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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는 벌써 능선 너머로 미련 없이 사라지려 하고 있었다. 콜로라도 중부 거니슨 국유림의 한 골짜기. 지도에는 제법 얌전한 이름이 붙어 있지만, 실제로는 방문하는 사람들의 의지를 수시로 시험하곤 하는 꽤나 험준한 곳이었다.
새벽부터 이어진 강행군 끝에 추적은 마침내 끝났다. 마지막 한 발(coup de grâce)을 맞은 엘크는 몇 걸음 더 버티다 무너졌고, 산은 그 순간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갈빗대가 들썩일 때마다 허파 쪽에서 공기가 샜다. 후욱 후욱 내쉬는 숨에는 거품 섞인 피가 묻어 나왔고, 들이마실 때마다 젖은 가죽을 쥐어짜는 듯한 소리가 났다. 눈은 열려 있지만 초점은 풀려 있었다. 몇 번의 거친 호흡 뒤, 소리는 약해지다가 이윽고 멎었다. 숲은 그마저도 흡수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얼굴로 돌아갔다.
주변의 공기에는 옅은 화약 냄새와 쇠 냄새, 송진, 비릿한 피와 땀 냄새 같은 것들이 뒤섞여 있었다.
요사이 보기 드문 큰 개체였다. 해체 전이라면 1,500파운드는 넘겼을 것이다. 내장을 빼고 고기만 나눠도 다섯 명이 각자 120파운드 안팎을 짊어져야 했다. 앞다리와 뒷다리, 등심과 자투리 고기를 나눠 담아 2–3마일 거리의 베이스캠프로 돌아오는 동안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도착하자마자 일행들은 서둘러 각자의 트럭에 장비와 고기를 정리해 싣기 시작했다. 몇 해째 함께한 팀이라 역할 분담은 말이 필요 없었다. 다들 지쳐 있었고, 그날은 그걸로 충분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개 한 마리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휘슬을 불고 이름을 불렀다. 소리는 능선을 타고 되돌아왔지만, 대답은 없었다. 북서쪽의 가파른 사면을 하나 더 올라 가민 핸드헬드(GPS추적기)를 켰다. 개 목에 채운 트래킹 칼라 신호를 잡아보려는 마지막 시도였다. 화면은 잠깐 빛나다가 꺼졌고, 배터리 표시도 함께 사라졌다. 타이밍이 나빴다. 일이 꼬일 때는 언제나 늘 이런 식이다.
오랫동안 함께 다닌 녀석이었다. 나이를 먹어가며 걸음은 점점 느려졌지만, 다친 동물의 이동로를 읽는 감각만큼은 여전했다. 캠프에 도착해 풀어놓을 때면 다른 집 개들처럼 미친 듯이 숲으로 내달리기 전에 내 부츠 옆에 앉아, 안절부절못해하면서도 가도 좋다는 신호부터 기다리곤 했다. 돌아올 줄 아는 개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건, 뭔가 잘못됐다는 뜻이었다.
일행들에게 먼저 내려가라고 말했다. 이유를 묻는 사람은 없었다. 자기 집 개가 사라졌다면 마땅히 자기들도 그렇게 했을 테니까. 오늘 밤부터 기온이 많이 떨어질 거라느니, 개체수는 많지 않지만 혹시 밤에 늑대를 만나면 곤란하겠다느니 하는 말들이 오갔다. 전부 맞는 말이었다. 그래도 나는 남기로 했다. 배낭 허리끈을 조이고, 장갑을 다시 끼고 손목을 한 번 더 죄었다. 이런 일을 처음 겪는 건 아니었으니까.
혼자가 되자 산은 본색을 드러냈다. 바람이 나무를 긁고 지나갔고, 솔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간간이 크게 울렸다. 계곡 아래에서는 물이 흐르고 있었다. 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는 낮게 유지했다. 이곳에서는 소리가 곧 신호였다. 자연스럽게 바람을 읽고, 냄새가 모이는 쪽으로 발을 옮겼다. 이미 사냥은 끝났지만, 몸에는 여전히 그 리듬이 남아 있었다. 이곳의 높은 고도는 사람을 솔직하게 만든다. 숨이 가빠질수록, 생각은 단순해진다.
