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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드방(Devant)과 턴아웃: 시적 허용 (1)

by Mulberrina

발레 동작은 발바닥이 바닥에 붙어 있는 서 있는 다리(standing leg)와 지면에서 떨어진 일 하는 다리(working leg)의 움직임으로 구성된다. 발바닥이 지면에서 떨어지는 순간부터는 마찰력을 이용할 수 없기 때문에 눈속임 없이 오롯이 내가 가진 턴아웃의 각도를 보여주게 된다. 물론 골반을 살짝 틀거나 몸 방향을 바꿔서 조금 더 턴아웃이 잘 되어 보이게 만들 수 있지만, 마찰력을 사용해서 추가적인 비틀림을 만들 수 없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앞, 옆, 뒤 방향으로 다리를 들 때 각각 턴아웃이 어려운 이유가 다양하게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앞으로 다리를 들 때 턴아웃이 제한되는 이유를 살펴보려고 한다. 앞으로 살펴볼 내용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앞으로 다리를 들 때 90도까지는 턴아웃을 유지할 수 있지만,

▶그 이상 각도로 들기 위해서는 거의 일자(parallel)에 가깝게 턴인 상태가 되어야 한다.




다리를 앞으로 높이 들기 위해서 턴아웃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첫 번째 이유는 기존에 턴아웃을 위해 동원했던 근육을 더 이상 턴아웃 근육으로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5번 발포지션으로 서 있다가 다리를 앞쪽으로 를르베랑(releve lent)으로 드는 상황을 상상해 보자. 5번으로 서 있을 때, 즉 고관절 신전 상태에서 턴아웃을 위해 사용하는 근육들은 엉덩이 근육(심부외회전근, 대둔근), 내전근, 봉공근, 햄스트링(대퇴이두근)이다. 그런데 이 근육들은 다리를 앞으로 들면서, 즉 고관절 굴곡 상태에서는 턴아웃 근육으로서 작용하지 못하게 된다. 각 근육에 대해 하나씩 살펴보겠다.



① 턴아웃을 하는 데 특히 중요한 심부외회전근 중에서도 이상근(piriformis)은 다리를 앞으로 높게 든 상태에서 오히려 고관절을 내회전 시킨다. 이와 같이 근육이 뼈에 붙는 위치는 동일한데, 관절의 운동 상태가 변하면서 근육의 역할이 변하는 것을 '근육 작용의 역전 현상'이라고 부른다. 이상근은 엉치뼈(천골)에서 시작해서 대퇴골의 대전자의 위쪽에 붙기 때문에 고관절이 굽혀지면서 아래 그림과 같이 그 작용이 달라지게 된다.

빨간색 화살표: 다리를 펴고 있을 때 이상근은 고관절 외회전을 일으킨다. 파란색 화살표: 다리를 굽혔을 때 이상근은 고관절 내회전을 일으킨다

https://www.youtube.com/watch?v=vGZPw6ARj0s



② 턴아웃을 위해 대둔근만을 너무 강하게 수축하면 골반이 후방 경사 되면서 오히려 턴아웃을 방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둔근은 반드시 충분히 사용되어야 하는 중요한 외회전근이다. 대둔근은 기본적으로 고관절 신전을 시키는 근육이기 때문에 다리를 앞으로 드는(=고관절 굴곡) 움직임을 할 때는 방해가 될 수 있다. 즉 앞으로 다리를 드는 쪽의 대둔근은 더 이상 턴아웃을 위해 효과적으로 동원될 수 없다.



③ 내전근은 턴아웃을 하는데 동원되는 동시에 다리를 앞으로 드는 작용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다리 각도가 50~70도를 넘어가면 내전근의 작용은 오히려 다리를 아래로 내리려는 성질로 바뀌게 된다. 아래 복잡해 보이는 그림에서 하늘색 선으로 표시된 AL은 장내전근(Adductor longus)을 표시한 것이다. 대퇴골 머리 중심에 표시된 까만 점을 회전축으로 해서 다리를 앞으로 들어 올릴 때, 50도까지는 아직 장내전근이 수축하면 다리를 위로 들어 올릴 여력이 남아있지만, 70도 이후에서는 장내전근이 수축하면 오히려 다리를 아래로 내리는 방향의 힘이 생기게 된다. 이것이 바로 바뜨망 탄듀, 제떼, 퐁듀 정도까지의 드방 높이에서 내전근의 작용을 느낄 수 있지만, 그 이상 다리를 올릴 때 내전근에서 힘을 잘 느끼지 못하게 되는 이유다. 내전근의 힘이 부족해서, 턴아웃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원래 근육이 붙은 위치와 방향 때문에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④ 봉공근도 내전근과 마찬가지로 턴아웃을 유지하는 동시에 고관절 굴곡(=드방)을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봉공근이 붙어있는 위치를 고려하면 90도 이상에서는 힘을 내지 못하며, 그나마도 60~70도 이상이 되면 점점 힘을 잃어간다고 한다.



