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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정폐쇄 May 12. 2019

리셋 (1)

1. 2월 초에 첫번째 시높을 쓰고 난 이후 정신없는 일들이 많았다. 집에 일이 좀 있어서 지방을 몇 번 왔다갔다 하고, 치아에 문제가 생겨 치과에 몇 번 왔다갔다 하고, 부쩍 바빠진 회사일에 멘탈이 몇 번 왔다갔다 하다보니 벌써 5월 중순이 되었다. 해매다 이 때 즈음이면, 설악산 한계령에서 시작해 대청봉까지 혼자 등산을 갔었는데. 올해는 못가겠다. 치과 수술 받아야된다.


2. 치아는 정말 신경을 쓴다고 했는데 이게 정말 쉽지가 않더라. 치근낭? 뭐 암튼. 겉은 멀쩡한데, 잇몸 안쪽 뼈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뼈를 이식하는 수술을 해야 하는데,  이게 또 전신마취를 하고나서 진행을 해야 하는 수술이란다. 그래서 내 몸이 정말 전신마취를 해도 되는 몸인지 확인을 위해 몇가지 검사(혈액,심전도,흉부 등등)를 했는데, 얼레? 심장에 뭔가 이상이 발견됐다고 추가 검사를 받으라네? 그래서 또 진료를 받았더니, 큰 문제는 아닌 것 같지만 일단 내 심장이 정상은 아니라고 한다. "너를 만난 순간부터 이미 내 심장은 정상이 아니었어."라고 와이프한테 농을 치긴 했는데 솔직히 좀 겁이 난다. 건강검진 제대로 한번 받아야겠다. 오장육부 모두 탈탈 털어봐야지. 30대 중반이 넘어가면, 특히 나처럼 배가 뽈록 튀어나온 사람들은, 정말 언제 급사 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라고 하지 않는가. 암튼 그건 그렇고 일단 치근낭인가 뭔가 부터 해결하자. 아이고. 와이프 몰래 오락기 사려고 모아 놓은 돈 다 털리네. 이래서 오락기는 언제 사나.


3. 회사 연봉협상도 있었다. 연봉협상을 할 때마다 난 정말 고민이 된다. 무턱대고 인상을 요구하고 싶지만, 연봉이 인상되면 그만큼 또 책임이 따라 붙게된다. 난 그게 싫다. 왜? 난 언더커버 작가니까.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지, 회사원이 아니니까. 그런데 연봉은 이상되었으면 좋겠고. 암튼 뭔가 좀 애매하다. 더이상 나의 업무도 늘어나지 않고(그러니까 지금처럼 칼퇴가 보장되고), 적절히 연봉도 인상되는.. 뭐랄까 조금은 아사모사한 선에서 협상이 마무리 됐다. 20대때는 뭔가 확실하고 똑부러지는게 좋았는데, 30대 중반이 되고 나니까 이젠 좀 아사모사한게 좋아진다. 좋게 말하면 유연해진거고, 나쁘게 말하면 능구렁이가 되어가는거겠지.


4. 서론이 길었다. 암튼 이래저래 약 3개월 가량 작품과 떨어져 있다보니 내가 이번 작품의 맥을 잘못 잡은게 제대로 보였다. 그건 내가 이번 작품도 너무 착하게 접근하려 했다는 점이다. 착하다... 이전 작품인 <무악동>을 쓰고 난 후 내가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가 바로 "착하다"라는 거였다. 이 말이 칭찬일까, 욕일까 정말 알 수가 없었는데, 장고 끝에 내린 걸론은 그게 욕이라는 거다. 물론 내 작품을 "착하다"라고 말한 사람의 속내는 칭찬이었을 지언정, 작가는 그걸 칭찬으로 받아들이면 안된다. 작품이 "착하다"라는 건,  곧 "극성이 없다", "긴장감이 부족하다", "주인공이 받는 시련이 약하다"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작품이 착하면 그냥 스윽- 시작했다가, 스윽- 끝나는 이야기가 된다. 주인공이 죽도록 고생하지도 않고, 주인공의 갈등이 최고조로 폭발하지도 않게 된다. 주인공을 괴롭힐 수록, 못살게 굴수록 작품이 재밌어지는데 그러질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 맞다. 전작인 <무악동>의 단점은 분명 그것이었다. 인정! 그리고 난 그것과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뻔 했다. 그래서 기초 핵심만 남기고 다 뒤집고 있는 중이다. 물론, 이야기가 선한 에너지를 품고 있을 수는 있다. 이야기의 테마가 어떤 선함을 이야기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주인공한테는 그러면 안된다. 다른건 몰라도 작가는 자기 작품의 주인공한테는 정말 악독하게 굴어야 한다.