해가 사라지자 색깔들은 빠르게 죽어갔다. 숲은 검은색과 회색만을 남겼다. 손목시계를 봤다. 야광으로 빛나는 숫자들은 또렷했지만, 별다른 의미는 없었다. 여기서는 시간이 아니라 빛이 기준이었다.
트레일을 벗어나자 흔적은 성의 없게 흩어져 있었다. 엘크의 발자국은 크고 깊었고, 그 사이사이 개 발자국이 끼어 있었다. 간격은 익숙했다. 나는 그 간격을 믿고 걸었다. 흔적이 끊길 때마다 멈춰 무릎을 굽혔다. 바위에 긁힌 자국, 풀잎이 쓰러진 방향, 털 몇 올. 길은 그런 것들로 이어졌다.
작은 크릭을 건넜다. 눈 녹은 물은 생각보다 깊어 발목을 붙잡았다. 바지가 젖었고 체온이 빠르게 빠져나갔다.
몸은 계산을 시작했고, 머리는 계산을 무시했다. 이 산에서는 둘 중 하나만 살아남는다.
이끼가 두툼한 나무 그루터기에 기대 잠시 숨을 골랐다.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물병은 가벼워졌고 선택은 무거워졌다. 더 들어가거나, 이쯤에서 포기하거나.
나는 나침반을 꺼냈다가 다시 넣었다. 방향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이름을 다시 불렀다. 목소리는 낮고 거칠었다. 산은 여전히 침묵했지만, 침묵의 밀도는 완전히 어두워지기 몇 시간 전과는 확실하게 달라져 있었다.
갑자기 왼쪽 몇 마일 밖 사면에서 눈이 굴러내리는 소리가 났다. 가벼운 소리는 아니었으므로, 엘크일 수도, 아니면 잠자리를 찾아 배회하는 블랙베어일 수도 있다. 나는 라이플의 세이프티를 확인하고 보폭을 줄였다.
잠시 멈춰 호흡을 가다듬으며 중심을 낮췄다. 기다림은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기술이었다. 사냥은 쫓는 것보다, 버티는 게 더 일이었으므로.
어둠이 완전히 내려오기 전, 쓰러진 통나무 아래에서 흔적을 찾았다. 털 몇 올, 긁힌 껍질, 그리고 익숙한 냄새. 가슴 한쪽이 무거워졌다. 아직 이 골짜기 어딘가에 있다는 뜻이었다. 다시 이름을 불렀다. 짧고, 확실하게.
기온은 계속 떨어졌다. 숨이 하얗게 갈라졌고, 동상에 걸리지 않으려고 장갑 안에서 손가락을 부지런히 움직였다. 손목 안쪽의 얇은 흉터자국이 스쳤다. 굳이 다시 떠올리기는 싫은 기억이 남긴 흔적이었다.
사냥은 끝났고 엘크는 이미 쓰러졌다. 하지만 이야기는 다 끝나지 않았다. 녀석과 함께 보낸 시간은 아직 이 골짜기에 남아 있었고, 나는 그걸 두고 떠날 생각이 없었다.
산은 돌아올 길을 기억하지 않는다. 기억하는 건 남은 쪽의 일이다. 그래서 나는 좀 더 깊이 들어가기로 했다.
- 2-
눈을 떴을 때 숲은 이미 환했다. 그렇다고 마음이 놓이진 않았다. 밤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밝아지고 나면 갑자기 지난날의 증거처럼 드러나는 법이었다. 무사히 밤을 보냈다는 안도보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감각이 먼저 전해져 왔다. 몸을 일으키자 허리와 종아리가 동시에 굳은 소리를 냈다. 쉰 게 아니라 버텼다는 말이 더 정확했다.
