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에서 우리가 보는 것들 대부분은 힌두교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거나 종교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발리에 오면 종교의 흔적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나는 개인적으로 종교를 믿고 있지 않지만 종교라는 영역과 종교인, 종교 행위에 대해서는 아주 큰 관심과 흥미를 느낀다. 그리고 거의 모든 여행지들의 음식, 건축물, 문화, 예술작품 등 거의 모든 것들이 종교와 밀접하게 연관을 맺고 있기 때문에 종교를 아예 배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발리에서 외부인인 내게 그들의 종교적 신념과 생활을 평가하거나 판단하기에는 지식과 경험이 턱없이 부족하다. 실제로 그들이 믿는 '발리니스 힌두교'에 대해 깊이 알게 된다면 지금 여기에 쓴 내용들이 무색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는 발리의 종교는 '일상의 아름다움'이었다. 그리고 그 일상의 아름다움은 발리인들이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매일 하루를 시작하는 의식은 바로 '차낭 사리'에서 온다.
발리 곳곳에서는 '차낭 사리'라고 불리는 독특한 종교 행위(물)을 볼 수 있다. 바나나 잎(혹은 코코넛 잎)으로 만든 접시 위에, 다양한 색깔의 꽃들과 향, 약간의 밥풀이 공통적으로 들어간다. 멀리서 보면 다 비슷해보일 수 있지만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면 그 모양과 구성이 천차만별이다. 보통 접시는 어른 손바닥 만한 것이 제일 많은데 그 2배 정도의 크기가 되는 큰 것도 있다. 모양은 단순한 사각형, 둥그런 꽃모양, 배모양 등등 여러가지가 있다. 그리고 위에 놓이는 꽃들은 기본적으로 3-4가지 정도 종류가 포함되며 메리골드 같은 제철 꽃들이 추가될 때도 있다. 이 다양한 빛깔의 꽃들은 눈으로 먹는 비빔밥같이 생기기도 했다. 비빔밥에서 계란이 올라가는 자리에는 보통 '판단(Pandan)'으로 불리는 초록색 시금치 같은 잎이 올라가며 이 꽃들은 모두 각기 다른 신의 이름들을 대변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 외에도 해당 차낭사리를 올리는 가게의 특색이 묻어나는 것들이 첨가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식당에서는 밥풀이나 그 날 한 음식 조금, 카페에서는 크래커, 캔디, 젤리를 올리기도 하고 스타벅스에서는 아침에 가장 먼저 뽑은 커피 반 컵이 올려져 있기도 하다. 이 차낭사리에 올라가는 음식은 누구든지 먹어도 되며 여기서 말하는 '누구든지'는 발리의 길에 사는 수많은 고양이, 강아지 들이다. 이들이 먹고 나면 밤에 발리인들은 이 껍질들을 수거한다.
인도네시아 인구의 85%는 이슬람교를 믿지만 여기 발리 인구의 대다수는 힌두교를 믿는다. 하지만 인도의 힌두교와는 정말 다르다.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인두의 힌두교에 발리의 애니미즘, 조상 숭배 등 발리의 토착신앙과 결합되어 '아가마 힌두 다르마' 혹은 '발리니즈 힌두교'라는 발리 섬 특유의 종교가 존재한다. 이들에게 종교는 원할 때, 필요할 때 찾는 것이 아니다. 종교는 그저 이들의 일상 자체이며 삶을 살아가는 지침이기도 하다. 그 중에 우리가 쉽게 관찰할 수 있는 행위가 '차낭'이다.
발리인들은 보통 하루에 3번(아침 9시, 12시, 오후 6시 정도) 차낭을 두면서 무사태평을 빈다. 실제로 에어비앤비에 머물 때 매일 아침마다 우리가 머무는 방에 달린 창문 곳곳에 호스트가 갓 향을 피운 신선한 차낭 사리를 놓으러 오는 모습을 보았다. 비가 무섭게 내리는 날에도 빠르게 걸음을 하는 법 없이 우산을 들고 여느 때처럼 차낭 사리를 두고는 돌아갔다.
