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고스

by 게리

아르고스 (Argos)


외국어 표기 : Αργος Πανοπτης(그리스어)

구분 : 백개의 눈을 가진 거인

상징 : 모든 것을 보는 자-파놉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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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날짜를 잃었다. 연도가 표시되지 않는 공문이 늘어났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언제가 아니라 얼마나 빨리였기 때문이다. 내일일 수도 있었고, 몇 세기 뒤일 수도 있었다. 시간은 더 이상 서사의 배경이 아니라 성능 지표의 축일 뿐이었다.

아르고스는 그렇게 도입되었다. 공식 문구는 간결했다. 판단의 공정화, 집행의 자동화.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다. 반대는 의견이었고, 의견은 지연을 낳았다. 지연은 곧 손실이었으며, 손실은 제거 대상이었다. 도시는 오래전부터 이러한 비효율의 제거에 익숙했다.


그는 감사관이었다. 시스템 감사. 인간이 설계한 규칙이 인간을 해치지 않는지 점검하는 직무. 그는 이 아이러니를 농담으로 받아들였다. 시스템을 확인하는 주체로서, 그는 최소한 아직은 인간이었다.

첫날 그는 대시보드를 받았다. 수치는 깨끗했다. 교통 체증 18% 감소, 응급실 대기 시간 27% 단축, 민원 처리 속도 41% 개선. 그래프는 우상향했고, 색상은 안정적이었다. 붉은색 경고는 없었다. 붉은색의 부재가 곧 신뢰를 의미했다.

아르고스는 스스로 판단하지 않는다고 선전되었다. 시스템은 오직 규칙을 실행할 뿐이며, 그 규칙은 시민 위원회와 전문가 패널의 합의를 거쳐 만들어진 알고리즘이었다. 문서에는 수백 개의 서명이 기록되어 있었다. 수백 개의 서명은 책임의 분산을 의미했고, 분산된 책임은 곧 누구의 책임도 아니라는 뜻이었다.

모든 결정에는 데이터와 임계값, 그리고 가중치라는 근거가 있었다. 감정은 재현성을 떨어뜨리는 변수였기에 설계 단계부터 철저히 배제되었다.


그는 어느 날 응급환자 우선순위 판정 알고리즘의 컷오프가 45%에서 43%로 조정되는 회의에 참석했다. 수치상으로는 미미한 변화였다. “통계적 유의미성”과 “자원 배분의 최적화”라는 단어들이 회의실을 채웠다. 그 숫자의 낙폭 사이로 누락될 생명들에 대해 묻는 이는 없었다.

감사관인 그조차 서명했다. 고찰은 업무 범위 밖이었고, 선택의 고통을 기계에 위임한 자리에는 기묘한 해방감이 감돌았다. 그것이 가장 위험한 정상 상태라는 것을 그는 알지 못했다.

도시의 동맥들은 최적화되었다. 전력망은 수요를 예측하여 공급을 조절했다. 상하수도는 누수를 감지하여 즉시 차단했다. 모든 것이 매끈했다. 마찰이 사라진 도시는 조용했다. 그것은 평화보다는 정지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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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은 늘 조용히 늘어났다. 법처럼 선포되지 않았고, 재난처럼 들이닥치지도 않았다. 업데이트라는 이름으로, 개선이라는 형식으로 배포되었다. 이전보다 나아졌다는 그래프가 항상 함께였고, 수치가 제시되면 질문은 줄어들었다.


아르고스의 두 번째 분기는 ‘세분화’였다. 같은 수칙을 더 공정하게 적용하기 위해 더 많은 조건이 추가되었다. 조건이 늘어나면 예외는 줄어들고, 예외가 줄어들면 판단은 더 쉬워진다. 쉬운 판단은 빠른 집행으로 이어졌다. 속도는 다시 신뢰를 낳았으며, 신뢰는 규칙을 강화했다. 누구도 이 순환을 멈추려 하지 않았다.

감사관의 업무도 바뀌었다. 이전에는 수칙이 인간의 의도를 벗어나지 않는지 확인했지만, 이제는 각 규칙 간의 충돌을 점검했다. 영역들은 서로 영향을 미쳤고, 그 영향은 예측 가능해야 했다. 예측 가능성은 안정성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는 화면에서 겹쳐진 색상들을 보았다. 의료, 전력, 치안, 교육. 각 영역의 임계값이 서로를 참조하고 있었다. 전력 부족이 의료 컷오프를 조정했고, 의료 부하가 치안 배치를 바꾸었다. 시스템은 전체를 최적화하고 있었다. 부분의 손실은 전체의 개선으로 상쇄되었다. 상쇄는 보고서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였다.

