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방하신 의뢰인께 "왜 소송을 하십니까?"라고 여쭤보면, 의외로 대답이 금방 안 나옵니다. 변호사가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잠시 당황하시다가 "돈 받으려고 하지요.", "이기려고 하지요"라는 답을 하시지요.
대개는 처음부터 소송을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런저런 방법을 해 보다가, 소송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와 시점이 있기 마련입니다. 소송은 내가 원하는 목적을 위한 여러 수단 중 하나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의뢰인이 "소송을 하겠다"고 말하면 변호사가 "소송을 하면 이런 절차를 거치고, 이런 결과가 예상됩니다."라고 답하는 것이 전부라면, 이는 충분한 상담이 아닙니다. 마치 "배가 아프니 약을 처방해주세요"라는 환자에게 "네, 약의 부작용은 이러하니 주의하세요"하며 처방해주는 의사와 같습니다. 의사라면 약부터 줄 것이 아니라 배가 왜 아픈지를 알아내는 것이 먼저이지요.
소송에 있어 제대로 된 시작점은 의뢰인이 뭘 원하는지, 그리고 소송으로 얻으려는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 명확히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대화를 나눠보면 상황을 제대로 자각하고 있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변호사를 찾을 만큼 위기 상황이 오면 의외로 냉정한 판단이 어렵습니다.
목표가 분명해지면, 즉 내가 이 상황에서 어떤 결과를 원하는지 꺼내어 말로 할 수 있을 정도에 이르게 되면 그 이후에 비로소 소송을 할 것인지, 어떤 종류를 어떤 순서로 할 것인지, 소송 외로 어떠한 노력을 병행할 것인지에 대해 하나씩 계획을 세워나갈 수 있습니다.
피고도 다르지 않습니다. 당면한 소송에서 당장 어떻게 방어할 지만 생각할 것이 아닙니다. 민사소송이라는 좁은 시야를 벗어나 상대방이 이 소송을 통해 얻으려는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합니다.
원고가 사건에 이겨 돈을 받아가면 끝인 사건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이 소송이 전쟁일 수도 있지만, 큰 전쟁에 속하는 하나의 전투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상대방이 형사고소를 준비하면서 유리한 자료를 얻기 위해 민사소송을 이용할 수도 있고, 혹은 제3자와의 싸움에 이기기 위해 나를 희생양으로 삼는 경우도 있습니다(이 소송에서의 특정 주장이나 진술을 다른 소송에 이용하기 위함입니다).
소송에서는 법원의 권위에 기대어 공공기관에 대한 사실조회도 가능하고, 각종 금융거래내역도 샅샅이 살펴볼 방법도 있기 때문입니다.
전투에 이기고 전쟁에 지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는 큰 틀에서 사건을 바라봐야 합니다. 변호사가 의뢰인에게 사실관계에 대해 집요하게 물어보는 이유는 의뢰인이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숨기고 있는 전쟁의 실체를 찾아내기 위해서입니다.
대개 이렇게 질문하시지만, 별 실익이 없습니다.
우선 승소확률이 10% 이하인 어려운 사건, 혹은 확실한 판례가 있어서 별 문제없으면 이길 사건 등 양 극단의 경우라면 어느 변호사나 대부분 비슷한 답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일부의 경우이고, 대부분의 사건은 스펙트럼의 중간 어딘가에 있을 뿐입니다.
변호사가 뭐라고 답할까요? 식당 입구에 들어가서 주인장에게 "여기 밥 맛있어요?"하고 묻는 셈입니다. 싱겁고 무책임해 보이지만 "이길 수도, 질 수도 있다"가 가장 정확한 답입니다. 승소확률이 40%인지 60%인지는 변호사 개인의 희망을 말하는 수준 이상의 의미가 없습니다.
좀 더 좋은 질문방식은 "내가 이긴다면 왜 이기고, 혹시 상대방이 이긴다면 왜일까요?", "제가 승소할 경우에는 무엇을 얻고, 패소하면 무엇을 잃을까요?" 라는 방식입니다. 선택에 따른 장단점을 묻는 방식입니다. 승소 확률을 물어볼 것이 아니라, 승패를 가를 요인과 내 인생에 미칠 영향을 물어봐야 하는 것입니다.
효율적인 상담을 받기 위해 미리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우선 A4용지에 사실관계를 시간 순서대로 적습니다. 편지 쓰듯이 줄줄 쓰기보다는, 날짜별로 항을 나누어 적는 것이 변호사가 빨리 읽기에 좋습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식입니다.
