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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라우드나인 Aug 02. 2020

젊은 우리가 올드한 결혼을 대하는 자세

- 내 '결혼' 전, 더 큰 '결혼'에 대한 5가지 단상


'결혼'


누구든지, 저 단어를 들으면 각자가 생각하는 이미지가 머릿속에 떠오를 것이다. 

누군가는 환상 가득한 동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고, 혹자는 현실적인 돈 문제가 생각날 수도 있고,

절대 하고 싶지 않은 것이라고 머리를 절레 절레 저을 수도 있을 것이다.


도대체 결혼이 뭐길래 각자에게 수없이 다양한 의미를 가지게 된 걸까.



결혼을 생각하기에는 너무 먼, 내가 아주 어린 나이였을 때부터 결혼이라는 것에 대해 수많은 생각을 했다. 

가깝게는 우리 엄마, 아빠를 보면서, 이모들과 고모들, 친구들의 부모님. 

조금 커서는 직장 선배 부부, 친구의 결혼, 그리고 매거진과 각종 책, 방송에 등장하는 부부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결혼에 대한 나의 확고한 정의와 신념들을 견고하게 쌓아왔던 것 같다.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  

'나는 저렇게는 살지 말아야지' 

 

실제로는 전자보다는 후자의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지만, 

어쨌든 나의 결혼(여기서 결혼은 결혼 생활을 의미한다)은 이러 이러해야 한다는 신념들을 

굉장히 오랫동안 다져왔다. 


생각해보면 결혼이라는 딱 한 단어, 단지 두 글자로 이루어진 이 단어엔 너무나 많은 이야기가 들어있다. 

이렇게나 많은 의미와 과정과 시간과 사람들을 포함하는 단어라니. 


결혼과 관련해 머릿속에 떠오르는 몇 가지 단어와 관련한 생각들을 풀어보려고 한다.


#보수성 #통과의례 #가족집단 #페미니즘 #주체성


#보수성


결혼은 다른 인생의 과정(단계)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젊은 연령대의 사람들이 하는 경우가 많음에도 그것이 가지고 있는 특성은 전혀 젊지 않다. 결혼을 결정하고 살아가는 과정을 지켜봐도 정말 보수적이고 형식적이며 새롭고 진보적인 변화를 좀처럼 허락하지 않는다. 결혼을 하는 사람들은 젊은데 왜 결혼(문화)은 젊지 않을까를 생각해보면, 사실 결혼을 하는 사람들은 결혼식 주인공인 신랑, 신부 말고도 많은 사람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일 거다. 


결혼식을 준비할 때 특히 이 '결혼의 보수성'이라는 게 극적으로 드러나는데, 보통 내 결혼식인데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고 마음대로 한다고 생각해도 사실은 내 마음대로가 아닌 경우가 많다. 만약 주변과 부딪히는 부분이 거의 없고 순탄하게 진행됐다면 본인도 모르게 사회문화적인 요구에 길들여졌거나, 아니면 본인의 주변 환경이 정말 개방적인 경우가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통과의례


사람은, 특히 한국 사람은 살면서 몇 번의 발달단계를 거치게 되고 그 안의 통과의례들은 보통 꼭 거쳐야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시간이 갈수록 단계들을 생략하는 경우도 많지만 그렇다고 해서 타인의 평가에서 자유로워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예를 들어, 대학교 입학 및 졸업-취업-결혼-출산-육아 가 대표적인 단계에 속할 것이다. 


사실 인류학도로서, 일련의 사회문화적 관습에 대한 다양한 연구를 접하면서 더더욱 결혼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나도 모르게 더 신중하게 단어를 고르고, 혹시 내가 의도하지 않은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한다. '나는 30이 되기 전에 결혼하고 싶어'라는 말을 친구들에게 할 때도 그렇다. 혹시나 '여자들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사이에 결혼하기에 적정한 나이이고, 그 때를 넘기면 뭔가 스스로도, 가족들도 거쳐야 할 과정을 아직 완료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니까, 너도 어쩔 수 없이 그런 시선 속에서 자유롭지 않은 사람이구나?'라고 마음 속으로 나를 판단하고 있을까봐 항상 '나는 30대가 되기 전에 꼭 결혼하고 싶어'라는 말을 하면서 그 이유에 대해서 '너가 날 판단하기 전에 얼른 왜 그런지 설명해줄게'라는 태도로 주저리 주저리 말을 덧붙이곤 한다. 


