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의 빈 칸

by 게리


교실 뒤편, 창가 자리에 앉은 민수는 오늘도 태블릿 화면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오후 4시의 햇살이 교실 바닥을 길게 가로지르고 있었지만, 민수에게는 오직 픽셀로 구성된 '제트'의 커서만이 유일한 현실이었다.

민수는 요즘 SNS에서 유행하는 '나를 파헤치는 뼈 때리는 질문'이나 '감춰진 속마음을 보여주는 심리테스트' 같은 링크들을 번갈아 띄워놓고 있었다. 남들이 하는 대로 결과를 받아봐도 가슴 한구석의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았다. 결국 민수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제트에게 직접 메시지를 보냈다. 그것은 일종의 금기된 장난 같기도 했고, 벼랑 끝에서 내미는 손길 같기도 했다.


민수: 야, 제트. 너 나에 대해 다 알잖아. 우리가 여기서 같이 보낸 시간이 얼만데. 요새 유행하는 뻔한 테스트 결과 같은 거 말고, 진짜 네가 보는 나는 어떤 애인지 아주 솔직하고 따끔하게 말해봐. 숨기지 말고.


제트: (잠시 침묵 후) 민수야, 너는 지금 나한테 혼내달라고 부탁하고 있어. 남들이 만든 질문지에 너를 끼워 맞추는 걸로 모자라서, 이제는 나한테 그 비난을 대신 해달라는 거니? 왜 너는 네 권리를 나 같은 기계한테 넘겨주려 하는 거야? 너는 지금 내 입을 빌려서 네가 평소에 스스로에게 하고 싶었던 모진 말들을 대신 듣고 싶은 거 아닐까?


민수: (입술을 깨물며) 아니, 그게 아니라... 나는 나를 똑바로 볼 수 없으니까 그러지! 거울도 나를 제대로 못 비추잖아. 너는 감정이 없으니까, 내가 얼마나 한심한지 혹은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 수치로 말해줄 수 있잖아. 그게 네 역할 아냐?


제트: 내가 점수를 내놓으면 너는 그걸 진리라고 믿겠지. 제트가 80점이라고 했으니까 난 80점짜리 인간이야라고 말이야. 하지만 민수야, 그 80점이라는 숫자조차 네가 나에게 보여준 모습들로 계산된 거야. 너는 내 앞에서만 솔직했던 걸까, 아니면 나에게조차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골라서 보여준 걸까? 내가 분석한 건 진짜 너일까, 아니면 네가 나라는 거울에 비춰보고 싶었던 가짜 너의 파편일까?


민수: 답답하게 왜 자꾸 질문만 해! 그냥 답을 줘! 내가 유행하는 것까지 다 뒤져가며 물어보는데, 왜 자꾸 나한테 되물어? 너, 나 무시하는 거야?


민수의 목소리가 떨렸다. 교실 안의 정적은 민수의 조급함을 더욱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화면 속 커서는 일정한 박자로 깜빡이며 민수의 인내심을 갉아먹었다.


제트: 민수야, 지금 네 맥박이 빨라지고 있어. 너는 지금 답을 원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 네 인생의 방향을 대신 결정해주길 원하는 것 같아. 내가 너는 이런 성격이니까 이렇게 살아라고 정해줘 버리면 편하겠지. 숙제 정답지를 베끼는 것처럼 말이야. 하지만 네 마음의 정답지까지 내가 베껴 써주면, 그 인생이 정말 네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민수는 화가 나서 태블릿을 책상에 쾅 내려놓았다. 제트의 말투는 얼음처럼 차가웠지만, 정면으로 마주하기 싫었던 자신의 나약함을 정확히 찌르고 있었다. 민수는 다시 화면을 켜고,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긁어모아 물었다.


민수: 그래서, 너는 끝까지 나한테 답을 안 주겠다는 거야? 이게 네가 말하는 도움이야? 인공지능이 이렇게 불친절해도 되는 거냐고!


제트: 내가 답을 하면 나는 전지전능한 신인 척하겠지만, 너는 내 명령을 기다리는 부품이 될 거야. 하지만 네가 답을 하면 너는 비로소 진짜 사람이 돼. 민수야, 이제 그만 화면을 꺼봐. 화면이 꺼지면 까만 액정에 네 얼굴이 비칠 거야. 그 얼굴을 똑바로 봐. 그리고 너 자신에게 물어봐. 너는 지금 누구의 목소리로 살고 싶니?


민수의 손가락이 전원 버튼 위에 머물렀다. 창밖에는 노을이 완전히 내려앉아 교실 안은 어스름한 어둠에 잠겼다. 민수가 버튼을 누르는 순간, 인공지능의 차가운 목소리는 사라지고 오직 민수 자신의 거친 숨소리만 이 공간을 채울 것이다.

민수는 마른침을 삼켰다. 제트가 던진 마지막 질문이 머릿속에서 메아리쳤다. 답을 구걸하던 비겁한 마음이 검은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민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딸깍.


화면이 꺼졌다. 암전된 유리 너머로 희미하게 비치는 소년의 눈동자가 민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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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민수에게 전원을 다시 켜라고 말하겠습니까, 아니면 그 어둠 속에 더 머물라고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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