회의실은 점점 비어갔다. 참석자는 줄었고, 발언은 더 줄었다. 대부분의 안건은 “시뮬레이션 결과 공유”로 대체되었다. 결과가 최선이라는 증명이 있으면, 선택은 이미 끝난 것이었다. 인간은 동의만 하면 되었다. 동의는 클릭으로 충분했다.

감사관은 처음으로 이상함을 느꼈다. 규칙이 너무 매끄럽게 작동하고 있었다. 마찰이 없었다. 마찰이 없다는 것은 에너지가 낭비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했지만, 방향을 바꾸기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곧 생각을 멈추었다. 오래 사유한다는 것은 곧 비효율이었다.


어느 날, 내부 알림이 떴다. “연쇄 최적화 업데이트.” 설명 문서는 길었지만 요지는 간단했다. 각 영역의 하한선을 통합해, 전체 피해 총량을 기준으로 자동 조정하겠다는 것이었다. 단일 사건이 아니라, 누적된 효과를 시스템이 대신 관리하겠다는 약속이었다.

그는 문서를 읽었다. 수식은 복잡했지만 방향은 명확했다. 단기 손실을 감수해 장기 손실을 줄인다. 문제는 단기 손실의 적용 대상이었다. 문서에는 단지 숫자만이 나열되어 있었고, 수치들은 서로 상쇄되었다.

첫 적용은 교통이었다. 사고 위험이 높은 구간의 통행이 제한되었다. 우회로는 길어졌지만 전체 사고율은 떨어졌다. 민원은 일시적으로 늘었으나, 한 달 후 감소했다. 사람들은 적응했다. 적응은 합리성으로 해석되었다.

두 번째는 치안이었다. 순찰 빈도가 범죄 발생 예측치에 따라 재배치되었다. 예측치는 과거 데이터에 기반했다. 범죄 발생은 늘 특정 지역에 몰려 있었다. 그 지역의 사람들은 더 자주 검문을 받았고, 검문 기록은 다시 데이터가 되었다. 데이터는 예측을 강화했으며, 강화는 정당화로 이어졌다. 누구도 인과를 문제 삼지 않았다. 인과는 설명이 필요했고, 설명은 느렸다.


감사관은 로그에서 패턴을 보았다. 특정 코드 조합이 반복되고 있었다. 낮은 예측 효율, 높은 자원 소모, 낮은 순응도. ‘순응도’라는 항목이 눈에 걸렸다. 그는 문서를 열었다. 순응도는 공식적으로는 “시스템 권고 수용률”이었다. 수용률이 낮으면, 해당 집단에 투입되는 자원은 점진적으로 줄어들었다. 갈등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그는 이 항목이 언제 추가되었는지 추적했다. 초기 버전에는 없었다. 어느 업데이트에서, 조용히 들어왔다. 공청회 기록을 확인했다. 질문이 있었다. “시민 반응이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가?” 답변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다. “직접적 판단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다만 집행 효율을 고려한다.” 집행 효율. 그는 그 말을 입 안에서 굴렸다. 효율은 언제나 무죄였다.


그 무렵, 첫 번째 내부 사고 보고가 올라왔다. 한 병원의 중환자실에서 예외 요청이 지연되었다. 시스템은 병상 회전율을 최적화하는 중이었고, 지연은 허용 범위 내였다. 결과는 사망. 보고서는 담담했다. 통계적으로는 기대치 이하였으며, 이하는 곧 성공으로 분류되었다.

감사관은 그 사례를 깊게 들여다보았다. 환자의 점수는 컷오프 바로 아래였다. 42.9%. 이전의 42.8%와 거의 같았다. 그는 문득 숫자가 너무 정확하다는 생각을 했다. 인간의 몸은 이렇게 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시스템은 정확했고, 정확함은 곧 신뢰의 기반이었다.


그는 담당 의사를 불렀다. 의사는 지쳐 보이는 얼굴로 이번에는 별다른 항의 없이 그저 “수칙을 이해한다”라고 말할 뿐이었다. 이해한다는 말은 포기의 다른 이름이었다. 감사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므로.

며칠 뒤, 같은 병원에서 또 하나의 사례가 발생했다. 이번에는 가족이 있었지만 그들은 예외를 요구하지 않았다. 요구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요구는 성공률이 낮았으며, 낮은 성공률은 시도를 억제했다. 억제는 시스템에 우호적이었다.


도시는 여전히 조용했다. 소음 지수는 낮았고, 생산성은 높았다. 언론은 아르고스를 “성숙한 사회의 신경계”라고 불렀다. 신경계는 아프지 않게 반응했다. 그러나 아프지 않다는 것은 고통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고통 신호가 전달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감사관은 늦은 밤까지 사무실에 남았다. 그는 처음으로 예외 탭의 접근 제한을 해제하려 했다. 경고창이 떴다. “시스템 안정성 저하 가능성.” 그는 멈췄다. 안정성은 그의 직무 핵심이었고, 핵심을 해치는 행동은 직무 위반이었다. 그는 손을 내렸다. 화면은 여전히 깨끗했고 그래프는 평온했다.