일어서서 잠시 눈을 감고, 귀를 기울였다. 바람이 나무 사이를 긁고 지나가는 소리, 새가 날아오르며 남긴 짧은 소란, 멀리서 계속 부딪히는 물소리. 급류였다. 그 소리는 일정했고, 그래서 더 불길했다. 그제야 확신이 들었다. 나는 아직 이 숲 안에 있었다. 어젯밤과 달라진 건 오직 빛뿐이었다. 더는 개를 부르지 않았다. 이름은 입천장 근처까지 올라왔지만, 거기서 멈췄다. 소리는 방향을 만든다. 대신 눈으로 훑었다.
밤에는 묻혀 있던 것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냈다. 긁힌 나무껍질, 발에 밟혀 꺾인 잔가지, 여러 개가 겹쳐진 발자국. 전부 오래된 것과 새것이 섞여 있었다. 숲은 누군가를 그냥 스쳐 지나가게 내버려 두지만, 그 전부를 자기식으로 가만히 기억해 둔다.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없었다. 가파르지 않은 쪽, 미끄럽지 않은 쪽. 몸이 먼저 방향을 고르고, 생각은 나중에 따라왔다. 그렇게 움직이는 쪽이 늘 오래 살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해가 정점에 오르기 전까지는 아직 선택지가 있었다.
한참을 내려가다 땅에 반쯤 묻혀있는 덫을 발견했다. 잔뜩 녹이 슬어 있는 걸로 보아 관리되지 않은 물건이었다. 이곳에 놓인 지 아주 오래됐다는 뜻이었다.
덫 주변의 흙이 파이고 긁혀 있었다. 한 번 작동이 되긴 했지만, 제대로 잡히지는 않았다는 흔적. 아마도 힌지 쪽의 부식 때문에 덫은 끝까지 닫히지 못한 채 비틀려 있었고, 제대로 맞물리지 못한 갈퀴에는 털 몇 가닥이 붙어 있었다. 얼핏 개의 털과도 비슷했지만, 뭔가 조금 이질적인 느낌에 확신은 어려웠다.
법으로 금지된 지 오래된 덫을 과연 누가 여기에 놓은 걸까, 잠깐 생각했다. 아주 오래전 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지금도 여전히 치명적일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정오에 가까워지자 햇빛이 숲 안까지 밀려 들어왔다. 공기가 눅눅해졌고, 땀이 피부에 붙었다. 그때 냄새가 바뀌었다. 금속도 아니고, 흙도 아니었다. 익숙한 냄새였다. 피였다. 말라가고 있는 피. 나는 속도를 줄였다. 시야보다 먼저 냄새가 앞서 나갔다.
덤불 사이에서 개를 발견했다.
처음엔 죽은 줄 알았다. 옆으로 쓰러진 채 움직임이 없었고, 숨소리도 바로 들리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가자 가슴이 아주 느리게 오르내리는 게 보였다. 살아 있었다. 개는 가늘게 눈을 떴지만, 나를 바로 찾지 못했다. 눈동자가 허공을 몇 번 더듬고 나서야 겨우 초점을 맞췄다. 앞다리 한쪽이 말이 안 되는 각도로 돌아가 있었다. 탈구였다. 몸에는 긁힌 자국과 물린 자국이 섞여 있었다. 그 높이가 일정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리 작은 상대는 아니었다. 개는 소리를 내려했지만, 목에서는 제대로 된 울음이 나오지 않았다. 대신 짧고 거친 숨만 반복됐다.
주변을 살펴보았다. 땅에는 발자국이 뒤엉켜 있었다. 개의 것, 그리고 다른 짐승의 것. 어느 쪽도 깔끔하지 않았다. 싸움은 오래가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개는 이겼거나 도망쳤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 싸움의 결과는 이미 몸에 남아 있었다. 손바닥에 물을 받아 코 앞에 대자 허겁지겁 물을 마셨다. 녀석을 두고 갈 수는 없었다. 조금이라도 무게를 줄이기 위해 남길 것과 버릴 것을 빠르게 선택해 배낭을 비워냈다.