5. 우리 롯데자이언츠가 완전 달라졌다. 예전엔 여름이 넘어갈 수록 힘이 많이 빠졌는데, 이젠 봄부터 시합을 아예 다 말아먹고 있다. 이기다가도 말아먹고, 지고 있으면 더 말아먹고, 에이스 투수가 나와도 말아먹고, 슈퍼 루키가 나와도 말아먹고, 서울에서 시합해도 말아먹고, 대전에서 시합해도 말아먹고, 부산에서 시합해도 말아먹고, 화요일에도 말아먹고, 수요일에도 말아먹고, 심지어 어린이 날에 그 많은 어린이 팬들 앞에서도 말아먹더라. 아마도 언젠가 롯데가 국밥집을 런칭하는 날. 국밥집 모델로 자이언츠 선수들을 기용하면 대박을 칠 것이다. 아이고 롯데야. 그래도 난 롯데자이언츠를 사랑한다. 미우나 고우나 함 끝까지 가보자. 그래도 요즘 지더라도 근성 있는 시합을 해줘서 고맙다. 롯데팬은 그렇다. 지는건 참아도 근성 없는건 못 참는다. 지더라도 멋있게 지면 다 용서된다. 앞으로도 그래해라. 알겠나. 히마리 없이 하지 말고. 지더라도 시합 단디해라. 응원하께.


6. 요즘 이런저런 실패담이 주목받고 있다고 한다. 유튜브에 자기 실패담을 올리면 공감을 많이 받나보다. 뭐 변호사 시험, 공무원 시험 등등. 많은 실패담들이 올라온다고 한다. 실패라면 10년 가깝게 글을 써도 데뷔 못하고 있는 나도 일가견이 있는데. 나도 해볼까? 암튼, 실패가 주목받고 있다니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안도현 시인의 시 중에 <너에게 묻는다> 라고.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나' 라는 시 구절이 있다지. 나는 이렇게 써본다. '실패한 사람 함부로 비웃지 마라. 너는 단 한번이라도 가슴 뜨겁게 도전해 본 적 있었느냐'


7. 아무튼, 이제 리셋이다. 다시 처음부터. 착상부터 다시 시작한다. 성을 부수고 다시 처음부터 쌓기 시작하는거다. 나. 진짜 악독해질꺼야. 말리지 마. 팍 씨. 가까운 친구가 최근에 있는 공모전 소식 2개도 알려줘서 멋진 동기부여도 된다. 음. 그전에 일단 치과 수술부터 받고 올께요. 5월 13일날 입원합니당. 전신마취하고 나면 혈압관리도 잘 해야 한다고 해서 당분간 야구도 안 봅니다ㅋ


8. 끝으로 허은실 작가의 책, <나는 당신에게만 열리는 책>에서 본 좋은 글(정확히 이야기하면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 오프닝 멘트) 하나 소개.




제주에 가본 분들은 아시겠지요.

그곳의 돌담들은 빈틈이 반입니다. 

구멍이 숭숭해서 바람이 드나들죠.

그런데 그 구멍 때문에 태풍이 불어도 담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집을 지키는건 돌담이 아니라 구멍입니다.


도시에서 그런 구멍은 공터가 아닐까요.

집들이 공중까지 빽빽이 들어찬 도시 속에서 

공터는 간신히 비어 있음으로 도시를 지킵니다.

거처 없는 이들의 머물 곳이 됩니다.


바람이 숨을 돌리고, 

개망초가 가득히 흔들리고,

떠돌이 개들이 거기서 훔쳐온 음식을 들키지 않고 먹습니다.

더러는 집 없는 몸들이 잠을 부려놓기도 하지요.


그러니까 공터는 원래의 말뜻과는 달리 빈 곳이 아닌 셈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자리에 비로소 있는 것들.

고요함으로 가득해서 들리는 것들이 공터에 있습니다.


좀 허전한 듯 헐렁한 듯

사람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풀씨가 내려앉을 공터, 바람이 드나들 구멍을 마음에도 가져야

큰바람이 올 때 무너지지 않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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