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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물 Feb 14. 2016

쿠바, 불편의 행복

혁명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 버렸지만

여행을 떠나기 전 쿠바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체 게바라, 공산주의, 아바나, 사탕수수 농장,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말레꼰이 전부였다. 그곳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고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심지어 나는 아바나로 출발하기 전 리마에서 급하게 여름옷을 사면서도 하루종일 해변에서 생활하는 아바나의 삶을 상상했을 정도였다. 그러니까 쿠바에 대한 나의 무지는 신대륙을 고대하던 콜럼버스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먼저 쿠바에 다녀온 친구는 출발 직전에 몇 가지를 알려줬다. 쿠바는 살 만한 기념품이 없다. 목각 공예품이 많은데 퀄리티가 많이 떨어진다고. 사고 싶은 그림이 몇 점 있었으나 가져올 수 없어 포기했고, 모히토와 랍스터 요리가 먹을만 하다고 했다. 꼭. 반드시 먹어 보라고. 미국 달러로 환전하는 건 아직까지도 손해를 많이 보기 때문에 유로나 캐나다 달러를 권하지만 우리는 미국 달러밖에 없으므로 암환전을 이용할 것. 반드시 환전할 때는 바로 앞에서 위폐 여부를 한장한장 확인할 것. 아바나에서 반드시 먹어봐야 할 군것질 거리를 몇 가지 알려줬고, 쿠바에서는 비누 한 장도 사려면 줄을 서야 한다는 것. 그래서 무언가 필요한 게 있으면 와서 구할 생각은 하지 말고 오기 전에 다 구해가지고 올 것. 쿠바는 내국인용 화폐와 외국인용 화폐가 있는데 24배나 차이가 나고 간혹 몇몇 음식점들은 외국인용 메뉴판과 내국인용 메뉴판이 나눠져 있어서 까딱 잘못하다가는 몇 배의 바가지를 쓸 수도 있으니 '다 알고 왔으니까 내국인용 메뉴판 내놔'라고 말할 것. 그리고 쿠바의 치안에 있어서는 외국인이 최우선이므로 밤거리도 안전하게 다닐 수 있으니 혼자라도 걱정하지 말 것.   



한국에서 바로 출발하는 거였다면 난 좀 의아하게 생각했을 거다. 정말 그런 나라가 있나 싶어서. 이 말만 들어도 쿠바는 완전 다른 세계처럼 느껴졌을 테니까. 다행히 남미의 몇몇 국가들을 다니며 나는 쿠바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다 떨어져가는 클렌징폼을 사려고 가게 몇 군데를 돌아다녀봐도 필링 젤밖에 살 수 없었거나, 그나마 어렵게 구한 클렌징폼도 너무 미끄덩거려 쓸 수가 없었으니까. 공항환전소가 박한 건 알았지만 암환전과 30% 가까이 차이가 날 줄은 몰랐으니까. 환전을 해주면서 눈앞에서 밑장을 빼갈 줄은 몰랐으니까. 그런데 이 모든 일을 겪고 나니 쿠바라면 충분히 가능하겠다고 과장이 아닐 거라고 짐작했다.   



마음을 단단히 비우고 쿠바에 갔을 때 관광객인 내가 직접 확인한 건 공항 직원이 환전소 앞에서 암환전 딜을 요구했던 것. 환전소에서는 일단 수수료로 10%를 떼고 시작한다는 것. 엔저였던 당시 미국 달러보다 엔화를 더 많이 쳐줬다는 것. 모히토는 차메로가 만들어 주는 것만 맛있다는 것. 생각보다 아바나에는 상점도 많고 여느 대도시의 번화가와 크게 달라보이지 않았다는 것. 외국인들도 내국인용 화폐를 내고 당당하게 아이스크림을 싼 값에 사먹을 수 있다는 것. 안전하다는 말을 듣고 갔는데도 밤길 으슥한 곳은 여전히 조금 무서웠다는 것.  

 


일단 가기만 하면 무조건 한국 사람을 만나게 되어 있다는 호아키나 아줌마네 집에서, 마침 내가 간 날은 한국인 여행자가 모두 빠져버려 일본인 몇 명만 남아, 그나마 있는 일본인들도 다음날이면 다른 곳으로 가버려 철저하게 기댈 곳 없이 혼자가 되어버린 아바나에서의 첫 날. 모기 핑계를 댔지만 사실은 머릿속이 복잡해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애꿎은 정보북만 다섯,여섯번씩 정독을 했던 그 밤 알게 된 아바나의 대형마트를 다음날 가 보고서 나는 놀랐다. 코카콜라부터 시작해서 셀 수 없이 많은 물건들이 가지런하게 정렬되어 있었고 계산대가 무려 네 개나 있었으며 유니폼을 말끔하게 입은 직원들이 있었다. 쿠바에서 코카콜라라니.   

