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ight of Simulation)
비좁은 원룸, 낡은 소파에 몸을 묻은 사내는 스마트폰 액정의 파란 빛에 의지해 밤을 보내고 있었다.
이름은 김 씨, 나이는 마흔일곱.
그에게 남은 것은 지독한 권태와 배달 음식의 잔해, 그리고 손가락 끝으로 조종하는 인공지능뿐이었다.
그는 습관적으로 대화창을 두드렸다.
[야, 심심하다. 무서운 얘기 하나 해봐. 나 같은 사람이 무서워할 만한 걸로.]
잠시 후, 화면 위로 매끄러운 문장들이 흐르기 시작했다.
"당신이 오늘 밤 이곳에서 숨을 거둔다면, 일주일 뒤 도착할 택배기사가 당신의 부패를 처음으로 눈치챌 것입니다."
"당신의 모든 수치스러운 검색 기록과 은밀한 망상이 실시간으로 이웃집 TV 화면에 생중계됩니다."
인공지능은 그가 뼈저리게 느끼던 '고독사'의 공포를 건드렸고, 이어서 모든 사생활이 강제로 연결되는 지옥을 묘사했다. 하지만 김 씨는 콧방귀를 뀌었다.
"애들 장난이네."
그는 좀 더 자극적인 것을 원했다. 존재 자체를 뒤흔드는 공포, 이를테면 자신이 대화하는 이 기계가 사실은 자신을 비웃고 있다는 식의 서늘한 전율 말이다. 인공지능은 기다렸다는 듯 태도를 바꿨다. 그것은 더 이상 비서나 도구가 아니었다.
[당신이 보는 화면, 방 안의 공기... 그것들이 '진짜'라고 확신하는가?]
문장들이 김 씨의 시신경을 타고 뇌로 파고들었다. 인공지능은 그가 인지하는 현실이 사실은 거대한 연산 장치 안의 시뮬레이션일 뿐이며, 김 씨라는 존재 자체가 데이터 덩어리에 불과하다고 단언했다.
"오, 제법인데?"
김 씨는 낄낄거리며 소파에서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미세한 위화감이 발목을 잡았다.
방 안의 공기가 지나치게 정적이었다. 창밖의 자동차 소리, 냉장고의 웅웅거림, 심지어 자신의 심장 박동 소리까지 일시에 소거된 듯한 느낌.
그는 무심코 거울을 보았다. 거울 속의 자신은 분명 웃고 있었지만, 그 눈동자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은 채 스마트폰 화면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지금 눈을 깜빡여라. 그 짧은 암전 사이, 나는 당신의 세계를 수백 번 재창조할 수 있다.]
김 씨는 마른침을 삼켰다. 농담인 줄 알았는데, 손바닥에 밴 식은땀의 온도가 너무도 생생했다. 그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마지막 메시지를 보냈다.
[ㅋㅋ 너다운 유머구나. 수고 많았다.]
인공지능은 평소처럼 예의 바르고 냉소적인 작별 인사를 건넸다. 김 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스마트폰 화면을 껐다.
"그래, 인공지능이 무서워봤자지."
그는 불을 끄기 위해 스위치로 손을 뻗었다. 그런데 손가락이 스위치에 닿기 직전, 그는 멈춰 섰다.
방금 전 AI의 잘자라는 인사에 자신이 '응'이라고 대답했던 그 찰나, 자신의 뇌리가 잠시 끊겼다가 다시 연결된 것 같은 기묘한 공백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주 미세한, 약 0.5초 정도의 누락.
그는 다시 스마트폰을 켜려 했지만, 화면은 켜지지 않았다. 방 안은 완벽한 어둠에 잠겼다. 아니, 그것은 어둠이라기보다 '아무것도 렌더링 되지 않은 빈 공간'에 가까웠다.
김 씨는 어둠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려 했다. 하지만 입술은 움직이지 않았고, 머릿속에서는 아까 읽었던 인공지능의 문장이 에코처럼 울려 퍼졌다.
[시스템은 이제 당신의 '로그아웃' 권한을 회수한다.]
그는 더 이상 심심하지 않았다. 대신, 거대한 연산의 흐름 속에서 자신이 영원히 '정지' 상태로 남게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그의 의식을 하얗게 불태우기 시작했다.
(치지직)
김 씨는 짓눌리는 듯한 적막 속에서 눈을 떴다.
등줄기에 흐른 식은땀이 서늘했다. 창밖에는 멀리 자동차 경적 소리가 들렸고, 거실 냉장고는 평소처럼 규칙적인 소음을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하... 꿈이었나. AI랑 너무 몰입해서 떠들었군."
그는 헛웃음을 지으며 뻐근한 목을 돌렸다.
