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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 욱 Aug 10. 2022

과학과 사회의 대화

  20세기 현대 과학의 태동 이후 인류의 삶과 행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과학기술이다. 수많은 질병으로부터 인류를 보호하며 사람의 평균 수명을 2배 가까이 연장했다. 위험하고 더럽고 끊임없이 반복되는 육체노동에서 인간을 해방시키며 생활에 편리와 풍요를 제공해 왔다. 인류는 이제 지구를 벗어나 새로운 영토를 개척하기 위한 우주 개발까지 목전에 두고 있다. 


  그러나 과학기술이 ‘진리의 탐구’와 ‘가치의 창조’에 매몰된 사이 사회적인 부작용도 심각해졌다. 환경 파괴, 기술 격차에 의한 소외, 사회적 불균형 등의 원인이 된 것도 사실이다. 호모사피엔스를 멸종시킬지도 모르는 핵폭탄과 생화학무기가 개발됐으며, 전쟁은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다. 국가 간, 개인 간의 불평등과 격차가 심해지고 개인정보 유출과 새로운 감시사회 출현 등의 사회문제도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과학의 성과가 사회의 폐단이 되는 상황이 생겨난 것이다. 


  이런 현실을 예견이나 한 듯이 전 세계의 과학자들은 과학자들이 연구활동을 하면서 갖춰야 할 가치 기준을 제시하면서 과학과 사회와의 끊임없는 대화를 강조한 바 있다. 이미 22년 전에.     


과학에도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있다     


 “모든 과학 활동은 인간 사회와 생태계의 관심사에 눈을 돌려야 하고, 인문사회학과의 학제적 활동을 강화해야 하며, 과학의 오용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


  이 선언문은 과학계의 히포크라테스 선서처럼 여겨지는 '부다페스트 선언'으로 1999년 7월 1일, 헝가리의 수도인 부다페스트에 열린 '세계과학회의(World Conference on Science)'에 모인 과학자들이 제시한 과학 연구의 방향과 목표를 담고 있다. 정식 명칭은  '과학과 과학지식 이용에 관한 선언'인데, 이 가운데 ‘사회 속의 과학, 사회를 위한 과학’의 한 대목은 이렇다. 


  "과학 연구의 실행과 지식의 이용은 항상 인류의 빈곤 감소를 포함하는 복지를 목표로 해야 하고,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 및 전 지구적 환경을 존중해야 하며, 현세대와 미래 세대를 향한 우리의 책임을 고려해야 한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 197개국의 대표단과 10개의 유엔 산하기구, 수십 개의 국제기구와 NGO가 참여한 회의였던 만큼 당시 세계 과학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과학자들이 연구를 열심히 해서 가치중립적인 과학적 성과를 만드는 것만이 목표가 아니며, 진리의 탐구라는 과학 철학이 더 이상 절대적이지 않다는 성찰적 메시지가 이 선언문의 핵심이다. 


  어쩌면 이미 늦었을 수도 있지만, 과학이 사회와 함께 호흡하며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할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논의해야 하는 시기가 됐고, 2009년부터 2년에 한 번씩 과학자와 정책가, 언론인들이 모여 세계과학포럼(World Science Forum)을 개최하며 이 선언문을 실천에 옮기는 방법을 논의하고 있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도나우 강을 끼고 각각 발달한 부다와 페스트가 부단한 상호 교류를 통해 부다페스트라는 단일한 도시로 성장해온 것처럼 세계과학포럼은 과학이 사회와 더 많은 소통 노력을 기울이고 시민의 요구를 잘 수용할 수 있는 과학 거버넌스에 대해 고민하는 장이 되었다. '지식과 사회'(2003년), '지식 윤리 책임'(2005년), '지속가능한 지구발전을 위한 과학'(2011년) 등 매회 포럼의 주제는 논쟁적이면서도 사회적이었고, 2017에는 전쟁이 한창인 중동지역을 찾아 '평화를 위한 요르단 과학선언'을 발표하기도 했다. 


  2021년 포럼은 한 해 연기돼 올해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열린다. 올해의 주제는 '사회적 정의를 위한 과학'으로 현대 과학의 수혜를 입으며 살고 있는 우리에게 '빈곤, 실업, 불평등과 차별에 맞서 싸우는 과학의 역할'과 과학이 기후정책의 실패를 바로잡을 방법'에 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포럼의 개최장소에 이미 메시지가 녹아있다.       


