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의 기적

경북 최초의 구미시장 탄생

by 물푸레

초현실적인 사건들의 연속이다. 두 차례에 걸친 남북정상회담이 그랬고, 김정은과 트럼프의 만남이 그랬다. 그리고 동토의 땅이며 한반도 남쪽의 섬과 같은 곳이라 여겨졌던 경북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오늘 새벽 내가 살고 있는 바로 이 지역 구미에서 민주당의 후보가 시장으로 당선된 것이다.


보수주의자들이 '반신반인'이라 추앙하는 박정희가 태어난 곳 구미. 진보 정당을 지지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면 면전에서 '빨갱이' 소리를 들어야 했던 곳. 시내 곳곳에 새마을 기가 펄럭이며 박정희 체육관, 박정희로(路), 박정희 생가, 박정희 기념관이 시내 요소에 들어서 있는 곳.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보수단체들에게 물리적으로 봉변을 당해야 했던 곳. 해마다 박정희의 제사를 모시고 그들 부부의 이름을 딴 '정수대전'이 열리는 곳. 보수의 성지라 불리는 이 곳이 바로 구미시다.


경북에서도 특히 구미시는 이와 같은 특수성으로 인해 누구도 이번 선거에서 시장 당선을 확신하지 못했다. 여론조사 결과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할 때도 이른바 숨은 '샤이 보수' 표로 인해 결국은 당선이 어렵지 않겠느냐는 걱정이 앞섰다. 중앙에서 수십 명의 국회의원들이 장세용 구미시장 후보의 지원 유세를 위해 구미를 찾았다. 전 국회의장을 역임한 분까지 나서서 지원활동을 하면서 이번에는 뭔가 분위기가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역시 결과는 미지수였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자 장세용 후보는 상대 후보와 격차를 유지한 채 한 번도 뒤지지 않고 승리했다. 한때 많게는 10% 포인트까지 앞서기도 했고 턱 밑까지 추격을 당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약 2% 포인트 차이로 이겼다. 개표 중계 화면에 장세용 후보 '유력'이라는 표기가 떴다가 사라지기를 여러 차례 반복해서 마음을 졸였다. 결국 밤을 꼬박 새우고 해가 떠 오를 무렵이 돼서야 당선이 확정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빨갛게 채색된 경북의 지도에 유일하게 파란 점 하나를 찍었다. 그곳이 바로 내가 살고 있는 구미라니!


시기의 문제일 뿐 구미는 변화할 것이며, 구미의 변화는 경북과 대구를 바꿔놓을 것이다. TK 지역의 변화는 대한민국 전체의 정치 문화적 진보를 이룰 것이 분명하다. 그 변화의 역사적인 첫걸음을 오늘 시작했다. (남북회담이나 북미회담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적어도 지역의 역사에는 크게 기록될 일이다.)


나는 더이상 부끄럽지 않은, 경상북도 구미의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시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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