎄요, 정말 가계약금으로 대박이 날까요? 법원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또 다른 유형이 누수 분쟁입니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이, 소송하면 일단 감정비용만 기본 몇백에서 시작하고, 소송하는 동안 사용하지 못한 손해배상에 양쪽 변호사비까지 포함하여 나중에 다 계산해보면 그게 공사비보다 훨씬 더 큰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누수분쟁도 소송부터 할 게 아니라 내용증명으로 협상을 시도해보면 좋습니다. 예를 들면 아래층에서 위층에 이렇게 보내는 것이지요. ‘누수 검사할 수 있게 문만 열어 달라. 검사 결과 윗집 전유부분 누수로 나와도 내가 공사비 중 얼마를 대겠다. 공용부분에서 누수가 발생한 것이라면 검사비용은 내가 감당하겠다.’. 이게 손해보는 것 같아도, 1년씩 공사 못하고 소송하는 거랑 비교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매우 현실적인 측면에서 말씀드릴 부분이 있습니다.   


우선, 싸움을 막으려는 내용증명이라는 것이, 그냥 ‘싸우지 말자’고 쓴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이거 싸워봤자 얻을 게 없네’라고 현실로 느끼게 만들어야 하므로, 판례와 법리적 쟁점도 쓰고, 소송 패소에 따라오는 금전적 손해 등 쓸 것이 많지요. 즉, 변호사 입장에서 내용증명 또한 거의 민사 소장에 준하는 정도로 공을 들여야 합니다.    


그런데, 현실상 내용증명 비용을 소장처럼 몇백만 원씩 못 받습니다. 몇십만 원의 비용도 의뢰인 입장에서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지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용증명만으로 정말 해결될 것이냐? 그걸 변호사도 모릅니다.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 망설이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사람 속은 정말 알 수 없는 것이, 기록 보고 ‘이거 사기꾼에게 된통 걸렸네, 쉽지 않겠어.’ 싶었는데 의외로 내용증명 받고 바로 연락해 와서 돈 갚는 사람도 있는 반면, 판례나 법령이 명확한 사안에서도 체면 좀 차릴 것 같은 사람이 막 나가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싸움을 막는 내용증명’이라는 업무를 변호사가 순순하게 영업적인 측면에서만 보면, 일은 많은데, 돈 안 되고, 욕먹기 쉬운, 딱 그런 일인 것이지요.      


이런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소송하러 온 의뢰인에게, ‘먼저 내용증명으로 협상을 한번 시도해 봅시다’라고 변호사가 먼저 권하기가 쉽지는 않아요. 즉, 이 시점에서는 변호사가 내용증명이라는 제안을 하되 이를 진행하고자하는 의뢰인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고 또 필요합니다.


하지만 제가 일하면서 지켜본 바로는, 가능성을 떠나서 내용증명으로 잘 해결되었을 때 얻는 이득이 정말 큽니다. 왜냐하면 소송은 정말 힘든 일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제 가족이나 친구의 일이라면 저는 반드시 한 번 쯤 시도해 보라고 권하겠습니다.     


이제까지 내용증명은 싸움을 거는 용도로만 쓰였지 분쟁을 조기 해결하는 훌륭한 기능은 간과되어 왔지요. 소모적인 분쟁을 멈추고 싶다면 적절한 시점에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잘 쓴 내용증명을 한 번 잘 활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5. 내용증명을 보낼 때 생각해 볼 점들     


가장 먼저, 이 내용증명 자체가 목적인지, 아니면 다른 큰 목적을 위한 수단인지 따져 보셔야 합니다.  


전세계약 갱신 안 하겠다는 단순한 의사 통지는 별로 복잡할 것이 없겠지요. 하지만 돈 갚아라, 고소하겠다, 해제하겠다, 이런 사안이라면 내용증명은 전체 큰 그림 중에 극히 일부를 차지하고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그 큰 그림이 머릿속에 아직 안 들어 있다면, 전체 그림과 전략을 세우는 게 우선이지 내용증명 회신부터 날리면 안 됩니다. 이제 회신을 보냈으니 내 할 일은 다 했고, 잘 되겠지 하는 마음으론 부족합니다.       


두 번째로 확인해야 할 것은 사실관계입니다.      


영화에서는 변호사들이 무슨 법 몇 조 몇 항, 판례번호 줄줄 읊어대고 하지요. 이는 영화일 뿐이고, 현실의 소송에서 변호사들이 가장 치열하게 다투는 건 사실관계입니다. 사실관계가 가장 무섭습니다.     


많이 쓴다고 좋은 게 아닙니다. 내 이름 석자 들어간 서류에 뭔가를 적는다는 건, 그걸 다 책임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불필요한 사실관계가 들어 있는지 철저히 확인하고 모두 빼야 합니다.      


세 번째, 이 내용증명이 앞으로 있을 미지의 소송에 그대로 제출되어도 문제없는지 따져봐야 합니다. 변호사 입장에서 상대방 본인이 직접 길게 쓴 내용증명을 발견하면 정말 고맙습니다. 건질 것이 있으니까요. 변호사랑 맞짱떠도 불리할 게 없다는 자신이 들면, 그때 보내십시오.      



6. 내용증명에 답장할 때 생각해 볼 점들     


가. 출발점 :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한다.