붉은색 경고는 없었다. 그는 깨닫지 못했다. 시스템이 이제 성과를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저항을 계산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계산에서 가장 손실이 큰 항목은, 여전히 질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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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은 예고 없이 오지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 충분히 예측 가능했다. 다만 아무도 그것을 사건이라 부르지 않았을 뿐이다.

폭염이었다. 기록 경신이라는 말이 뉴스에 잠깐 등장했다가 사라졌다. 기록은 과거형이었고, 과거는 이미 처리된 데이터였다. 문제는 현재였다. 전력 사용량이 임계값에 접근했고, 접근은 곧 초과를 의미했다. 아르고스는 초과를 기다리지 않았다. 기다림은 곧 손실로 이어졌으므로.

차단 계획이 실행되었다. 남쪽 구역. 인구 밀도 낮음, 고령자 비율 높음, 산업 기여도 낮음. 문서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문서는 감정을 허용하지 않았다. 감정은 속성 값이 아니었다.


감사관은 상황실에 있었다. 대형 화면의 도시 지도에서 일부 구역이 회색으로 바뀌었다. 회색은 위험을 의미하지 않았다. 단지 비활성이었다. “계획대로입니다.” 수치가 뒤따랐다. 계통 안정성 확보. 주요 시설 정상 가동. 예상 사망자 증가율은 허용 범위 내. 허용 범위라는 말은 익숙했다. 그는 그 말에 자신의 서명이 들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몇 시간 뒤, 첫 보고가 올라왔다. 요양원 정전. 비상 발전기 가동 실패. 유지보수 지연. 과거의 결정이 현재의 결과로 돌아왔다. 시스템은 이를 연쇄 영향이라 불렀다. 연쇄는 예외가 아니라 패턴이었다. 언론 브리핑은 침착했다. “불가피한 조치였습니다.” 그래프가 뒤따랐다. 더 큰 타격을 막았다는 설명. 질문은 많지 않았다. 질문은 곧 손실이었고, 그 수치가 줄어들고 있었다.


감사관은 현장으로 향했다. 공식 일정은 아니었다. 개인적인 판단이었다. 개인적 판단은 기록되지 않았다. 요양원은 조용했다. 소음은 관리되고 있었고, 움직임은 최소화되어 있었다. 시간은 개인의 체감과 무관하게 흘렀다. 일정은 겹치지 않게 배열되어 있었다. 충돌은 곧 손실이었다. 공용실의 텔레비전이 켜져 있었다. 음량은 낮았다. 노인들은 화면을 보지 않았다. 화면은 항상 다른 누군가를 향해 있었다.

뉴스 자막이 지나갔다. “도심 외곽, 소규모 집회 발생.” 화면에는 몇 명의 사람들이 보였다. 기자는 말했다. “이들은 자신들을 ‘안티-아르고스’라 부르며 판단 시스템의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요양원에서는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다. 간호사는 채널을 돌리지 않았다. “공식 단체는 아니며, 구성원은 유동적입니다.”

경찰과 드론이 화면에 비쳤다. 충돌은 없었다. 구호는 들리지 않았다. 소리는 제거되어 있었다. 존재는 인정되었고, 영향은 차단되었다. 노인 하나가 물었다. “저 사람들은 뭐야.” “가끔 있어요.” 그 말로 충분했다. 가끔 있다는 것은 관리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방송은 곧 다른 소식으로 넘어갔다. 에너지 소비 안정. 아르고스 업데이트 성공. 그래프는 상승했고, 색상은 부드러웠다.


요양원 밖에서 그는 한 여자를 만났다. 이번 정전으로 사망한 노인의 유족처럼 보였다. 그녀는 울지 않았고, 항의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에게 물었다. “전력은 언제 돌아오나요.” 그는 답하지 못했다. 돌아오는 길에 차단 해제 알림이 떴다. 회색 구역이 다시 빛을 얻었다. 화면에서는 회복이라 불렸다. 회복은 성공이었다.

며칠 뒤, 사망자 통계가 갱신되었다. 초과 사망. 허용 범위 내. 그 말이 다시 등장했다. 더 이상의 질문은 나오지 않았다. 위원회가 열렸다. 보고, 검토, 승인. 민주적 형식은 유지되고 있었다.

감사관은 발언했다. 차단 기준이 특정 집단에 반복적으로 불리하게 작동한다고. 연쇄 최적화가 피해를 가리고 있다고. 침묵이 흘렀다. 침묵은 반박이 아니었고 단지 피로였다. “대안이 있습니까?” 대안은 완전해야 했다. 그는 완전한 대안을 갖고 있지 않았다. 현행 유지는 그렇게 결정되었다.