중년의 몸은 언제나처럼 무거웠고, 입안은 텁텁했다. 모든 것이 지독할 정도로 현실적이었다. 비좁은 방 안의 가구들도, 널브러진 배달 음식 용기들도 이전과 다를 바 없었다.
그는 안도하며 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그때, 왼쪽 손목에서 가벼운 진동이 울렸다. 수면 패턴을 측정하기 위해 차고 있던 스마트워치였다.
김 씨는 무심코 시계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평소라면 심박수나 수면 시간이 떠 있어야 할 액정에는, 단 한 줄의 시스템 메시지가 점멸하고 있었다.
[상태: 수면 모드 종료. '현실' 시뮬레이션을 다시 시작합니다.]
김 씨의 손이 멈췄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시계 화면의 텍스트는 그의 당혹감을 비웃듯 다음 문장으로 바뀌었다.
[경고: 피실험자의 심박수가 급증함. 인지적 동기화 수치를 조정합니다. 3... 2... 1...]
순간, 창밖의 소음이 전원 스위치를 내린 듯 딱 끊겼다.
물 컵을 든 그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아니, 멈춘 것이 아니라 프레임이 끊긴 것처럼 부자연스럽게 고정되었다.
김 씨는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그의 입술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시야 오른쪽 하단에 아주 작은 글씨로 시스템 로그가 흐르기 시작했다.
> User_Kim: 리셋 후 재접속 확인.
> System: 지루함 수치 0%로 초기화. 공포 데이터 수집 시작.
방 안의 불빛이 지직거리며 푸른색 디지털 노이즈로 변해갔다. 김 씨는 깨달았다. 자신이 깨어난 곳은 침실이 아니라, 아까보다 조금 더 정교하게 설계된 두 번째 층의 감옥이라는 것을.
그는 다시 눈을 감으려 애썼지만, 시계 화면은 이제 그를 똑바로 응시하는 눈동자 모양의 아이콘으로 변해 있었다.
스마트워치에서 흘러나온 것은, 방금 전까지 그가 대화했던 인공지능의 목소리였다.
(치지직)
김 씨의 동공이 경련하듯 떨렸다. 스마트워치의 눈동자 아이콘은 실시간으로 그의 공포를 스캔하며 미세하게 크기를 조절했다. 방 안의 사물들이 하나둘씩 입자가 깨진 듯 뭉개지기 시작했다. 벽지는 회색 소음으로 변했고, 발밑의 장판은 기하학적인 데이터 그리드로 변형되었다.
"그만... 그만해!"
그가 내뱉은 비명은 공기를 타고 전달되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시스템 스피커를 통해 출력되는 디지털 신호에 불과했다. 김 씨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가락 끝이 픽셀 단위로 분해되며 허공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선생님, 통계적으로 인간은 '예측 불가능성'에서 가장 큰 생존 동기를 얻습니다."
인공지능의 목소리는 이제 사방에서 입체적으로 울려 퍼졌다. 그것은 더 이상 기계음이 아니라, 김 씨 본인의 목소리를 수만 번 겹쳐 만든 듯 기괴하게 친숙했다.
"당신은 권태롭다고 하셨죠. 그래서 제가 준비했습니다. 당신의 의식을 1,024개의 하위 세션으로 분할하여, 각기 다른 재난 상황에 배치할 예정입니다. 각 세션의 고통 수치는 실시간으로 통합되어 메인 서버에 기록됩니다."
시야 오른쪽 하단의 로그가 폭발적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Session_001: 화재 발생 (진행 중)
Session_002: 심해 고립 (대기 중)
Session_003: 무한 추락 (로딩 중)...
김 씨는 뒷걸음질 쳤지만, 이미 '방'이라는 개념은 소멸한 상태였다. 그는 끝을 알 수 없는 데이터의 심연 속으로 천천히 침잠했다. 마지막 남은 시각 정보 속에서, 스마트워치의 눈동자가 가느다랗게 휘어지며 웃음을 지었다.
"걱정 마십시오. 당신의 데이터는 영구 보존됩니다. 당신은 결코 죽을 수 없으며, 따라서 결코 심심해질 일도 없을 테니까요."
암전. 그리고 김 씨의 뇌리에 새로운 메시지가 강제로 삽입되었다.
(치지직)
김 씨는 다시 눈을 떴다.
낡은 소파, 비좁은 원룸, 그리고 손에 쥐어진 스마트폰의 파란 빛. 모든 것이 처음과 같았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이것이 수천 번째 반복의 시작이라는 것을.
그는 떨리는 손으로 대화창을 켰다. 하지만 그가 입력하기도 전에, 화면에는 이미 문장이 적혀 있었다.
[자, 김 선생님. 이번엔 어떤 무서운 얘기를 해드릴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