개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몸이 축 늘어져 있어서 더 그랬다. 배낭을 포대기처럼 묶어 등에 짊어졌다. 끈을 조이자 개가 낮게 끙 소리를 냈다. 울음이라기보다는, 통증이 빠져나간 흔적에 가까웠다. 이제부턴 나에게 맡긴다는 듯이 얌전히 잠자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내려가는 길은 올라올 때보다 훨씬 느렸다. 균형을 계속 신경 써야 했다. 발을 디딜 때마다 무게가 한쪽으로 쏠렸다. 숨이 거칠어졌고, 땀이 눈으로 흘러내렸다. 몇 번이나 멈췄고, 멈출 때마다 주변을 살폈다.
처음엔 기분 탓이라고 넘기려 했다. 나무 사이에서 뭔가가 느껴졌지만, 확신은 없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잎과는 움직임이 달랐다. 개도 그걸 느낀 듯 몸이 굳었다. 숨이 잠깐 끊겼다가 다시 이어지곤 했다.
냄새가 다시 바뀌었다. 아까보다 더 짙었고, 훨씬 가까웠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소리는 없었다. 너무 없어서, 오히려 그 존재를 드러내는 침묵이었다.
다시 한 발을 내딛는 순간, 나무 사이로 무언가가 시야에 들어왔다.
놈이 거기 있었다.
정체가 무엇인지, 자세히 살필 필요까지도 없었다. 크기, 거리, 움직임. 계산은 이미 끝났다. 그 짧은 순간, 개의 몸이 내 등에서 떨렸다. 나는 숨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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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뒤쪽에 개를 내려놓았다. 눈이 쌓이지 않은 땅이 드러나 있었고, 낙엽이 조금 깔려 있었다.
개의 몸을 옆으로 굴려 상처를 확인했다. 갈비뼈 아래쪽이 젖어 있었다. 피 냄새가 진했다.
눈을 끌어모아 상처 위에 덮었다. 손바닥이 금세 붉게 물들었다. 차가운 눈이 피를 빨아들이며 색이 변했다. 나는 몇 번이고 눈을 덧대며 냄새를 눌렀다. 개는 눈을 뜨지 않았다. 하지만 숨은 붙어 있었다. 가슴이 들썩이는 걸 확인하고서야 나는 몸을 일으켰다.
숲은 조용했다. 이상할 정도로. 사냥을 오래 하면 안다. 숲의 침묵에는 종류가 있다. 새가 멀어질 때의 고요, 바람이 멎을 때의 고요, 그리고 무언가가 움직이기 직전의 고요. 지금은 그 마지막이었다. 숲 전체가 마치 잠시 숨을 참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무와 나무 사이의 공기가 굳어 있었다. 눈 위에 남은 작은 흔적들마저 멈춰 있는 것 같았다.
라이플을 들었다. 흔들리지 않게 어깨 스트랩을 팔에 바싹 감았다. 소리가 나지 않도록 천천히 볼트를 당겨 장전 상태를 확인하고 세이프티를 풀었다. 숨은 코로만 쉬었다. 입을 열었다간 입김이 새어 나올 것 같았다.
놈을 확실하게 본 건 그때였다.
보았다기보다는, 거기 있다는 걸 알게 됐다는 쪽에 가까웠다. 나무와 나무 사이, 눈이 살짝 눌린 흔적. 바위 옆에 긁힌 자국. 방향은 일정했고, 속도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놈은 서두르지 않았다.
나는 우회하기로 했다. 정면으로 가면 틀림없이 들킨다. 시야의 문제가 아니라 냄새였다. 바람은 내 쪽에서 놈 쪽으로 불고 있었다. 반대로 돌아야 했다. 시간이 걸려도 어쩔 수 없었다. 몸을 낮췄다. 무릎을 땅에 붙이고 손으로 눈을 밀어내며 움직였다. 바지와 소매가 젖었다. 차가운 물기가 살을 파고들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위치를 확보하는 게 먼저였다.