결혼은 남성, 여성 모두에게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하는 것이 정상적이고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대표적인 통과 의례이다. 최근에는 결혼하는 연령대도 점점 늦어지고 비혼주의자들도 늘어나고 있지만, 그 사람들이 주변과 고군분투한 결과이지 사회 전반적인 인식이 바뀌지는 않았다. 여전히 명절 때마다 '만나는 사람은 있냐?' 'oo이는 다 좋은데, 이제 결혼만 하면 되겠다' 라던지 '지금도 늦었는데, 애는 언제 낳으려고 하냐'라던지 끊임없는 정서적 폭력이 성행한다. 누군가를 걱정하고 위하는 좋은 마음에서 묻는 질문들이겠지만, 저 질문들 바탕에는 결혼이 당연히 어느 정도의 나이대 이상이 되면 해야 하는 건데 '안 했다'가 아니라 '못 했다'고 생각하는 안타까움이 깔려 있다. 흔히 말하는 적령기가 지나도 결혼을 안 한 사람은 분명 하자가 있거나 배우자를 못 만나는 중대한 단점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결혼은 육아와 마찬가지로, 사회와 국가를 위해서 해야 하는 의무가 아니라 본인의 삶 속에서 선택해야 하는 중요한 지점이다. 결혼의 방식과 시기도 마찬가지이다.    



#가족집단


결혼 생활이 어려움을 겪거나 혹은 끝을 맺게 되는 많은 경우들을 보면, 그 원인이 결혼 당사자 두 사람일 때도 있지만, 결혼을 하면서 함께 따라오는 가족이 원인인 경우가 꽤 많다. 가족을 제외한 다른 부분(보통 문제)은 결혼 당사자들이 얼마나 현명하게 서로를 배려하는지에 따라 그리 어렵지 않게 극복할 수 있다. 그러나 가족 관련 문제는 당사자들이 쉽게 객관화할 수 없는 지점이며, 예상하기도 어렵다. 이성적인 부분이 아니고 감정적인 측면이 많아 논리적인 토론으로는 해결할 수도 없다. 해결할 수 없다고 해서 바로 문제의 원인을 제거하거나 벗어날 수도 없다. 그래서 가족의 문제가 가장 나에게는 두려운 부분이었다. 


과거부터 대부분 모든 사회에서 역사적으로 결혼은 두 사람을 매개로 한 가족 집단의 결합이었고 사랑이라는 감정보다는 서로의 결합을 통해서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과 이익에 집중했다. 사실 현대사회에서는 감정이라는 측면이 많이 강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대의 집안, 스펙을 따지고 예물, 예단을 주고 받는 절차들을 보면 '사랑'이 결혼의 유일한 이유가 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구나 싶다. 


몇십년을 각자의 방식, 환경,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온 두 사람과 또 두 가족이 합쳐지는 과정은 절대 쉬울 수 없다. 만약 당신에게 쉽다면 정말 두 집안 모두가 성인 같은 인격을 갖췄거나(거의 없다), 상대에게 기대하는 것이 없거나 한 쪽이 다른 쪽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정말 찰떡같이 잘 맞는 남자친구와도 의견을 좁히는 과정이 어려운데, 사랑이라는 감정이 결여된 가족끼리는 더더욱 그 의견을 좁히기 어려울 것이다. 조화로운 가족 결합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신랑-신부, 이 부부가 중심을 바로 잡아야 한다. 각자 원래 속해있던 가족에서 이제는 벗어나서 본인들의 가정을 중심으로 원칙과 방식을 만들어야 한다.   



#페미니즘


사실 결혼 관련한 페미니즘 이슈를 생각하다 보면, 어떤 부분에서는 벗어나지 못하는 혹은 굳이 벗어나고 싶지 않은 스스로를 보면 자책감이 들기도 하고 혼란스러운 부분이 많다. 결혼과 페미니즘을 연결해서 생각해보지 않았다면, '도대체 결혼이 페미니즘이랑 무슨 상관이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결혼의 거의 모든 면이 페미니즘과 직결되어 있다. 


