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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률사무소 무진 Apr 13. 2022

나홀로 소송시 주의사항 : 재판부 언어 해석하기(민사)


재판에 임해서, 당사자들은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하나'에만 집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재판부가, 그리고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 여부입니다.


나홀로 소송을 하시려는 분께 좋은 팁을 드리자면, 재판 때 가족이나 친구 등 믿을만한 사람을 동행해 방청석에서 해당 재판의 모든 대화(재판부 및 당사자)를 기록하게 합니다(재판부 허락없이 녹음은 금지됩니다). 당사자 본인은 긴장하여 재판에서 오간 대화를 모두 기억하기 어렵고, 말하면서 동시에 적기도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동행할 사람이 없다면 스스로 최대한 기록하도록 합니다. 


특히, 재판장이나 상대방 대리인이 "조서에 기재해 주십시오"라고 말하는 부분은 판결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사항인 경우가 많으니, 반드시 기록하고 그 법적 의미에 대해 알아보아야 합니다.


재판이 끝난 후, 위 기록을 다시 보고 재판부가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당사자가 한 말들이 각자에게 어떻게 유리하고 불리한지 꼼꼼히 공부해서 다음 변론기일을 대비해야 합니다. 또한 이런 기록이 있으면, 중간에 변호사에게 상담하러 갈 때도 좋은 자료가 됩니다. 


상담하러 오시는 분들 중에 혼자 재판에 나갔다가 재판부가 "대리인 선임을 고려해보라", 혹은 "당신에게 불리하니 잘 판단해라"고 말하는 걸 듣고 급히 사무실로 달려오시는 분들이 있는데, 정작 재판부가 무슨 쟁점을 말했냐고 물어보면 제대로 기억을 못 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1. 재판부가 나만 공격하거나 상대방에게만 잘해주는 경우


재판부가 내 말에 대해 반박하는 경우, 당황하거나 질 것이라고 불안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가 완전히 무시할 만한 주장이라면 그런 반박도 잘 안 합니다. 금쪽같은 재판시간을 할애하여 내 주장에 반박한다는 것은 그만큼 관심이 있다는 것이므로, 판사의 의문을 충분히 풀어줘야 합니다. 나를 미워해서 반박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내편을 들어주기 위해 남은 걸림돌을 해소하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한편 재판부가 티나게 한쪽에게만 부드럽게 대해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건마다 사정이 다르겠지만, 변호사들끼리 하는 말 중에, '질 사건이면 재판부가 잘해준다'는 말이 있습니다. 당사자 주장을 충분히 다 들어주고 나서 판단했다는 근거를 남기기 위함입니다. 


또한 함정인 경우도 있습니다. 의심스러운 쪽에게 친절하게 편들어주는 척하면서 위험한 질문을 슬쩍 던지면, 분위기 파악 못하고 신이 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결국 재판부가 반박했다고 해서 위축되거나, 반대로 잘해줬다고 우쭐댈 필요가 없습니다. 수없이 재판정을 오가는 변호사라면 재판부의 아 다르고 어 다른 말을 미묘하게 잡아내어 '감 잡았어'할 수 있겠지만, 아마추어인 당사자들이 함부로 재판장의 말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거나 승패예측을 시도하는 것은 위험하고 불필요합니다. 그런 '디테일'을 잡아내려고 하기보다는, 서면작성이나 증거제출 등 기본을 더 충실히 하는 데 신경써야 합니다.



2. 재판부가 관련없어 보이는 사소한 질문을 할 때


재판장이 뜬금없이 이상한 질문을 할 때가 있습니다. "구기동에는 언제부터 살았어요?", "둘이 결혼할 때 누가 소개했어요?" 등, 다소 사건과 관련 없는 사소한 질문을 하는 경우입니다.


당사자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중요한 쟁점일 수도 있지만, 정말로 사소한 질문일 수도 있습니다. 일종의 진실성 테스트입니다. 이처럼 미리 예상하지 못한 뜬금없는 질문이 나왔을 때 중요한 것은, 머뭇거리지 않는 것입니다. 