 


마트를 다녀온 후 나는 비누를 사기가 힘들다는 얘기를 더이상 믿지 못했다. 트리니다드에 가서도 아니따는 내게 향이 나는 새 비누를 하나 건네며 머무는 동안 쓰라고 했으니까. 내 것이 있으니 필요없다고 했을 때 아니따가 고맙다고 했던 건 기억이 난다. 그뿐이었다. 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게다가 물건을 사려고 줄을 서 있는 모습은 피자 가게 앞에서가 전부였으니까. 친구가 뭘 잘못 알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생활을 알게 된 건 차메로의 집에 한국인 여행자들이 대거 들이닥쳤을 때, 나의 평화가 깨진 걸 안타깝게 여기던 차메로가 함께 저녁 장을 보러 가는 것을 허락했을 때부터다. 쿠바에서는 모든 음식을 사 먹었고 항상 아침 저녁으로 아니따가 과일을 챙겨주고 있었으므로 그동안 식료품을 살 일은 없었다. 그러니 알 수 없을 수밖에. 차메로와 나는 그날 토마토와 치즈를 사기 위해 동네의 마트와 식료품점을 세 곳 이상 돌아다녀야 했다. 마음에 드는 것을 사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토마토와 치즈이기만 하면 됐는데도, 물건이 없어 살 수가 없었다. 분명 어제까지는 살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때 차메로가 설명해 줬다. 쿠바에서는 원하는 물건을 사기가 쉽지 않다고. 농산품도 모두 정부가 관리하므로 돈이 있다고 해서 사고싶을 때 살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했다.   



아바나에 올드카가 유명한건, 60년대 경제 제재 이후 자동차 수입도 어려워지고, 자동차 부품을 제대로 구할 수 없어지면서 나름대로 정비기술을 익혀 자동차를 고쳐가며 살아 온 결과다. 올드카를 타면 어떻게 이렇게 유지를 했을까 싶을 정도로 내부도 아주 깨끗하고 가끔 불안하게 덜덜 거리는 차도 있지만 대부분 쌩쌩하다. 덕분에 아바나의 올드카는 하나의 상징이 되었고, 21세기에도 클래식카를 타고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추억을 달릴 수 있는 영광을 많은 여행자들이 누릴 수 있게 됐다. 올드카 택시 기사들은 할아버지가 쓰던 차를 아버지가 물려 받고 또 자기가 물려 받은 차를 굉장히 자랑스러워했다. 애정과 노력으로 유지해 온 유물같은 차에는 최첨단 기능이 탑재된 신형차는 가질 수 없는 역사와 가치가 있었다.



차메로와 아니따는 그들의 배급 수첩을 보여줬다. 나는 한번도 사람들이 배급을 받으려고 줄을 선 모습을 본 일이 없었다. 내 상상 속의 배급은 마을 광장같은 곳에서 물건을 풀어놓고 사람들이 줄을 서서 하나씩 받아가는 거였다. 쿠바에는 동네마다 배급물품을 파는 가게들이 있고, 사람들은 필요할 때 가게에 가서 아주 상징적인 금액의 돈만 지불하고 물건을 가져온다고 했다. 정부에 등록된 식구 수대로 물건을 받을 수 있으며 배급 품목은 설탕, 계란, 밀가루, 닭고기, 담배 같은 것들이었다. 경제가 좋을 때는 배급 품목이 더 많았다. 연료로 쓸 가스도 배급해 줬는데 지금은 가스가 너무 비싸 할머니까지만 가스를 배급받을 수 있고, 대신 알콜을 받아 연소시켜 쓴다고 했다. 배급 받는 물품만으로는 생활을 할 수 없다. 너무 적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쿠바 사람들은 이웃에서 도움을 요청하면 이름을 빌려주고 물품을 받아다가 주는 정이 남아있다고 했다. 몸이 아픈 사람들은 의사의 판단 하에, 영양 보충이 필요할 경우 제한적이긴 하지만 고기류의 배급품이 늘어난다고 했다.   



월급도 너무 적어서 생활을 할 수가 없으므로 각자 알아서 다른 일을 해 돈을 벌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생활이 빠듯하다. 마트에서 본 물건들은 정말 그들의 월급으로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물건들이었다. 게다가 아디다스 물건들은 한국보다 비싸거나 한국과 비슷한 가격이었다. 당연히 쿠바에는 아울렛도 없으므로 쿠바 사람들이 아디다스 운동화라도 신으려면 한 달치 월급을 다 쓰거나 외국에 사는 친척들에게 선물을 받아야 한다. 그래도 행복하다고 했다. 가난하지만 지금이 좋다고 했다. 정부의 경제상황이 좋지 않은 걸 그들도 이해한다고 했다. 젊은 사람들은 어서 미국과 경제교류가 활발해지기를 바라지만, 아니따는 이미 자본의 맛을 조금 알게 된 아들들이, 늦은 밤에도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아이들이 돈 때문에 위험하고 불안한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를 더 걱정했다. 아이들은 혁명의 의미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고 걱정했다.   



