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김민석의 인생역전

‘응답하라 1988’ 명대사 그대로, 김민석 국무총리의 새옹지마 인생

by mulgae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1997년, 서울대 출신 젊은 주부에게 수학과외를 받았다. 남편이 오랜 기간 사법고시를 준비해 아내가 수험생 과외로 생계를 꾸리는 고학력 부부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수학은 젬병이었다. 학업에 별 관심이 없으니 수업이 제대로 될 리 만무했다. 대신 선생님의 아기와 온갖 사회현상에 대한 수다를 떨곤 했다. 선생님도 아무리 가르쳐봐야 성적이 안 오르는 고 3을 붙잡고 씨름하느니 대충 말상대나 하자는 듯, 나의 쓸데없는 질문에 성심성의껏 답해주곤 했다. 당시 정치권에서 젊은 386 대표주자로 김민석이 떠오르던 때였다.


나: "쌤, 김민석 잘 생긴 것 같아요. 실제로 보셨어요?"

쌤: "그럼, 우리 학교 다닐 때 학생회장이었어.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연설할 때 엄청 멋있었던걸."

김민석.jpg

그랬다. 김민석은 서울대 총학생회장 출신이라는 지적인 이미지와 더불어 학생운동을 하다 수감생활까지 할 정도로 소신있는 인물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여기에 더해 곱상한 외모까지 갖춘 당시 정계의 아이돌이었다.


1996년 15대 국회 최연소 의원으로 등원할 때 그의 나이는 고작 32세였다. 아내는 서울대 동창인 김자영 전 KBS 아나운서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나운서는 선망의 직업이다. 권력과 미모의 아내까지 갖춘, 그야말로 남 부러울 것 없는 인생이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로 위세를 떨치며 승승장구하던 김민석은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국면에서 갑자기 정몽준 캠프로 이적하며 한순간에 이미지가 추락했다. 여파는 거셌다.그의 탈당은 오히려 노무현 지지세력을 결집시켰고 결과적으로 노무현은 제 16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김민석은 ‘김민새’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으로 불리며 ‘철새 정치인’의 대표주자로 낙인찍혔다.


그 이후 김민석은 무려 18년을 정계야인으로 지냈다. 구약성서의 욥처럼 고난의 시간을 보내며 정치권 외곽에 머물렀다. 그 기간 아내와 이혼했고, 새로운 처와 재혼도 했다. 재산도 없었다. 2020년 제 21대 총선에 당선되며 재기에 성공했지만 2024년 기준 마이너스 5932만원으로 더불어 민주당 하위 3위를 기록했다. 명예만 회복한 셈이다.


하지만 2024년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의 어이상실 계엄 때는 계엄을 미리 예고(?)해 화제를 모으더니 2025년 6월, 그 공(?)을 인정받아 이재명 정권의 첫 국무총리로 임명됐다. 정치인으로 전성기인 60대 초반 나이니 향후 그의 정치인생이 어떻게 풀릴지 모를 일이다.

응사2.jpg
요기 베라.jpg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 야구선수 칠봉(유연석 분)은 미국 유명 야구 선수 요기베라의 명언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를 언급했다. 9회말 2아웃 상황에서도 얼마든지 뒤집을 수 있는 게 야구의 묘미라는 의미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비록 밑바닥일지라도, 여정 중 노력에 따라 종착역이 달라질 수 있는 게 우리 인생이다.


요즘 다시 일자리를 찾기 위해 노력 중이다. 내 나이 47세. 업무 기량은 절정이고, 아직 충분히 일할 수 있는 ‘젊은’ 나이다. 비록 전 직장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인생이란 긴 여정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만큼 털고 일어나려고 한다. 무려 18년이란 시간동안 야인으로 보낸 김민석도 국무총리가 되지 않았나. 끝을 알 수 없어 더욱 재밌는 게 우리 인생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많이 배우고 갑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