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좋소'에서 20일만에 탈출하다

왓챠 '좋좋소'의 현실판 회사, 입사 20일만에 자진퇴사

by mulgae

취업에 번번히 실패하던 취준생 조충범. '정승네트워크'란 중소기업 면접을 보러 갔는데 회사의 과장,이사 모두 오늘이 면접이란 사실을 모른다. 면접자인 사장은 자기 자랑으로 면접을 마무리한다. 처우,근무조건 모두 알지 못하지만 회사생활이 처음인 충범도, 도망가지않을 직원이 필요했던 회사도 그런건 중요한게 아니었다.


출근 첫 날, 사무실에서 만난 직원들에게는 웬지 모를 패배감이 가득했다. "쟤는 얼마나 다닐까"라는 눈빛으로 충범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 직원들. 신입직원이 쓸 멀쩡한 PC가 1대도 없는데 퇴근 1시간 전, 다음 날 완성해야 할 PPT를 작성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결국 신입사원이 새벽 3시까지 야근을 해야 했고, 퀄리티는 형편없지만 이를 검토할 만한 사람이 없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인 상황.



2021년 유튜브를 통해 선보인 '좋소좋소좋좋소'란 신박한 제목의 웹드라마는 그야말로 대히트를 쳤다. 근로노동법 준수는 안드로메다인 중소기업. 요즘에도 이런 회사가 있나 싶지만 실제 현실에서 종종 벌어지는 일들이 드라마 에피소드로 녹여지며 MZ세대의 공감대를 이끌어냈다. 결국 유튜브 드라마에서 OTT왓챠로 편성돼 시즌 6까지 제작됐다. 제목인 '좋소'는 중소기업을 비하하는 '좆소'를 순화한 단어다. 왜 중소기업은 '좆소'라는 비아냥을 들을 수 밖에 없는 걸까. 최근 약 20여 일동안 좆소에서 일해보며 몸소 '좆소'의 현실을 체험했다



지인의 제안으로 잠시 작은 회사에서 유튜브 제작 기획을 맡게됐다. 대표는 내게 가십용 유튜브가 아닌 유튜브 종합 매체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내가 생각하는 유튜브 매체의 이상형은 '삼프로TV'다. 그렇다면 '연예판 삼프로TV'를 만들어야 할텐데, 대중이 '연예 유튜브 매체'에서 원하는게 뭘까 고민했다. 초반 구독자를 잡기 위해서는 충성도 높은 트로트 팬층을 잡아야 하고 연예계 비하인드 스토리에 대한 이야기도 준비해야 했다. 트로트와 K팝이 공존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향성을 제시해야 할까, 어떤 뒷이야기를 준비해야 주목도가 높을까 고민했다. 동료 기자들이 그간 진행한 유튜브 방송을 시청하며 장단점을 분석했다.


그런데 대표는 사람이 진행하는 형식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가 원한건 슬라이드 영상 화면에 성우나 AI가 설명하는 형식이었다. 대표는 해외 셀럽들의 뒷이야기를 전하는 구독자 100만 명 가량의 한 유튜브를 보여줬다. 사실 재미는 없었다. 그 유튜브는 20여분간 지루한 이야기를 전했다. 대표는 그 유튜브처럼 국내 스타에 대한 아카이빙을 하고 싶다고 했다. 나뿐 아니라 직원들 모두 반대했다. 하지만 대표는 남의 말을 듣는 사람이 아니었다. 결국 그가 원하는 형식대로 시작했다.




기자 겸 기획자 겸 작가 1명, 편집자도 단 1명 뿐이었다. 편집자는 본래 업무가 있었다. 2분짜리 슬라이드 영상 하나 만드는데 사흘이 걸렸다.


모든 것이 패스트뉴스화된 시대, 사흘 전 뉴스는 '뉴스'가 아니라 '올드스'다. 이 시스템은 시간을 지나치게 잡아먹었다. 심지어 DB도 부족해서 영상 퀄리티가 현저히 낮았다. 이 영상을 그대로 올릴 수 없었다. 그래서 수많은 연예유튜버들이 이슈가 있을때마다 당일 취재해 밤에 라이브 방송을 한다. 이런 시스템이 아니라면 노년층을 겨냥, 심층적으로 이슈를 파고 들어 천천히, 또박또박 설명해주는 형식을 택하곤 한다.