위에서 말한 가족이 결합도 사실은 동등한 두 집안의 결합이라기보다는 남자의 집안으로 여자가 일원으로 들어간다는 의미가 강하게 내포되어 있다. '시집 간다' '시집 보낸다' 등의 표현에서도 대놓고 드러나있을 뿐 아니라 예물과 예단 등도 과거의 신부대와 유사한 의미를 가진다. 사용하는 사람은 전혀 악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저런 표현들을 들으면 마음이 무거워지고 불편하다. 내가 이런 사소한 거 하나 하나에 파이터처럼 달려드는 건 너무 융통성 없어 보일까 싶은 마음과 이렇게 타협하다 보면 내 신념과 정체성을 지키는 게 어렵지 않을까 하는 갈등도 하게 된다. 


굉장히 역설적이지만, 나의 가장 사적인 결혼(그리고 그로 인해 탄생하는 새로운 가족)에서 페미니즘은 가장 기를 펴기가 어렵다. 오히려 친구 관계나 연인관계, 직장에서보다 어려울 때가 있다. 너무 오래되고 견고해서 틈을 내기도 어려울 뿐더라 그 틈을 내는 과정에서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다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나의 삶의 너무 큰 부분에서 나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한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목표는 바뀌지 않아야 한다. 대신 좋은 방법을 생각하기로 마음 먹었다. 


모든 문제가 그러하듯, 사람이 만들어가는 일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이 든다. 대신 사소한 것 하나 하나를 고심해서 결정하고 적어도 나의 방식이 더 큰 고정관념을 만들어내지 않는 방향에 기여하기를 목표로 삼고 있다. 



#주체성


주체적이라는 건 도대체 뭘까. 


예비 신부들끼리 모여있는 단톡방이나 커뮤니티에서 얘기들을 듣다보면, 가성비 좋고 합리적으로 하는 게 똑똑하다고 평가받고, 결혼을 준비하면서 거의 유일한 미덕으로 여겨지는 것 같다. 물론 나처럼 다 하나 하나 발품을 팔아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지 않거나 전형적인 결혼식을 탈피하고자 고민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그런 분들이 특이한 케이스로 다뤄진다는 점을 보면 결혼이 요즘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추측해 볼 수 있다. 


어느 순간 부터 결혼식은 해야 하는 형식적인 의례로서의 의미가 비중을 크게 차지하고, 결혼식의 주인공인 신랑 신부의 정체성을 보기는 정말 어렵다. 언제, 어디서 하는 결혼식을 가도 기억에 남는 것은 하나도 없다. 신부가 어떤 드레스를 입었었고, 어떤 식순으로 진행이 되었었는지, 그 둘이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지를 기억 하기란 쉽지 않다. '주체성'이라는 소제목을 달아두긴 했지만 정말 가능하긴 한건지 의문도 계속 든다. 본인의 바쁜 삶을 챙기기에도 체력과 감정이 모자라는데, 정말 100가지가 넘는 선택지들을 일일이 관심을 가지고 자신의 색을 입힌다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측면이 많다는 회의적인 생각이 든다.


결혼 관련 무수한 업체들도 개개인들의 주체성이 비집고 들어오는 것을 쉽게 허용하지 않는다. 국내 결혼식 자체의 큰 틀이 정해져 있는 상태에서 소비자들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거라곤 업체 제휴를 통한 옵션만 선택하는 것이다. 소비자들이 그 틀을 벗어나서 직접 합리적이고 새로운 방식을 추구하는 순간, 웨딩 업체들이 그 속도와 다양성을 따라가기란 너무 어렵기 때문에, '웨딩 산업'은 현대사회의 특성에 걸맞지 않게 정말 견고하게 폐쇄적이다. 


그럼에도 나는 결혼이라는 중요한 시기와 과정 속에서 나의 주체성을 끝까지 밀고 나가고 싶다. 결과적으로 좀 덜 세련되고 고되더라도 남의 손에 맡기지 않고 온전히 나와 내 반려자의 브랜딩이 담긴 결혼을 준비하고 싶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본인의 주체성을 조금이라도 더 담을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내 예비 신랑신부들에게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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