⑤ 허벅지 뒤쪽의 햄스트링 중 대퇴이두근은 서 있을 때 턴아웃에 동원될 수 있다. 이는 2차적인 외회전근으로 분류되는데, 턴아웃을 위해 일부러 허벅지 뒤쪽에 힘을 준다기보다는 골반을 바르게 정렬하고 둔근을 제대로 동원하면 저절로 힘이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대퇴이두근에 이렇게 힘이 들어간 상태에서는 다리를 앞으로 제대로 들 수 없다. 다리를 앞으로 높이 들려면 반드시 햄스트링은 충분히 이완되어야 한다.



1번 혹은 5번으로 서 있을 때 턴아웃을 위해 열심히 동원하던 근육들은 다리를 앞으로 들면서 하나둘씩 그 효력을 잃어버린다. 그렇다면 다리를 앞으로 들었을 때도 턴아웃을 시킬 수 있는 근육은 무엇일까? [Dance Anatomy and Kinesiolosy]에서는 하부 심부외회전근을 단련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심부외회전근 중 가장 아래쪽에 위치하는 대퇴방형근(넙다리네모근, quadriceps femoris)은 드방에서 턴아웃을 유지하는데 동원되며, 대퇴골의 대전자를 아래쪽으로 내린다는 느낌을 갖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설명한다. (이상근은 대전자의 위쪽 부위에 붙지만, 대퇴방형근은 그보다 아래쪽에 위치해서 대전자의 뒤쪽면에 붙기 때문에 다리를 앞으로 든 상태에서도 외회전에 관여할 수 있다.) 다리를 낮은 각도로 앞으로 든 채로 1mm만 더 외회전 시키려고 하면 엉덩이의 가장 아래쪽 부분, 엉덩이보다는 거의 허벅지 부위로 느껴질 정도로 아랫부분에 지긋이 힘이 들어오는 것이 느껴진다. 이것이 바로 대퇴방형근이 작용하는 것이다.

왼쪽 그림 하늘색 막대기: 대퇴방형근. 노란색 화살표 방향으로 수축 시, 다리를 앞으로 든 상태에서 파란색 화살표 방향으로 대퇴골 외회전. -유튜브 <Anatomy lab>



[카판지 기능 해부학]에서는 대퇴방형근에서도 '근육 작용의 역전'이 일어난다고 설명한다. 다리를 곧게 편 상태를 기준으로, 뒤로 들면 굽힘근의 역할을 하고, 앞으로 들면 폄근의 역할을 하게 된다. 드방으로 다리를 든 상태에서 대퇴방형근을 활성화하면 외회전이 일어날 수는 있지만 동시에 다리를 아래로 내리는 힘이 발생하게 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대퇴방형근을 드방 턴아웃에 동원하는 것도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F=고관절 굴곡 상태 (다리를 앞으로 든 상태): 대퇴방형근의 작용은 빨간색 화살표와 같이 고관절 신전이다. 즉 다리를 아래로 내리려는 방향이다.



여담으로,

☞심부외회전근 중 가장 위쪽에 위치하는 이상근(piriformis)은 주로 고관절 신전 상태에서 외회전에 관여하고 (=데리에, 아라베스크에서의 턴아웃)

☞가운데에 위치하는 상쌍자근(위쌍둥이근, gemellus superior), 하쌍자근(아래쌍둥이근, gemellus inferior), 내폐쇄근(속폐쇄근, obturator internus)은 고관절 굴곡 상태에서 다리를 옆으로 보내는 수평외전에 관여한다. 이는 다리를 앞으로 든 상태에서 옆으로 보내는 그랑 롱드잠(Rond de jambe)을 할 때 주로 사용된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는 각 근육들이 단독으로 사용될 수는 없고 복합적으로 사용된다.


드방4.jpg
이상근(piriformis)은 고관절 신전 상태에서 고관절 외회전에 관여한다. -유튜브 채널 <Anatomy lab>
내폐쇄근과 쌍둥이근은 다리를 앞으로 든 상태에서 수평외회전에 관여한다. 앞에서 옆으로 그랑 롱드잠을 하는 상황과 같다. -유튜브 채널 <Anatomy lab>




다음 글에서는 계속해서 드방으로 높이 다리를 들 때 턴아웃을 유지하기 어려운 두 번째 이유를 알아보고, 실제 프로 무용수들의 드방은 어떤지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턴아웃이 잘 되는 것이 정말로 다리의 가동 범위를 크게 해 주는지, 즉 다리를 높게 드는 것에 유리한지에 대해서도 살펴보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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