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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정폐쇄 Mar 02. 2019

무비패스 (0) - <에브리바디스 파인>

* 무비패스 도전!


영화 <에브리바디스 파인>에 대한 미약한 수준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8개월 전. 아내와 사별 한 프랭크는 자녀들과 함께 할 근사한 저녁을 준비 중이다. 그런데 오기로 약속한 자녀들이 하나 둘 오지 못하게 되고, 프랭크는 텅 빈 집에 홀로 남게 된다. 적막만이 감도는 썰렁한 집안. 순간, 지독한 외로움이 몰려온 프랭크는 오지 못한 아이들을 직접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선다. 장성한 자녀를 여전히  ‘아이들(children)’ 이라 부르는 프랭크는 뉴욕, 시카고, 덴버, LA에 살고 있는 자녀를 차례로 만나는데. 프랭크는 아이들이 자신에게 무언가 숨기고 있음을 눈치챈다.


사랑하기 때문에 해야만 했던, 가족간의 하얀 거짓말에 대한 이야기. 영화 <에브리바디스 파인> 이다.



영화 <에브리바디스 파인> (2009)



제일 가깝지만. 가장 진실되지 못한 관계. 가족.


우리는 우리 가족에게 얼마만큼 솔직할 수 있을까. 잘 지내고 있냐는 물음에 항상 그렇다고는 이야기 하지만 당신은 정말 아무런 아픔 없이 잘 지내고 있는가? 혹시 내 부모님이 아니면 내 형제자매가 걱정할까봐 나의 안부에 대해서 거짓말을 한 적은 없는가?


권위적이었던 아버지에 대해 적당한 불만도 있고, 왠지 자랑스러운 자녀로 성장하지 못한 것 같은 미안함도 한 줌 가지고 있는 우리는 왜 매번 그 질문에 진실된 답을 하지 못하는 걸까. 이 영화는 바로 이러한 질문에서 시작된다.


 

훌륭한 배우들의 멋진 앙상블.    


로버트 드니로, 케이트 베킨세일, 드류 배리모어. 그리고 훗날 영화 <쓰리빌보드>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거머쥔 샘록웰까지. 힘을 빼고 자연스러운 연기를 하고 있는 이 연기 고수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정말 마법처럼 한순간에 감정이입이 되어 버린다. 더욱이 아빠 프랭크(로버트 드니로)의 마음도. 그의 자녀인 에이미(케이트 베킨세일), 로버트(샘록웰), 로지(드류 베리모어)의 마음도 모두 이해가 가다보니, 관객으로서는 정말 다채로운 감정을 경험할 수 있다. 또한 감정의 과잉이나 억지로 사람을 자극하는 신파 장면 하나 없는 담백한 연기로만 채워진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어렵지 않게 실제 우리 가족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거기에 커크 존스의 섬세한 연출까지.


프랭크역을 맡은 로버트 드니로(좌)와 연출자 커크 존스(우)


너무 일상적이어서 얼핏 지루할 것 같지만 영화는 그리 잔잔하게 흘러가지만은 않는다. 행방이 묘연한 첫째 아들 데이비드의 사연은 영화를 보는 내내 긴장감을 유지하는 하나의 축으로 작용한다. 그럼에도 커크 존스는 데이비드의 사연을 숨기려는 자녀들과 그것을 밝히려는 아버지 프랭크의 모습을 마치 수수께끼 풀어가 듯, 자극적으로 그리지 않고 오히려 따듯한 시선으로 묘사한다. 나의 말 한마디가 상대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까 싶어 말 한마디 한마디를 조심스레 건네는 이들의 사려깊은 행동은 보는 이들의 가슴을 알싸하게 만든다.


영화에서는 프랭크와 대립하는 각각의 자녀들이 순차적으로 등장하게 되는데, 각 인물들이 등장할 때도 감독의 연출은 빛을 발한다. 장성한 자녀들을 여전히 ‘아이들(children)’ 이라 부르는 프랭크의 내면이 시각적으로 표현되는 멋진 장면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프랭크, 그러니까 로버트 드니로의 관록있는 표정 연기가 더해져 매우 인상적인 장면으로 완성되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주인공 프랭크의 인물 설계에 있다. 그는 기차역 역무원에게 묻지도 않은 자기 자녀의 자랑을 늘어놓고, 작은 필름카메라를 하나 들고다니며 찍고 싶은 사진이 있으면 공중도덕 따위는 무시한 채 사진을 찍어댄다. 어디 그 뿐인가. 아무대나 퍼질러 앉고, 손자 앞에서는 거드름을 피운다. 정말 주책바가지에 눈치도 없는 인물. 그냥 특별할 것 없는 우리 주변에 있는 흔해 빠진 아저씨의 모습이다. 여기에 감독은 그렇게 단순 노동자로 평생을 살아온 프랭크를 상징하는 어떤 상징물을 영화에 심어놓는데, 이 상징물이 큰 울림을 준다.  대단히 심오하진 않으나 소박해서 더 마음에 와 닿는다. 이것이 무엇인지는 영화를 통해 직접 확인해보시길 바란다.

 


내가 뽑은 명장면 (강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디론가 전화를 하고 있는 프랭크


이런저런 고초를 당한 프랭크. 그러나 문득 공중전화가 보이자 사별 한 아내에게 전화를 건다. (정확히는 아내의 목소리가 녹음된 자동응답기에 전화를 건다. 그곳에 유일하게 아내의 목소리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감독은 프랭크가 무슨 말을 하는지 관객에게 들려주지 않는다. 그는 과연 죽은 아내에게 무슨 말을 했을까. 방금 노상에서 강도를 만났다는 이야기? 아니면 아이들이 계속 나한테 거짓말만 하는데, 도무지 다가갈 방법을 모르겠다는 이야기? 그것도 아니라면. 지금 당신이 너무 보고 싶다는 이야기?


후에 프랭크는 막내 딸 로지에게 이런 푸념을 들어놓는다. "니들이 집에 전화해서 내가 받으면, 뭐라고 했는지 기억 나? '아빠. 엄마 좀 바꿔주세요.' 였어. 니들이 나한테 한 말이라고는 고작 그것 뿐이었다고."


자녀들 앞에서 늘 엄격한 모습만을 보여왔던 프랭크.

도대체, 그는 얼마나 외로웠던 것일까.


 

그럼에도, 우리는. "에브리바디스 파인"


정말 지긋지긋하고, 때론 창피하기도 하고, 가끔 귀찮을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아픔보다, 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보다 더 가슴 아파할 그의 마음이 더 신경쓰인다면. 잘 지내냐는 그의 질문에 우리는 이렇게 대답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말은 환하게 웃으며 건넬수록 더욱 효과가 좋아진다.


네. 우린 모두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당신도 그러하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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