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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률사무소 무진 Jun 28. 2022

쌍방폭행


"쌍방폭행"은 법전에 나오는 용어는 아니지만, 폭행사건의 양 당사자가 서로 상대방이 자신을 폭행하였다고 주장하여 고소한 사건을 일컫는 말로 흔히 쓰입니다. 서로 피의자인 동시에 피해자의 입장인 셈이지요.


폭행죄는 반의사불벌죄이므로 피해자가 처벌불원의사가 담긴 합의서를 제출하면 사건이 바로 종결됩니다. 그래서 큰 피해가 없다면 서로 합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굳이 나란히 전과자가 될 필요는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사안에 따라, 그렇게 간단하게 끝나지 않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1. 억울한 경우(1) : 그 경위에 있어서


우선, 나도 상대방을 때린 것은 맞지만 그 경위를 볼 때 너무 억울해 죄를 인정할 수 없는 경우입니다.


술집에서 멀쩡히 앉아있는데 상대방이 갑자기 시비를 걸더니 먼저 공격해서 방어하다 보니 때렸다거나, 저쪽에서 때리길래 맞기만 하다가 참다못해 딱 한 대 반격해 때린 경우 등입니다.


법률적으로는 정당방위나 정당행위로 위법성이 조각된다는 주장을 하게 됩니다.


정말 재수 없는 경우를 보면, 계속 맞다가 못 참고 딱 한 번 밀었는데, 상대방이 허리를 다쳤다고 상해진단서를 떼 와서 내가 더 중한 죄(상해죄)의 피의자가 되어버리기도 합니다. 상해죄는 친고죄도 반의사불벌죄도 아니므로, 서로 합의하더라도 상대방의 폭행사건만 공소권없음으로 종결되며, 나는 여전히 약식 기소될 가능성이 남습니다(벌금형, 기소유예를 받으면 좋겠지만 말입니다).



2. 억울한 경우(2) : 정말 안 때린 경우


정말 안 때렸는데, 상대방이 자기도 맞았다며 고소장을 제출해 피의자로 조사받는 경우입니다. 실제로 '나쁜놈'들은 자기가 일방적으로 때린 것을 스스로 알면서도 악의적으로 고소해 쌍방폭행의 구도로 만들어 갑니다. 그래야 돈 안 주고 합의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CCTV처럼 명백한 증거가 있다면 시시비비가 바로 밝혀지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결백을 밝히기 쉽지 않습니다. 말이 좋아 쌍방폭행이지 쉽게 말하면 두 사람의 몸싸움인데, 대부분 자기가 맞았다고만 하지 쳤다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경찰 입장에서는 명확한 근거 없이 일부의 말만 들을 수 없으므로, 피해 진술이 있으면 모두 다 피의자로 조사하고,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양쪽을 함께 기소의견으로 송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법적으로 폭행죄에 있어서 폭행은 사람의 신체에 대한 유형력의 행사로 정의되며, 유형력의 의미는 물리적, 역학적 작용(밀치거나 침을 뱉는 행위) 이외에 화학적, 생리적 작용 또는 빛, 열, 전기, 냄새와 같은 작용도 포함이 되어 일상적인 경우보다는 인정되는 범위가 넓습니다. 즉, 각 잡고 펀치를 날리지 않았어도 몸싸움이나 신체적 접촉이 있는 실랑이가 있었다면 충분히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싸움이 나면 손으로 만세하고 CCTV 앞에 서 있어야 한다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닙니다.



3. 수사기관은 쌍방폭행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사법연수생 시절 검찰시보를 하면서 20세 전후의 젊은이들 몇몇이 패싸움에 얽힌 사건을 처리한 일이 있었습니다. 워낙 여러 명이 뒤엉켜 싸웠고 모두들 자신(및 내 친구들)은 맞기만 했다고 진술하는 터라 누구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 밝히기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기록을 이리저리 살펴보니 넘어진 사람을 일으키다가 싸움에 휘말렸다고 주장하는 2명은 다소 억울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지도검사님께 다른 사람들은 기소 또는 기소유예, 그 2인은 증거불충분으로 혐의없음으로 처리함이 좋겠다는 의견을 말씀드렸지요. 곧바로 "왜 그 두 사람만?"이라는 반문이 나왔습니다.


나름의 근거를 이리저리 말씀드렸지만 지도검사님을 설득하지 못했고, 결국 관련자는 모두 기소 내지 기소유예 처분이 내려졌습니다. 지도검사님 말씀에 따르면, 그런 패싸움은 서로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자들의 '진술'(그리고 같은 편들의 '목격진술')이 유일한 증거인데, 누구의 말만 믿고 누구의 말만 믿지 않을 뚜렷한 근거가 해당 사건에서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실무입니다. 만약 제 의견대로 2명만 혐의없음 결론이 났다면, 당장에 기소된 다른 피의자들로부터 "왜 내 말은 안 믿고 저사람들 말만 믿느냐? 편파적 수사다"라는 항의가 제기되었겠지요.


결국 수사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우리 헌법의 무죄추정의 원칙에도 불구하고 실무상 피의자가 무죄를 적극 주장·입증하지 않으면 기소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4. 문제점 : 정당방위 인정받기 쉽지 않습니다.