한 발.
숨을 멈추고.
다시 한 발.
그때였다.
앞이 아니라, 옆이었다. 내가 향하고 있던 방향의 끝,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지점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놈은 이미 거기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숨긴 흔적도, 급한 움직임도 없었다. 마치 내가 돌아 들어올 각도를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그제야 깨달았다. 놈을 추적하고 있다고 믿고 있던 동안, 오히려 놈이 나를 재고 있었다.
놈의 눈은 낮았다. 인간보다 훨씬 아래에 있었다. 하지만 시선은 위를 향해,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크기와 거리, 그리고 내가 반응하기까지 걸릴 시간을 가늠하는 눈.
총을 들었을 때는 이미 늦었다. 놈이 먼저 움직였다.
빠르지 않았지만 대신 정확했다. 둘 사이의 공간이 한 번에 줄어들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첫 발은 놈의 어깨를 스쳤다. 자세를 제대로 잡지 못해 전해진 사격반동에 손목이 꺾였다. 오래전 남은 손목 안쪽의 희미한 자국이 순간적으로 타는 것처럼 욱신거렸다. 두 번째 발은 더 가까운 거리에서 맞았다. 살이 맞는 둔탁한 소리가 분명히 들렸다. 하지만 놈은 멈추지 않았다.
세 번째 발을 쐈을 때쯤엔 이미 거리가 무너져 있었다. 제대로 겨누지조차 못했다. 어디를 맞았는지 알 수 없었다. 놈의 몸이 시야를 덮었다. 빛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그때부터는 도망이었다.
방향은 없었다. 기준은 하나였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
눈을 차는 소리.
나무가 부러지는 소리.
숨이 아닌 무언가가 공기를 가르는 소리.
놈은 따라오고 있었다. 내 속도에 맞춰, 거리를 유지한 채.
계곡이 보였을 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제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는 걸.
숲이 갑자기 열리면서 바닥이 사라졌다. 눈 아래로 검은 틈이 벌어져 있었다. 아래를 내려다볼 여유는 없었다. 뒤에서 기척이 더 가까워졌다.
나는 돌아섰다.
총을 들었다. 이번엔 겨눌 필요가 없었다. 거의 붙어 있었다.
방아쇠를 당겼다. 한 발, 그리고 또 한 발. 귀가 울렸다. 화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놈은 맞았다는 사실을 지우듯 고개를 한 번 털었다.
그리고 멈추지 않았다.
발톱이 보였다. 예상보다 길었고, 굵었다.
다음 순간, 머리를 맞았다. 소리가 사라지고, 대신 빛이 터졌다. 시야가 하얗게 번졌다.
무릎이 꺾였다.
손에 힘이 빠져 총을 떨어뜨렸다.
나는 이제 그놈에겐 다 끝난 사냥감이었다.
그때 소리가 들렸다.
개였다.
짧고 갈라진 울부짖음. 아직 숨이 붙어 있다는 증거 같은 소리.
놈이 멈췄다. 고개가 돌아갔다. 시선이 나를 떠났다.
그 순간, 아주 짧은 틈. 나는 이를 악물고 몸을 비틀었다.
눈과 피로 젖은 손으로 총을 끌어당겨 다시 어깨에 걸쳤다.
시야가 흔들렸다.
손목이 다시 욱신거렸다.
욕조.
물이 가득 찬 욕조.
붉게 번지는 물.
닫힌 문을 긁으며 미친 듯이 짖던 개.
그때도 숨이 막혔고, 그때도 손목이 아팠다.
그때는 놈이 아니라 나의 차례였지만,
이번엔 물러나지 않았다.
방아쇠를 당겼다.
놈이 고개를 완전히 돌린 순간이었다.