재판부의 질문을 해석하거나 방어한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내 머릿속에 있는 진실을 그대로 말한다. 난 솔직하고 당당한 사람이다. 그것만 머릿속에 넣고 재판에 임합니다. 사소하고 간단하지만 진실 여부가 금방 드러나는 그런 질문들에 대해 즉답을 못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일 가능성이 크지요. 즉시, 주저없이 답해야 합니다.



3. "더 하실 거 없나요?", "다음 기일에 결심하겠습니다."


너무 평범해 보여 본인소송하는 분들은 쉽게 지나치는데, 변호사들은 소송의 진행 정도를 판단하는 척도로 사용하는 말들입니다.


우선 더 할 거 없냐는 말은, '지금까지 나온 주장과 증거로 재판부는 판단이 섰고 판결문 쓸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니 역전을 바라는 쪽은 지금 말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재판부가 이런 말을(특히 예상외로 일찍) 하면 지금까지 내가 한 변론이 과연 이길 정도인지 꼼꼼히 되돌아봐야 합니다. 자신 없으면 뭐라도 더 해야 합니다("DO SOMETHING!") 물론 구체적으로 뭘 더 할지 말하지 않으면 재판부가 그냥 끝내버리니, 누구를 증인으로 신청한다던가, 어디 사실조회를 해서 무엇을 입증하려 한다는 등 구체적 근거를 대야 합니다(입증취지와 입증방법).


다음 기일에 결심(結審)하겠다(변론종결하겠다)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정도 재판부의 심증이 굳어졌으니 혹시라도 뭔가 하려면 다음 기일까지 최선을 다하라는 뜻입니다. 또한 결심 여부는 사안의 결론을 예측하는 데도 단서를 줍니다. 예를 들어 원고가 손해배상액에 대해 구체적 증거도 내지 않고 감정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재판부가 결심한다고 선언하면, 원고패소일 확률이 높겠지요. 


나아가, 사안에 따라 재판이 빨리 끝나는 것이 나에게 도움이 안 되는 경우가 있으니(관련사건이 있는 경우 등), 결심을 막아야 할 이유가 있다면 미리 대비해야 합니다. 



4. 재판부가 대리인 선임을 고려해 보라고 할 때


재판장이 '대리인 선임을 고려해 보고 다음 기일에 다시 오라'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의뢰인은 나중에 털어놓기를, "가재는 게 편이라고 변호사 잘 먹고살라고 판사가 보내는 것인가 싶었다"고 해서 한참을 웃었던 적이 있습니다. 수십 년 전 법조인들이 몇 명 되지 않던 때면 몰라도, 지금은 판사와 변호사가 서로 동료라고 생각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판사가 도와주고 싶은 변호사가 있으면 그렇게 공개적으로 안 하겠지요.


재판부가 그러는 경우는 대개 다음의 경우 중 하나입니다. 

1) 사건이 너무 복잡한데 증거자료도 정리 안 되어 있어서 재판진행이 너무 힘들다. 대리인이 정리를 해 와야 처리할 수 있겠다. 

2) 당사자가 이길 수 있는 사건인데, 매우 중요한 주장을 안 하고 있다. 혹은 상대방 주장에 대해 매우 중요한 방어를 안 하고 있다. 정황상 이길 수 있어 보이는데 안타깝다. 

3) 당사자의 주장이 너무 터무니없어 재판 끝까지 가봤자 오히려 손해이니, 소취하나 조정으로 끝내는 것을 고려해 볼 사건이다.


그런 중요한 주장이나 방어를 판사가 설명해 주면 되지 않느냐 싶지만, 민사재판의 대원칙인 변론주의에 반하는 것입니다. 판사는 당사자가 주장하는 것만을 바탕으로 판단해야 하며 어느 한쪽 편을 들어 유리한 사실을 주장하라고 말해줄 수 없습니다.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는 형사재판과 다릅니다.


따라서, 재판부가 대리인을 선임해보라고 하면 괜한 의심 말고 변호사를 찾아가 상담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변호사 선임할 생각이 없더라도, 최소한 한두시간 상담을 통해 전문가의 시선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때, 재판에서 무슨 말이 오갔는지 반드시 모두 기록해 와야 합니다. 그래야 변호사가 왜 재판부가 대리인을 선임하라고 한 것인지 이유를 파악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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