일반인들에게 '정당방위'가 뭔가 친숙한 개념인지 이를 기대하시는 분들이 많지만, 우리 판례와 실무상 정당방위가 인정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정당방위를 인정한 대법원 판례 자체가 별로 없고, 경찰 수사지침의 정당방위 인정 요건(길고 많아서 그냥 안 쓰겠습니다)을 보면 그 모두를 충족하기란 매우 어렵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상대방의 공격이 미약한 경우에는 굳이 방어할 필요 없이 피하면 될 것이므로, 실제로 정당방위를 해야 할 상황이라면 상대방의 공격이 상당히 위협적인 경우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방어하는 쪽의 물리력도 일정 수준 이상이어야 실질적 방어가 가능할 텐데, 판례가 인정하는 방어행위의 예는 멱살을 잡고 있거나 잠시 손목을 잡아 누르는 정도 등 매우 소극적 경우에 한정되어 있어 상당히 비현실적입니다.


예전에 뉴스 기사를 하나 봤는데, 경찰에서 쌍방폭행 사건에서 경위를 따져 억울한 사람은 정당방위나 정당행위 법리를 적용해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하는 노력을 늘리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왜 이런 기사가 나왔을까요? 이 기사를 보고 '정당방위가 인정받겠구나'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 반대입니다. 뉴스 기사로 나올 정도로 저런 사례가 드물다는 뜻입니다. 금메달을 아무나 따면 TV에 안 나오겠지요.


실무상 오히려 자주 접하는 것은 정당행위(형법 제20조)로 위법성이 조각되는 경우입니다. 그래서 변호사들도 의견서 쓸 때 "~한 행위로서 정당방위 혹은 정당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된다 할 것입니다"라고 같이 주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법적으로 정당방위와 정당행위는 요건이 다르지만, 양쪽 다 인정받기 어렵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입니다.



5. 한 대라도 쳤다면 폭행 맞습니다.


아무리 10대 맞다가 딱 1대 쳤더라도, 쳤으면 폭행죄가 성립합니다. 그러한 경위는 기소유예 여부나 형량 결정에 참작할 사유가 될 뿐이지요.


결국 그리고 그 '참작'이라는 것의 결과가 내 기대와 다를 수 있습니다. 많이 때린 사람만 기소하고 적게 때린 사람은 기소유예하는 등 기소 여부 자체에 차이를 두는 경우는 오히려 드물고, 둘 다 기소하되 한쪽은 벌금 100만원, 다른 쪽은 벌금 50만원으로 벌금 구형에서 차등을 두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저 정도면 실질적 불이익에서 큰 차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벌금 50만원의 차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벌금형의 전과자가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큰 오점이기 때문입니다. 취업 등을 위해 외부에 제출하는 범죄경력조회에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삭제되지만, 벌금형 전과 자체는 평생 남습니다. 10년 후에라도 향후 다른 사건으로 수사나 재판을 받을 때 불리한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내가 더 많이 맞았다거나 상대방이 먼저 시비를 걸었다고 해서 내가 특별히 '유리한' 위치에 있지 않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무리 억울해도 전과자가 되지 않기 위해, 뻔뻔한 상대방에게 합의를 부탁해야만 하는 상황이 생깁니다.



6. 상해진단서는 반드시 사건 직후 곧바로 확보해 놓아야 합니다.


크게 다치지 않았다면 쌍방폭행은 상호 합의로 끝내는 것이 여러모로 원만한 결론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는 희망사항일 뿐, 현실은 꼭 내 기대처럼 흘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내 상대방이 어떤 분 어떤 사람 어떤 놈일지 알 수 없다는 겁니다. 나는 상호 원만히 해결하고 싶은데 상대방은 자기가 먼저 쳐 놓고선 상해진단서 끊어 와서 나를 상해로 고소해버릴 수 있습니다. 상해죄는 반의사불벌죄가 아닙니다.


상해진단서가 있다고 다 상해죄로 기소되는 것은 아니지만, 폭행 당일의 상해진단서가 있냐 없냐에 따라 분명히 사건의 출발점이 달라집니다. 따라서 폭행사건에 휘말리면, 그 즉시 병원에 가서 구체적으로 폭행당한 경위와 구체적 부위를 의사에게 설명한 뒤 진단서를 받아 두어야 합니다. 그것을 수사기관에 제출할 것인지, 상대방과 어떻게 사건을 해결해 나갈 것인지는 나중의 문제입니다.


실무에서 의뢰인들을 만나다보면 평소 물의를 빚지 않고 모범적으로 잘 살아오신 분일수록 이런 준비(?)를 생각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아 안타깝습니다. 교도소 감방에 가면 수감자들이 변호사보다 법을 더 잘 안다는 우스개소리가 있지요. 폭행을 일삼는 나쁜 사람들은 옷깃만 스쳐도 진단서 떼러 갑니다. 평범하게 살아온 분들은 그럴 생각을 못 하다가 졸지에 상대방은 폭행죄인데 나만 상해죄로 기소될 위험에 처하게 되는 것이지요.  



7. 일의 진행에는 순서와 적기(타이밍)가 있습니다.


이 글을 포함하여, 인터넷을 통해 접하는 일반적 자료만을 근거로 자신의 구체적 사건에서 방향성을 정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억울하더라도 합의를 해서 빨리 종결시켜야 할 사건이 있고, 힘들지만 무죄를 다퉈야 할 사건도 있습니다.


쌍방폭행이라 하여 양쪽의 잘못이 5:5로 똑같은 사건은 오히려 적습니다. 먼저 시비를 걸거나, 폭행의 태양이나 정도에서 잘못이 더 큰 쪽이 있기 마련이지요. 다만 내가 느끼는 '억울함'과 경찰 수사관이나 검사, 나아가 판사의 눈에 보이는 '억울함'은 다를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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