(1) 18. 5. 12. : 고교동창 소개로 김사장을 처음 만남. 여의도 유명 투자자문 이사라고 명함을 주었고 증시 현황이나 좋은 종목에 대해 설명해줌.
(2) 18. 6. 5. : 김사장과 둘이 술자리에서 만남. VVIP들만 투자하는 별도의 루트가 있다며 특별히 가입시켜준다고 하여 투자금 일부 5천만원을 김사장이 준 계좌로 송금함.
기억나는 사실관계는 본인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든 그렇지 않든 모두 적어야 하며, 소송 중이라면 소송과 관련된 진행사항도 적습니다(관련된 소송의 사건번호를 알아오는 것은 기본입니다). 또한 관련된 자료(주고받은 편지, 차용증, 카톡사진 등등)가 있다면 챙겨 갑니다. 미리 변호사의 업무용 이메일로 중요 서류를 스캔하여 보내드릴 수도 있겠지요.
짧은 상담시간에 변호사가 모든 자료를 검토할 수는 없지만, 자료를 직접 보는 것과 의뢰인의 말만 전제로 가정적 판단을 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궁금한 점을 미리 정리하여 적어 갑니다. 문제를 적다보면 스스로 그 해결책이 생각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며, 법률상담을 듣다 보면 어려운 말도 많이 나오고, 미처 생각하지 못한 위험에 대해 듣게 되면 당황해서 꼭 해야 할 질문도 제대로 못하고 나오는 경우도 생깁니다.
사무장 말고 변호사와 직접 상담해야 합니다. 또한 변호사의 경력과 성향을 미리 파악해 두세요. 홈페이지나 블로그가 있다면 대부분 경력을 소개하고 있으며, 만약 길 가다 들러서 아무 정보가 없다면 변호사에게 직접 물어보면 됩니다. 몇 년 차인지, 사법연수원 혹은 로스쿨 출신인지, 지금까지 어떤 업무를 주로 해 왔는지 등등입니다. 이 정도 정보를 묻어보는 것은 결코 예의에 벗어난 행동이 아닙니다.
특히 실제 업무를 맡긴다면 반드시 물어봐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수임을 상담하는 변호사가 내가 맡긴 일을 직접 처리하는지 혹은 고용변호사가 일을 맡는지 여부입니다. 고용변호사가 있다면 파트너변호사는 중요한 의사결정만 할 뿐 실제 업무의 대부분은 고용변호사가 처리합니다.
따라서 실제로 내 일을 맡아줄 고용변호사가 어떤 사람인지도 물어봐야 합니다. 요구사항이 있으면 미리 말합니다. 법정 출석은 파트너변호사가 직접 해달라는 등의 내용입니다. 가능하면 회의에 파트너와 고용변호사 모두 참석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대기업 등 변호사들 일하는 방식을 잘 알고 있는 의뢰인들은, 자문이나 송무를 맡길 때 아예 처음부터 고용변호사("어쏘 변호사"라는 호칭을 많이 씁니다)는 '몇년차 이상, 특정 업무경력이 있을 것' 등의 조건을 요구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생전 처음 변호사 만나는 사람들은 잘 생각하지 못하는 방식이지요.
문제가 생겼으니 변호사를 찾아갔을 겁니다. 따라서 최종 질문은 "제가 어떻게 해야 하나요?"이겠지요.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변호사가 당장 돈을 많이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사건을 확대시키고 복잡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당장 민사 소송 제기하고, 가압류도 하고, 형사고소도 같이 해야 효과가 있다." 고 만들어 놓으면, 민사수임료+신청사건 수임료+형사수임료가 모두 들어옵니다.
물론 위와 같은 구도라고 해서 무조건 덤터기라고 볼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위 구도로 진행해야 하는 사건이 많습니다. 민사소송에서 가압류 등의 보전처분은 못 해서 아쉬운 것이지 상대방에게 재산이 있다면 가정 먼저 해 놓아야 할 조치이며, 형사고소를 병행해야 할 사건도 많습니다.
다만 사안에 따라 처음부터 전면전을 벌일 것이 아니라 순차적으로 해야 할 경우도 있으며(특히 형사고소와 민사 소제기의 순서는 깊은 고민이 필요합니다), 싸우는 척 위협만 하고 실질은 협상을 선순위로 두어야 할 사건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가능성에 대해 솔직하지 않은 변호사들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한 변호사의 조언을 들을 때에는 다소 비판적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세 명의 다른 변호사로부터 상담을 받아보실 것을 권합니다. 그래야 서로 다른 조언들을 비교해볼 수 있고, 신뢰가 가는 대리인이 누구인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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