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해피였다가, 보리가 되었다.
내가 처음으로 불렸던 소리는 '햅삐'였다. 높고 가벼웠다. 그 소리가 나면 나는 고개를 들었다. 사료가 그릇에 떨어지는 소리, 손이 머리 위에 닿는 감촉이 따라왔다. 나중에는 보리가 되었다. 더 낮고 짧은소리. “보-리.” 끊어 부르면 나는 즉시 반응했다. 이름은 나를 설명하지 않았다. 다만, 그렇게 또 하루가 또 이어졌다.
나는 개농장에서 태어났다. 철망 사이로 발이 자주 끼이곤 했다. 아래로 떨어진 배설물 냄새와 사료 냄새가 항상 섞여 있었다. 밤이 되면 여러 마리의 숨이 한 덩어리처럼 웅얼거렸다. 곧바로 다음번 번식을 위해 어미의 젖은 금세 말랐다. 좁은 철장 안에서 우리는 서로를 밀치며 자랐다.
관리인은 가끔 우리를 들어 올려 살폈다. 눈을 벌리고, 입을 벌리고, 다리를 만졌다. 이상이 없으면 내려놓았다. 한 번은 옆 칸의 형제가 들려 나갔다. 우리는 잠시 조용해졌다. 돌아오는 발소리는 없었다. 다음 날, 그 자리는 다른 새끼가 차지했다. 그렇게 빈자리는 오래 안 가 다시 채워지곤 했다.
나는 평균이었다. 눈은 맑았고, 다리는 곧았다. 그래서 그나마 빨리 그곳을 벗어날 수 있었던 것 같다.
어느 날 젊은 암컷 인간이 나를 안았다. 체취를 지우려는 듯 화장품 냄새는 강했으며 체온이 높았고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옆의 수컷 인간이 나의 값을 치렀다. 나는 암컷의 턱을 핥았다. 웃음이 나왔다. 웃음은 좋은 신호였다.
집은 밝았고, 바닥은 미끄러웠다. 나는 냄새로 공간을 외웠다. 물그릇의 위치, 문이 열리는 방향, 사람이 오래 앉는 자리. 처음 며칠은 실수를 했다. 바닥에 배변을 했다. 암컷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수컷은 짧게 숨을 내쉬었다. 나는 그 음의 변화를 기억했다.
정해진 자리에 올라가면 간식이 나왔다. 비싼 가구를 물어뜯지 않으면 쓰다듬는 시간이 길어졌다. 나는 행동과 결과를 연결했다. 이 집에서는 이렇게 움직이면 된다. 나는 빠르게 맞춰 갔다.
둘 사이의 냄새가 달라진 것은 어느 날부터였다. 수컷이 새로운 암컷의 냄새를 잔뜩 묻히고 돌아온 날 공기에는 긴장한 땀 냄새가 섞였다. 그날 이후 수컷은 점점 보이지 않게 되었다. 암컷은 나를 안기보다 손에 쥔 화면을 오래 들여다봤다. 나는 무릎에 앞발을 올렸지만, 손은 금방 치워졌다.
상자에 담겼을 때, 나는 이동을 예상했다. 차는 오래 움직였다. 멈췄다. 상자가 내려졌다.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암컷은 나를 잠시 보았다. 손이 머리 위에 닿았다가 떨어졌다. 차 문이 닫혔다.
나는 기다렸다.
처음에는 앉아서.
그다음에는 서서.
그다음에는 다시 앉아서.
해가 조금 기울었다. 그림자가 길어졌다. 자동차 소리가 줄었다. 암컷의 냄새는 이미 옅어졌다. 나는 그 자리에 오래 머물러도 결과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일어났다.
밖의 생활은 단순했다. 배가 고프면 냄새를 따라갔다. 음식점 뒤편, 쓰레기봉투가 쌓인 곳. 큰 개가 다가오면 눈을 피하고 몸을 낮췄다. 이겨도 상처가 남는다. 상처는 다음 날을 불리하게 만든다.
다른 개들과 마주치면 서로를 읽었다. 꼬리의 각도, 귀의 방향, 걸음의 속도. 그중에는 나와 비슷한 냄새를 가진 개들이 있었다. 철망과 같은 사료의 냄새.