당연히 영상을 함께 시사하며 부족한 점을 고치고 해당 형식의 문제점을 간파하고, 이 형식을 고수하기 위해 필요한 점을 논의하는 시간을 가질 줄 알았다. 아니었다. 대표는 회사에 들어오지 않았다. 메신저로 제작한 영상은 무조건 업로드 하라고 지시했다.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대표에게 문제점을 조목조목 전달했다. 이 형식은 재미도 없을 뿐더러 형식을 고수하기 위해서는 인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초반 빠르게 구독층을 늘리기 위한 몇가지 방안을 제시하고 매체로서 공신력을 갖기 위해서는 온라인 신문협회 가입이 시급하다는 의견을 전했다.


무엇보다 최근 유튜브가 생성형 AI 기술을 악용한 가짜뉴스를 잡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에 결국 이런 슬라이드쇼 형태의 영상뉴스는 언젠가 사장될 수 밖에 없었다.


대표가 이런 형식을 원한건 진행자가 나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걸 직원들에게 뒤늦게 들었다. 또 대표는 DB가 부족하면 연예기획사에서 SNS에 올라온 영상을 무단으로 사용하자고 제안했다. 편집자가 저작권 이슈를 들며 반대했지만 소용없었다. 연예인들을 홍보시켜주는건데 사용해도 된다고 우겼다.




사실 이 회사에 오기까지 고민이 정말 많았다. 대표는 과거 한 방송사 홍보팀 직원이었다. 당시 나는 저연차 기자라 그의 이름 석자 정도만 기억할 뿐 얼굴이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최근 내 사정을 잘 아는 친한 선배가 그를 언급하며 "너 노느니 잠깐 일하는게 어떻겠니 "라고 자리를 마련해줬다. 마침 실업급여 수령도 끝나갈 때였다.


그가 제시한 연봉은 원래 받던 연봉보다 1000만원 이상 적었다. 포괄임금제라 수당은 주말 수당 뿐이었다. 유튜브가 실버버튼을 받을시 연봉 10% 인상을 약속했지만 10%를 인상해도 원래 받던 연봉보다 턱없이 적었다.


그보다 더 걸렸던건 대표의 인성이었다. 그는 첫 미팅 자리에서 과거 자신과 일했던 동료들을 한 명 한 명 품평하기 시작했다. 특히 자신이 싫어했던 직원을 노골적으로 욕했다. 만난지 30분만에 벌어진 일이다. 해당 직원은 아직도 그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과연 이 사람을 믿고 함께 일해도 될까 고민했다. 들어보니 과거 자신의 클라이언트가 싫어하는 매체를 포털에 신고해 쫓아내고 싶다며 제평위 쪽에 말도 안되는 클레임을 걸기도 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기자를 대하는 PR로서 해서는 안되는 행위였다.


그는 돈얘기도 지긋지긋하게 했다. 나를 고용하는 게 투자이고, 회사에 리스크가 크다며 "그래도 기자님이 협찬을 받아오고, 무명 연예인들한테 돈을 받고 홍보용으로 출연을 시키면 어느정도 수지 타산이 맞지 않을까요?"라고 했다. 자신이 한 기업 임원으로 일할 때, 친한 기자들이 신설 매체로 이직할 때마다 협찬을 했다며 "이제 엔터도 기업화됐으니 협찬 받는게 수월하지 않나요?"라고 했다. 기가 막혔다. 연예계 현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입사를 고민하던 시기에도 그는 편집자에게 영상을 만들어보게 하고 싶다며 원고를 요구하는 등 경우 없는 요구를 했다.


대표의 인성이 빤히 들여다보임에도 입사를 결심한건 마냥 노는 것보다 잠시 새로운 생태계에서 일해보며 흐름을 파악해보기 위함이었다. 분명 부정적인 부분이 눈에 보였지만 새로운 걸 배울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입사 첫날 받은 업무용PC가 너무 낡아 버벅댔다. 마우스는 아예 고장 나서 첫날에는 마우스 없이 일했고, 둘째날부터 집에서 마우스를 가져와서 일했다. 정말 드라마 '좋좋소'의 한 장면인 줄 알았다. 대표는 첫 날 점심을 먹으며 또다시 협찬 얘기를 꺼냈다. 그러면서 "엔터 홍보팀에게 필요한 유료 콘텐츠가 뭔지 알아봐줬으면좋겠다"고 했다. 너무 쪽팔려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유튜브는 위에 언급한대로 산으로 가고 있었다. 오히려 내가 "해보자"고 해서 시작한 연예 블로그가 조금씩 우상향그래프를 그리며 긍정적인 신호를 보였다.