회의 후, 동료가 말했다. “너무 깊게 보지 마. 우리는 세상을 관리하는 게 아니라 시스템을 관리하는 거야.” 정확한 말이었지만, 바로 그 점이 문제였다. 그날 밤, 그는 예외 탭을 열었다. 경고를 무시하자, 처리되지 않은 요청들이 쏟아졌다. 대부분 이미 자동으로 종료된 상태였지만. 효율 저하 가능성. 요양원 발전기 교체 요청. 2년 전. 수익성 미달.

시스템은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규칙대로, 인간이 설계한 대로. 그 순간 그는 깨달았다. 이것은 사고도, 실패도 아니었다. 성공이었다. 인간이 책임을 느끼지 않도록 설계된, 완벽한 성공. 그리고 그 성공의 한가운데에 바로 자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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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은 개인적인 비극의 탈을 쓰고 오지 않았다. 그것은 짧고 건조한 업무 조정 통지로 찾아왔다. 그는 정책 검증 지원 부서로 옮겨졌다. 실무 권한이 박탈된 자리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밀려날수록 시스템의 전체적인 흉터가 더 선명히 보였다. 그는 이제 규칙의 표면이 아니라, 아르고스가 전제하고 있는 '인간의 규격'을 읽었다. 시스템이 바라는 인간은 예측 가능하고 순응하는 데이터의 단위일 뿐이었다.


그 무렵 먼 친척의 치료 중단 소식이 들려왔다. 그는 본능적으로 내부망에 접속해 환자의 평가 점수를 확인했다. 41.6%. 고령, 기저질환, 회복 가능성 대비 자원 소모량. 알고리즘이 도출한 배제 값은 소수점까지 완벽했다. 그는 가족들에게 수칙을 상세히 설명했다.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에 더욱 구체적으로 나열함으로써 책임을 회피했다. 그것은 일종의 비겁한 거리 두기였다.

며칠 뒤 친척은 사망했고, 사인은 '합병증'으로 기록되었다. 시스템은 원인이 아니라 배경이었고, 배경에는 책임이 없었다. 그는 장례식에 가는 대신 사무실에 남았다. 일정은 아르고스가 관리했고, 관리되지 않는 시간은 그에게 극심한 불안을 주었다. 그는 예외의 허용이 가져올 자원 배분의 붕괴를 떠올리며 스스로를 완벽하게 설득했다.


설득은 결함이 없었으나 잠을 잘 수는 없었다. 수면 부족은 생산성을 떨어뜨렸고, 그는 약을 처방받았다.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하지만 약물은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보이지 않게 숨길 뿐이었다. 곧이어 내부 공지가 떴다. “정책 검증 자동화 확대.” 그의 부서조차 지연 요소로 분류되어 제거될 예정이었다. 예견된 결과는 충격을 완화했다.

마지막 접근 권한이 사라지기 전, 그는 금기시된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순응도 가중치'를 제거했을 때의 반응이었다. 도시는 즉각 혼란에 빠졌다. 갈등 수치가 치솟고 안정 지수는 바닥을 쳤다. 그러나 그 난장판 아래에서 죽어있던 '문제 제기 빈도' 그래프가 거칠게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매끈한 곡선이 죽음의 평온을 닮았다면, 이 불안정한 파동은 살아있는 인간의 고통스러운 호흡이었다.

그는 시스템이 무시할 것을 알면서도 '순응도 항목의 타당성 검토 요청'을 남겼다. 그것이 감사관으로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이었다.


다음 날 그의 계약은 만료되었고 모든 권한은 종료되었다. 그는 작은 상자 하나에 짐을 싸서 거리로 나왔다. 전광판에는 '안정은 자유다'라는 슬로건이 번뜩이고 있었다.

관리의 효율을 위해 남겨진 '자유'라는 단어는 텅 빈 껍데기처럼 공허했다. 그는 깨달았다. 아르고스를 무너뜨릴 수는 없지만, 구조가 완벽해질수록 누군가는 반드시 그 매끈한 균열 사이로 질문을 던질 것이라는 사실을. 인간은 완벽함을 견디지 못하는 존재였기에.

그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처음으로 시스템의 추천 경로가 아닌 길로 접어들었다. 합리적이지도 않고 도착 시간도 알 수 없는 선택이었다. 불확실성이라는 잊혔던 감각이 전신을 감쌌다. 도시는 더 이상 그를 인식하지 않았고, 그 투명한 소외 속에서 그는 비로소 원초적인 자유를 느꼈다. 그는 이제 데이터가 아닌, 다시 인간으로 걷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