     

내용증명을 받으면, 많은 분들이 이거 답장해야 되나? 언제까지 해야되지? 이것부터 생각하는데, 그 프레임을 깨야 됩니다.


내용증명은 본격적인 분쟁의 첫 단추가 됩니다. 내용은 대개 한두 장 정도로 짧지만, 그 속에는 여러 계산이 숨어있지요.      


법적 분쟁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평범하게 살아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받은 내용증명의 문구 그 자체를 해석하고 답변하는 데 치중한 나머지 '상대방이 왜, 하필 이 시점에, 이런 내용을 써서, 이런 요구를 하는가?'라는 입체적인 분석을 간과하기 쉽습니다.      


상대방이 이 내용증명을 보내 나에게 어떤 답장을 얻어내려 하는지, 이 내용증명으로 분쟁을 어떻게 해결하거나 혹은 키우려고 하는지, 만약 소송으로 발전한다면 이 내용증명과 그 회신이 어떻게 활용될지 모두 고려하여,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해야 합니다. 그래야 답장에 무엇을 쓰고 무엇을 감출지 판단할 수 있으니까요.     


나. 언제까지 회신해야 하는가?     


대개 내용증명 발송인은 기간을 정하여, "~까지 답신하지 않으면 즉시 민형사상 법적 절차에 착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습니다. 기간을 반드시 지켜야 할까요?      


우선 체크해야 할 사항은, 법에서 해당 기간 내에 회신하지 않는 경우 특정한 법적 효과를 부여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민법 제131조는 "대리권 없는 자가 타인의 대리인으로부터 계약을 한 경우에 상대방은 상당한 기간을 정하여 본인에게 그 추인 여부의 확답을 최고할 수 있다. 본인이 그 기간 내에 확답을 발하지 아니한 때에는 추인을 거절한 것으로 본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회신하지 않을 경우 원하지 않는 법적 효과가 발생하게 되는 경우는 아닌지 확인이 필요합니다.     


또 하나 주의해야 하는 경우는, 상대방이 나에게 상당한 기간을 주어 계약이행을 요구하고, 해당 기간 내에 이행하지 않을 경우 계약이 해제된다는 내용이 포함된 경우입니다. 계약 해제를 위한 최고인데, 이 경우 자칫 계약이 해제될 위험이 있으므로 기간 내의 대응이 중요합니다.     


위와 같은 경우들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내용증명에 있어 상대방이 정하는 기간은 법적으로 크게 의미를 둘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전략적으로 기간을 지키는 것이 좋은 때는 있겠지요. 예를 들어 내가 잘못한 게 맞고 상대방이 소를 제기하면 질 게 뻔한 상황이라면, 상대방과 좋게 타협하는 것이 유리하므로 기간 내에 무슨 내용이든 성의껏 답장을 보내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지만 일반적인 경우, 내용증명 회신기간을 반드시 지켜야 하는 불변기간처럼 생각하여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경솔한 답장을 하는 것이 가장 위험합니다. 따라서 앞서 본 것처럼 기간 내에 회신해야 할 것이 명백한 경우가 아니라면, 기간을 지키는 것보다는 내용을 제대로 쓰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대기업 사내변호사로 있을 때 사업부 담당자들에게 단단히 일러뒀던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절대 내용증명, 사실조회 회신 함부로 하지 말 것, 무조건 법무팀에 가져올 것'이었습니다(사실 법무팀에 가져오는 거 좋아하는 사람 없고, 웬만하면 조용히 처리하려고 하지요).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여 알아서 회신했다가 회사와 본인에 큰 손해를 가져오는 경우가 생깁니다.     


다. 내 답장은 상대방의 소송에 활용된다.     


앞서 내용증명 보낼 때 관련해서 말씀드린 것과 같습니다. 특히 상대방이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선임해 내용증명을 보냈다는 것은, 이미 내가 어떻게 반응할지까지 다 계산해서 뭔가를 준비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입니다. 좀 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라. 써야 할 것과 쓰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설령 상대방의 주장을 인정하더라도 무턱대고 다 그렇다 맞다 인정하면 위험합니다. 반대로 상대방에 맞서 반박하더라도 쓰지 말아야 할 내용과 용어가 있습니다. 계속해서 강조하지만, 내가 내용증명에 쓰는 내용의 파급효과가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반론을 적자면, 많이 쓰는 것보다는 적게 쓰는 것이 좋습니다. 꼭 필요한 내용만 쓰고 웬만하면 안 쓰는 것이 현명합니다.     



7. 내용증명의 형식?


내용증명은 편지라고 말씀드렸지요. 따라서 정해진 형식은 없습니다. 그냥 제목과 보내고 받는 사람의 인적사항, 제목을 쓴 후, 내용에 따라 문단을 나누어 나열해 쓰면 끝이고(회사에서 통상적으로 쓰는 팩스 공문 보내듯 쓰면 됩니다), 변호사들도 다 그런 식으로 쓰니 형식에 부담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3부를 출력하여 봉투 하나에 주소 쓰고 밀봉하지 않은 채 우체국에 가져가면, 직원 확인(도장) 후 1부는 발송, 1부는 우체국 보관, 1부는 내가 보관하면 됩니다.     




내용증명에 대한 오해와 환상이 많아 다소 길게 글을 썼습니다. 모쪼록 당면한 분쟁의 해결에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관련 유튜브 영상을 링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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