사회적 정의를 위한 과학     


  2019년 말 전 세계를 잠식한 코로나 팬데믹은 과학의 발전으로 인한 성과와 부작용이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작용하지 않는다는 점을 인류에게 경고했다. 코로나로 인한 질환은 대부분 비슷하겠지만, 사회적 영향력은 크게 달랐다. 비대면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전문직, 관리직, 기술인력 등은 감염병의 노출 위험 자체가 적었고, 대체로 소득이 줄지 않았다. 이에 반해 자영업자 등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생활의 어려움까지 감수해야 하고, 비대면 노동이 불가능한 노동자들은 감염의 위험에 노출돼야만 했다. 방역 선진국과 후진국의 대응 수준이 큰 차이를 보이면서 재난 상황이 벌어진 뒤에야 과학기술의 불평등이 드러났다. 


  더구나 코로나 팬데믹은 연습에 불과하다. 먹구름이 몰려오듯 서서히 다가오는 기후위기는 그 부정적 영향이 계급, 인종, 젠더, 민족, 국적, 장애 등의 여러가지 교차선을 따라 차별적으로 작동할 것이라는 예언을 많은 전문가들이 내놓고 있다. 과학자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미국의 과학사학자인 오드라 울프는 자신의 저서 ‘냉전의 과학’에서 “과학자들도 그들이 살아가는 시대와 호흡하며 자신의 이념, 정치적 권한, 시대의 관습에 영향을 받아 선택하고 기회를 누리는 존재일 뿐이며 만약 과학자들과 시민들이 과학기술은 어떻게 사회를, 더 나아가 지구를 도울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적절하고 진지하게 답하지 못한다면, 심각한 결과가 분명 뒤따를 것”이라고 강조한다. 과학과 사회는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인류 사회에 공헌할 방법을 찾아야만 하는 것이다.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학 정책     


  2015년 유엔이 채택한 'SDGs(지속가능한 개발 목표,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를 보면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한 연구개발의 보다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확인할 수 있다. 유엔은 사회발전, 경제성장, 환경보전이라는 세 가지 큰 틀에서 17개의 목표와 169개의 세부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유럽연합도 호라이즌 유럽을 통해 기후변화에 대처하고 SDGs 달성을 지원하고 있다. 사회적 과제라는 부문에 연구개발비로 50억 유로, 우리 돈으로 60조원 이상을 지원한다. 건강, 창의, 포용적 사회, 안전 등이 주요 키워드다. 미국도 비슷하다. 기후변화, 건강, 자원 등의 연구비를 늘리고 있다. 바이든 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기후변화다. 코로나19에 의문의 1패를 겪어서인지 감염병 관련 연구비도 크게 늘어났다. 과학과 기술에 투자할 테니 인간 세상에 도움이 될 만한 결과를 내놓으라는 정책 방향으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도 제5차 과학기술기본계획 수립방향(안)에 과학기술의 지향점으로 '국가와 사회의 현안 해결'을 설정하면서 이 같은 글로벌 트렌드에 발을 맞춰 가고 있다. 과학기술의 양적 성장보다는 경제, 인문, 사회 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해 과학으로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할지 논의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대통령직속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는 미세먼지, 기후변화, 감염병 등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한 연구개발 추진체계를 제시한 바 있다.       


다시 부다페스트 선언의 한 대목. 


"오늘날 전례 없는 과학의 진보가 예견되는 상황에서, 과학지식의 생산과 이용에 관해 활발한 민주적 토론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과학자와 정책 수립자들은 대중적 신뢰의 강화를 추구해야 하며, 토론을 통해 과학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 내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과학기술과 경제발전의 선순환적 관계에 대해 국민의 신뢰도가 높은 편이었다. 하지만 황우석 사태를 계기로 과학연구의 투명성과 공정성 그리고 청렴성이 강하게 요구되고 있다. 미국과 일본 등 과학선진국들도 이미 오래전부터 과학의 진실성과 건전성은 물론 공정성을 과학연구 규범으로 삼아 제도로 정착시키고 과학의 사회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과학 연구를 수행하고 과학 지식을 만드는 돈의 상당 부분은 국민의 세금이다. 이 구조가 만들어진 것은 냉전시대부터다. 돈을 대는 주체인 국민과 정부, 정치와 상관없는 가치중립적 과학기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국민은 선거로 정부를 선출하고, 선출된 정부는 세금으로 과학연구를 지원한다. 세금으로 하는 일은 민주적 통제를 거쳐야 하고, 국민의 신뢰를 획득해야 하며, 이를 위한 토론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납세자인 국민이 원하는 과학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구현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과학과 과학정책의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자와 과학정책결정자들은 대중과의 소통을 두려워 해서는 안된다. 과학기술이 사회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대화의 과정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과학은 사회로 나와 대화를 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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