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육아연구가 맘다움 Aug 03. 2022

내가 변하면, 내 아이가 달라질까?

괜찮은 어른이 되어야만 하는 이유


아무나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 부모다라고 말하면 위험한 발언일까? 중학교 때 봉사활동 시간을 채우기 위해 인연을 맺었던 보육시설에서 만난 아이들과 20대 중반이 되던 때까지 주기적으로 시설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며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이 나를 저 결론에 도달하게 만들었다결혼 후 임신과 출산을 거쳐 부모가 되는 것이 누구에게나 당연시되는 일은 아니다. 갖가지 형태로 가정의 모양새와 빛깔이 다양한 시대를 살고 있고 또한 온갖 편견과 잣대들로 여전히 상처받는 사람들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번 생에는 결혼을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때부터 부모가 되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순간에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가정의 형태를 완성하기 위해 아이들의 존재는 아주 커다란 비중을 차지한다고 본다. 이 또한 내가 갖는 편견일 수 있다. 시설을 다니는 동안 소중하고 귀한 아이들을 하나의 도구로 이용하려 드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을 접했을 당시에는 충격에 가까웠고, 세상에서 사람이 가장 무서운 존 재구 나를 느꼈다. 인간의 탈을 쓰고 그래서는 안된다 라는 말이 있듯이 짐승과 사람의 차이가 무엇인지 명확히 인지하여야만 한다 생각하는데 그 이유도 거기에 있다. 


너무 무거운 이야기를 던지는 것처럼 보일까 싶지만 지금 내가 부모의 자리에 서 있다 보니 더 그런 생각이 선명해진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다 옳고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어리석다고 볼 수 없듯이 부모의 자리에 있는 모두가 다 한 생명을 책임지고 양육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고 당연시 여기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은 사람이기에 하는 이야기다. 


부모교육이라는 것이 있을까? 요즘 시대에 없는 거 빼고 다 있는 세상이니까 좋은 부모가 되는 방법들은 어디에서든 찾아보면 쉽게 알 수 도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것을 찾아볼 틈도 없이 못난 내 모습을 마주하고 무너져 내리는 경험을 수 차례 겪었다. 그 이야기는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자세히 풀어볼 생각이지만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나는 좋은 부모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특별히 문제가 있는 사람이었냐 하면 그건 아니다. 지극히 평범했다고 생각하며 아이에 대한 사랑이 없는 사람도 아니었지만 한 생명을 온전히 도맡았다는 사실과 그 생명을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이 나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만들었다.


과하게 표현하자면 나는 한 없이 모자라고 부족한 사람이라 어른이라고 말하기 조차 부끄러울 지경에 자존감은커녕 자신감도 흔적 없이 사라지기 일보직전의 상태에서 한 생명을 도맡아 육아를 했던 시절을 살아냈다. 쉽게 말해 산후우울증이라 칭하며 주변에서는 너만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나 그렇다 이야기해 주었지만 스스로 수긍하지 않는 자기 비하 끝판왕이었다.


이렇게 나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만 봐도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겠지만 그러면 어떻게 벗어났을까 궁금해질 거라 생각하고 다시 이야기해보겠다. 한 줄기 빛이 있었는데 그것은 이유가 없어 보이는 무한한 사랑을 건네는 아이의 손길이었다. 울어도 웃어도 한결같이 나를 향해 있던 아이의 시선이 어느 날 불현듯 나에게 와 꽂혔다. 그 후 나만 힘들고 다 행복해 보이는 것만 같은 착각 속에 빠져 언제까지 신세한탄만 하고, 아무 노력 없이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고, 바뀌려고 노력했.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기대치를 낮추어 아이와 나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연습과 남들의 시선에서 나를 해방시키려고 애썼다. 보여주기 식은 아니었나 스스로 반성해 볼 필요가 있는 나의 삶을 재정비하는 순간이었다. 충분히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있었음에도 비교하고 부러워하고 내 것이 아닌 것에 아쉬워하며 욕심을 부리던 마음을 내려놓으니 묵은 찌꺼기가 씻겨 내려가듯 천천히 조금씩 가벼워지는 것을 느끼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내가 불편하고 예민해진 상태에서는 모든 것이 뾰족하게 다가왔었다면 의도적으로 나를 편안한 상태로 만들고자 노력하면서 조금씩 편안해지기 시작했을 때 아이의 감정과 생활도 평온한 듯 보이는 것이 더 신기했다. 물론 기분 탓이고 착각일 수 있다 치더라도 엄마의 감정상태가 편안해지면 포용력 또한 넓어지기에 같은 상황을 맞더라도 아이를 대하는 나의 태도와 감정은 다르고 그것을 느끼는 아이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의외로 많은 부모들이 말한다. 우리 아이는 이러이러한 문제가 있는 것 같다거나 우리 아이가 이래서 내가 너무 힘들고 걱정이다라고 이야기하며 고민을 한다. 물론 다 아이를 위하는 마음에서 출발된 것들이다. 그런데 의외로 그 걱정은 부모의 감정상태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경우가 많고 부모의 포용과 수용만으로 해결되고 변하는 것들이 대부분일 때가 있다는 것이다.


내가 달라지면 내 아이가 변한다는 말을 나는 믿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모든 부분에 있어 나를 먼저 살펴보려 부단히 노력하는 중이다.  육아는 완전한 독립을 시키는 것이 목적이라고 하는데 하나의 독립적인 인격체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알려주는 기간 동안 나 하나도 컨트롤이 어렵고, 돌보기가 미숙하다면 아이에게 전달되는 모든 것에는 오류가 포함된 채 전달되고 경험되는 것일 수 있다 생각하니 모든 시작점은 내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한다. 


아이의 모습에서 도대체 왜 저럴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생길 때면 나는 나부터 돌아보려 한다. 이것은 남편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위기는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그것을 넘기느냐 못 넘기느냐의 차이는 나를 제대로 바라보고 객관화를 할 수 있느냐의 차이가 아닐까 하는 것이다. 적어도 나의 경우는 그랬다. 나의 온도에 따라 달라지는 아이와 남편의 모습을 느끼기에 부모가 달라지면 내 아이가 변한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