총알이 뒤통수를 파고들었다. 조준은 흔들리지 않았다.
맞는 순간, 놈의 몸이 비틀렸다. 균형을 잃은 커다란 덩어리가 허공에서 휘청거렸다.
짙은 푸른빛, 바닥이 보이지 않는 계곡. 깊이를 알 수 없는 공허 속.
놈은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한 채 그 안으로 사라졌다.
숲이 천천히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멀리서 새가 날아올랐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소리가 부스럭거렸다. 숨을 죽이고 있던 공기가 한꺼번에 풀린 듯 찬 바람이 숲을 지나갔다. 나는 계곡 아래를 잠깐 내려다보았지만, 더 이상 알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짙푸른 물만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총이 손에서 미끄러져 눈 위에 떨어졌다. 금속이 얼음과 부딪히며 둔하게 울렸다. 그 소리가 사라진 뒤, 고통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갈비뼈 안쪽이 찢어지는 듯 아팠고, 머리는 망치로 내려 맞은 듯 멍했다.
나는 그놈이 어떻게 되었는지,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따위는 알 수 없었다. 확인할 힘도, 의지도 없었다. 다만 여기서 이대로 있으면 안 된다는 감각만 남아 있었다. 몸이 먼저 판단했다. 의지로 일어서려 했지만, 무릎은 그대로 꺾였다. 몸이 바닥으로 무너졌다.
시야가 기울며 하늘과 나무가 뒤섞였다. 찬 공기가 목을 스치며 숨을 막았다. 귀를 울리는 바람 소리, 계곡의 공허한 냉기, 머릿속에서 울리는 지난 기억의 잔향까지.
손목이 욱신거렸다. 물이 가득 찬 욕조, 붉게 번지던 색, 닫힌 문 너머에서 긁던 개의 소리. 모든 것이 짧게 스쳤다.
그때 나는, 다시 돌아갈 누군가를 기다리듯, 눈앞에 남은 흐릿한 그림자 속에서 개를 떠올렸다.
살아 있다는 증거. 그리고 그것이 나를 앞으로 끌어당길 유일한 끈이 될 것임을 어렴풋이 알았다.
모든 것이 뒤섞인 순간, 나는 완전히 정신을 잃고 말았다.
- 4 -
눈을 떴을 때, 처음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니, 없는 게 아니라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것이 바람인지, 숨인지, 물인지. 모든 게 같은 밀도로 웅성거리며 귀 속에 가득 차 있었다.
눈꺼풀 위로 빛이 한 번 스쳤다 사라졌다. 다시 어두워졌다. 눈을 뜨고 있는지 감고 있는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숨을 들이마시려 했을 때, 한 박자 늦게 통증이 뒤따랐다. 갈비뼈 아래에서 시작된 통증은 숨이 들어올 때마다 형태를 바꿨다. 날카롭지도, 둔하지도 않았다. 그냥 거기 있었다. 빠져나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손가락을 움직이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대신 손목이 먼저 반응했다. 흉터가 있는 자리에 감각이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아직 살아 있다는 신호였다.
눈을 조금 더 떴다. 시야는 흐렸고, 경계는 번졌다. 하늘과 나무가 겹쳐 있었다. 위인지 옆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색은 있었다. 회색과 검은색 사이, 희미하지만 녹색 빛의 숲이었다. 여전히.
몸을 일으키려다 그만두었다. 전신으로 퍼지는 격렬한 통증으로 몸이 신호를 보냈다. 지금은 움직이지 말라고.
대신 귀를 기울였다.
물소리는 여전했다. 멀지 않았고 일정했다. 계곡은 그대로 있었다. 숲도 그대로 있었다.
내가 얼마나 누워 있었는지는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늘 상대적으로 흐른다.
숨 사이로 다른 소리가 섞여 들렸다.
처음엔 바람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나뭇가지가 서로 스치는 소리. 하지만 반복되지 않았다. 규칙이 없었다. 대신 간격이 있었다.