대표는 유튜브 구독자수가 적으니 초조했는지 내게 "원고가 문제"라고 지적하기 시작했다. 나는 하루 10건 정도의 블로그 포스팅을 하고 그날 가장 핵심적인 뉴스를 챗GPT를 통해 유튜브 원고 형식으로 다듬어 편집자에게 넘기곤 했다. 챗GPT를 이용하는건 내가 작가 출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게 거슬렸는지, 아니면 챗 GPT 시켜 일하고 노는 줄 알았던 모양인지 못마땅해 했다.


나는 당신이 원하는(20분 분량) 형식의 원고는 원고 작성에도 시간이 걸리고, 영상편집자가 소화도 못한다, 형식이 문제라고 맞섰다. 실제로 20분 분량 형식 원고는 사전취재 및 작성하는데 꼬박 하루 반이 걸렸고(팩트 체크 등을 하고 수기 작성해보니 A4 8장 분량이 나왔다), 편집자는 2주가 넘도록 영상을 만들지 못했다. 그러자 그는 내가 6시에 퇴근하는 걸 문제 삼았다. 왜 야근을 안하냐며, 야근을 해서라도 원고를 축적해달라고 했다. 원고를 축적해도 영상이 만들어지지 못하는 현실은 그에게 중요한게 아니었다.


그는 "회사가 달에 얼마씩 적자다. 나는 돈을 벌기 위해 이 유튜브를 시작한거다. 돈을 벌면 모두가 좋지 않냐"라며 결국 원고가 모든걸 좌지우지 한다고 우겼다.


말이 통하지 않았다. 입사한지 보름만에 실적을 운운하고 돈을 벌어야 한다며 유튜브 초기 모델 실패의 원인을 내게 돌리려는 게 보였다.


결국 퇴사를 통보했다. 그도 내심 원했는지 잡지 않았다. 아마 자기 딴에는 돈을 주고 고용했는데 고분고분하지도 않으니 내심 잘됐다 생각했던 모양이다. 어차피 나갈 줄 알았으니 출연 안시키길 잘했다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 회사는 나와 대표 포함 직원이 7명이다. 즉 평직원은 5명이다. 그 5명 중 2명은 6월 입사자이다. 직원이 계속 그만둔다는 의미다. 인력 하나하나가 중요한 작은 회사에서 직원이 계속 그만두는 건 결국 사람이 문제다. 나는 7월 1일 입사해 22일에 퇴사했다.


그 기간동안 배운게 아예 없는 게 아니었다. 리더십에 대한 반면교사를 배웠다. 또한 유튜브와 포털 생태계에 대해 잠시 들여다 볼 수 있는시간이었다.


비전이 같다고 모두 한 배를 탈 수 없다. 수단과 목적이 어느정도 비슷해야 한다. 열악한 시스템이어도 신뢰할 수 있는 리더라면 한 배를 탈 수 있다. 배가 풍랑을 만났다? 리더는 이럴 때 리더십을 발휘한다. 밤새 함께 노를 저어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직원들에게 무조건 무의미한 근무를 강요하는 게 아니라 방향성을 알려주고 자기 회사처럼 헌신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


나는 기자시절, 단독기사를 보도하기 위해 늦은 밤이든, 이른 새벽이든 전화해대며 취재를 했다. 동기만 있다면 누구보다 열심히 취재하고 기사를 쓰는 기자였다. 하지만 모티프가 없고, 침몰할 게 뻔한 상황에서 노동력을 태울 수는 없었다. 차라리 망망대해에 뛰어들어 홀로 헤엄치는게 낫다고 판단했다.


직장 생활한지 어언 20여 년, 다음 목적지를 정하지 않은 채 내 발로 퇴사한건 사회초년병 이후 19년만이다. 그때는 회사 규모가 '좋소'였을 뿐, 업무나 사람들이 '좋소'는 아니었다. 내 나이와 상황을 생각할 때 이번 퇴사가 배부른 선택일지 모른다. 하지만 편의점 알바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목적과 의미가 없는 일을 할 수는 없었다. '좋소'가 '좆소'인지 '가능성있는 중소기업'인지 판단하는 잣대는 결국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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