발리에서는 착한 신과 악한 신을 인정하며 신들 모두를 모신다. 여행객들은 이 꽃 접시를 통틀어 차낭으로 알고 있기도 하지만, 실제로 이 의식은 두 가지로 구분된다. 착한 신에게는 차낭(Chnang)을 바치고 악한 신에게는 차루(Charu)를 바치는데 차낭은 제단 위에 올려놓으며 차루는 땅 위에 놓는다. 가게나 집들에 들어가서 관찰해보면 벽이나 문 쪽에 높게 마련된 작은 제단이 있을 것이다. 때로는 동상 같은 것들과 결합하여 제단이 설치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제단에 올리는 것이 차낭, 길 바닥이나 문 앞 등에 놓는 것은 차루가 된다. 더 엄격하게는 차낭은 주로 아침에, 차루는 주로 저녁에 올리며 올리는 재료 또한 구분을 한다.
발리인들이 거주하고 있는 실제 가정집 말고도 모든 호텔, 에어비앤비를 비롯한 여행객(외부인)을 대상으로 한 숙박업체들의 창문, 대문, 계단들에는 신들꼐 바치는 아침 제물, 차낭 사리가 놓여져 있다. 사는 사람들이 많은 곳일수록 차낭사리의 수도 비례해서 많아지므로 거의 걸음 걸음마다 채일 지경이다. 현지인들의 공간 뿐 아니라 아예 다른 국가의 프렌차이즈 상점들(스타벅스, 맥도날드 등)과 자동차, 오토바이까지 모든 일상의 공간에 이 차낭사리가 놓여진다는 것은 발리인들의 일상에 얼마나 종교가 깊게 관여하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는 지점이다. 여담이지만 정말 오토바이에는 그 차낭 사리를 어떻게 붙였는지? 매달았는지? 궁금할 지경이었고 저렇게까지 필사적으로 모든 공간에 차낭 사리를 둘 정도로 이들에게 종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영역이라는 막연한 생각도 들었다. 발리에 머물면서 매일 아침 길거리를 꽃으로 뒤덮는 차낭 사리들을 보면서 어떻게 저걸 평생 살면서 매일 할 수 있을까 새삼 대단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매일 매일 꾸준히 의식적으로 하는 행위가 없는 나이기에 더더욱 대단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보태서 차낭사리에 대한 개인적인 궁금함이 많이 있었는데 이를테면 손재주가 안좋은 사람들도 있을 거고, 아무리 숙달된다고 해도 만드는 데 시간이 걸릴 것 같은데 어떻게 발리의 모든 사람들이 저렇게 일정한 규격과 모양으로 저 차낭 사리를 매일 만드는 것일까, 또는 꽃과 식물의 수명이 있을탠데 그럼 하루 이틀 간격으로 생화를 사오는 것일까 하는 것들이었다. 유심히 관찰해본 결과 동네마다 시장이나 특정 가게에서 전문적으로 차낭 사리를 만드는 업체가 있고 각 개인 가정집에서는 몇일에 한 번씩 원하는 양 만큼을 공급받는 것 같았다. 기회가 되면 이 차낭 사리의 의미와 유통, 발전 과정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주 작은 행위이지만 발리 사람들의 아침을 열고 밤을 닫는 의식이기에 이 작은 꽃 바구니는 나의 생각보다도 더 많은 역사, 공동체, 지역, 의식, 문화를 담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발리에 머무는 동안 나는 평소보다 바닥을 많이 보며 걸었다. 길거리에 있는 수많은 차낭사리들을 내가 걷다가 실수로 조금 밟거나 친다고 해도 큰 상관은 없겠지만 누군가의 마음이 담긴 것을 내가 흐트러트렸다는 사실만으로 모종의 죄책감과 불길함이 마음을 사로잡을 것 같다는 불안이 있었다. 차낭 사리에 대한 파편적인 정보만을 알고 있는 나이지만, 차낭 사리는 발리인들에게 '일상을 시작하는 마음가짐'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일어나서 양치를 하고 밖에 나가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신발을 신는 행위처럼, 아침에 일어나면 자신들의 세상에 함께 하는 신들을 살피고 자신의 하루를 무사히 보내기 위해 발리인들에게 차낭은 밟아야 하는 수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