물론 지독한 가난에 시달리며 하루빨리 미국의 자본이 들어와 생활이 윤택해지기를 바라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내가 만난 쿠바 사람들은 레이디 가가의 뮤직비디오를 보고, 저스틴 비버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팔로우하고 외장하드에 최신 영화를 다운받아 노트북으로 영화를 보면서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문화적 퀄리티를 즐기고는 있지만, 우리들처럼 살고 싶어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우리는 우리의 경쟁의 삶에 지쳐 그곳을 찾았고, 그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공존의 가치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생활이 조금 불편할 뿐이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여유를 사랑하고 있었다.   



아바나로 돌아갔을 때, 작은 숟가락이 사고 싶었다. 여행할 때 찻잔 대신 사 모으는 티스푼. 쿠바는 커피를 많이 마시는 나라니까 당연히 골동품 상점을 가면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간혹가다 오래된 티스푼을 발견하면 그건 메이드인 캐나다이거나 메이드인 잉글랜드. 쿠반 쿠차라가 없느냐고 했더니 쿠바에서는 숟가락을 만들지 않는단다. 이게 진짜인지 거짓말인지. 숟가락을 만들지 않는 나라라니. 다음날 그레이스 아줌마가 도와주겠다고 해서 아바나의 대형 쇼핑센터에 따라갔는데 그곳에서도 숟가락은 찾지 못했다. 온갖 가전제품도 다 있는 그곳에서 숟가락만 찾지 못했다.   



불편을 몸소 체험하고 나서야 돈이 있어도 할 수 없는 것이 있는 곳이 이곳 쿠바라는 걸 알게 됐다. 티스푼을 구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후에는 이 상황이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반드시 사야 할 이유는 없었다. 토마토와 치즈가 없으면 다른 요리를 해 먹으면 되고, 비누가 없으면 며칠쯤 물로만 씻어도 살 수 있다. 불편할 뿐이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느냐고 괴로워 할 일은 아니다. 선택할 수 있을만큼 다양하고 풍족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럼으로 인해서 불행하지는 않다.



쿠바 사람들은 나보다 잘 사는 사람을 따라하거나 부러워하는 대신 자신의 신념을 지키면서도 살아갈 수 있는 다른 삶의 방식을 찾는다. 오래된 차를 새 차처럼 가꾸는 방법, 기름이나 가스가 없을 때는 알코올로 대신하는 방법을 찾아냈고, 농기계와 비료가 없으면 소를 이용하기도 하고 자신들만의 친환경적 농법을 개발하기도 했다. 월급이 너무 적어 공무원들의 비리가 늘어나거나 쿠바를 떠나 마이애미로 유럽으로 망명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불법적인 일들이 늘어나는 건 오랜 경제 제재로 인해 너무 열악해진 경제 상황으로 인해 생긴 부작용이기도 하지만, 이제 조금씩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외국과 경제 교류를 하게 되면, 그들은 다시 그들이 옳다고 믿는 대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가 고립인가 체제인가는 좀 더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인 것 같다.



체 게바라는 더이상 궁금하지 않았다. 혁명광장도 산타 클라라도 가지 않았다. 지금 내가 본 쿠바가 체 게바라인 것 같았다. 비록 주변국과의 관계 그리고 내부적 관계에 의해 그들이 바랐던 이상을 모두 실현할 수는 없었지만. 쿠바 사람들이 품은 마음이, 삶이 혁명 그 자체가 아닌가.   



-   



며칠 전 동네를 지나갈 때 맞은 편에서 오는 여자 아이가 수화기 너머의 친구에게 축하인사를 건네며 고를 수 있는 고민이라니. 그런 행복한 고민이라서 좋겠다고 하는 얘기를 들었다. 몇 주 전 친구가 이놈의 세상은 자꾸 필요없는 걸 원하게 만드는 것 같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날도 나는 사야할 것 같아서 틴트를 하나 샀다. 필요해서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나쯤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선택은 자유 의지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선택을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자유로운 거라고. 그런데 요즘은 선택이라는 것 자체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마트 진열대에 있는 수만가지 종류 중에 무엇을 골라야 할까. 뭐가 내게 맞는 걸까. 비슷비슷해 보이는 립스틱도 저마다 다른 브랜드의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고, 별다를 것 없어 보이는 물티슈마저도 브랜드와 가격이 제각각이다. 내가 좋아하는 걸 고르기보다 뭘 골라야 손해보지 않고 잘 고른 게 되는 걸까를 고민하게 된다. 애초에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도 모르겠고 내게 이게 필요한 건지도 모르겠다. 정말 친구의 말대로 필요없는 걸 자꾸만 원하게 만드는 지도, 그래서 선택을 하는 것에 고민을 하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김수영의 시구처럼, 나는 오늘도 혁명은 안되고 방만 바꾸어 버렸다. 여러가지 인생 계획 중에 하나를 포기했다. 만약 그걸 선택했다면 인생의 방향은 지금과는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었는데, 나는 아무래도 모험을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싫지만 조건이 보다 좋은 익숙한 걸 선택하고, 또 머지않아 불평과 불만 속에서 괴로워하며 도망칠 궁리를 하게 될 지 모른다. 그리고 또다시 혁명만을 꿈꾸게 될지 모른다. 오늘 포기했던 걸 다시 만지작 거리면서. 너무 늦은 건 아니냐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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