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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해준 Jan 24. 2024

다시 태어나도 우리 - 문창용

티베트 승려 앙뚜와 우르갼의 이야기 

회자정리 거자필반
會者定離 去者必返


학창 시절 한용운 님의 '님의 침묵'에서 배운, 가장 기억에 남는 한자성어이다.

만남에는 반드시 헤어짐이 정해져 있고, 떠남이 있으면 반드시 돌아옴이 있다는.


이것을 말로 설명하면 머리가 이해하지만, 이야기로 보여주면 가슴이 울린다.

<다시 태어나도 우리>는 이를 동자승의 이야기로 보여주는 다큐이다.


낡고 해진 자줏빛 승려복과 반짝반짝 얼룩진 얼굴, 그리고 춥고 척박한 고원의 풍경.

티베트 불교가 고대로부터 이어져오는 인도 라다크의 한 장면이다.


티 없이 천진난만한 동자승 앙뚜와 만면에 하회탈 주름을 지닌 노승 우르갼.

불교 이론 윤회 이런 걸 몰라도, 대자연의 풍광 속에 두 사람이 웃는 모습만 보아도 이 영화의 대부분을 본 것과 같다.



앙뚜는 어릴 때부터 꿈에서 티베트 캄 지방의 사원을 보았다.

그는 전생에 그곳의 고승이었고, 이번 생에 라다크에 태어난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을 찾아 티베트의 사원으로 가야 한다.

그런 앙뚜를 돌보는 것이 의사이자 승려인 우르갼이 하는 일이다.


하지만 조국을 중국에게 빼앗긴 티베트 사원에서는 앙뚜를 찾지 않는다.

전생의 제자들이 앙뚜를 데리러 와야 하는데, 티베트와 인도 사이의 길이 모두 막혀버린 것도 이유이다.

라다크의 초라한 암자에서 하염없이 제자를 기다리는 앙뚜는 좌절감에 화가 나기도 한다.

할아버지 스승 우르갼은 앙뚜를 보듬어주고, 용기를 내라고 한다.


현실에서 앙뚜는 린포체 스님이 아니라, 가난한 동자승일 뿐이다.

그가 마주친 것은 린포체를 믿지 않는 동네 사람들의 힐난과, 옅어지는 전생의 기억이다.

순진무구한 아이는 친구들에게 말한다.


이제 전생의 기억도 희미해져서,
어떤 때는 내가 아무것도 아닌 거 같이 느껴져.


이 다큐는 앙뚜를 신비로운 린포체로 포장하거나, 우르갼을 위대한 스승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그들을 보는 우리의 마음은 꿈에서 본 티베트로 돌아가고픈 앙뚜가 되기도 하고, 앙뚜가 훌륭하게 자라기를 바라며 함께 축구를 하고 돈을 벌어 오는 노승이 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너는 사기꾼이야."라고 비난하는 현실적인 동네 사람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적인 마음은, 북인도 라다크에서 티베트와 맞닿은 시킴 땅까지 두 달의 험난한 여정에 오른 둘의 모습을 보며 옅어지기 시작한다.

버스로 때로 트럭을 잡아타며 낡은 승려복 하나로 시린 눈밭을 가면서도, 따뜻하고 간절하게 두 손 꼭 잡은 그들을 보며.

2500km를 걸어  다다른 티베트 접경 지역에서 '더 이상 갈 수 없다'는 말을 들은 앙뚜는, 티베트를 향해 소라고둥을 분다.

우웅~~~



스승님과 함께가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거예요.
스승님과 있으면 늘 좋았어요.


티베트를 앞에 둔 두 사람이 부둥켜 안고 흘리는 눈물을, 논리는 이해할 수 없다.

저 둘을 어릴 적 동화의 세계를 믿는 어리석은 사람들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보지 않고 믿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추위와 고생에 지치고 살갗은 갈라져도, 그들의 간절한 바람은 소라고둥을 타고 티베트에까지 전해졌을 것이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부탄의 어느 사원으로부터 앙뚜는 린포체 교육을 허락받는다.

노승과 동자승은 그렇게 이별을 하게 된다.


우르갼 : 린포체가 스승으로 자라면
나는 다시 아이가 되겠지요.

앙뚜 : 그때는 제가 스승님을 보살펴야지요.


회자정리 거자필반.

이렇게 헤어지지만, 다시 만날 것이다.

이번 생에 언젠가, 아니면 다시 태어나도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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