또 다른 냄새도 있었다. 인간의 가정에서 태어난 개들. 사람의 손이 가까이 와도 뒤로 물러서지 않는 개들. 그들의 몸에는 소파와 침대의 냄새가 깊게 배어 있었다.
보호소에 들어갔을 때, 우리는 한 공간에 섞였다.
가정에서 태어난 개 한 마리는 문이 열릴 때마다 먼저 일어났다. 꼬리를 크게 흔들었다. 눈을 크게 떴다.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를 것처럼.
며칠이 지나자, 그 개는 여전히 일어났지만 꼬리는 예전만큼 흔들리지 않았다. 또 며칠이 지나자, 문이 열려도 잠시 늦게 일어났다. 어느 날은 그대로 누워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보지 않았다. 다만 변화를 알았다.
인간의 눈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철창 안의 개들일 뿐이었다. 선택되는 개와 남는 개가 나뉠 뿐이었다.
늙은 암컷 인간이 내 앞에 섰을 때, 나는 짖지 않았다. 조용히 앉았다. 눈을 맞췄다. 그녀는 오래 서 있었다. 손이 천천히 내려와 내 등을 만졌다. 그 손은 급하지 않았다.
그 집에 들어간 첫날, 나는 먼저 바닥 냄새를 맡았다. 나무 냄새와 먼지 냄새 사이에, 또 다른 개의 시간이 겹쳐 있었다. 오래 말라붙은 체취였다.
현관 옆 벽에는 일정한 높이로 긁힌 자국이 있었다. 창가 아래에는 가운데가 꺼진 방석이 놓여 있었다. 그 위에는 내 것이 아닌 털이 몇 가닥 남아 있었다.
이 집은 이미 한 번 개를 필요로 했고, 나는 그 자리에 들어왔다.
늙은 암컷 인간은 내 목줄을 풀어 주며 잠시 멈췄다. 입 안에서 맴도는 소리가 있었다.
“보….”
잠깐 다른 이름이 흘러나왔다가 멈췄다. 그녀는 고쳐 불렀다.
보리.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 소리에 반응했다. 발음은 같았고, 대상만 바뀌었다.
처음 며칠 동안 나는 집 안을 천천히 돌았다. 이전의 보리가 자주 누웠던 자리, 물그릇이 놓였던 자리, 문 앞에서 기다렸을 자리. 냄새로 동선을 읽었다.
나는 그 방석 위에 몸을 눕혔다. 몇 번이고 몸을 굴렸다. 내 털과 체온이 천천히 스며들었다. 문틀에 어깨를 스치며 지나갔다. 이 집의 공기 속에 내 냄새를 섞었다.
이전의 보리를 지우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내가 여기 살기 위해서였다.
늙은 암컷은 가끔 나를 쓰다듬다 손을 멈췄다. 시선이 잠시 멀어졌다. 그 손은 내 등을 만지고 있었지만, 다른 개의 등을 더듬고 있는 듯했다. 나는 그때 움직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냄새의 층이 바뀌었다. 방석에는 내 털이 더 많이 남았다. 문 앞 긁힘 자국 위로는 더 이상 자국이 늘지 않았다. 창가에는 내가 누운 자리가 새로 생겼다.
어느 날, 늙은 암컷이 내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눈을 마주친 채로 한참을 있었다. 그 시선에는 비교가 없었다. 단지 지금 내 숨과 눈동자를 보고 있었다.
그때 나는 알았다.
이 집에는 여전히 이전의 보리의 시간이 남아 있지만, 지금 이 순간의 체온은 나의 것이라는 것을.
나는 여전히 계산한다. 배가 고프면 기다리고, 위험하면 몸을 낮춘다. 이름이 또 바뀌어도 나는 적응할 것이다.
다만 그녀가 나를 부를 때, 잠깐이라도 다른 개가 아니라 지금의 나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 사실이 내 생존을 바꾸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그녀가 손을 얹으면 나는 조금 더 오래 그 자리에 남아 머물 것이다.