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하다가 문득 난 떠올림
우리는 왜 스님처럼 초연할 수 없을까
어느 토요일 오전, 며칠째 건조대에 걸려있는 마른 빨래를 개고
갠 빨래를 옷방에 정리하고 나니 쌓여 있는 해야 할 빨래들이 보여 세탁기를 돌리고
돌리는 와중에 방 먼지들이 보여 청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긁개로 모든 방의 먼지와 머리카락, 각질, 정체모를 알갱이들을 다 쓸고 다니다가
마지막 옷방의 먼지를 다 긁어 모으고 모아진 것들을 물티슈로 닦아내다가 문득 떠올랐다.
스님들은 어찌 그렇게 동요하는 법 없이 담담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렇게 어릴 적 상처로 인해 계속 아파하고 어려움에 힘들어하고 갖은 번민에 괴로워하는데.
스님은 산사에 계시고
우리는 속세에 살기 때문이다.
스님은 모든 연을 끊고 단절되어 자기 수행을 해나가지만
우리는 모든 연 속에 얽히고설켜 엮여 살아가기 때문이다.
우리는 연 속에서 계속 기대하며 살아간다.
기대가 무너질 때, 기대가 꺾이고 좌절될 때 상처받는다.
기대하지 않으면 상처받지 않고 아파할 이유도 없다.
그러면 힘들어하는 우리는 왜 산 속에 들어가 머리깎고 수행하며 살지 않는 걸까?
그렇게 힘들다면 그렇게나 살지 못하겠다고 외친다면 내 마음의 평화를 찾아 끊어내면 되는 게 아닌가.
우리는 기대-실망, 좌절의 순간도 맛보지만
기대-성취, 수용의 순간도 맛보기 때문이리라.
기대가 이루어지는 순간의 행복감을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 행복감을 잊지 못해 중독되어 살아가기 때문이리라.
우리는 알고 있다.
삶은 이루어지지 못하는 순간도 있지만 이루어지는 순간도 또 있다는 걸.
그리고 사람들과의 삶 속에서 나타나는 행복이 우리에게 또 다른 삶의 원동력이 된다는 걸.
스님이 되어 얻게 될 조용한 마음의 평화보다
속세에서 경험하는 정반대의 고난과 행복이 더 재밌고 좋다는 걸.
물결치는 파동의 인생 그래프를 연속적으로 봤을 때 인생 전체가 결국은 우상향하고 있다는 걸 알 때
그 때를 원하고 기대하고 바라기 때문에 우리는 관계를 놓지 못한다.
결국 우리는 지지고 볶는 걸 선택한다.
우리의 선택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이 길을 선택했음을.
먼지 닦인 방에서 적어본다.
좀 더 깨끗해져서 나는 기쁘다.
자고 있는 남편도 귀엽고 예쁘다.
지금 나 되게 행복하네?
조용하고 시원하고 안정적이고 차분하고 평화로운데
나는 이 순간 절이 아닌 여기에서 행복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