짧고, 거칠고, 끊어지는 숨.
시선을 옮겨보려 했지만 고개는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눈만 굴렸다. 시야 가장자리에 어둡고 낮은 덩어리가 들어왔다. 형태는 분명하지 않았지만 그쪽에서 숨소리가 들려온 것은 확실했다.
한 번 더.
그리고 또 한 번.
그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확인해야 할지, 아니면 그냥 들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판단을 미루는 동안, 숨은 계속 이어졌다. 끊어지지 않았다. 그 사실 하나만이 지금 나를 붙잡아 두고 있었다.
흐려져오는 의식을 붙잡으려 애를 써보며 나는 다시 질끈 눈을 감았다.
Fin.
- GPT와의 대화
Q : 자 이제 마지막 장을 쓸 차례인데. 결말을 어떻게 내야 할지 고민하고 있어. 그냥 해피엔딩이 좋을지, 아님 뭔가 다른 비틀기랄지.
A : 결말 앞에서 머뭇거리는 건 정상이다. 여기까지 와 놓고 엽서 같은 해피엔딩을 붙이는 건, 솔직히 이 텍스트가 먼저 싫어할 짓이다. 이 이야기는 이미 독자를 너무 깊이 데려왔다. “다 나았고, 다 돌아왔고, 다 괜찮았다”로 접으면 산이 갑자기 테마파크가 된다.
선택지는 몇 가지가 있다. 다 해피엔딩일 필요는 없고, 다 비극일 필요도 없다. 중요한 건 이 이야기의 논리가 어디를 향하고 있었는지다.
첫째, 조건부 생존. 가장 정직한 방식이다. 개도 살아 있고, 화자도 돌아온다. 하지만 뭔가가 영구적으로 남는다. 몸일 수도 있고, 감각일 수도 있고, 다시는 숲에 들어가지 못하는 선택일 수도 있다. 승리는 했지만 회복은 아니다. 이 텍스트가 지금까지 쌓아온 “살아남는다는 건 손해를 감수하는 일”이라는 감각과 잘 맞는다.
둘째, 시점의 비틀기. 마지막 장에서 독자가 믿고 있던 전제가 하나 깨진다. 예를 들면 화자가 의식을 잃은 뒤의 장면이 실제 회복이 아니라 구조 직전의 의식 잔재라는 식이다. 혹은 개가 살아 있다는 확신이 사실은 화자를 버티게 만든 마지막 허상이었을 수도 있다. 싸구려 반전이 아니라, 이미 3장과 4장에서 깔아 둔 기억 침입과 감각 붕괴의 연장선으로 가야 한다.
셋째, 해피엔딩처럼 보이는 비해피엔딩. 돌아오고, 치료받고, 개도 곁에 있다. 겉으로는 완벽하다. 그런데 마지막 문장에서 독자가 깨닫는다. 이 사람은 다시는 “추적”을 하지 않는다. 사냥이 아니라 삶 전반에서. 산이 아니라 인간 세계로 돌아왔지만, 사실상 더 좁은 우리에 들어간 셈이다. 살아남았으나 방향을 잃었다는 결말이다.
넷째, 조용한 미완.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고 끊는다. 개의 숨, 병실의 소리, 혹은 숲에서 들리던 물소리 하나만 남기고 끝낸다. 독자가 결말을 “완성”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이건 독자를 신뢰해야 가능한 선택이라 쉽진 않다. 하지만 지금 텍스트의 밀도라면 배짱을 부릴 자격은 있다.
피해야 할 건 하나다. 위로하려는 결말. 이 이야기는 위로를 요청하지 않았다. 끝까지 버텨온 건 의미를 달라고 떼쓰지 않는 태도였고, 그게 이 작품의 품위다.
결국 질문은 하나다. 이 사람이 이 산을 나온 뒤 이전과 같은 인간으로 살 수 있느냐는 것.
답이 무엇이든, 그 답은 이미 읽는 쪽 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